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 152

설야_20171218

바람 한 점 없는 퇴근길에 가로등 불빛에 흐느적 내리는 눈발이 너무나 고요하고 평온하다.갑자기 김광균 시인의 설야가 생각 나는 눈 내리는 밤이라 설야와 같이 동영상을 올려 봄직 하다. 설야(雪夜) - 김광균 -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야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을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소낙눈 오는 밤_20171210

함박눈이 빗물을 담뿍 안고서 하염없이 내리는 이 한밤에 우산 하나 덩그러니 쓰고 거리를 활보했다.워낙 수분이 많은 눈이라 왠만큼 방수되지 않으면 내피까지 흠뻑 젖을 정도라 신기한 구경거리를 만난 아이 마냥 신이 나서 반석산 방향으로 걸어가는 내내 내리는 눈소리가 요란하다. 솔빛초등학교 부근 한산한 거리를 떠들썩하게 때려대는 눈은 제법 많이 내려 거리에 샤베트처럼 두툼히 쌓여 버렸다.

추억을 정리하며_20171130

숨 가쁘게 지나간 하루 일정을 끝내고 숙소인 인터불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엔 친구들과 조촐하게 한 잔 박살내고 느긋하게 걸어갔다. 하루 동안 이렇게 많이 걸어 본 게 얼마 만인가?초겨울 치곤 서늘 했지만 든든하게 입어서 대기에 노출된 뺨만 살짝 얼얼한 정도라 걷기 딱이다.가져간 블루투스 스피커에 음악을 연결해 짱짱하게 틀고 텅빈 공원을 걷는다는게 기분이 좋았다. 망우당공원 곽재우 동상 부근을 지날 무렵 출발할 때 강가 절벽은 세상 모든 평화를 품은 듯 고요하다. 가볍게 요동치는 금호강 너머 고수 부지는 일찍 찾아온 추위로 텅 비었다.망우당공원도 평소 발길이 거의 없는데다 추위로 호텔까지 걷는 동안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강가 절벽 위 전망 좋고 운치 있는 소나무 밑 벤치는 여전히 텅비어 있어 잠시 내가 앉..

일상_20171126

역시나 첫 눈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눈 흔적은 거의 없어지고 마치 소소한 비가 내린 마냥 땅이 촉촉히 젖어 있다. 반석산 둘레길 음지는 눈이 내리면 녹지 않고 한 동안 자리를 잡고 있는데 초겨울의 날씨가 그들에겐 포근해서 금새 자리를 털게 만드나 보다.가을부터 차곡하게 쌓인 낙엽만이 둘레길을 가득 덮고 있어 눈이 내렸나 싶을 정도. 조카 녀석들이 어릴 적에 많이 데리고 온 장소가 노작호수공원 건너 인공 개울 데크길이라 반석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공원으로 발걸음을 돌려 봤다.겨울은 세상이 덜 아름다워 기억 속에 묻어둔 아름다운 기억을 회상하라고 있는 계절인가?웃고 뛰어 놀던 그 악동 같던 녀석들의 떠들썩한 웃음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하다. 반석산 습지원은 예전만큼 발길을 두지 않아서 인..

첫 눈_20171124

겨울의 첫 눈 치곤 제법 많이 내리던 날.겨울이라고 해도 한 겨울처럼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아 내린 눈은 금새 녹아버리고 녹은 눈더미들은 진흙처럼 길가에 쌓여 있지만, 그래도 첫 눈의 설레임이 금새 회상되는 날이다.가을이 얼마 지났다고 벌써 겨울의 설레임이라니.모든 계절은 그래서 매력 덩어리고, 그 매력에 취해 계절을 즐기게 된다. 가지에 켠켠이 쌓이고 이파리에 핀 눈꽃은 오래 동안 피어 있지 못할 시기라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겠지만, 내리는 눈이 즉석에서 만들어 내는 작품들은 한결 같이 매혹적이고 화사하다.이제 겨울이다~!!!

모두가 잠든 호반_20171106

오마니와 가족과 함께 찾아간 안동호반휴양림은 늦은 출발로 느지막이 도착해서 체크인도 쉽지 않았다.휴양림내 휴양관에 자리를 잡고 짐을 푸는 사이 자정이 지났고, 밤 늦도록 대화가 끊이지 않아 혼자서 잠시 빠져 나와 주위를 둘러 보기로 했다.규모가 제법 큰 곳이라 휴양관 일대만 둘러 보는 것도 무시 못할 수준이다. 휴양관 뒷편이 산림교육관인데 일부 출입이 가능해서 혼자서 둘러 보다 사진도 몇 장 찍었던 곳이기도 하다.평일에 찾은 덕인지 휴양관 통틀어 우리 가족 뿐이라 무인도처럼 뚝 떨어진 곳에 음악을 크게 틀어도 민폐가 되지 않아 볼륨도 제법 올려 쌀쌀한 가을 공기와 함께 온 몸으로 감상했다.외등이 몇 개 있긴 했지만 인척이 전혀 없어 조금 무섭기도 하고 좀 앉아 있는 사이 한기가 몰려와 추위를 못 참고 가..

일상_20171103

아침과 저녁에도 가을은 수려하다.평소에 비해 조금 일찍 집을 나서 가을이 펼쳐진 거리를 보면 막연히 걷고 싶어져 나도 모르게 꽤나 걸었다.그것도 앞만 보며 걷는게 아니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쉴 새 없이, 그렇게 걸으면 전혀 지치지 않는데 어느 순간 한 자리에 머무는 순간부터 정신 없이 걸었던 피로감이 엄습한다. 가을이 끝물로 치닫게 되면서 떨어지는 낙엽도 많지만 여전히 나무에 지탱 중인 낙엽들은 한결 같이 빛깔이 곱다. 퇴근 후 밤이 찾아오면 낮을 밝히던 햇빛 대신 가로등 불빛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조금 미약하긴 해도 그걸 투정할 겨를이 없을 만큼 여전한 가을의 자태가 아름답다. 걷는 김에 이왕이면 좀 더 둘러 보자고 했다가 오산천까지 가버려 꽤나 무리했다.하지만 계절이 흐르듯 다시 걷다 보면 금새 그 ..

일상_20171029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부시시한 잠을 떨치고 베란다로 나가 밝은 햇살과 화사한 대기를 맞이하곤 이내 내가 좋아하던 구도로 출발했다.미세먼지가 그나마 적은 날이라 청명한 가을이 만들어 놓은 장면이 궁금했거든. 어찌 저런 빛깔로 물들일 수 있을까!여긴 나무들이 서로 사이가 좋은가 보다. 꽤나 많이 걸었던 가을이자 휴일이기도 했다.

일상_20171028

이른 아침 회사에 들렀다 오후 일찍 빠져 나와 인근 광희문으로 향했다.약속 시각이 비교적 여유가 있어서 산책으로 그 시간까지 기다릴 심산이었는데 늘 말로만 듣던 광희문은 지나가는 길에 눈팅하던 것 말곤 없었고, 근래 중국 관광객들이 이 일대에 많이 오가는 걸 보곤 일정한 호기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딱히 이색적인 광경은 아니지만 산책하면서 이 부근에서 잠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도심에 이런 옛흔적이 그리 많지 않기도 했지만,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서 잠시 한숨 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풍경, 계절이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로 왕십리 떡갈비를 해치운 후 터질 듯 불어오른 배를 달래기 위해 왕십리역으로 가던 중 서늘한 광장에서 홀로 앉아 자리를 지키는 소녀상이 눈에 들어온다.꿈조차 펼쳐보지 못한 소녀의 한 많..

일상_20171027

동탄을 돌아다니다 언젠가 부터 이 구도와 색감에 반해 아침 출근 길에 조금 넉넉하게 집을 출발하여 이 모습을 바라본다. 나무 꼭대기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는 빨간 색감이 점점 밑으로 번져 내려오는 이 시기부터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보면 가을의 소소한 광경을 오버랩 시킬 수 있는데 잠깐 서 있는 사이 아침 출근길에 잰걸음을 딛는 사람들도 한 번씩 쳐다보며 제 갈 길을 바삐 간다. 퇴근 후에 다시 들러 아침과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보면 폰카가 담지 못하는 가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적당히 싸늘한 날씨는 가을 구경으로 걷다 보면 전혀 한기를 느낄 수 없어 바로 요맘때가 산책이나 활동하기 적기다. 10월 중순까지 요지부동이던 청단풍도 서서히 버틸 재간을 잃고 가을빛 빨간 옷으로 갈아 입기 시작한다.가로등 불빛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