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역사는 잠들고, 봄은 분주한 화산마을. 화산산성, 하늘/풍차전망대_20240412

사려울 2024. 7. 1. 00:14

꽃잎이 떨어지듯 기나긴 봄 여정의 꽃망울도 시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내륙 깊이 은둔한 도로를 경유하여 군위에 들러 포토 스팟으로 종종 고개를 내밀던 풍차 전망대에 들러 이글거리는 햇볕 아래 견고히 살아가는 세상과 더불어 화본역도 덩달아 들렀고, 잔잔한 들판 아지랑이 공백을 유영할 때 어디선가 시선을 유혹하는 도화 물결도 만났다.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역사의 애잔한 그늘에선 무심히 진달래 하나 슬픈 역사를 기리는데 그 무심한 역치는 얼마나 깊은지 성곽의 돌무더기는 도저히 움직일 기미가 없었지만 자연은 봄이불을 덮어 쓰라린 상흔을 어루만져 흉터도 지우고 있었다.
아직 남은 벚꽃 구름의 눈발을 쫓아, 산허리 넘실대는 진달래를 쫓아 떠난 여정은 이렇게 소리소문 없이 흘러가 버리고, 인간이 애써 이룩한 역사의 처절한 무관심을 끝으로 봄은 어느새 회상을 기다렸다.

화산산성은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 산230에 있는 산성으로 1984년 5월 21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산성은 산 위에 쌓은 성을 말한다. 화산산성은 해발 828m 화산 정상부에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후기에 쌓았다. 둘레는 약 9,300보, 높이가 10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숙종 35년(1709)에 병마절도사 윤숙이 군대를 주둔시키기 위해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과 북쪽 사방 문의 기초 공사를 시작하였다. 성벽을 쌓기 위해 돌로 된 재료를 모으고 수구문(水口門)을 쌓던 중 흉년과 질병이 겹쳐 백성들에게 계속 부역을 시킬 수 없어 공사가 중지되었다. 그 후 계속 지금의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현재 북문과 수구문은 성을 공사하던 옛 모습 그대로 흔적이 남아 있다. 북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무지개 모양인데, 주위의 성벽은 높이 4m 내외, 폭 5m이다. 계곡을 관통하는 성벽 밑에 낸 수구문은 암반 위에 넓게 뜬 돌을 층층이 쌓아 만든 2층 구조이다. 1층은 넓은 2칸, 2층은 좁고 작은 3칸으로 만들어 배수량을 조절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유행한 2층 수구의 형태, 조선 후기 성문과 성벽 등 성을 쌓던 기법과 공사의 순차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 화산산성_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경상북도 기념물 화산산성 (華山山城) : 국가유산포털 - 문화재청

국가유산 검색

www.heritage.go.kr

화산산성 풍차전망대는 해발 700미터에 경북 유일의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청정지역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으며 동틀 무렵 화산마을에서 내려다보는 환상적인 운무는 마치 신선의 세계로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일출과 새벽하늘 별빛이 장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커다란 풍차와 액자 포토존도 있어 사진 찍고 경치 감상하기에 좋다.
[출처] 군위 화산산성 풍차전망대_한국관광공사
 

군위 화산산성 전망대> 여행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군위 화산산성 전망대

korean.visitkorea.or.kr

대구에서 홍천뚝배기 국밥으로 아점을 해결하고 다음 여행지로 출발, 새만금포항고속도로에 올려 포항 방면으로 진행하다 청통와촌IC에서 내려와 919 도로를 타고 신녕을 지나던 중 지금은 폐역이 된 신녕역에 만발한 벚꽃에 이끌렸다.

신녕역은 인가가 없고 다만 시멘트 공장이 있어 간헐적으로 오가는 차량의 마른 먼지만 휘날렸는데 그런 가운데 아직 남은 벚꽃이 건조한 공간의 촉촉한 물기 자욱 같았다.

신녕을 지나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마을을 통과하자마자 우회전하면 고속도로처럼 매끈한 28번 국도로 합류, 비교적 나지막한 갑령재를 넘자 양갈래 산 사이 홀로 우뚝 솟은 산을 발견, 천천히 달리며 그 자태를 감상했다.

지도상에 각시산이라 표기되어 있었는데 28번 국도는 그 산 옆을 지났고, 목적지인 화산산성은 내리막길 도중 삼국유사교차로에서 빠져 외길의 산언저리로 쭉 진행해야만 했다.

[사진 출처] 각시산_국제신문

 

근교산&그너머 <1029> 군위 옥녀봉

- 풍수상 `각시가 앉은 형상`이라 - 본디 `각시산`이라 불렸던 산 - 총산행거리 약 3.6㎞로 짧지만 - 경사가 가팔라 초행자 주의해야 - 정상표시..

www.kookje.co.kr

일대에 큰 산이 있거나 지형이 험준한 게 아닌데도 화산마을로 가는 길은 비교적 험했고, 화산산성은 일대에서 큰 산에 해당하는 화산의 높은 지대로 굽이쳐 오르는 좁은 길을 올라야만 했다.

줄곧 멋진 산세의 각시산이 따라왔는데 앞서 여정을 즐겼던 임실의 상사봉처럼 높거나 크지 않음에도 멋진 자태엔 이견이 없겠다.

한참 산허리길을 오르자 어느 순간 산중에 이런 마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넓은 고원 같은 세상이 펼쳐졌고, 구불구불 좁은 외길에서 갈림길이 나왔는데 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풍차전망대, 우측으로 진행하면 하늘전망대란 이정표가 나와 우선 상대적으로 높은 하늘전망대에 들렀다 점차 낮은 지대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하늘전망대-풍차전망대-화산산성 순이 되겠지.

하늘전망대로 가는 길은 차량 한 대 지날 정도의 폭이 좁고 매끈한 비포장길을 따라 듬성듬성 늘어선 민가 사이를 꼬불꼬불 지나면 이윽고 하늘전망대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도중 억새바람길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전망대 도착 바로 전 간이 화장실 앞에 주차를 했다.

물론 하늘전망대 바로 앞에 넉넉한 공간의 공터가 있어 거기에 주차를 해도 되겠지만 앞서 봤던 억새바람길도 탐방하기로 해서 갈림길과 하늘전망대 중간 정도인 간이 화장실 앞에 주차한 것.

그러곤 하늘전망대에 도착.

화산 정상에 가까운 고도라 역시나 시계는 넓고 높았다.

기대 없이 찾은 터라 그래서 감탄사를 여과 없이 뱉어냈다.

가까이 화전민들이 일군 고랭지 경작지부터 고원의 끝에 선 풍차전망대까지, 산 정상 가까운 곳이 맞나 싶을 정도의 너른 지대에 경작지와 민가가 뒤섞여 500m 이상 되는 고원이 맞나 착각이 들었다.

묘하게도 하늘전망대에서 세상 구경에 흠뻑 젖는 사이 드문드문 차량의 행렬이 이어졌고, 충분히 감상했다는 만족감이 들 무렵이라 그 자리를 벗어나 다음 목적지인 억새바람길로 향했다.

억새바람길은 하늘전망대로 올라오던 길을 잠시 따라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옆 도보로만 가능한 풀이 자라는 길 따라 언덕을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는데 얼마 걸어가지 않아 억새바람길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아무렇게나 자라는 억새와 잡초들로 인해 가을이 아닌 이상 딱히 억새 군락지의 의미가 없었고, 다만 화산으로 올 때 이용했던 28번 국도를 따라 너른 계곡길과 멋진 산세를 가진 각시산을 조망할 수 있었다.

억새바람길 따라 계속 진행하면 하늘전망대로 올라올 때 비포장길과 민가들이 나와 결국 하늘전망대 옆 통신기지국이 들어선 작은 언덕 둘레길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긴 분명 만추에 진가를 발휘하는 곳이었다.

억새바람길에서 되돌아나와 주차된 차량에 도착하자 하늘전망대 일대가 보이는데 차량이 어느 순간 3대 방문한 상태로 드문드문 들어오던 차량들처럼 발길이 끊이지는 않는 곳이었다.

하늘전망대와 억새바람길에 이어 다음 목적지 풍차전망대로 향했다.

미로처럼 좁고 복잡한 길을 달려 풍차전망대 도착.

하늘전망대가 확실한 원근의 경계를 가졌다면 풍차전망대는 먼 세상을 지향했다.

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산중에 비집고 들어선 군위호의 절묘한 절경을 멀찍이 보여주는 곳으로 호수 위에 떠있는 태양광 발전패널과 호수가 작은 터에 자리 잡은 정갈한 이주지까지 한눈에 보였다.

풍차전망대엔 하늘전망대에 비해 더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방문했었는데 흔히 SNS에 공개된 포토스팟들은 짧게나마 줄을 서서 대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대기하지 않고 틈틈이 보이는 자리에서 셔터를 눌렀는데 꼭 그 자리가 아니더라도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곳은 몇몇 있긴 했고, 전체적으로 군위호 일대 전망은 어디서든 잘 보였다.

여긴 방문객들을 위한 포토스팟으로 여행을 즐기는 기간 내내 따라붙던 미세먼지가 아니었다면 액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진 전망을 관망할 수 있었다.

풍차전망대의 풍차 뒤로 돌아가자 군위호 일대는 더욱 명징한 모습을 보였는데 일대 크고 작은 산들이 빈틈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정말 산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또한 이 자리에서 산을 특징은 멀어질수록 산들이 점점 높아지고 거대해졌다.

그걸 읽는 순간부터 이 전경은 더욱 깊은 절경으로 보였다.

풍차전망대는 대부분 사람들이 촬영하는 스팟이 아닌 조금 어긋난 자리에서 담았고, 미세먼지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마치 하늘을 메고 있는 풍차전망대로 착시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전망대 한 켠 외로이 세상을 마주한 어린 나무들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기도 했다.

이 모습을 끝으로 풍차전망대를 떠나 진입 당시 지나쳐갔던 화산산성으로 내려갔는데 화산마을엔 길 폭이 좁아 대체적으로 일방통행이 가능했고, 카카오네비가 있어서 헤매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풍차전망대에 이어 도착한 화산산성은 한적한 골짜기나 다름없었다.

비교적 맑은 물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고 이미 방문해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작은 웃음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렸다.

개울 옆 작은 공터에 차량을 주차하고 길 따라 걷는데 앞서 방문했던 하늘전망대, 풍차전망대와 달리 억새바람길처럼 꽤나 적막했다.

산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차분한 소리를 내며 너럭바위 여울로 흘러들었는데 바닥 전체가 하나의 암석이었고, 그 여울 위로 드물게 특이한 형상의 바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나 앞에 편평한 바위는 신령 아닐까 싶을 정도.

화산산성은 여울 건너 한적한 길을 조금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화산산성의 잔해가 널려 있었고, 길가 진달래는 역사와 달리 그저 무심히 졸고 있었다.

축조 중에 멈춘 화산산성은 잊혀지다 근래 다시 알려졌다.

축조 중에 멈췄는데 그와 함께 산성 내 시간도 멈춰졌고, 자연은 그 안타까움을 끌어안았다.

산성 내부도 폐허가 된 전형적인 산성터와 크게 다를 바 없었고, 내부로 계속 진행할 경우 군부대시설이 있어 더 이상 출입을 금한다는 문구에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성곽 옆 개울 방면으로 돌무더기 흔적 또한 흉터처럼 남아있었는데 자연은 그걸 끌어안아 지우고 있었다.

화산산성지에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길.

봄의 흔적들은 여기저기서 움트기 시작했는데 그 반가움에 산성지의 슬픈 역사는 금세 잊혀졌다.

그만큼 봄의 매력은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 없었다.

산성지에서 빠져나와 너른 벌판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다음 찾은 곳은 화본역으로 거리상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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