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1053

바다를 향한 꿈, 흰여울 문화마을_20220816

바다를 향한 꿈, 오랜 세월 삶의 무게와 맞물려 장독에 묵힌 구수한 장맛처럼 진면목을 드러내고 비상하는 바닷새가 되어 수평선을 출렁이는 아리랑이 된다. 지칠 줄 모르는 바다 바람이 세 평 쉴 틈 없이 몰아넣어도 태초에 솟은 산에 업혀 엄마 품에서 처럼 곤히 졸고 있는 아가처럼 이따금 근원 모를 함박웃음에 기나긴 설움 터널은 지워지고 어느새 갈망의 견고한 돌탑이 머나먼 걸음 마다한 나그네를 동심의 울타리로 안도시켜 준다. 지인과 만나 영도로 넘어갔고, 비가 내릴 듯 말 듯 애매한 날씨긴 해도 그리 덥지 않은 날이라 도보 여행을 곁들이기로 했다. 우선 태종대 초입까지 또 다른 지인이 데려다준 덕에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버스로 중리방파제에 도착했다. 정박 중인 선박들이 수평선에 사이좋게 걸쳐져 있었다. 걸..

또 다시 부산행_20220815

서 있는 자리에서 한길의 끝을 보노라면 동경의 안개가 자욱했지만, 그 끝을 밟노라면 어렴풋한 안개가 걷히며 부서지는 파도의 하얀 유희로 매캐했다. 빌딩숲과 바다가 만나 문명의 화려한 유혹이 넘실대며 바다가 춤사위를 들썩이는 그 자리에 각별한 시간이 일제히 불 밝혀 어우러지는 자리, 부산은 함께 협주하는 음악이 멈추지 않았다. 1년에 한 번 정도 가는 부산인데 이번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싣고 질주하던 중 대전을 지날 무렵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고, 뒤늦게 대전이란 걸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보다 구름의 무게감이 부쩍 늘었다. 계속 자야지. 어느새 부산에 도착했다. 광안리 해변에 도착할 무렵엔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는..

작은 오지 쉼터, 봉화_20220731

깨진 평온에 심술이 난 물안개 사이로 금세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고, 여울틈 사이로 숨어 있던 생명들이 신기한 구경거리를 만난 양 다가와 툭툭 입을 맞혔다. 하늘이 떨구는 비는 여유의 향미가 곁들여지면 잠자던 자연의 협주곡이 되며, 수줍어 숨어 있던 안개를 춤추게 하며, 침묵하던 바람의 세상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래서 살짝 찍는 쉼표는 견줄 수 없이 감미로웠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차가운 여울에 살짝 발만 담근 채 잠잠해진 비를 피했다. 멀찍이 어딘가 숨어 있던 안개가 여울 위로 만개했다. 근래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물이끼가 제법 끼어 있었고, 그걸 먹이 삼아 다슬기도 빼곡하게 있었다. 굵은 빗방울 하나 여울에 튕겨 수정 구슬이 생겼다. 비가 내려 그나마 수량이 늘었고, 물은 원래의 그 청정함을 되찾았다..

굽이굽이 아름다운 낙동강과 역사의 예던길, 봉화_20220730

해답을 듣지 않아도 좋다. 어떤 혼탁한 푸념에도 거울빛 드리운 모습 너머 속삭임에 위안을 낚아 가슴 고이 두더라도 사무친 질곡이 스스럼없이 열린다. 자연은 그저 방치했을 뿐인데 방종이 깨뜨릴 수 없는 포용의 온기는 그 어느 성벽보다 견고하고, 심연은 가늠할 수 없다. 출렁이는 다리를 걸으며 불안의 씨앗은 메말라 싸늘한 잡념의 죽어가는 잡초가 되고, 집요 하던 추회는 기름진 돌뿌리가 되어 절벽에 새겨진 미소의 청사진이 된다. 잠시 이 자연을 만나는 동안 해답을 듣지 않아도 좋다. 예던길은 봉화 청량산과 안동 도산을 잇는 국도 35번 주위의 강변길로 퇴계 이황이 젊은 날 입신을 위해 즐겨 걷던 옛길이다. 은퇴 후 노년에도 학문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이 길을 걸었으며 그가 세상을 뜬 후에도 많은..

까마득한 바다 앞 해운대, 그리고 떠나기 전 부산 밀면_20220723

빌딩숲 너머 바다라... 바다가 무한한 행복의 표상이라면 그걸 앞에 두고 숨죽인 사념을 달래는 건 작은 행복이라 할만했다. 비록 어디론가 흩어진 커피 향이 아쉬울지라도 내리는 비에 스민 희곡에 낭만이 서리면 그만 아닌가. 짧은 시간은 마치 단잠의 곡조를 추종하듯 그렇게 여운만 남기고 떠났다. 이튿날 열심히 폭주했음에도 숙취는 그리 무겁지 않았던지 서슴없이 해운대로 달렸다. 19년에 왔던 이른 봄바다와 사뭇 다른 여름 정취였다. 우측 광안대교와 좌측엔 이기대와 오륙도. 오륙도 방향으로 수평선에 걸친 걸친 요트가 이 순간만큼은 시인이 되었다. 어느새 부산의 명물이 된 광안대교와 그 너머엔 아파트숲이 빼곡했다. 카페테라스에 겨우 자리 하나가 생겨 후다닥 찜한 뒤 아이스 한 잔 때렸다. 방파제 위로 이따금 새들..

부산에 도착_20220722

요즘 다른 가족들이 각개전투처럼 뿔뿔이 부산행 열차를 탔다. 나 또한 퇴근과 동시에 스텔스모드를 켜고 서울역에서 부산행 열차에 올라 잠시 정신의 스위치를 끈 사이 어느새 부산 도착. 돼지국밥, 회, 밀면과 더불어 부산을 실감했다. 밀면 곱빼기가 6천원! 회사 부근에 모인 평양식과 함흥식 랭면이 1만3천원인 걸 감안한다면 눈물이 멈추지 않는 감동이었다. 게다가 만두 5천원까지 곁들인다면 설사 배가 터지더라도 얼굴엔 미소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 도착하여 광장에서 바로 한 컷 담았다. 여름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 18시반 조금 넘었음에도 여전히 대낮 같았다. 특히나 청명한 대기는 선물이나 마찬가지. 지인을 만나 범일동 돼지국밥집에서 저녁을 해결했는데 소면 무한 리필이면서 가격은 8천원. 근래 폭등한 ..

찜통 같은 대구, 욱수골과 금호강변_20220708

녹음이 무성한 개울가 산책로를 따라 잠시 걷는 사이 대구를 떠올렸다. 대구! 그냥 덥다는 생각뿐. 어차피 여름이면 어디든 덥다고 생각했지만 대구에 도착해서 도어를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헉!'소리가 난다. 서울도 열섬 현상으로 찌는 듯한 여름을 보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대구는 묘하게 찜통 같다. 2013년 한여름에 지인 잔치가 있어 대구를 왔을 때, 차량 온도는 30도를 조금 넘는 수치를 보여주다 대구에 가까워질 때부터 1도씩 오르다 결국 범어네거리 도착하는 순간 39도를 찍었던 기억도 있다. 차를 내리던 순간 선글라스에 뿌연 김이 서려 확실한 여름을 체험한 날이었는데 그 이후부터 여름에 대구를 오면 진정한 여름을 체험한다. 욱수골공영주차장에 주차, 요람을 회상하면서 길을 걸었다. 물론 당시..

그 곡선의 편안함, 말티재 휴양림_20220614

크게 휘어진 길이 불편하여 직선에 몸을 맡기는데 어느새 그리워 다시 구부정길을 찾는다. 잠시 돌아가면 늦춰진 속도로 길 가 방긋 핀 꽃내음에 웃을 수 있고, 몸에 닿을 새라 화들짝 피하던 빗방울도 낭만의 강변을 유영하는 반딧불이가 된다. 그 굽이길을 뒤로하고 둥지 흙을 밟자 어느새 작은 굽이길이 뒤따라 함께 뛰어놀자 조른다. 그게 정겨운 길이고, 그게 굽이길이다. 말티재 또는 말티고개는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으로 가는 입구에 있는 고개로 보은군 장안면 장재리 산 4번지와 38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하단부는 해발 약 270m, 정상부는 해발 약 430m로서 차이가 160m 가량이나 되는 험한 고개다. 속리산에는 오랫동안 존재한 박석 길이 유명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 구경 오..

하늘을 향한 기암의 욕망, 속리산 문장대_20220613

갈망일까? 소외일까? 갈망이라 하기엔 속리산 능선의 바위 봉우리가 도드라진 절경에 편향적일 수 있고, 소외라 하기엔 속리산 전체를 이루는 자연의 조합이 절묘한 화합을 이룬다. 속리산이라 함은 문장대로 인식되는 이유, 오른 뒤에야 비로소 긍정할 수 있었다. 산을 이루는 자연의 갈망이 모여 하나의 문장대라 읽히고, 그 문장대를 가기 위해 갈망의 곡(谷)을 하나씩 밟으며, 평이한 것들 가운데 특이한 하나가 마치 군계일학을 표현한 자연의 언어 같았다. 비록 자연을 훼손한 철학의 타락도, 문명의 이기도 백두대간의 위대한 심연 앞에서 초라한 행색일 수밖에 없는 자취를 한 발 떨어져 숙연히 바라보는 가운데 억겁 동안 인내한 문장대의 잔주름은 통찰의 표식이었다. 청법대 자태 또한 속리산의 빼어난 요소 중 하나였다. 신..

신선들이 노니는 속리산_20220613

거듭된 간절함에 소망이 결정체를 이루고 차곡하게 쌓인 소망이 성취란 결실이 된다면 켜켜이 쌓인 돌이 자연의 거룩한 손길을 거쳐 하나의 산이 된다. 삶이 한결같은 형상을 그리겠냐만 산 또한 어느 하나 같은 모습일 수 없었고, 먼 길 달려와 잠시 가부좌를 튼 백두대간이 유형의 신으로 하늘을 기리는 곳, 속리산이 아닐까? '속리산=문장대'란 공식을 버리고, 그와 함께 정갈히 앉아 각자 찬연한 화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또 다른 세상에서 작은 능선길의 질감을 손끝으로 듣는 사이 어느새 고유 명사처럼 각인된 혼을 기렸다. 계속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경업대에 서자 마치 거대 공연장의 홀에 서서 객석에 자리 잡은 여러 신들의 울림을 듣는 착각에 빠졌고, 그로 인해 세속의 잡념은 공연의 소소한 에필로그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