일상에 대한 넋두리

초여름 녹음도 차분한 고산 휴양림_20200614

사려울 2022. 8. 31. 03:27

6월이 지나기 전에 다짐했던 운장산 칠성대는 대둔산의 유명세에 살짝 묻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위에서의 절경은 비교 불가다.
칠성대를 가기 위해 잠시 쉬어 가는 길목으로 선택한 숙소에서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오후 해 질 녘 적막한 숲길을 따라 걷는다.
전날 내린 빗방울이 모여 잔뜩 불어난 여울의 힘찬 속삭임, 그에 더해 무거운 구름이 걷히는 대기를 활보하는 새들의 지저귐이 문명의 사념을 잊게 만든다.
여름의 텁텁한 공기는 어디를 가나 계절의 촉수를 벗어날 수 없지만, 서울과 달리 코끝을 어루만지는 숲의 싱그러움은 수 만 가지 언어로는 통제되지 않는 번뜩이는 감각이 있다.
여행의 첫날,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만 그 길섶에서 만나는 풍경들이 그립다. 

길가에서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사는 길냥이들은 숲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히 위생 봉투에 밥을 챙기길 잘했지만, 굶주린 네 모습에서 한 톨 밥이 그리 도움이 될런지..
언젠가부터 너희 존재를 보며 생명의 동정 이면에 문명의 잔인함도 느낀다.

휴양림 내 숙소에 봇짐을 풀고 카메라 하나만 동여 맨 채 숙소 주변, 휴양림을 서성인다.

올 장마철은 유독 많은 비로 인해 전국이 홍역을 앓던 차, 때마침 지루한 비가 그치던 날 여행을 떠나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수마가 할퀴고 간 뒤 개울은 그 수마의 흔적을 지우려 꽤 많은 물소리를 내려 아래로, 아래로 흘려보낸다.

고산 휴양림을 관통하는 개울은 꽤 잘 정비되어 많은 피서객의 더위를 식혀줄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직은 피서철을 앞둔 시기라 휴양림은 무척 한산했다.

개울가 길이 안내하는 대로 걸음을 옮기자 점점 길은 수풀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휴양객들을 위한 이런 시설들이 참 많고, 그와 함께 잘 정비되어 있다.

이번 칠성대 여행 전 고산 휴양림을 처음 알게 되어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로 방문했지만 하나의 거대한 녹지 공원처럼 조성된 곳이라 주변 수풀을 밟을 필요 없이 산책로는 잘 정비되어 있고, 그로 인해 숲 속을 걷는 기분은 고스란히 누리면서도 쫓기거나 거북한 기분은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

개울은 힘찬 물소리가 가득하지만 길을 집어삼킬 정도는 아닌, 길과 자연의 경계가 비교적 선명했다.

저녁 시각이라 휴양림 내 더 깊은 계곡길은 버리고 숲 너머 통나무집이 모여 있는 장소로 방향을 잡았다.

계곡은 꽤 깊은지 개울 폭은 넓은 편이었고, 그마저 오래된 제방둑이 쌓인 걸로 봐서는 휴양림으로 개발된 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통나무 구조물과 너른 공터가 있는 자리를 밟는다.

예전 대학 MT 때 정취 같다.

오래된 유스호스텔 같은 건물과 너른 운동장의 조합.

운동장은 얼마 전 내린 호우로 듬성듬성 물이 빠지지 않고 고여 있는데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지 공터를 밟을 때마다 발바닥에 땅의 무른 질감이 전해질 정도로 살짝살짝 발자국이 패였다.

석양이 넘어가는 시간이기도 했고, 휴양림 이용객이 적기도 하여 산책로엔 마주치는 사람이 전혀 없었고, 그로 인해 시간을 잊고 먼 길 달려온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는 산책이었다.

운장산을 비롯한 산자락의 낮은 봉우리가 모여 있는 고산 휴양림은 이제 막 젖어드는 초여름 향기가 만연한 가운데 얼마 전까지 무서운 기세로 지상을 헤집던 비의 향기가 미세하게나마 깔려 있었다.

꽃이 흉내 낼 수 없는 이 숲의 향기가 이끄는 대로 길을 걸으며, 문명 속에서의 급격한 변화에 얼마나 강요당할까?

이 시간만큼은 그런 강박증을 잊어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 숲을 꿈틀대는 향기의 일부로 용해되어 육신이 차분해지는 기억은 증발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길래 숲에서 내려온 물줄기 기세가 산책로를 완전히 뒤덮었지만 그럼에도 위협적이지 않아 일부러 길을 덮은 물살을 밟으며 지나가는데 콘크리트에 통제된 물길이 아니어 걷는 발자국마다 차박차박 경쾌한 소리가 고운 이랑을 그리며 뒤쫓아왔다.

기억과 지식이 전혀 없던 새로운 여행의 시작, 고산 휴양림에서 강박적인 시선을 버리고, 유쾌하고 느긋한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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