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410

해안의 친근한 혈관,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_20240117

23년 봄 이후 다시 찾은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부분적으로 당시 수해가 복구되긴 했지만 그 길에 잠재된 정취는 그대로였다. 세찬 겨울바람과 달리 바다는 온화했고, 어촌 마을은 그지없이 평화로웠다.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 시작하여 호미곶까지 약 18km의 첫 구간인 선바위 힌디기까지는 접근성이 좋았고, 바다 위 데크길과 그 주변 기암의 상호작용으로 찾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과 같은 지점을 향해 앞서거니 하며 짧은 시간이나마 길의 풍미를 공유하는 동안 그 매캐한 매력 위에 노 저어 유유히 흘러갔다. 파도와 동행하는 시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1_20230508 호미반도를 에둘러 인간의 자취는 선명했다. 비바람의 예봉이 꺾인 이튿날에 해안둘레길을 다시 도전, 다행히 자연이 허락을 해주고 길을 ..

장엄한 여명의 깨침, 영덕 동해 해돋이_20240117

때론 너른, 때론 포근한 동해 멀리 하늘과 바다, 인간이 모여 하나의 간결한 선을 예찬했다. 하루가 시작되기 전, 동해의 찬연한 자취와 그 고운 결들 사이에서 환희의 불꽃이 빅뱅 했다. 전날 취침에 들기 전에 미리 해돋이 시각을 확인했고, 오전 7시 반 정도란 걸 미리 체크한 뒤 알람을 맞췄다. 일출일몰시각계산 | 생활천문관 | 천문우주지식정보 지금까지 역서가 발행된 연도의 역서자료를 바탕으로 월별, 지역별 해/달 출몰시각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 '일출일몰시각계산'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사용자가 입력한 값에 기반하여 astro.kasi.re.kr 7시 10분. 해돋이 시각까지 약 20여 분이 남았다. 여명이 구름의 골짜기를 지나며 빛의 결들을 만들었고, 그 결의 파장이 바다 위에 소나기로 내렸다..

단아한 경주의 시간과 작별, 천년숲정원에서 영덕으로_20240116

천년숲 정원이란 타이틀에 낚여 지인과 함께 찾았지만 '천년'이란 떡밥에 살짝 현타가 온 곳. 오래된 숲이 아닌 천년 경주에 기댄 곳이라 고목이나 거목보다 마치 천년 전 서라벌 귀퉁이의 단아한 정원 같았다. 거창하게 마음먹을 필요 없이 소소한 정원 숲에서 단음의 현악에 취하듯 마음을 비우고 걷는다면 그 단순함 속에서 개운한 뒤끝을 음미할 수 있었다. 지인과 헤어지기 전, 불국사 인근 카페에서 진한 커피 향에 취해 그 또한 무심한 가벼움을 여운으로 남기고 다음 행차, 영덕으로 향했다. 인사말 < 기관소개 < 산림환경연구원 < 산림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연구원에서는 이 소중한 산림이 지속적으로 보존 될 수 있도록 산림에 대한 연구와 임업인의 소득증대를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간결한 옛것들의 거리, 경주 황남_20240116

켄싱턴에 예약한 2박이 끝나고 다음 숙소인 영덕으로 가기 전, 선약한 부산 형님이 시외버스터미널로 친히 행차하시어 가성비가 그리 좋지 않은 황남비빔밥으로 점심을 해결한 뒤 일대를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기상청 일기 예보에 따르면 한 주 동안 포근한 겨울이라 걷기에도 수월했는데 때마침 황남동 일대가 전통적 마을 바탕에 개량된 한옥마을이라 정처 없이 걸었는데 편의점조차 한옥식 단층 건물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 몰려왔는데 주차 시설이 조금 부족한 걸 제외한다면 걸을 수 있는 환경도 좋았다. 건물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보다 개량된 건물들이라 지붕은 한옥식에 가깝지만 창은 넓어 고풍스런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며 한옥의 폐쇄적인 구조를 개방적인 구조로 개량하여 답답하지 않았다. 편..

인간과 자연/ 현실과 전설의 교합, 경주 해파랑길_20240115

봉길해변을 뒤로하고 해파랑길을 따라 걸었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이어 구축한 총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걷기 여행길입니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이며,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을 뜻합니다 [출처] 해파랑길_두루누비 해파랑길 소개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바다와 함께하는 해파랑길 www.durunubi.kr:443 원래는 나아해변부터 해파랑길 11코스의 시작이었지만 무조건적으로 해파랑길을 추종하는 게 아니어서 언덕길로 이어진다면 그 길을 살짝 벗어나더라도 도리어 해변을..

겨울 갈매기 파도, 봉길대왕암_20240115

그나마 종종 찾던 감포 대왕릉은 그마저도 90년대 후반이었고, 초기엔 행정구역상 감포가 경주란 것도 모른 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당시 뻔질나게 만나던 친구들과 어울리며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다면 누구 하나 반문도 없이 기계처럼 감포 대왕암 해변에 무작정 찾았고, 차를 갖고 있던 녀석 또한 타산적인 감정 없이 스스로도 감포 여정을 즐겼다. 그런 대왕암 해변에 꽤나 빈번한 추억을 심었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나 버렸고, 그 길목에 암초와도 같았던 덕동호반 구부정길을 우회하여 매끈한 945 도로가 새로 들어섰다. 아침에 무중력과도 같은 가슴을 추스르고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타고 봉길해변에 도착하자 주차장엔 의외로 많은 차들이 주차 중이었는데 나처럼 겨울 바다의 뚝배기 같은 매력을 담으려는 사람들..

기억도 바랜 경주_20240114

기나긴 휴가의 첫 여정은 경주에서 시작했다. 경주... 10년도 훨씬 넘은 경주에 대한 기억은 첫 관문 격인 경주 채색이 명확한 고속도로 톨게이트만 선명할 뿐, 도로를 달리면서도 다른 기억은 전혀 없어 당혹스러웠고, 그로 인해 외곽도로를 주구장창 달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청 방면으로 향했다. 초등 시절 수학여행의 고정 레파토리가 경주였었고, 2007년에 업무로 잠깐 살았던 걸 제외한다면 경주는 거쳐가는 관문이었으며, 그나마 친구들과 감포에 종종 들렀던 때도 90년대 후반이었던 걸 감안한다면 그 기억이 명징하게 남아 있는 것도, 경주가 전혀 바뀌지 않은 것도 더 이상한 게 사실이라 어쩌면 당시 순간의 기억이 정상인 게 맞겠다. 시청 부근 뚜레쥬르에 들러 간식을 마련하고 파편화된 기억을 더듬어 경주역 앞..

아쉬운 불발, 영월관광센터와 청령포_20231120

단종의 슬픔으로 점철된 청령포는 무거운 초겨울 공기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육지 속의 섬이 아닌 땅의 기운이 근육처럼 불거진 그 배후의 지세가 특이한 명승지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청령포를 오가는 배는 분주하게 강을 횡단하며 뜀박질하는데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이 작은 세상엔 눈을 뗄 수 없는 것들이 곳곳에 은폐 중이다.모노톤의 딱딱한 벽엔 인간에게 친숙한 생명들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크게 굽이치는 서강의 온화한 물결엔 바다로 향한 서슬 퍼런 집념이 웅크리고 있었다.조선 초기엔 한이 서린 유형지로, 현재는 한강이 되기 전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지리적 부표, 청령포에서 작은 울림의 노래를 들으며 다음 만날 곳으로 떠났다.청령포라는 지명은 1763년(영조 39년)에 세워진 단종유지비에 영조가 직..

펫마트 냥이 가족_20220228

올 1월 1일 저녁에 먼 길 달려 구입한 냥이 식량 몇 개 중 하나가 거의 떨어져 회룡포에서 돌아오는 길에 평택 펫마트에 들렀다. 매장에서만 판매되는 제품이라 딱히 대체도 되지 않고, 편하게 구입할 수 없지만, 사람도 미각이 즐거운 걸 본능적으로 찾는 것처럼 냥이도 마찬가지. 베드도 하나 장만할 겸 문 닫기 전 후다닥 달려가 잽싸게 끝내고 나오는 길에 냥이 가족의 눈빛을 지나칠 수 없어 습식 하나 햇반 용기에 털어 주자 아이와 어미가 폭풍흡입했다. 깨끗이 비운 걸 보고 햇반 용기를 수거하여 집으로 출발하려는데 어미와 아이가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응시했다. 냥이 가족의 든든한 한 끼가 되어 집으로 오는 길이 무척 든든했다. 울냥이도 챙기고, 다른 냥이 가족도 챙기는 만족감은 오로지 내 가슴을 위한 ..

쓸쓸한 사림재_20220228

삼강과 회룡포가 인척이면서도 시기와 질투를 견디지 못한 강과 산이 갈라놓는다. 허나 그 심술도 응축된 겨울에 실려 떠나려 하듯 작은 골짜기 이정표 따라 두 개의 둥지를 잇고, 웅크린 봄이 피듯 하나를 바라던 물살도 사뿐한 까치발로 유유히 숨죽인다. 지난 시간에 서린 희망의 찬가처럼 길은 선명한 자태로 산을 향하며 그 길 따라 시선은 이미 고갯길 너머 하늘에 닿는다. 석양에 기댄 강가 너른 들판에 갈 길 바쁜 나그네는 어디론가 사라져 여정을 위로하던 주막도 지는 해처럼 퇴색되고, 이제는 화려한 가면을 쓴 채 갈 길 잃은 사람들을 품어준다. 강문화전시관은 휴관이라 잠시 둘러보는 사이 가뜩이나 짧은 하루 해는 조급하게 서산 너머 내닫는다. 메마른 길 지나 흐르는 낙동강_20220126 이리로 흘러 저리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