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1053

여정 끝의 시리도록 선명한 시간, 정선 고성산성_20220318

이번 여정의 마지막은 나지막한 산에 틀어 앉아 휘몰아치는 동강과 첩첩이 버틴 산세에 둘러 쌓인 산성으로 저만치 먼 곳에서부터 숭고한 자연에 기대어 꿈틀대는 길이 모이는 곳이었다. 짙은 구름과 달리 청명한 대기 아래 심연과 같은 적막은 이따금 떨어지는 빗방울이 지면에 닿아 깊은 겨울잠에 허덕이는 낙엽을 깨우기 위한 속삭임에 감미로운 울림을 증폭시켰다. 전날 찾아간 칠족령 절벽길의 아찔한 절벽이 선명하게 서있고, 그 아찔함 가운데 홀로 몸부림치는 하늘벽구름다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존재가 참으로 초라하게 여겨졌다. 그럼에도 미물 같은 초상에 짙은 화장을 하느라 여념 없는 내 모습도 투영되어 겸손한 자연의 모습이 한발 떨어져 비로소 위대한 진면목을 깨달았다. 여정을 떠날 때 무겁던 봇짐은 비교적 홀가..

전설과 절경이 서린 곳, 동강 나리소와 바리소_20220318

전설의 주인공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들어선 절경의 전설들. 신비롭게 포장된 설화에 정선은 살짝 양념을 가미하여 지나는 시선들을 현혹하고, 현혹된 시선은 발길이 떠날지언정 그 자리에 머물러 상상이라는 종이에 그로테스크한 여운을 남겼다. 나리소 전망대를 조금 지나면 나리소탐방로가 있어 뜀박질하듯 한달음에 오르자 설화의 주인공이 살고 있는 나리소 절벽 바로 윗지점이다. 설사 이무기가 떠났다고 하더라도 마치 수중에 웅크리고 있다고 여기자. 동강의 절경은 도드라지고 특출 난 어느 하나의 공로가 아닌 이 모든 자연의 요소와 더불어 설화와 이야기들의 상호작용이니까. 동강로를 따라 한참을 질주하는 동안 드문드문 농가가 있긴 했으나, 대부분은 공백지대나 다름없었고, 운치리에 지날 즈음 인가가 확연히 드러났..

이색적인 풍광을 간직한 동강로 따라_20220318

병방산 전망대에서 내려와 솔치재를 지난 뒤 동강 따라 멋진 도로를 달렸다. '동강로'로 표기된 이 길은 마치 태생부터 동강과 함께 나고 자란 것처럼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전날 칠족령으로 가는 길에 이용한 '평창동강로'와 공유될 수 없는 묘한 차이가 느껴졌고, 이번 여정의 끝은 바로 동강로를 따라 나리소와 바리소, 고성산성을 지나 38번 국도에 합류하여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했었다. 일기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높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데다 미세 먼지가 적은 청정 대기로 인해 활동하기도, 사진에 담기도 안성맞춤이라 여정의 끝에서 늘 겪게 되는 아쉬운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때마침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어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느리게 이동하던 중 길 한가운데 특색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찼다. 워낙 선..

절경 앞 키다리아저씨, 병방산_20220318

공백과 같은 스카이워크에 올라 크게 휘몰아치는 동강의 모습에 반했다. 태풍급 바람으로 짚와이어는 멈춰 버렸고, 간헐적으로 얼굴 간지럽히던 빗방울은 강풍의 위세에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봉우리가 하얗게 변한 병방산과 그 발치에 번뜩이는 동강의 조화에 쉽게 발을 떼지 못하고, 마치 무언가 소중한 소품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자연이 찍은 점을 놓치지 않고 시선에 담았다. 숙소에서 출발하여 정선읍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 곧장 병방치로 내달았다. 새벽에 내린 눈발로 지난번처럼 진입로에 길이 미끄러워 슬립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도로는 크게 미끄럽지 않아 오르기엔 수월했다. 1년 전인 21년 3월 초에는 병방산으로 가던 중 당일 아침까지 내린 폭설로 인해 거듭된 슬립으로 병방산 초입 오르막길에서 차를 돌렸었던 기억..

정선에서의 특별한 경험들, 파크로쉬-가리왕산-백석봉_20220317

경이로운 동강의 이야기를 듣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은 기분을 억누르는 복병이 아니라 성취를 북돋워 주는 흥겨운 귀갓길의 동행자며 어깨동무를 나누는 친구였다. 어스름 피어나는 정선의 대기는 일찌감치 내린 암흑조차 위압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는 시간의 정겨운 순응이며, 그 암흑이 걸쳐 입은 옷은 저녁밥을 짓는 굴뚝의 향그로운 낙엽 타는 내음으로 단장했다. 숙소가 가까울 무렵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 샘터에 들러 청량감이 터질 듯한 알싸한 생수를 들이키며 하루의 온전한 여정에 뒤늦게 화답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냥이들을 만났던 자리를 두리번거리자 마치 손꼽아 기다린 양 작은 담장에 웅크리고 있다 보슬비를 피한 자리에 마련해 준 식사를 정신없이 해치웠다. 녀석들이 식사를 하는 사..

절경에 장관을 덧씌우다, 하늘벽 구름다리_20220317

동강 절벽길의 치명적인 경이로움에 신중한 발걸음과 달리 가슴은 헤아릴 방법이 없다. 얼굴 내밀기 시작한 봄꽃은 지나는 길에 한숨이 되어주고, 절벽 아래 또 다른 세상은 인색하던 감탄의 장작을 기꺼이 내어준다. 걷는 길이 신중한 건 발 밑에 도사린 위험 때문이기도 하고, 좁은 길가 무심히 팔 뻗은 자연의 깊은 울림 때문이기도 하다. 돌 하나, 스치는 바람조차 생명의 심박 소리로 꺼져가던 무미한 시선이 번뜩이고 흥에 겨워 나도 모르게 이 시간이 느려지길 애원하며, 그래서 청명하던 대기로 시작해 턱 밑 깊은 숨소리조차 감사에 눈물겹다. 하늘벽 구름다리는 정선군 신동읍에 위치하며, 덕천리 제장마을에서 연포마을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기암절벽과 절벽 사이에 놓인 유리다리다. 높이는 105m, 길이 13m, 폭이 1...

절경의 기억이 명징한 순간, 동강 칠족령_20220317

세상을 향해 가슴 내밀 듯 동해 바다와 만나는 뭍의 경계를 이어주는 해파랑길이 이번 바다 여행의 백미였다면 내륙의 백미 중 하나는 바로 동강이 첩첩의 산을 비집고 들어서 뭇 생명의 기개에 봄의 효능감을 나눠주는 젖줄이 아닐까. 발길을 구애하듯 몇 년 걸쳐 애정의 징표 마냥 숨겨진 그 모습에 절절한 그리움을 여과 없이 살가운 고백을 해도 봄의 시샘이 뿌연 장벽을 밀어 넣어 늘 멀어지는 동강과 그 절경을 뭉특한 모습으로 애간장 화답했지만 이번만큼은 청명한 대기가 선명한 수평선도 보란 듯 활짝 가슴을 열었다. 한 무리 산악회 사람들이 빠져나간 고갯길은 안도의 한숨을 뱉으며 말없이 흐르는 동강처럼 다시금 시간은 유유히 흐르고, 지나던 구름도 잠시 멈춰 땀을 훔쳤다. 칼날 같은 절벽의 그 미려한 선에 뭐가 그리 ..

때론 포근하게, 때론 강렬하게, 파크로쉬_20220316

일 년에 한 번은 꼭 오게 되는 정선, 그중에서도 파크로쉬 또한 꼭 들러 지친 여정을 털어내기엔 적절하고 편안한 베이스캠프가 되어 버렸다. 휴식이라는 컨셉에 걸맞게 사물들 사이에 배치된 여유와 뒤뜰에 추구된 쉼터, 게다가 여기를 찾는 사람들 또한 거기에 맞춰 느림의 보폭으로 추억의 돌탑을 쌓는다. 석탄이 부르는 음악소리에 한껏 춤을 추는 모닥불이 그리웠는지 한참을 앉아 춤사위 공연에 심취하는 동안 밤은 깊어 달무리가 시선의 이불을 펼친다. 정선 파크로쉬로 떠나다_20190216 원래 의도와 다르게 혼행을 떠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더 좋았던 이번 여행.영동 고속도로 진부에서 내려 정선 숙암으로 천천히 흘러갔다.토 요일 저녁이라 차가 많을 법도 하지만 진부를 벗 meta-roid.tistory.com 두 ..

경적 소리도 떠나버린 간이역, 선평역_20220316

느림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곳이 간이역이다. 곡선과 느린 열차, 공허함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꽃다발이 되고, 강렬한 향수가 된다. 과거엔 설렘을 약속했지만 이제는 잊혀짐을 약속하는 곳, 정선으로 가는 길에 졸고 있는 간이역을 찾아 잠시 그 향취에 시간을 표류했다. 더불어 이름까지 아름다운 간이역을 되뇌어 여정에 뿌려진 향취를 선물 받았다. 별어곡-선평-정선-아우라지-나전-구절... 울진에서 정선으로 넘어가는 길에 들른 태백은 내 여정에 있어 길목과 같은 곳이었다. 커피 한 잔, 올리브영에 들러 스킨 하나를 하고, 저녁 식사와 쉼표를 제공해 준 곳으로 차를 세워둔 곳에 황지연못에서 흐르는 작은 도심 하천을 감상한 뒤 조바심을 버리고 정선으로 출발했다. 태백에서의 둘째 날, 정선아리랑과 바람의 나라_201..

동해바다에 대한 거대한 포부, 망양정_20220316

수평선 너머 또 다른 수평선에 대한 이상과 너른 바다를 품은 더 너른 바다에 대한 호기심은 지극한 욕구이자 궁극의 본능이다. 무릇 풍류를 아는 사람이 즐길 줄 알고, 풍류가 머무는 곳에서 가락은 흥이 된다. 망양정에서 읽노라면 표독한 파도는 바람의 흥에 맞춰 한사코 뒤를 따르는 바다의 어깨춤이 되며, 그토록 뒤섞이면서도 밀어내고 떨치려 하는 문명도 평온의 자장가에 나른한 단잠이 된다. 그 장단에 신이 난 봄볕은 향긋한 미소의 깃털을 띄워 뺨 위에 길 잃은 콧노래로 합주한다. 망양정(望洋亭)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해안가에 있는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의 정자이다. 고려시대에 처음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허물어졌으므로 조선시대인 1471년(성종 2) 평해군수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