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신선들이 노니는 속리산_20220613

사려울 2023. 10. 14. 05:06

거듭된 간절함에 소망이 결정체를 이루고 차곡하게 쌓인 소망이 성취란 결실이 된다면 켜켜이 쌓인 돌이 자연의 거룩한 손길을 거쳐 하나의 산이 된다.
삶이 한결같은 형상을 그리겠냐만 산 또한 어느 하나 같은 모습일 수 없었고, 먼 길 달려와 잠시 가부좌를 튼 백두대간이 유형의 신으로 하늘을 기리는 곳, 속리산이 아닐까?
'속리산=문장대'란 공식을 버리고, 그와 함께 정갈히 앉아 각자 찬연한 화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또 다른 세상에서 작은 능선길의 질감을 손끝으로 듣는 사이 어느새 고유 명사처럼 각인된 혼을 기렸다.
계속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경업대에 서자 마치 거대 공연장의 홀에 서서 객석에 자리 잡은 여러 신들의 울림을 듣는 착각에 빠졌고, 그로 인해 세속의 잡념은 공연의 소소한 에필로그처럼 여운의 잔향이 꽤 묵직하게 전해져 한 동안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속리산은 오래전부터 광명산(光明山)·지명산(智明山)·미지산(彌智山)·구봉산(九峯山)·형제산(兄弟山)·소금강산(小金剛山)·자하산(紫霞山)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속리산(俗離山)은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九峯山)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는 속리악(俗離岳)이라고 일컬었다.”라고 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속리산은 산세(山勢)가 웅대하고 꼭대기는 모두 돌봉우리가 하늘에 나란히 솟아서, 옥부용(玉芙蓉)을 바라보는 것 같아 세속에서는 소금강(小金剛)이라 부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높이는 1,058m이다. 태백산맥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나온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위치한다. 속리산의 지질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하여 변성퇴적암이 군데군데 섞여 있다. 변성퇴적암은 깊게 패이고, 화강암은 날카롭게 솟아올라 깊은 계곡과 높은 봉우리를 이룬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峯)을 중심으로 비로봉(毘盧峰)·길상봉(吉祥峯)·문수봉(文殊峯)·보현봉(普賢峯)·관음봉(觀音峯)·묘봉(妙峯)·수정봉(水晶峯) 등 8개의 봉(峯)과 문장대(文藏臺)·입석대(立石臺)·경업대(慶業臺)·배석대(拜石臺)·학소대(鶴巢臺)·신선대(神仙臺)·봉황대(鳳凰臺)·산호대(珊瑚臺) 등 8개의 대(臺)가 있다.
[출처] 속리산_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속리산(俗離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전날 말티재 휴양림에 도착하여 에너지 충전을 한 뒤 아침까지 늘어지도록 자고 일어나 법주사 초입으로 향했고, 꽤 너른 법주사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한 후 바로 법주사를 지나는 속리산길로 향했다.

햇살이 쨍하고 조금 걷다 보면 더위가 몰려오는 초여름이라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바람은 선선했고, 걷기엔 어렵지 않은 날이었다.

주차장에서 주변을 쭉 둘러보는데 속리산 방향 산언저리에 위태로운 바위가 눈에 띄었는데 역시나 기암이 즐비한 속리산 다웠다.

매표소를 지나 오리숲길로 접어들면 유명 사찰의 걷기 좋은 길과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걷기 알맞은 넓고 평탄한 길과 그 길 주변으로 조성된 우거진 숲길은 굳이 속리산에 오르지 않더라도 길의 질감을 충분히 느끼며 걸어볼 만했고, 사찰로 향하는 차도와 다른 갈래길로 이어져 있었다.

물론 조금 더 진행하다 보면 법주사 세조길을 지나 도보와 차도가 같이 진행되긴 했지만 도보길로서 월정사, 내소사처럼 오롯이 걷는 걸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산행을 목표로 시작한 여정이라 굳이 법주사는 들르지 않고, 곧장 신선대 방향으로 향하는데 도로 옆 세조길이라는 테마가 있어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속리산 하면 문장대라 최종 목적지는 당연히 문장대로 잡았지만 원래 의도대로 경업대, 신선대 방향으로 먼저 진행한 뒤 문장대로 가는 경로라 어느 정도까지는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다 세심정 갈래길에서 다른 길을 이용하다 경업대, 신선대, 청법대를 거쳐 문장대에 도착할 수 있는 경로였다.

세조길은 숲길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 오리숲길처럼 걷기 수월했다.

달천 발원지가 속리산이라는데 작은 저수지 뚝으로 난 길은 달천 건너 법주사와 저수지로 이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저수지였다.

저수지를 지나면 너른 터에 태평휴게소가 있었는데 영업은 하지 않는지 텅 비어 있고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출발점부터 신선대까지는 5km가 넘는 거리로 여유 있게 걷기 때문에 대략 2~3시간 정도 감안했다.

길을 걷다 보면 기암이 많은 산답게 여러 기암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었는데 그 기암에도 생명이 의지하고 있었다.

산으로 뻗은 세조길을 걷다 보면 속리산 휴게소와 세심정이 있었는데 거기까지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어디론가 느리게 걸어가는 녀석이 있었는데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앞만 보던 시선에 쉼표를 띄웠다.

세심정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산길에 접어들게 되는데 서서히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첫 목적지 경업대까지 1.6km라 꽤 가까워졌지만 그 거리만큼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가파른 구간이 군데군데 있었다.

지나는 길에 의외의 민가?

이게 지도상 표기된 비로산장일까?

거대 기암이 길 위에 매달려 있어 마치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거대한 암석이 얼마나 위태로워 보였는지 산행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나무를 끼워놓았다.

그리 영향력은 없을 거 같은데 심적인 지지대 효과는 조금 있긴 했다.

치악산과 달리 속리산은 여울과 뒤섞인 구간이 많았고, 접근 통제는 되지 않아 여울 곳곳에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이런 관리적인 측면에서 치악산은 정석적이긴 했다.

고인 물은 무척이나 맑았고, 그 속에 작은 물고기들이 힘차게 꿈틀거리며 유영했다.

가쁜 숨을 잠시 달랠 수 있는 너른 휴식터가 나와 한 모금 물을 삼켰다.

평일인데도 의외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눈에 빈번하게 띄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하는데 길을 가로질러 가는 뱀이 보여 순간 움찔했다.

물론 뱀도 놀래서 후다닥 도망가는데 거듭 등산로를 벗어나지 말자고 다짐했다.

마사토가 섞인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미끄러워 주의하느라 경업대를 목전에 두는 곳까지 쉴 틈 없이 걸었다.

오르던 중 한 무리 내려가는 사람들도 마사토로 인해 슬립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차라리 내려가는 길보다 오르는 길이 덜 위험했고, 대신 관음암 아래 가파른 돌계단에서 숨은 턱 밑까지 차올랐다.

막상 산행을 해보니 이 구간이 가장 힘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음암 갈래길에 다다랐다.

경업대에 100m 남았는데 여기가 관음암 갈래길이라 거기로 향했다.

관음암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바로 저 거대 바위틈으로 지나는 길이었다.

관음암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던 중 땡중과 작은 마찰이 있어 그 자리를 벗어나 다시 경업대로 향했다.

동영상을 찍으면 안 된다고-물론 절경에 빠져 있어 동영상 촬영할 엄두를 못냈다- 그냥 나가라는 말.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과 동영상 촬영을 구분 못하는 건가?

돌아 나오는 길에 씁쓸했다.

또한 하산 길에 한 무리 땡중들과 지나쳤는데 걷는 자세와 말투에서 종교적인 환상이 깨져버렸다.

신선이 노닐던 자리에 신선은 떠나고 종교로 점철된 자만이 왜곡된 진리의 편견에 갇혀 허덕이고 있었다.

종교적 해석 없이 자연의 작품으로 경탄할 때 순도 높은 감탄사로 순수를 찬양할 수 있을 진데.

경업대에 도착, 저 바위에 서자 마치 콘서트홀에 선 착각이 들었다.

지척의 기암 봉우리들이 빙 둘러 있었고, 복어 같은 바위가 그 중심의 나지막한 자리에 주인공처럼 서있었다.

사진으로 촬영하기 넓은 구간이라 동영상으로 촬영을 했는데 그 파일이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신선대는 조금 더 고도가 높은 곳이라 경업대의 미려한 광경을 둘러본 뒤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전형적인 오솔길처럼 길이 나있고, 도중 계단길도 있었지만 산길치곤 걷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도중 거대한 바위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 따라 앞만 보며 걸었는데 산중 작은 공터에 휴게소가 있어 둘러보자 지나온 바위 봉우리가 신선대였다.

신선대 휴게소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 표지석 뒤편으로 따라가자 크고 너른 바위가 있었는데 거기서 다시 한 번 절경을 맞이했다.

바위 위에서 맞이하는 절경은 속리산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우측에서부터 칠형제봉, 청법대, 문수봉이 펼쳐졌는데 이 모습에서 흘러나오는 감탄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법주사 방면.

지금까지와 달리 꽤 오랜 시간 머무르며 속리산 기암 능선을 찬찬히 감상했다.

백두대간과 그 곁가지에 여러 산을 경험하며 비교의 잣대가 아닌 고유명사처럼 각각의 산이 가진 위대한 속성들을 되짚듯 속리산은 분명 또 하나의 멋진 산행이자 경험이었고, 그 감동이 흩어질까 싶어 다시 가던 길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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