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31

오지 협곡에 흐르는 풍류, 낙동강 세평하늘길 1구간_20240309

협곡에 살짝 걸쳐진 길을 걷다 앉으면 길가 벤치가 되고,조밀한 나무 어깨를 지나면 터널이 되고,깊이 들숨을 마시면 향기가 되는 곳.낙동강이 허락해 준 낙동강 세평하늘길(이하 '세평하늘길')은 극도로 한갓진 두려움도, 깊디깊은 적막의 어둠도 없었다.그럼에도 자연의 숨결이 명징하게 피부를 스치며, 새의 지저귀는 노래가 이토록 아름다운지, 구르는 물의 소리가 이토록 흥겨운지, 또한 바람 소리에서 이토록 향그로운 향이 나는지, 문명이 차단된 계곡이 투영한 햇살이 콧잔등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교감했다.길은 강변 수풀을 헤치고, 모래자갈밭을 지나며,바위를 밟고, 철길과 나란히 걷거나 아래를 지나며,데크길로 가파른 비탈길을 날고, 절벽을 스친다.그래서 길은 삶이 지나는 혈관이며, 이야기가 오고 가는 전신주였다.겨..

흐르는 강물처럼, 낙동강 세평하늘길 3구간_20240309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유일무이한 길이자 강변과 함께 나란히 늘어선 세평하늘길을 걸으며 그 길이 안내하는 대로 쉼 없이 걸었다.가끔 마주치는 인가와 어쩌다 지나는 차량의 엔진소리가 반가울 만큼 문명의 밀도가 낮은 공간을 파고들어 언제부턴가 소음에 길들여진 어색함을 털기 위해 나지막이 음악을 곁들였다.세평하늘길은 총 3 구간으로 1구간은 승부역~양원역, 2구간은 양원역~비동 임시승강장, 3구간은 나머지 비동~분천역까지로 나뉘는데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걷는 구간은 3구간으로 낙동강이 첩첩산중을 비집고 들어가 억겁 동안 트여놓았고, 인간은 거기에 좁은 도로와 철길을 얹어 놓았다.그래서 강에 자생하는 생명들과 자연들이 서로 교합하여 만들어낸 소리가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풀어놓은 실처럼 이정표가 되어준 덕..

동해바다에 대한 거대한 포부, 망양정_20220316

수평선 너머 또 다른 수평선에 대한 이상과 너른 바다를 품은 더 너른 바다에 대한 호기심은 지극한 욕구이자 궁극의 본능이다. 무릇 풍류를 아는 사람이 즐길 줄 알고, 풍류가 머무는 곳에서 가락은 흥이 된다. 망양정에서 읽노라면 표독한 파도는 바람의 흥에 맞춰 한사코 뒤를 따르는 바다의 어깨춤이 되며, 그토록 뒤섞이면서도 밀어내고 떨치려 하는 문명도 평온의 자장가에 나른한 단잠이 된다. 그 장단에 신이 난 봄볕은 향긋한 미소의 깃털을 띄워 뺨 위에 길 잃은 콧노래로 합주한다. 망양정(望洋亭)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해안가에 있는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의 정자이다. 고려시대에 처음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허물어졌으므로 조선시대인 1471년(성종 2) 평해군수 채..

봄바다의 나지막한 찰랑임, 망양정 해수욕장_20220316

망양휴게소에서 한숨 고른 뒤 도착한 망양정 해변은 한가로이 쉬고 있는 갈매기 소리와 망망대해 동해 파도 소리만 가득한 그야말로 한적한 세상이었다. 망양정에 도착하여 너른 공터 같은 주차장에 차를 두고 망양정으로 오르기 전에 잠시 해변을 걷는데 생각보다 꽤 너른 해변의 규모에 비해 찾은 이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시간의 구속 없이 천천히 걷는 순간순간 해변의 모래처럼 무수한 여유가 차고 넘쳤다. 망양정 해수욕장은 망망대해 동해와 인접한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 언덕과 왕피천 하구가 만나는 거대 모래톱으로 인근 엑스포공원, 성류굴과 왕피천을 넘나드는 케이블카가 있다. 2006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전국해양스포츠제전의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개최되었으며, 2007년 7월에는 해양수산부 주관 아름다운 어촌마..

바다를 향한 고전적 갈망, 울진 망양휴게소_20220316

7번 국도를 지나면 의례적으로 들러 바다를 정독하게 되는 망양 휴게소는 처음에 망양인지 망향인지 대충 불러도 그 느낌은 허투루 하게 기억되지 않는 정취가 있다. 바다의 파도보다 더 강렬하고, 더 거센 세월의 파도에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처럼 연약하고 가냘픈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이제는 제법 바다와 어울리는 동태적인 변화가 깃들었다. 망양휴게소 www.mangyang.co.kr 휴게소 내 스카이워크와 비슷한 구조물에 오르면 바다 정취는 급격히 증폭되어 가슴으로 파고든다. 또렷한 기억 중 하나가 암초 무리들 위의 강태공들인데 이제는 텅 빈 채 파도만 암초를 누빈다.

들판의 강인한 생명_20211115

들판에 무심히 자란 생명들도 제대로 알게 된다면 향내 그윽한 봄나물 못지않다. 진면목을 알고 있는 시선은 귀한 나물이 되지만 내 눈엔 그저 들판 위의 여타 생명들과 다를 바 없다. 집에 가져와 겉절이 해서 한 입에 쏙 넣으면 그동안 움츠리고 있던 묘한 향이 기지개 켜듯 기나긴 여운을 남기고 후두덮개를 간지럽힌다. 이거 꽤나 귀한 나물이라는데 마치 봄동 축소판 같다. 이름하야 곰보배추~ 이건 황새냉이란다. SNS는 내게 없는 지식도 척척 챙겨준다. 가르쳐 주신 분, 감사합니다~ 매발톱. 황새냉이. 들판에 심어 놓은 단풍나무와 곰보배추를 캐던 중 이웃사촌이 있어 사진을 몇 컷 찍었더랬다. 황새냉이를 보면 강인한 생명력의 상형문자 같다.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하며 겨울에도 생긋한 모습이다. 거미줄이 감고 있는 ..

한 때의 영화, 옥방정류소_20211030

한 때 동해로 가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머무르던 옥방정류장은 높은 답운재를 넘기 전 잠시 동안 긴 한숨을 들이쉬던 길목으로 여기서부터 구부정 고갯길이 시작되지만 이제는 조급한 문명의 직선에 외면당해 과거의 영화를 마냥 기다리는 곳이다. 마을 부근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생수터가 있어 옆에 차를 세워 놓고 한 모금 물을 들이키자 영락없는 생수다. 힘차게 넘치는 생수가 아닌 우물처럼 고여 있는 물을 길러야 되는데 그리 차갑지는 않고 시린이빨이 걱정되는 사람에겐 딱이다. '산삼의 고장 옥방생약수'란 표지석이 있는 것 보면, 그 위에 제사 지내듯 종이컵 물 한 잔을 드려놓은 것 보면 나름 지역 분들이 신성시하는 약수터겠지? 바로 도로 옆이라 물 긷기 편한데 우물처럼 고인 물에 떠있는 건데기를 잘 봐야 되겠다...

깊어가는 통고산 가을_20211029

해 질 무렵 이번 가을의 마지막 페이지에 살짝 책갈피 끼운다. 하루 해가 지고 남은 땅거미와 그 아래 어스름 피어난 가을 물감이 잠들기 전, 흔들어 깨우는 속삭임에 부시시 영근 미소로 울긋불긋 화답하는 인사가 끝나면 겨울 피해 깊은 잠에 빠져 들겠지? 잠시 잡은 손 놓기 싫어 잰걸음으로 길을 타지만 어느새 졸음 참지 못하고 하나둘 가을 등불이 눈을 감는다. 불영 가을 습격 사건_20141101 이제 희귀해져 버린 가을을 본격적인 사냥에 나서기로 한 프로젝트 1탄, 이름하야 불영 계곡 가을 습격 사건 개봉 박두~ 두둥!! 10월의 마지막 밤에 급작스런 회사 일정으로 늦게 끝나 버렸어 ㅠ meta-roid.tistory.com 통고산에서 삼척까지_20151105 여전히 산골에 남아 서성이는 만추의 풍경이 그..

울진에서의 가을 안부_20211029

영양에서 곧장 여기를 달려온 이유, 명소의 가을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닌 이유와 같다. 오래된 것들과 이미 사라져 고독해져 가는 것들의 조화로움에 가을이 깃들어 기억의 액자로 남은 장면을 꼭 만나야만 했다. 하나만 보자면 그리 이채로울 게 없는, 축 처진 나뭇가지와 오래되어 낡고 지독한 인적의 그리움에 찌든 인공 구조물은 두 개가 함께 만나 각자의 공허함을 상충시켜 비움에서 채움으로 극복했다. 통고산에서 삼척까지_20151105 여전히 산골에 남아 서성이는 만추의 풍경이 그리운 가을과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아쉬운 발로일까? 바다와 산을 아우를 수 있는 통고산으로 가는 길은 늦은 밤, 꽤나 오랜 시간이 소요 meta-roid.tistory.com 설 익은 가을을 떠나며_20161016 시간은 참 야속..

가을 인사, 통고산_20211029

가을 정취가 인사하는 싱그러운 아침. 무심한 표정 같지만 단아하고 이채로운 가을의 설레는 느낌이 반갑다. 차 위에서 쉬고 있는 한 마리 벌도 가을 여정에 잠시 한숨 돌리고 있나 보다. 영양으로 출발하기 전, 숙소 현관을 열자 탐스럽게 익은 가을이 첫인사를 한다. 무거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집어 첫인사를 담는다. 이번 가을은 차라리 소박하더라도 가을빛 질감은 살아있다. 은하수 여울 소리, 통고산_20211028 잰걸음으로 태백에서 넘어왔지만 석양은 끝끝내 뒤를 밟고 따라와 어둑해져서야 통고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백의 도로에 몸을 싣고 높은 산, 터널을 지날 때마다 가을 여정길에 만난 정겨움 meta-roid.tistory.com 특별하지 않다고 모든 게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