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바다를 향한 꿈, 흰여울 문화마을_20220816

사려울 2023. 10. 28. 02:23

바다를 향한 꿈, 오랜 세월 삶의 무게와 맞물려 장독에 묵힌 구수한 장맛처럼 진면목을 드러내고 비상하는 바닷새가 되어 수평선을 출렁이는 아리랑이 된다.
지칠 줄 모르는 바다 바람이 세 평 쉴 틈 없이 몰아넣어도 태초에 솟은 산에 업혀 엄마 품에서 처럼 곤히 졸고 있는 아가처럼 이따금 근원 모를 함박웃음에 기나긴 설움 터널은 지워지고 어느새 갈망의 견고한 돌탑이 머나먼 걸음 마다한 나그네를 동심의 울타리로 안도시켜 준다.

지인과 만나 영도로 넘어갔고, 비가 내릴 듯 말 듯 애매한 날씨긴 해도 그리 덥지 않은 날이라 도보 여행을 곁들이기로 했다.

우선 태종대 초입까지 또 다른 지인이 데려다준 덕에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버스로 중리방파제에 도착했다.

정박 중인 선박들이 수평선에 사이좋게 걸쳐져 있었다.

걸어볼 만한 길을 따라 걷는 것도 꽤 행복한 경험이었다.

조용한 바다 둘레길을 걷다 지치면 버스의 흐름에 편승해도 된다.

때마침 지인의 걸음이 무거워 버스를 타 해안선과 평행한 도로를 질주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흰여울 문화마을은 바다 전망의 비탈진 지형적 특색을 살린 마을로 카페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오래된 마을의 원형 모습 그대로 카페나 식당이 들어서 근래 들어 도리어 이색적인 정취가 되어 버렸다.

바다로 쏟아질 것만 같은 마을이라 집집마다 연결하는 폭 좁은 길 따라 인적이 끊임없이 위태롭게 오고 가는 품새로 근래 조성된 둘레길이 태종대에서부터 이어져 있어 평소 산책하기에 손색없었다.

물론 부산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은 게 문제다.

몇 군데 카페에 들렀다 자리가 없어 자리 옮기기를 몇 차례, 드뎌 빈 자리가 보이는 카페를 발견했는데 사실 빈 자리가 있던 이유는 주변 여타 카페에 비해 압도적인 규모 때문이었고, 그마저 바다 전망의 창가 자리는 줄을 서서 대기 중이었다.

대기 줄이 있는 카페, 이따금 생기는 자리는 손님이 적어서가 아니라 워낙 테이블이 널려 있어 차마 눈치 못 채고 기다리거나 바다 조망이 가능한 자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아서 후미진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가격이나 서비스는 참혹할 수준이었다.

어차피 기회비용이라 생각하면 되니까.

1990년 입주한 아파트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 전망이라는 최고의 장점이 있겠다.

대체적으로 마을 건물들은 오래된 티가 역력했다.

카페를 나와 도로를 따라 걷는데 이렇게 멋진 조망의 베란다가 도로에서도 훤히 보였다.

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날이라 야외 테이블은 쓸쓸했다.

분주한 사람들과 달리 잠시 갠 하늘 아래 냥이 하나가 짐짓 여유로웠다.

'녀석아, 금세 비 오니까 어여 빨래 걷고 비 피하렴!'

흰여울은 현재 진행형으로 특색 있는 카페가 급히 들어서고 있었다.

여기 또한 공사 중으로 인부들이 없어 잠시 테라스로 나가 바다 일대 세상을 휘리릭 둘러봤다.

화사한 그리스 산토리니식 카페로 단순함과 보편성을 넘어 문화를 심으려는 의지가 보였다.

기치와 재치가 문화의 날개를 달면 동경을 유영할 수 있는 만큼 커피 맛도 궁금했다.

흰여울에서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아직 비가 내리지 않지만 바로 쏟아지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전혀 없는 대기였고, 잠시 갠 날씨가 그나마 활동하기엔 제약이 적어 단순히 목적 없이 걷다 삼진어묵에 들러 출출한 속을 달랬다.

맛은 기가 막힌데 가격 또한 기가 막히다 못해 쭉쭉 빨릴 지경인 곳이었다.

삼진어묵을 나와 부산역으로 가기 전 조금 남은 열차 시각을 확인한 뒤 인가가 밀집한 오래된 주택가 골목을 걸었다.

예전엔 사람들이 북적대던 재래시장 골목인데 이제는 곳곳에 사람들이 떠난 고독으로 미어지고 있었다.

오래된 흔적을 파는 재래시장.
기나긴 어둠을 지나 맞이하는 건 빛일까? 신기루일까?
갑작스런 비바람은 사색할 틈을 주지 않았다.
뒤돌아 서는 시선에 오랜 잔상을 남긴 정겨운 정취 또한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급히 내린 소나기로 서둘러 버스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옷은 흠뻑 젖었지만 메마른 가슴도 촉촉히 젖던 부산에서의 시간과 작별을 고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