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445

웅크린 여름, 죽주산성_20200816

자그마한 숲을 지나 한적한 산성 안에 또 다른 녹음이 웅크린 채 잊혀진 시간을 되새긴다. 졸고 있는 시계바늘을 흔들어 깨워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사이 바삐 달려가던 해가 서녘으로 기울며, 치열한 여름의 허공을 붉게 적신다. 6년 전 지나던 길에 한 차례 유혹의 눈빛을 보내던 산중 성곽을 그제서야 찾아내곤 시간을 거스르듯 회상의 길을 찾는 동안 바람살이 반가이 맞이한다. 접근이 용이한 산성이라 가벼운 차림에 이내 성문에 접근할 수 있다. 때마침 녹음 사이로 석양이 몸을 숨기기 직전이다. 비교적 아담한 산성 내부는 하나의 공원으로 단장되었다. 성곽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하늘과 만나는 선을 종종 만난다. 산성의 서쪽에 있는 성문으로 진입하여 약속한 듯 시계 방향으로 걷는다. 성곽의 오르막길에 오르자 주위..

시간의 침묵, 동탄호수_20200808

줄곧 내릴 것만 같던 비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인 사이 호수 산책로를 걷는다. 호수에 비친 세상 그림자가 휘영청 늘어서 무거운 하늘을 잠시 가리며 근심을 잊으라 한다. 그 울림에 무심히 걷다 어느새 다시 굵어지는 빗줄기가 금새 인적을 증발시키고, 덩달아 초조한 아이처럼 잰걸음으로 비를 피한다. 이렇게 사진이라도 남기길 잘했다. 찰나는 그저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 내 인생을 하나씩 엮어 나가는 조각들이라 무심하게 지나는 것들이 내게 간절했던 기회일 수 있다. 올해도 이미 반 이상 뒤로 했지만 뒤늦게 깨달은 바, 그래서 다행이고, 그로 인해 용기를 내고, 그래서 도전한다.

헬로~ 옛학우들_20200731

1년 7개월 만에 만난, 2018년을 함께 했던 학우들. 당시처럼 막회를 곁들이며, 축제와 같던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했지만 아쉽게 참석이 힘든 학우도 있어 보란 듯이 더 재밌게 보냈다. 근데 막회집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이날 휴가 들어간 날이고, 2차는 그때처럼 같은 치맥집으로 갔지만 야외에서 마시던 중 급작스런 소나기에 후다닥 실내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너무 강렬한 불금이라 이튿날 머리는 지진이 났지만 근래 마시는 자리를 거의 갖지 않아 가끔 한 번 정도는 괜찮다. 중간에 앉은 학우는 예나 지금이나 투철한 봉사 정신으로 특히 아이들이 있으면 막대 풍선으로 아주 특별한 기념품을 즉석에서 뚝딱 만들어 줬다. 다음엔 언제 볼까? 3명이 빠졌지만 이렇게라도 만나지 않으면 서먹함에 익숙해질 것만 같다.

냥이_20200717

필요해서가 아니라 호기심에서 이케아를 다녀왔고, 어김없이 주머니를 살짝 열어야 했다. 마치 코스트코를 가게 되면 배보다 배꼽이 커져 구매목록은 무시 되고, 마치 마법에 걸린 사람 마냥 충동구매를 해 버리게 된다. 조립을 해야 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아무리 단순한 제품일지라도 첫 조립 시 헤매게 되는 과정만 극복한다면 이음새의 견고함에 살짝! 감탄할 수 있다. 박스는 냥이 차지. 새로운 제품은 늘 검수를 하는 녀석인지라 조금이라도 만만한 싹이 보이면 바로 맹수(?) 본능의 이빨 세례가 있고, 그 모습을 지켜보면 한 편으론 어이없지만 나머지 한 편으론 귀엽다. 빈 박스를 포착하는 능력은 가희 신급이다. 정리를 위해 나오라고 보채도 절대 나오지 않고 버틴다. 나름 편한 자세가 나오고 눈인사도 보낸다. 장..

도심의 작은 쉼터, 독산성_20200717

억겁 동안 세속을 향해 굽어 보는 나지막한 산에 둥지를 틀고 앉아 잠시 기댄 문명의 한 자락. 그 담벼락에 서서 흐르는 공기를 뺨으로 더듬어 본다. 마치 하나의 형제처럼 산성과 사찰은 나약한 의지를 위로하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많은 바램들을 몽롱한 목탁 소리로 바람처럼 흩날린다. 많은 시간을 버텨 왔지만 앞으로 맞이해야 할 시간의 파고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두려움처럼 막연한 시련과 희열을 향해 나아가리라는 의지의 등불이 꺼지지 않기를, 또한 자연의 포용이 변치 않기를 기대하는 포석 같다. 석양의 볕이 꺼지며 하나둘 밝혀지는 문명의 오색찬연한 등불이 특히나 아름다운 저녁이다. 도심에 둘러 쌓인 작은 녹지치곤 꽤나 멋지다. 사람들의 발걸음만큼이나 분주한 까치가 알싸한 데이트에 여념 없다. 독산성에 오르..

무선의 진수, 에어팟 프로_20200716

음악에 대한 집착, 주구장창 음악을 소비하는 입장에서 분석하거나 야트막한 지식으로 평하고 싶지도 않아 있는 그대로 즐길 뿐이다. 월정액으로 곡을 구입하면서 리필되는 일자를 손꼽아 기다려 음원을 구입하고 나면 허무하게도 허벌나게 듣던 곡들을 무심코 재생해 버린다. 그럼에도 아이폰에 곡을 넣는 순간이 행복하다. 더불어 오롯이 음악 리스닝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려나 싶어 노이즈 캔슬러가 적용된 에어팟프로를 뒤늦게 질렀고, 과도한 저음을 좋아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아이폰의 플랫하고 단단한 음색에 길들여져 에어팟의 편안한 소리에 벗어나기 힘든 시기다. 이러다 아주 가끔 가속도가 붙은 심박에 맞춰 아토믹 플로이드를 통해 락을 듣노라면 가슴에서 미세한 전율이 느껴진다. 사실 프로는 건너뛰려고 단단히 마음먹었는데 진..

냥털 잡는 로봇청소기_20200715

냥이를 가족으로 맞이한 뒤, 청소 횟수가 부쩍 늘었다. 하는 수 없이 로봇 청소기도 들였는데 낯선 괴물이 집안 곳곳을 헤집고 다니자 더 이상 텃세를 부릴 수 없다는 위기감에 가족한테 달라붙어 눈빛으로 한 마디 한다. "저 검둥 벌레는 누규?" 예전부터 로봇 청소기에 대한 불만, 바로 흡입력인데 이 녀석 또한 다이슨 무선 청소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하고, 다만 만충 시 비교적 긴 사용 시간과 약한 흡입력을 만회하기 위한 양날 브러쉬가 있어 그나마 사용할 만하다. 가끔 화장대처럼 밑에 좁은 공간이 있는 장소는 들어가긴 해도 나오지 못해 울어대는 경우가 있고, 방에서 나갈 땐 문턱을 넘었다가 들어오지 못할 때도 있지만 수시로 청소를 할 수 있어 내구력만 좋다면 쓸만하겠다. 회전 브러쉬가 돌 때 냥이가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