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하늘을 향한 기암의 욕망, 속리산 문장대_20220613

사려울 2023. 10. 14. 05:11

갈망일까? 소외일까?
갈망이라 하기엔 속리산 능선의 바위 봉우리가 도드라진 절경에 편향적일 수 있고, 소외라 하기엔 속리산 전체를 이루는 자연의 조합이 절묘한 화합을 이룬다.
속리산이라 함은 문장대로 인식되는 이유, 오른 뒤에야 비로소 긍정할 수 있었다.
산을 이루는 자연의 갈망이 모여 하나의 문장대라 읽히고, 그 문장대를 가기 위해 갈망의 곡(谷)을 하나씩 밟으며, 평이한 것들 가운데 특이한 하나가 마치 군계일학을 표현한 자연의 언어 같았다.
비록 자연을 훼손한 철학의 타락도, 문명의 이기도 백두대간의 위대한 심연 앞에서 초라한 행색일 수밖에 없는 자취를 한 발 떨어져 숙연히 바라보는 가운데 억겁 동안 인내한 문장대의 잔주름은 통찰의 표식이었다.

청법대 자태 또한 속리산의 빼어난 요소 중 하나였다.

신선대 휴게소에서 출발하여 부지런히 걷다 보면 어느새 청법대를 온연히 관망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었고, 다시 그 길을 걷다 보면 또다시 어느새 청법대 아래 다다랐다.

청법대 아래에 도착하여 되돌아온 길을 따라 정독했다.

마침 지나는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격려의 말 한 마디 외엔 따로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신선대 이후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머리 위에 거대한 바위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형세라 어떻게 저런 작품이 완성되었는지 실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청법대를 돌아 어느새 녹음 사이로 우뚝 고개를 내민 문장대가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자세히 보면 한 사람이 올라 벅찬 감격을 누리는 중이었는데 그 특이한 봉우리 자태가 더해져 그 모습이 무척 부러워 문장대로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문장대 도착 바로 전 너른 쉼터에 다다랐다.

속리산의 여느 봉우리들처럼 일련의 바위가 하늘로 튀어 올랐는데 마치 바위가 너른 쉼터를 지켜준 게 아닐까?

무른 바위에 이렇게 산을 오른 누군가가 이름을 새겨 놓았다.

이 분들, 잘 지내고, 여전히 사랑을 과시하고 계실까?

대대로 궁색한 변명 누리소서.

온통 바위 투성이 속리산 능선에 이렇게 너른 쉼터가 있다는 게 특이했다.

문장대는 200m만 가면 되는데 완만하고 특별한 조망점이 없어 동네 언덕배기에 온 것만 같았다.

드뎌 문장대 도착.

여기에 도착했을 때 문장대가 왜 특별한지 알게 되었다.

너른 능선 고원에 일련의 바위 탑처럼 우뚝 솟은 기개가 왜 속리산인지, 또한 왜 속리산이면 문장대인지 알 수 있었다.

문장대에 올라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정갈한 바위 무더기 같은 관음봉의 멋진 광경을 우선 정독했다.

북쪽 바위 능선 너머 장엄하게 이어져온 백두대간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이곳, 문장대에 오르는 순간 그리도 견고하고 집요하던 잡념을 잊게 되었다.

이 감회를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인내와 노력이라는 제물을 바쳤다.

관음봉의 멋진 자태.

지나왔던 능선길인 신선대, 청법대가 비로봉, 입석대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이게 바로 속리산의 일부이자 그 많은 사람들을 찾게 만드는 매력이었다.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은 그에 비하면 무던한 어른 같았다.

문장대 바위에도 수많은 낙서로 훼손되어 있었는데 이런 절경 앞에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이기였다.

정치적인 정당성을 짊어진 자연의 관대함이라 읽어야 되나?

아니면 숭고한 자연에 가혹한 문명의 이기라 해야 하나.

문장대에서 하산하는 길은 앞서 만난 몇 분들의 궤적을 그대로 밟아 세심정까지 바로 연결된 길로 문장대와 가까운 지점은 급경사나 거대 기암 사이를 지나는 곳이 몇몇 있었다.

산을 오르던 고뇌는 잊고 하산할 때엔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오를 때 작은 폐부와 약한 체력을 한탄했었는데 오른 뒤에야 반성할 줄이야.

그래도 마음에 뒀던 속리산을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오를 수 있어 다행이었고, 더 큰 만족은 기암의 무리가 만들어낸 신비한 산의 형체를 체득할 수 있어 값진 경험이자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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