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곡에 살짝 걸쳐진 길을 걷다 앉으면 길가 벤치가 되고,
조밀한 나무 어깨를 지나면 터널이 되고,
깊이 들숨을 마시면 향기가 되는 곳.
낙동강이 허락해 준 낙동강 세평하늘길(이하 '세평하늘길')은 극도로 한갓진 두려움도, 깊디깊은 적막의 어둠도 없었다.
그럼에도 자연의 숨결이 명징하게 피부를 스치며, 새의 지저귀는 노래가 이토록 아름다운지, 구르는 물의 소리가 이토록 흥겨운지, 또한 바람 소리에서 이토록 향그로운 향이 나는지, 문명이 차단된 계곡이 투영한 햇살이 콧잔등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교감했다.
길은 강변 수풀을 헤치고, 모래자갈밭을 지나며,
바위를 밟고, 철길과 나란히 걷거나 아래를 지나며,
데크길로 가파른 비탈길을 날고, 절벽을 스친다.
그래서 길은 삶이 지나는 혈관이며, 이야기가 오고 가는 전신주였다.
겨울이 훌쩍 지나 봄의 웃음으로 흘러넘치는 세평하늘길에서 봄의 메시지를 받고, 걸음으로 화답하던 날, 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길의 진솔한 속삭임에 모든 감각을 방치시켰다.
낙동강 세평하늘길은 문화체육관광국 선정 한국 관광의 별에 빛나는 분천 산타마을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민자 역사인 양원역을 거처 석포면 승부역에 이르는 총길이 12.1km에 봉화의 대표적인 힐링 트레킹로드.
현재까지도 비동역 임시승강장에서부터 승부역까지 직접적으로 연결된 도로가 없으며, 승부역에서 양원역 구간은 도보길도 없어 낙동강 세평하늘길로 선정되면서 기존에 활용되던 길과 데크, 철길 옆 등 길을 만들어 모두 연결한 대한민국 최오지의 협곡을 관통한 구간이다.
[출처] 낙동강 세평하늘길 트레킹_봉화군청
승부역에서 출발하여 세평하늘길 따라 약 1km를 걷자 첫 번째 다리와 함께 협곡과 흡사한 전경이 펼쳐졌고, 양원역까지 걷는 내내 가파른 절벽은 한결 같았지만 고압적이지 않았으며, 고립시키되 구속하지 않았다.
낙동강 좌측 병풍처럼 늘어선 암벽 구간이 은병대로 꽤나 길게 펼쳐져 있었다.
앞서 비동역 임시승강장에서 양원역으로 가는 세평하늘길이 막혔던 이유가 바로 지난해 여름 수해로 길 일부가 유실되는 등 피해가 아직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이게 바로 수해의 흔적이겠다.
거대하고 무거운 석재를 으깨고 멀리 옮겨 버린 수해의 막강한 힘, 일단 승부역에서 출발하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양원역으로 가는 길도 이렇게 피해 복구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리라 여겨 마음을 열어 놓고, 다만 돌아와야 되는 최악의 상황을 감안하여 걷는 속도를 높였다.
잠수교를 건너 직진을 하면 민가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뒤늦게 알았지만 철문 도착 바로 전 좌측으로 희미한 길이 있었고, 쇠사슬로 막아놓은 이 길이 바로 세평하늘길이었다.
쇠사슬을 묶어 놓은 바위에 사유지는 출입금지라 표기해 놓았고, 철조망 외부를 따라 이어진 길이 낙동정맥이라 해놓았다.
일단 여기엔 문제가 없어 쇠사슬을 넘어 낙동정맥이자 세평하늘길에 발을 들였다.
일대는 수마가 할퀸 자국이 선명했지만 길을 통째 지우지 않고 형태가 명확하게 남아 계속 걸었다.
사유지와 낙동강 사이 비좁은 공간으로 길은 이어져 있었는데 그 길엔 줄지어 선 나무 터널이 있었고, 다른 곁가지엔 강물 소리가 넘실거렸다.
세평하늘길 3구간을 왕복으로 다녀온 뒤 이내 분천역에서 승부역으로 와서 다시 세평하늘길 1구간을 출발하기까지, 편하게 앉아 쉰 기억이 없었고, 허기와 더불어 피로감이 살짝 뻗쳐 하는 수 없이 강변 너럭바위가 있는 관란담에서 다리를 뻗어 잠시 쉬면서 에너지 보충도 겸했다.
세차게 휘몰아치던 낙동강 물줄기가 큰 바위를 휘감아 돌며 비교적 잔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수심은 꽤 깊어 보였지만 그 위에 우뚝 선 바위들에서 묘한 맥박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다만 강물과 달리 협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강하고 차가웠는데 갈 길이 멀기도 했지만 이내 한기가 들어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너럭바위 위에서 출발하기 전에 대략적인 위치와 남은 거리 등등 궁금해서 폰을 끄집어내어 습관적으로 지도를 실행시키자 이런 화면이 뜨면서 통화권이탈 상태였다.
20년도에 운장산 칠성대 등산 중 잠깐 이런 경우가 있었고, 정선 운탄고도에서도 잠시 그랬던 적 있었는데 모처럼 전파가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 온 기분 또한 묘해서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나 가던 길을 재차 걷기 시작했다.
은병대를 지나 꽤 긴 구간의 길이 폭은 넓었지만 수해의 흔적으로 맨땅이 고스란히 드러난 진흙탕의 길이었는데 더군다나 산에서 여기저기 조금씩 흐르는 샘물들이 더욱 부채질했고, 노면 상태도 좋지 않아 바닥을 주시하면서 조심스레 걸어 긴 구간을 통과하자 드뎌 양지바른 수풀길이 나왔다.
거기엔 봄햇살을 받아 잘게 부수는 버들눈이 반짝였다.
그래도 길의 형체는 있는데 초입에 '뱀조심'이란 문구가 있는 걸 보면 하절기에 수풀로 습한 구간이었다.
승부역을 출발하여 양원역까지 가는 구간 중 반 정도 지날 무렵, 세평하늘길 12선경 중 용관바위, 은병대, 관란담에 이어 구암이 있었다.
말 그대로 거북형상을 한 바위로 고개를 잔뜩 쳐들고 낙동강으로 향하는 형세인데 딱 이 자리에서 거북의 모습과 가장 유사했다.
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면 철길 옆 난간처럼 만들어 놓은 공간을 길로 내어놓았다.
열차와 인간이 함께 지난다는 것과 이 깊은 골짜기 구간의 유일한 길이란 동질감으로 인한 독특한 기분이 들었다.
이 구간은 꽤 길었다.
근래 들어 지자체마다 숨겨진 비경이나 설화를 무기로 각종 둘레길이 들어서고 있는데 각자 고유명사처럼 유니크한 길의 형태가 그 지역만의 특산물처럼 자리 잡고 있고, 세평하늘길 또한 여기만의 개성은 분명했다.
물론 예산을 들여 멋진 길을 만들 수 있겠지만 둘레길을 걷는다는 건 지역만의 숨겨진 비경을 체득하는 게 본질이며, 길은 도구일 뿐이라 멋진 길만으로는 일시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불러일으키겠지만 금세 관심과 열기는 사그라들기 마련으로 차라리 기존의 재래적인 길을 이용하더라도 그곳 만의 정취를 발굴하는 편이 낫다.
그런 면에서 세평하늘길 1구간은 더할 나위 없었다.
철길 옆 난간 형태의 길을 계속 걸어오다 여기서 계단으로 내려가 강변으로 난 길을 거쳐 이내 잔도로 들어섰다.
비경까지는 아니지만 협곡 특유의 빈틈없는 공간에 겨우 잔도를 만들어 크게 굽이치는 절벽을 돌아 철교가 보일 즈음, 가파른 산허리 잔도 끝에 전망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4경 구암에 이어 5경에 해당되는 연인봉과 선약소를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수직 절벽의 발아래엔 낙동강이 유유히 흘렀고, 우측 아래엔 철길이 지났다.
설홍과 남달이 손을 잡고 선계로 올라가는 길이 바로 고양이 머리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귀 같은 연인봉이었다.
고양이 집사라고 생각을 해도 고따구라니!
이리 봐도 고양이 머리, 저리 봐도 고양이 머리~
전망대 발아래 잔잔한 소(沼)가 바로 선홍과 남달이 일 년에 한 번 내려와 목욕하는 선약소란다.
주변에 인가가 전혀 없고, 높고 가파른 산세에 막혀 목욕을 하더라도 하등 이상할 이유는 없을만했다.
전망대에서 연인봉과 선약소를 감상하던 중 열차도 합류하여 일대 비경을 감상했다.
실제 객실칸이 없는 혈혈단신으로 달렸는데 철길 위에 열차가 함께 등장하는 사진은 묘하게 흐뭇한 느낌이었다.
앞서 지나왔던 잔도를 둘러봤다.
잔도와 절벽 아래 얼음이 그대로 얼어있는 빙벽 같은 곳도 있었는데 이례적으로 고도가 높지 않은 곳임에도 초봄에 워낙 서늘한 곳이라 얼음이 남아 있을 만했고, 일대 산들은 비교적 높은 데다 협곡 특성상 응달 지대가 많아 또한 그럴 만했다.
전망대에서 데크길과 계단을 이용하여 진행하면 협곡에 어울리지 않은 갈림길이 나왔는데 우측으로 진행하면 배바위산으로 가는 등산로, 좌측 내리막 계단은 철길 아래를 지나는 강변길이었다.
이 구간이 아슬아슬했다.
수해로 데크길이 끊긴 구간으로 철도 아래 벽에 바짝 붙어서 한 발 겨우 디딜 수 있는 축대에 기댄 채 이동해야 되는데 그 축대가 사진에서 보는 쪽을 돌아가면 축대가 없어 처음엔 망설였다.
다시 돌아가자니 이제 2km 정도만 더 가면 양원역이었고, 그대로 진행하자니 길도 없었던 데다 발아래엔 낙동강이 고여 있는 곳이라 난감했다.
한 번 용기를 내어보자는 생각에 벽에 바짝 기대어 조금조금씩 발을 옮기던 중 축대가 있어야 될 자리가 1m 정도 되지 않는 거리가 비어 있었고, 때마침 가슴 높이 정도에 끈을 연결한 지점의 핀이 박혀 있어 간신히 끈 없이 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길이의 핀을 붙잡고 조심조심 지나 겨우 통과했지만 같은 상황에 직면하면 다시 시도하지 않겠다.
여기를 지나자 등골에 땀이 흥건했다.
아슬한 구간을 지나면 거기서부터 길은 수월했다.
철길 난간 길과 강변 자갈밭을 번갈아 걷게 되었는데 어느 정도 지나 골포천이 낙동강을 만나는 두물머리가 있었는데 두 강이 만나는 다시 바다로 달리는 첫걸음은 이렇게 비장한 절경이었다.
길은 나지막한 철길 난간으로 이어졌는데 걷던 중 이런 데크길의 잔해가 보였고, 아마도 철길 아래 유실된 일부가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하염없이 쓸려 내려온 최상류의 흔적이거나.
자연의 위력이란 게 실로 엄청나 그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한가.
이어 길은 철길 난간으로 연결되었고, 비교적 긴 거리를 걸어와 큰 바위가 가로막고 있는 터널을 맞이했는데 열차는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세평하늘길은 데크 계단으로 살짝 올라가 그 터널을 비켜 바위 우측 잔도 형태로 우회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정말 까마득하게 보였는데 낙동강변 위로 콘크리트를 채워 거기에 철길을 올렸고, 철길 옆 난간에 길게 뻗은 세평하늘길을 만들었다.
인공적이긴 하나 이게 바로 세평하늘길을 대표하는 시그니쳐였다.
그래서 좁은 계곡, 아니 협곡엔 이곳만의 특별한 길 이야기로 독창적이며 신선했다.
이 또한 나름 전망대로서 손색이 없었고, 그 전망대엔 겨울왕국의 올라프처럼 생긴 눈사람 둘이 있어 협곡의 흥미로운 겨울을 넌지시 귀띔해 줬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최종 목적지 양원역이라 쉬지 않고 일대 전경만 가슴에 담은 채 바로 출발했다.
승부역에서 장장 5.6km를 걸어 16시 15분, 최종목적지 양원역에 도착했다.
허락된다면 나머지 2구간인 체르마트길도 충분했지만 비동역 임시승강장엔 열차가 정차하지 않아 분천역까지 걸어야 된다는 걸 감안한다면 여유가 없어 16시 37분에 분천역으로 출발하는 열차를 기다리기로 했고, 막간을 이용하여 양원역을 둘러봤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역'
1988년 산골짜기 원곡마을 주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작은 역사. 영동선의 양원역이 바로 그곳이다. 양원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역사라는 타이틀 말고도 한 가지 타이틀을 더 가지고 있다. 바로 국내 최초의 민자 역사라는 것이다. 정식철도역으로 등록되지 않은 역사이지만 무궁화호가 오고 갈 뿐만 아니라 협곡열차와 순환열차가 정차한다. 손바닥만 한 역사 안에서 지역 주민들이 농산물과 먹을거리를 파는 진풍경이 이색적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정규 여객열차가 정차하는 임시승강장이기도 하다.
역명 어원인 '양원'은 양원역이 위치한 지역의 특수성에서 따왔다. 역 바로 옆을 흐르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서측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원곡마을, 동측은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원곡마을이 위치해 있는데, 이 때문에 양쪽 원곡마을 사이에 위치해 양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 역은 매우 독특한 건설 배경으로도 유명한데, 주변 주민들에 의해서 직접 세워진 역이라는 점이다. 이 역 근처에 있는 두 마을은 도로교통이 매우 열악해서 약 200m 정도 거리에야 1차선 이면도로 딱 하나 있는 정도에, 그나마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왕복 2차선의 국도로 나가려면 약 6km의 산길을 빙빙 돌아나가야 하는 난점이 있다.
이러다 보니 다음 역인 분천역까지 직선거리로 약 4.5km, 철도 거리로는 6.2km인데 도로를 거쳐가려면 12.5km로 철도에 비해 거리가 2배 가량 될 정도로 도로 환경이 열악해 버스 등 대중교통이 전혀 닿지 않았고, 지역 주민들의 노령화 등으로 자차 이용률 역시 0에 수렴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인근 도시로 나가는 게 극도로 어렵다.
양원역이 없던 1987년까지 시절에는 주민들이 열차를 타고 오다가 현 양원역 일대를 지날 때 가지고 있던짐보따리를 차량밖으로 던지고 승부역에서 내린 뒤 한참을 걸어와서 짐을 찾아갔다고 한다.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는 직선거리로 3km가 넘는다. 그리고 이 걸어오는 길도 문제였는데, 비교적 안전한 산길의 경우 3km가 넘는 거리를 구불구불하고 험준한 산길을 빙빙 돌듯이 걸어가야 했으니 당시 주민들의 불편이 매우 심했다. 그렇기 때문에 철길 위를 걸어서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 걸어오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위법성은 둘째치고 당연히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다. 일반적인 평지의 철길이 아닌, 산간지역이기 때문에 철길이 터널과 다리로 이루어져서 추락 위험과 함께 열차가 오면 피할 공간도 극도로 협소하기 때문. 그래서 철길을 걷다가 열차와 부딪혀 죽거나 다친 주민들도 잦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 선로가 지나가니 두 마을 주민들이 청와대에까지 민원을 넣는 등 철도청에 요구해서 임시승강장 하나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게 바로 양원역. 역 시설도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주민들이 돈을 모아 직접 만들었다. 대합실, 승강장, 역명판 모두 직접 만들었다, 문자 그대로의 민자역사인 셈.
'양원'이라는 역명도 주민들이 직접 지은 것. 사실 처음에는 이름을 따서 원곡역으로 하려 했으나 이미 수인선 원곡역이 있었고, 중앙선 원덕역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철도청에서 거부했으며, 이에 양원이라는 이름으로 역명을 정하게 되었다. 현재는 중앙선에도 양원역이 생겨서 중복역명이 되었다.
이 역이 지어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 기적이 제작되었고 2021년 9월 15일 개봉했다.
이처럼 여러모로 배경이 특이한 역인지라, 2011년에는 여객취급을 중지하고자 했고 2015년에는 중부내륙순환열차 운행을 중지하고자 했으나 지역 특수성을 감안하여 모두 시간표 개정 직전에 무산되어 아직까지도 무궁화호와 관광열차가 정차한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열차 아니면 이동시 답이 없는 곳이다. 마을 주민들은 역이 폐역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2명씩 조를 짜서 열차를 타고 다녔다고 할 정도라고...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와 동해산타열차가 이 역에 정차한다. 여객취급이 아닌 관광용으로 정차하는 것으로, 정차시간은 백두대간협곡열차는 10분으로 긴 편이다.
[출처] 양원역_나무위키
20년 전 쯤 메일로 문의한 내용이 백업 디스크에 남아있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당시에도 하루 4편이 임시 정차 했었고, 더군다나 지금과 달리 차량을 이용할 경우 36번 국도가 영주에서 법전까지만 자동차 전용도로로 개통된 상태라 거기서 크고 작은 고갯길을 넘어 광희분교까지, 나머지 광희분교에서부터는 포장과 비포장이 섞여있는 좁은 폭의 산길을 넘어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5시간 넘게 걸렸던 기억이 있는 만큼, 또한 환상적이거나 특이한 절경으로 유명세를 탄 곳이 아닌 추억의 대명사 간이역이라는 감성팔이에 플랫폼이 없는 간이역이란 독특함이 한몫하여 오지 특유의 정취만 느낄 수 있었다.
내부는 보기보단 무척 깔끔했고, 비교적 넓었다.
아직 산골 추위가 가시지 않아 내부엔 싸늘한 공기와 함께 적막만 감돌았고, 에이는 추위를 대비하여 석탄 난로도 있었다.
양원역의 상징, 대합실을 빠져나와 이리저리 훑어봤다.
우리나라에는 민자 역사가 많지만 자본주의에 꾸며지지 않은 역사는 아마도 여기뿐이지 않을까?
양원역엔 원래 플랫폼이 없었는데 이제는 플랫폼이 들어서 당당히 철도역이라 외쳐도 될만했다.
양원역에서 낙동강 건너 멋진 절벽 위의 전망대가 보였다.
강가 작은 절벽 위에 소나무 한 그루와 전망데크, 그리고 육각정이 있는 데다 아직 겨울 잔해가 절벽에 그대로 걸쳐져 있어 한눈에 띄일 수밖에 없었다.
철도 도착 20분 여유가 있어 전망대로 궈궈!
산골 오지에 어울리지 않게 양원역 일대에 한창 공사 중인 소음이 들렸는데 원래 조용한 곳이라 그 소음의 반향은 상대적으로 몇 배 증폭되어 들렸고, 그 진원지는 바로 수해 복구 중인 소리로 낙동강을 건너는 다리 일대 작업이 한창이었다.
공사가 진행 중인 다리를 건너 오르막길로 올라 길을 조금 헤맨 끝에 결국 올라왔는데 시간이 넉넉치 않은 아쉬움이 더욱 컸다.
전망데크와 더불어 소나무 한 그루 조합만으로도 멋진 이 전망대에 올라 양원역 일대를 둘러봤다.
전망대 뒤편에 카페가 있을 줄이야.
내부에 불이 켜진 걸 보면 영업 중이었는데 커피 한 잔이 무척 아쉬웠다.
전망대에서 양원역을 멋진 구도로 촬영하기 위해 다가섰는데 플랫폼에 열차가 서 있는 장면이 더 멋지긴 했다.
때맞춰 열차가 양원역을 멋진 공간으로 채워주다니! 열차... 열차?!
아뿔싸! 저걸 타야 되는데 감상하느라 열차 시각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플랫폼에 역무원 한 분이 서계신 건 예약했던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
열차 시각 16시 37분 출발, 사진 찍을 당시 시각 16시 35분.
옆으로 돌아가 내리막길과 다리를 건너 양원역 플랫폼까지 거리는 줄곧 잡아도 300m는 훠얼씬 넘었는데 그걸 2분 만에 갈 수 없는 건 당연했던 사실인데 역무원들께서 나를 기다려준 덕분에 무사히 열차에 올라 깊은 한숨을 달랬다.
분천역에 도착하자 승부역으로 출발할 당시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나 버려 적막했고, 하루 시간은 대부분 기울어 석양이 가까워져 마음 중심에서 불꽃을 태웠다.
알카파가 나와서 사람들이 떠난 마을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얼굴을 보아하니 마치 배시시 웃고 있는 표정이었다.
근데 녀석들이 왜 이렇게 불쌍해 보일까?
주차장에 들어서자 낙동강변 멋진 절벽과 그 위에 전망대가 보여 다시 거기로 향했다.
전망대까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분천역과 산타마을을 함께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지!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마음을 추스르며 죽미산의 설경을 도착 시 첫인상과 마찬가지로 떠날 때 가장 마지막 잔상으로 남겼다.
산타마을의 큰 어르신, 버드나무.
실컷 걸으며 활동해서 인지 급격히 밀려오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영업 중인 식당에 들러 국밥과 부꾸미를 주문해서 폭풍 흡입했다.
관광지치곤 의외로 가격이 사악하지 않았다.
저녁을 해결한 뒤 밖으로 나오자 꽤나 많이 어둑해져 등불이 하나둘 켜졌고, 밤을 기다리는 산타마을을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세평하늘길은 지난 수해로 잠정 폐쇄되었단다.
승부역에서 양원역으로 갈 때 그 위험성을 깨달았는데 하루 빨리 복구가 완료되길 바랬다.
주차장에서 철길 방면으로 보면 금줄이 쳐져 있는 오래된 고목이 하나 서 있었는데 유독 눈에 띄는 당산나무가 있었다.
해는 그 사이 뉘엿뉘엿 넘어 서산마루를 지나가 버렸고, 그렇게 하루가 저물며 이번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양원역은 2000년대 초중반에 방영했던 '영상포엠 간이역'에서 마을 사람들이 손수 지어 무심히 지나던 열차를 정차할 수 있게 만든 역으로 마치 시골 들판에 들어선 창고 같기도 하고, 연탄 창고 같기도 한, 그래도 엄연히 간이역 타이틀을 가진 역사였다.
실화면서 가상의 양념을 가미한 영화 '기적'을 통해 소개되었고, 이제는 협곡열차의 중요한 거점이 되어 버린 양원역을 끝으로 이번 세평하늘길 여정을 마무리하며, 강렬하게 불던 욕구를 충족으로 잠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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