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고원의 봄 전령사들, 대구 비슬산_20240411

사려울 2024. 6. 27. 09:02

비슬산의 채 여물지 않은 핑크빛 바다를 뒤로하고 정상으로 향하는 외길 고독한 선을 밟으며 잡념과 사념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사유의 존립을 채찍질했다.
계절은 지독한 질서의 인내를 극복하여 신뢰와 감탄을 주건만 조급한 결론과 필론의 가두리 양식장 속에서 스스로를 학대하며, 타인을 핍박하는 게 얼마나 자연스런 정당화에 속고, 속이는 걸까?
되물음과 되짚음의 교착에 빠질 즈음 지상에서 그리 거대하고 위대했던 비슬산은 여느 산일 뿐, 한 걸음 떨어져 통찰도 얻지만 두 걸음 떨어져 위장의 장막도 만들어 내던 동굴은 만천하 같았지만, 좁은 아집과도 같았다.
그렇게 산 정상에서 세상을 넘어선 자연과 계절에 경탄하며 가슴 저민 감동도 얻는다.
진달래를 보기 위해 산에 올라 하나를 초월한 화답을 듣던 날이기도 했다.

비슬산은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상북도 청도군의 경계에 있는 높이 1,084m의 산이며 남쪽으로 조화봉(照華峰)·관기봉(觀機峰)과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앞산과 이어진다. 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일명 포산(苞山), 소슬산(所瑟山)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달성군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기 전인 1986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93년에는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었다. 다소 마이너하지만 대구광역시 북쪽 경계의 팔공산과 더불어 “북팔공, 남비슬”이라며 대구광역시의 양대 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팔공산이 남성미를 상징한다면 비슬산은 여성미를 상징한다고 한다.
[출처] 비슬산_나무위키
 

비슬산

파일:비슬산.png 대구광역시 달성군 과 경상북도 청도군 의 경계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유가읍·옥포읍과

namu.wiki

 

[출처] 비슬산 참꽃문화제_달성문화재단

 

비슬산 참꽃문화제 소개

비슬산 참꽃문화제를 소개합니다.

biseul.kr


[이전 관련글]

 

비슬산의 유가사_20170504

이튿날 일찍 꽁지 불 난 사람처럼 냉큼 일어나 분주히 외출 준비를 하곤 오마니께서 가고 싶으시다던 청도 한재길로 출발했다.가는 길에 청도읍 추어탕을 먹고 갑자기 든 커피 욕구에 지도를 검

meta-roid.tistory.com


점심은 미리 준비해 놓은 빵으로 대체하고 창원을 출발하여 곧장 비슬산에 도착했다.
하부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도록 안내를 받았는데 작은 규모가 아님에도 차량은 꽤 많아 더불어 사람들도 진달래 군락지 부근 대견사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지어 승강장으로 향했다.
막상 승강장에 도착하자 예상보다 대기 인원이 더 많아 실제 도착하여 배정받은 차량은 약 1시간 40분을 기다려야 했고, 다행히 도중에 공석이 생겨 50분 대기로 확 줄었다.

셔틀버스는 이미 공지된 대로 진달래 만개 전후로 무료 운행 중이었는데 약 6km가 조금 안 되는 구간을 소형버스로 이동해서 그 시간과 노력을 온전히 진달래에 집중할 수 있어 무척 고마웠다.
사실 여기 셔틀버스 운행은 여정을 떠나기 며칠 전에 알게 되어 비슬산으로 경로를 수정했는데 결과론적이지만 반은 성공, 반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셔틀버스를 타고 약 20여 분 정도를 달려 대견사 인접한 곳에 도착했고, 하산하는 차량이 17:30이라 그전에 도착하면 된단다.
지금까지 3시간 정도 남아 머뭇거릴 시간 없이 잰걸음으로 진달래 군락지로 이동했다.
앞서 천주산과 달리 비슬산 진달래는 아직도 봄의 양분이 필요했던 건지 만개하지 않은 망울이 대부분이었다.
성급한 몇 송이 진달래는 그래서 더욱 도드라졌다.

셔틀버스에 내려 대견사 뒤켠 진달래 군락지로 가는 길은 이렇게 하늘과 땅이 맞닿은 멋진 경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막상 비슬산을 올라와보니 생각보다 멋진 세상의 연속이라 감탄사를 연신 남발했다.
여긴 행정구역상 경북 청도 소재지였는데 마을도, 그 너머 연속된 산들도 하나같이 절경을 이루는 본질적인 구성요소이자 서로 멋지게 상호작용을 이루고 있었다.

강우관측소도 그림 같이 스며드는 곳.

대견사 뒤켠 데크길로 가다 보면 이내 여기가 진달래 군락지임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대부분의 진달래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질 않았다.
진달래 군락지 너머 뭉특하게 솟은 산이 바로 비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으로 비슬산 또한 정상 부근은 태백산, 천관산, 황매산처럼 고원과 같은 지형이었다.
일전에 유가사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보는 비슬산은 정상 부근이 거대한 기암이라 봉우리 부근은 매우 가파른 절벽이 아니었을까 유추했었기 때문이었다.
천왕봉으로 가는 길은 우측으로 크게 우회하는 능선을 따라가면 되는데 도중 봉긋 솟은 작은 봉우리는 1천 m 살짝 넘는 월광봉으로 길은 그 월광봉을 살짝 우회했다.

데크길을 걸어 진달래 군락지로 걸었다.

아주 드문드문 진달래가 피어 있긴 했지만 전체에 비하면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앞서 천주산 진달래 군락지가 높은 밀도감으로 진달래가 빼곡히 피어 있었다면 여긴 아직도 겨울잠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고, 다만 규모는 천주봉에 비해 훠얼씬 넓었다.
물론 비교나 대조는 쓸데없는 짓, 진달래라고 해서 꽃만 보는 게 아닌 전체적인 절경에 용해된 진달래를 보는 게 솔직한 의도이며, 그런 만큼 산이 가진 고유화된 가치는 비교할 수 없었다.

대견사 뒷편에서 비슬산 정상으로 향하는 너른 고원이 온통 진달래 군락지로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자책했다.

원래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여기까지 온 만큼 비슬산 천왕봉까지 탐방하기로 하고 진달래 군락지 가장자리로 길이 우회하게 되는데 무심하게 퍼져 있는 몇 그루 소나무가 장관이나 다름없었다.
부조화가 뒤섞여 조화로운 곳이라 할만했다.

그 경관을 그리며 어느새 정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도중에 내려오는 분들이 몇몇 있긴 해도 대부분 여기서 군락지로 내려가는 내리막 계단을 따라 이동했는데 그래서 여기서부터 외로운 산행의 시작이었다.

하나의 큰 가지에서 뻗어 어느 순간 빅뱅하듯 잔가지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이 형상이 존멋이었다.
도중에 하산 중인 두 커플을 만났는데 정상까지 소요시간을 묻자 약 30분 정도 걸린단다.
그러다 다른 분들이 그분을 비웃으며 30분 만에 다녀와 보라고 비아냥거리자 그분은 억울하다는 듯 해명을 하는데 웃어넘기는 수준으로 지나쳤다.

비슬산 소나무들은 키가 큰 건 거의 없었고, 대부분 이렇게 키가 작으면서 크게 휘며 기하학적인 모양이 많았다.
바위산이라 그런 걸까?

이렇듯 어느 하나 같은 형태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 비범하지 않은 것도 없었다.
기하학적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즐비했다.

도중에 작은 봉우리, 월광봉 인근에서 비슬산 정상의 매력을 알아차렸다.
지상에서 보면 절벽이었는데 능선에서 보면 어미 품처럼 너른 고원이었다.

월광봉을 지나 쉼터 같은 곳에서 작은 이정표가 있었는데 비슬산 천왕봉까지 1.34km 남았고, 휴양림은 2.8km 거리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비슬산 휴양림까지 2.8km??
얼핏 지도상 등산로 거리를 합산해도 3km가 넘는데 뭐가 잘못된 걸까?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걷다 보면 꽤 광범위한 지역에 번개 자국이 남아있었다.
냉혹한 자연 이면에 생존 본능이 그 틈을 가득 메운 곳 또한 자연이었다.
이런 나무들이 마치 칼국수처럼 뒤엉켜 있는 걸 보면 실로 번개의 위력이 엄청나다는 방증이었다.

천왕봉까지 남은 거리는 400m.
때마침 월광봉을 지나 어느 시점에서 산행 중인 분을 지나쳤는데 1회용 커피 잔 하나 손에 들고 힘겹게 올랐고, 정상 부근에서 함께 산행을 나온 사우는-회사 동료로 추정한 이유는 회사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먼저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이 멋진 꽃다발 같은 나무 한 송이를 손안에~

키는 작지만 가지가 무수히 많은 소나무들은 여기에서 가장 흔한 형태였다.

정상에 거의 도착할 무렵, 고도는 거의 같았는지 너른 평지 같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보자 멀리 대견봉과 언저리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진달래 군락지가 보였다.
실로 엄청나게 광대한 진달래 군락지였고, 더불어 산에 이런 광활한 고원이 있을 줄이야!

이내 비슬산 정상에 도착하여 이식된 사유 하나를 끄집어내 이 자리에 묻었다.
감동의 열매가 맺힐 즈음 찾아야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진맥진 정상에 도착한 유니폼 남이 도착했고, 앞서 같은 유니폼을 입은 젊은 남성이 격려를 했다.

까마득하던 진달래 군락지를 당겨보면 그 또한 흘려보낼 경관이 아닌, 되새겨야 될 경관이었다.
이 거대한 고원이 핑크빛으로 물들면 어떤 숨겨놓은 장관을 펼칠까?
문득 다음 봄이 손꼽아 기다려졌다.

현실과는 또 다른 세상을 꿈꾼 황제처럼, 비슬산 정상의 너른 세상도 또 다른 꿈과 이상을 품을만했다.
지상에서 볼 때와 확연히 다르게 정상 부근은 길지 않지만 면적은 꽤 넓어 보였다.

정상에서 뜻하지 않은 심연의 감동을 즐기는 사이 두 사람은 하산을 해버렸는지 적막강산이 되었고, 도리어 1시간가량 머물며 흔하게 누릴 수 없는 경험을 차곡차곡 쓸어 담았다.

한 마리 새가 주변을 맴돌며 경쾌한 기쁨의 노래를 지저귀며 방문을 환영했다.
진달래만 여기고 비슬산을 왔는데 예상을 철저히 깨부수는 산에서의 절경에 취해 사방을 천천히 훑어보며, 더불어 인색했던 휴식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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