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천역에서 출발하여 유일무이한 길이자 강변과 함께 나란히 늘어선 세평하늘길을 걸으며 그 길이 안내하는 대로 쉼 없이 걸었다.
가끔 마주치는 인가와 어쩌다 지나는 차량의 엔진소리가 반가울 만큼 문명의 밀도가 낮은 공간을 파고들어 언제부턴가 소음에 길들여진 어색함을 털기 위해 나지막이 음악을 곁들였다.
세평하늘길은 총 3 구간으로 1구간은 승부역~양원역, 2구간은 양원역~비동 임시승강장, 3구간은 나머지 비동~분천역까지로 나뉘는데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걷는 구간은 3구간으로 낙동강이 첩첩산중을 비집고 들어가 억겁 동안 트여놓았고, 인간은 거기에 좁은 도로와 철길을 얹어 놓았다.
그래서 강에 자생하는 생명들과 자연들이 서로 교합하여 만들어낸 소리가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풀어놓은 실처럼 이정표가 되어준 덕분에 목표는 명확했고, 심취의 단맛에 녹아들 수 있었다.
지난 장마 수해로 길이 드문드문 유실되어 현재 세평하늘길은 잠정적으로 폐쇄 중임에도 비동 임시승강장까지 포장된 길이라 큰 변수는 없었지만 2구간으로 접어드는 비동 임시승강장부터의 구간은 철교 옆을 지나게 되는데 진입로가 철장에 굳게 잠겨 하는 수없이 출발점인 분천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편도 4.3km를 왕복하여 다시 분천역으로 돌아와 잠시 망설였지만 때마침 영동선 무궁화호가 7분 연착되는 덕에 바로 열차를 타고 가운데 2구간 체르마트길을 건너뛰어 1구간의 시작점인 승부역으로 향했다.
모가지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호랭이를 재현해 놓았는데 단지 맹수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없애고 고양이처럼 친숙한 이미지를 덧대어 놓았다.
덕분에 분천역 산타마을에서 인기몰이의 주인공은 단연 적재적소에서 자리를 잡아 쉬고 있는 호랭이들이었다.
봉화 명호에 가면 호랭이가 살았다던 범바위가 있는데 그만큼 봉화 일대는 오지 마을이었단다.
분천역을 둘러보고 이번 여정, 세평하늘길에 생애 첫 발을 들였다.
더불어 음악을 틀어 설렘과 함께 즐기며 걷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낙동강 세평하늘길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진행되었다.
낙동강 세평하늘길 3구간의 출발점은 분천역 바로 앞을 지나는 포장된 길로 분천역을 벗어남과 동시에 주변 정취는 아기자기한 마을에서 봄맞이 준비가 한창인 야생적인 벌판으로 급변했다.
전날 다가온 꽃샘추위는 악몽이거나 선물일 수 있었는데 최소한 내게 있어 선물이었다.
꽃샘추위가 가져다준 청명함.
그래서 길을 출발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죽미산에서 길게 늘어진 능선 따라 선명한 설경이 다져졌다.
낙동정맥트레일은 비동 임시승강장을 가기 전 잠수교 반대편 산행길로 승부역으로 가는 지름길과 같았고, 낙동강 세평하늘길은 철저히 낙동강변을 따라 진행하는 길로 비교적 등고차가 적은 대신 사행하는 낙동강과 길의 형태가 비슷해 상대적으로 거리는 멀었다.
분천역에서 약 1.1km를 걸어온 만큼 낙동강 세평하늘길(이하 '세평하늘길')로 진행하게 되면 11km가 남았지만 낙동정맥트레일 코스는 8.8km가 남은 만큼 형태가 완전히 다른 길의 명확한 특징이 구분되었다.
세평하늘길은 낙동강이 트여놓은 계곡에 살짝 올려진 철길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데 서로 교차하거나 평행을 그리기도 했다.
울진과 영주를 잇는 자동차 전용도로 36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분천역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겸 쉼터가 있는데 이번엔 반대로 전망대를 조망했다.
분천역 너머 작은 산중턱 암자인 약수암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크게 우회하여 철길 아래 토끼굴로 지났다.
강은 의미 없이 편한 대로 뚫고 파헤치지 않았다.
이런 강변의 전경을 보면 평생에 걸쳐 우리가 경험하는 것보다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이 더 많았다.
모처럼 만난 인가를 지나면 낙동강을 건너 반대편 길로 계속 진행되는데 수마가 종종 할퀴는 곳인지 원래 있던 비동1교 옆에 새로이 높고 견고한 다리가 한창 건설되고 있었다.
비동1교를 건너면 앞으로 나아가야 될 방향을 제시했다.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2.3km를 걸었다.
그런데 그 옆에는 분천역까지 1.5km라니 아무리 그래도 분천역이 800m나 방대했던가?
안내센터도 600m가 차이 났다.
왠지 탁상행정의 폐단이 나은 오류 같았다.
낙동정맥트레일 안내센터가 주차장과 분천역 사이에 있었던 만큼 안내센터 기준으로 잡아도 되겠다.
낙동강 건너 가파른 산과 강 사이를 힘겹게 가로놓인 철길이 보였다.
분천역에서 2.1km, 안내센터에서 2.7km를 걸었고, 최종 목적지로 정한 승부역까지 10.2km가 남았는데 이때까지는 길이 단절되었는지 모른 채 걷는 즐거움에 빠진 상태였다.
조금 더 걷자 간이 장실이 나왔고, 문을 열자마자 바로 닫아 버렸는데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대략 간이 장실 반대편, 길과 낙동강 사이에 가로 놓인 유원지가 있었는데 소나무 군락지였고, 길을 조금 더 걸어가면 여기로 통하는 데크 계단도 있었지만 목표가 명확한 만큼 옆길로 새지 않고 길 따라 계속 걸었다.
분천역에서 2.8km, 안내센터에서 3.4km를 걸어왔다.
길을 걷다 낙동강 한가운데 바위에 시선이 꽂혔다.
마치 주물러서 바위를 빚은 형태 같았는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였다.
길은 비동2교를 건넜는데 잠수교 형태라 앞서 지나왔던 비동1교에 비해 홍수에 더 취약했고, 마찬가지로 새로운 다리가 한창 신설 중이었다.
비동2교에서 낙동강 상류 방향을 바라봤다.
늦겨울과 초봄에 비가 많아서인지 수량은 무척 풍부했고, 물길도 거셌다.
비동2교를 건너 강변 옆 쉼터에서 잠시 쉬며 비교적 두꺼운 외투를 벗어 백팩에 넣고, 고소한 소금빵 하나를 쳐묵했다.
따스한 봄볕, 강물과 새소리, 낮은 음악이 뒤섞여 묘하게 대기와 마음이 화사한 상태였다.
근래 여러 지자체에서 명소를 발굴하여 둘레길을 탄생시켰는데 그와 동시에 잊혀질 뻔한 이야기들도 함께 소개해 놓았다.
난 단순히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길을 통해 공간을 느끼며 공감해 나가는 만큼 이런 이야기들이 찰지게 흥미로웠다.
영동선이 크게 굽이쳤다.
이렇듯 낙동강을 중심으로 철길과 도보길이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했다.
앞서 낙동강 일대 숨겨진 이야기처럼 영동선이 만들어 준 이야기.
영동선으로 인해 단절되었던 일대 지역이 외부와 소통을 시작했는데 유일한 교통수단인 철도로 편해지기도 했고, 사고도 종종 있었단다.
거의 일직선과 같은 길을 걷다 멀리 낙동강을 건너는 잠수교, 일명 비동3교가 보였는데 지도상 잠수교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면 세평하늘길 3구간의 종착지이자 2구간 체르마트길의 시발점인 비동 임시승강장이 있었다.
잠수교를 건너기 전 갈림길이 있었는데 그 지점이 두 둘레길의 분기점으로 잠수교를 건너는 길이 세평하늘길이고, 그 반대인 언덕으로 향하는 길이 낙동정맥트레일이었다.
잠수교를 건너며 발걸음을 잠시 멈췄는데 소나기처럼 퍼붓는 봄볕 아래 바람도, 강물도 쉬어 한숨 돌렸기 때문이었다.
평온의 미각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잠수교를 건너던 중 중간 지점에 멈춰 주변을 둘러봤다.
강변의 풍경이 빼어나고 특출 나지 않지만 흘려보낼 수 없는 비경의 전초전 같았다.
잠수교를 건너 콘크리트 포장길을 걷다 강 건너편을 보자 잠수교를 건너기 전 지점에 인가가 있었고, 그 인가를 지나는 낙동정맥트레일도 함께 포착되었다.
길과 낙동강 사이 바위에 뿌리를 두고 이따금 솟은 소나무가 인상적이었다.
비동 임시승강장에서 2구간 체르마트길이 시작하면 저 철교를 건너야만 했다.
비동 임시승강장은 바로 철교를 건너기 전인데 길 우측 절벽처럼 솟은 땅 위에 비동 임시승강장이 있다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었다.
비동 임시승강장 바로 아래 도착.
통신상태를 점검하는 건지 승용차에서 사람이 내려 한참을 모니터링 중이었다.
바로 옆 기도터를 가리키는 표지석 방향으로 콘크리트 길 옆으로 이렇게 솔잎이 쌓인 비포장길은 비동 임시승강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처음엔 지점을 간과하고 오던 길 따라 계속 진행을 했는데 어느 순간 길의 형태가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지도를 실행시키자 강변 외딴집으로 가는 길이라 다시 돌아 나와 제대로 길을 짚었다.
비동 임시승강장에 도착, 분천역에서 4.3km, 안내센터에서 4.9km를 걸어왔다.
과정은 간소하고 스토리는 장대한 도보 여행의 맛을 다시금 곱씹었다.
지난 수해로 2구간과 3구간 일부가 유실되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철문이 굳게 걸어 잠겨져 있었다.
임시승강장답게 원시적인 플랫폼의 형태였고, 하나의 구간을 성취한 상징적인 곳이기도 했다.
행여 지날 수 있나 싶어 철도청 영주지사에 전화를 걸었는데 한 분이 친절하게 응대해 주시면서 정확한 정보는 자문을 구한 뒤 다시 연락을 주신다고 하시어 이 자리에서 쉴 겸 잠시 기다렸다.
약 10여 분 지나 답신이 왔는데 길의 폐쇄는 철도청에서 결정하고 이행한 게 아니라 봉화군청에서 결정한 사항이란다.
그래서 이에 대한 조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응대를 끝으로 전화를 끊고 아쉽지만 왔던 길을 밟아 되돌아가기로 했다.
철문 틈으로 폰을 내밀어 비동 임시승강장을 담았는데 깊은 오지에 플랫폼이라니 묘한 이질감과 아늑함이 이중적으로 교차했고, 그 느낌을 가슴에 담아 걸음을 이어나갔다.
임시승강장 아래 쉼터엔 작년 말까지라고 명기되어 있었는데 그게 아닌 복구가 끝날 때까지 잠정적 폐쇄였다.
조금은 허탈한 기분을 추스르고 출발지였던 분천역으로 왔던 길을 고스란히 답습하듯 걷기 시작했다.
출발점인 분천역으로 돌아가는데 때마침 동해산타열차가 분천역에서 양원역 방면으로 질주했고, 문득 세평하늘길 2구간을 건너뛰고 1구간 승부역~양원역에 대해 궁금증이 들어 포기를 거둬 재도전하기로 했다.
그럴러면 분천역에서 열차를 타고 승부역까지 갔다 거기서 양원역 방면의 길이 허락하는 대로 걸어볼 심산이라 걸으며 열차 시각을 조회해 보니 때마침 잰걸음으로 간다면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오지치곤 열차의 운행 횟수가 많긴 해도 한 대를 놓치면 그다음 열차와의 텀이 길어 가급적 걷는 속도를 높임과 동시에 주위 풍광을 세세히 정독하지 않았다.
다행히 철암 방면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7분 연착되는 덕분에 조금 한숨 돌릴 시간이 주어졌고, 짬나는 틈을 이용해 분천역을 둘러보는데 역광장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귀여움을 받는 호랭이 인형을 만났다.
광장 몇 군데 몇 마리가 있긴 한데 하나같이 흉폭한 맹수의 이미지보다 호랭이 특유의 익살맞은 모습들인 데다 자세히 보면 꽤나 정교했다.
이 순간만큼은 맹수가 아닌 친근한 캐릭터이었다.
여전히 하늘은 본연 그대로의 하늘색이었다.
역사 내부는 매우 작고 아담했지만 산타마을을 형상화하기 위해 붉게 단장시켰다.
철암 방면으로 가는 열차는 하루 7편.
산골 오지치곤 꽤 많은 편이었다.
이번 열차를 타고 승부역에 내려 세평하늘길로 양원역까지, 그리고 양원역에서 다시 15~16시쯤 열차를 타고 분천역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체르마트는 스위스 마테호른 산자락 마을 이름으로 한국-스위스 수교 50주년을 맞아 분천역과 체르마트역 자매결연으로 분위기를 연출했단다.
여기 인물 사진 정말 이쁘게 나왔다.
잠시 후 연착되었던 열차가 들어온단다.
떠나기 전에 녀석의 모습을 한 번 더 담기 위해 얼른 다가서서 사진 몇 장을 남겼다.
희한하게도 인물 사진 모드를 작동시키자 제대로 포커싱 되었다.
열차 도착이 임박하자 플랫폼으로 가는 길이 열렸고, 아직 몇 분 남은 시간을 활용하여 산골에 기댄 기차역의 여러 모습을 분주히 담았다.
바로 앞에 있는 열차가 협곡열차며, 멀리 보이는 열차가 철암과 분천을 오가는 동해산타열차로 최대한 빠른 열차를 탈 수밖에 없어 부전역에서 출발하여 동해역까지 가는 일반 무궁화호를 예매했다.
2번 플랫폼으로 가는 길에 앞으로 진행하게 될 승부역 방향을 바라봤다.
뒤돌아 열차가 들어오는 영주역 방향.
좌측 협곡 열차는 덜컹이는 재래식 열차의 정취에 날 것 느낌의 정취를 더해 산골을 달리던 예전 열차와 카페의 느낌을 묘하게 공존시켰다.
반면 우측 동해산타열차는 직접 타보지는 못했지만 외부에서 훑어봤을 때 현대적인 깔끔한 열차 이미지로 탈바꿈시켜 놨고, 동해란 이름처럼 동해바다 가까이 운행 구간은 협곡열차와 달리 강릉역과 분천역 사이를 오고 갔다.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는 백두대간 협곡을 짜릿하게 누빌 수 있도록 천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유리로 장식되어, 아름다운 풍경을 두 눈에 가득 담을 수 있는 멋진 관광열차로 V-train의 V는 백두대간 깊은 협곡의 모습을 상징함과 동시에 Valley(협곡)의 약자를 나타낸 것으로 다이내믹한 여행의 즐거움을 표현했고, 백호무늬 외관디자인은 백두대간 호랑이의 기상을 표현하고 실내는 큰 유리창과 복고풍 소품으로 꾸며져 자연과 추억을 오가는 여행을 선사한다.
[출처 및 예매] 코레일_Let's Korail
동해산타열차는 동해 바다 경관을 즐기며,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분천산타마을까지 운행하는 열차로 즐거운 동해바다의 이미지와 분천역을 상징하는 산타마을의 친근한 산타캐릭터를 활용하여 표현했다.
[출처 및 예매] 코레일_Let's Korail
도로가 없어 오로지 열차만 다닐 수 있는 협곡을 향해 유일한 길, 철길이 뻗어있었다.
정취는 남겨두고 현대적인 깔끔한 이미지를 덧칠한 분천역은 어느덧 잊혀져 가던 간이역을 여정의 베이스캠프로 되돌려 놓았다.
얼핏 동해산타열차의 내외부를 훑어봐도 협곡열차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협곡으로 가는 베이스캠프이자 겨울 눈꽃의 시발점, 분천역을 출발하기 직전.
곧 열차가 들어오겠으니 승객 여러분들께선 열차를 잡아 주세요~
열차가 도착한다는 방송을 듣고 그토록 기다리던 열차가 들어오는 방향을 주시하며, 이어질 여정의 기대감을 추스렸다.
열차가 양원역에 정차, 여기서 몇 분이 승차했던 걸 보면 관광객이 꾸준히 찾는 곳이었다.
양원역을 중심으로 분천역 구간은 그나마 에둘러서라도 차량 접근이 가능했지만 양원역에서 승부역 구간은 도보길조차 희미할 정도로 낙동강 양옆의 크고 작은 산들이 바짝 접근했고, 산언저리도 각박하게 여겨질 만큼 가파른 절벽 구간이 많았다.
양원역에서 탔던 트레커 몇 분들이 승부역에서 바로 내렸는데 잠깐의 인사말과 더불어 승부역에서 이내 작별이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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