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31

은하수 여울 소리, 통고산_20211028

잰걸음으로 태백에서 넘어왔지만 석양은 끝끝내 뒤를 밟고 따라와 어둑해져서야 통고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백의 도로에 몸을 싣고 높은 산, 터널을 지날 때마다 가을 여정길에 만난 정겨움은 배가 되고, 막연히 그립던 마음은 온 세상이 잠든 밤이 되어 날갯짓하며 옅은 운무를 조금씩 벗겨냈다. 카메라 하나 동여매고 통고산 휴양림의 가장 깊은 공터에 다다를 무렵 희미하게나마 운해 너머 이따금씩 밤하늘 별들이 하나둘 불을 밝혔다. 통고산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쌍전리·광회리·왕피리에 걸쳐 있는 산.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서히 구름이 자리를 뜰 무렵 암흑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은하수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더 이상 진척이 없을 것 같아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앞에서 혹시나 하..

자연의 작품, 도화공원_20210630

도화동산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포리에 있는 동산. [건립경위] 2000년 4월 12일 강원도에서 발생하여 26,794㏊의 피해를 입힌 사상 최대의 동해안 산불이 삼척시에서 울진군으로 번져 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민·관·군은 합심하여 22시간에 걸쳐 다음날인 4월 13일 산불을 진화하였다. 이에 군민이 사력을 다해 산불을 진화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울진군에서 피해 지역인 북면 고포리 지역에 도화(道花)인 백일홍을 심어 도화동산을 조성하였다. [변천] 울진군은 국도 7호선 확장·개통으로 새로운 경상북도 관문 지역의 경관을 정비하여 울진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2006년 10월부터 12월 말까지 북면 고포리에 도계지역 정비 사업을 실시하였다. 또한, 강원도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경상북도 이..

안개속으로, 죽변_20210614

동해의 매력을 시기한 포세이돈이 짙뿌연 안개 장막을 덮어 고이 자취를 감춘 눈부심이 이따금 손을 흔든다. 꽤 오래된 드라마 세트장이지만 컨텐츠는 빛을 바래도 바닷가에 의지한 한 뼘 작은 공간은 어쩌면 영원을 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주에서 부지런히 달려 늦지 않게 죽변에 도착했고, 익숙한 동네에 들른 것처럼 주차한 뒤 바로 바닷가 작은 절벽 위 드라마 세트장으로 향했다. 몇 번 찾아왔던데 비해 다른 가족들은 처음이라 울진에 온 김에 새로 개통한 36번 국도와 가까운 죽변으로 왔고, 죽변의 명물인 드라마세트장은 꽤 오래전 컨텐츠임에도 드라마는 대부분 잊혀졌지만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주위 풍광과 한데 묶여 여전히 명소로 남아 잘 보존되고 있었다. 바닷가를 따라 요상한 구조물이 생긴 걸 보면 조만간 모노레일..

가을 편지 속 책갈피, 불영사_20201110

쓸 수 있다면 가을 색동옷 차려 입은 이파리에 편지 하나 새겨 띄우고 싶다. 숨을 쉬고 있음에 감사하고, 결고운 빛 파도의 출렁이는 눈부심에 행복의 단물에 현혹되는 기분이 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지나친 시간이라도 가을옷을 입은 추억은 더욱 각별해지고, 유희 넘치는 햇살 아래 시선을 시기하는 시간 조차 내겐 너무 특별하다. 이따금 지나는 여울의 조잘거림도 경쾌한 곡조 마냥 어깨가 들썩이고, 삶의 힘든 순간도 이토록 현란한 자연의 춤사위 앞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망각의 어깨 너머로 사라질 때 지금까지의고난도 미쳐 깨닫지 못했던 뼈저린 통찰이었음을, 지금 살아 있고, 이 넘치는 자극에 감탄할 수 있는 것 또한 난 행복하다. 그래서 지나친 가을이라도 투정도, 안타까움도 없는 건 다음 해에 다가올 가을이 있기..

타오르는 가을을 떠나며_20191025

근래 들어 가장 긴 여정이었던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 옷자락을 잡는 미련으로 늑장을 부렸다.통나무집에서 가져간 커피를 천천히 내리며 창 밖에 쏟아지는 햇살과 바람을 함께 음미하는 여유를 부렸는데 그걸 알리 없는 무심한 가을은 숙소 앞에 끊이지 않는 세찬 물살처럼 사정 없이 지나쳐 정오가 가까워졌다.지지리궁상을 떨어봐야 달라질 게 없어 살림살이를 챙겨 꾸역꾸역 차에 말아 넣고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봤다.전날이 화사하게 흐린 날의 가을이라면, 다음날은 비가 씻어버린 청명하고 맑은 가을이라 이틀 만에 극명한 가을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 셈이다.흐린 날에 만난 가을이 믿음직한 가을의 변치 않는 신념이라면, 맑은 날의 가을은 불꽃처럼 강렬하고 열정적인 가을의 이면이었다.망막을 파고든 뜨거운 색채에 설령 시신경이..

가을 빛결 큰 골짜기에 흐른다_20191024

전날 태백에서 봉화 현동을 거쳐 통고산으로 오던 길은 뜬금 없는 비가 퍼부어 산간지대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실감케 했고, 짙은 밤이 만연한 오지 답게 도로는 지나가는 차량 조차 거의 끊긴 상태였다.아무리 그렇더라도 밤의 정점이 아닌 21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태백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함께 도로를 질주하던 차들이 어디론가 사라져 음악에 집중하느라 속도 게이지가 한창 떨어진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고독한 밤길에 생명의 흔적들이 거의 없었다.통고산 휴양림에 도착하여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통나무집으로 들어가 싸늘한 방을 잠시 데우는 사이 기억에서 잠시 지워졌던 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바로 통나무집 앞을 흐르는 여울 소리.2015년 만추 당시 이용했던 통나무집 바로 옆이긴 해도 3채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

울진에서 먹는 뼈해장국_20190314

여행을 떠나 보면 식욕은 무척이나 왕성해진다.예전 해물짬뽕의 기억을 되살려 찾아간 집은 뼈해장국으로 바뀌었고, 발걸음을 돌리기 귀찮아 걍 먹기로~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식당안은 북적이길래 묘한 호기심도 한 몪 했다. 나쁘지 않은데 문제는 식당 사람들이 뭐 이리 딱딱해?돈을 갖다 바치고 동냥 하는 사람 같다.하는 수 없이 줍줍하고 바로 뜨지만 역시나 지역 사람들의 친분을 뛰어 넘지 못하는 싸비스 마인드.근데 이거 프랜차이즈 식당이었구만.

학마을의 봄_20190314

기상하자마자 주저 없이 출발하여 울진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한다.창원, 부산으로 향할 때 반갑고 고마운 지인들 만나는 게 첫 번째 의미 였다면 두 번째는 이번 기회를 빌어 동해의 봄을 맞이하는 거다.물론 어디를 지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추억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동선을 발견하고 거기에 충실해 지기로 했다.그래서 울진에서 에너지를 보충한 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7번 국도를 따라 하늘처럼 깊은 바다와 그 바다에 인접한 곳을 접하기로 한다. 덕구에서 울진으로 가는 길에 가던 길을 멈추고 지극히 평화로운 마을에 잠시 한길을 벗어났다.뒷산엔 학이 살고, 앞 너울은 이랑이 굴절된 햇살이 넘실대고, 마을 어귀엔 화사한 매화가 미소 짓는 곳.일상적인 시골 마을의 목가적인 풍경임에도 봄은 생동과 수줍음을 동시에 불..

7번 국도 울진 도화 공원까지_20190313

부산에서 출발해서 포항까지 오는데 한참을 걸려 17시반 정도로 늦어버렸다.학교 공직 생활을 하는 야무진 동생을 만나 커피 한 잔 나누는 사이 무심한 시간을 지칠 줄 모르고 흘러 이내 헤어졌고, 7번 국도를 따라 오는 사이 시간은 꽤나 많이 흘러 10시 정도가 되어서야 울진 도화공원에 도착했다.가뜩이나 울진하면 오지라는 인식이 강한데다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공원이라 이 시각도 한밤 중인 시골 시계를 감안 했을 때 공원은 밝혀 놓은 불이 아니라면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텅빈 우주와 같았다.비 내리던 어제와 달리 미세 먼지로 대기가 뿌옇게 흐려 조금은 우려를 했지만 어찌하오리.이따금 텅빈 공원의 주차장에 차가 들어오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가 버리면 공원 전체는 아무런 소리도 전달되지 ..

다시 찾은 통고산의 가을_20181026

이번 여정의 마지막 방문은 통고산 휴양림이다.각별한 추억, 특별한 가을이 있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 통고산은 일시에 변해 버리는 가을이 아니라 제 각기 다른 시간의 흐름을 타고 계절의 옷을 입는다.통고산에 도착하자 여전히 비는 내리지만 빗방울은 조금 가늘어지고 가볍게 흐린 날이라 어둑하기 보단 화사하게 흐린 날이었다.쨍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표현이 좋고 가느다란 빗방울이라 조금 비를 맞는 감수만 한다면 활동하기 무난하다. 통고산 휴양림 초입 안내소에 잠시 내려 매년 찾아올 때마다 인사를 나눴던 분과 잠깐 대화를 하고 바로 진입 했고, 첫 만남은 여전히 인상 깊은 단풍의 향연이 나를 반겼다.평일이라 통고산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차를 이용해 천천히 앞으로 진행해도 어느 하나 민폐가 되지 않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