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사이로 지나는 겨울바람이 지난 시절의 흔적을 노래한다.
나무와 바위가 만든 그 길 따라 사념과 사색을 반복하듯 좁은 보폭을 맞추어 익숙 해질 무렵 향그로운 노래의 선율이 멈추고, 더불어 발걸음도 멈춘다.
텅 빈 산기슭에 역사가 빚은 관문을 넘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헤아릴 즈음 나지막이 속삭이는 물과 풍경 소리에 먹먹했던 세속의 피로는 어느새 잊게 된다.
아주 가끔은 세상에 혼자라 느끼는데 무수히 이고 지고 쌓인 돌이 하늘로 뻗은 탑을 보노라면 새옹지마에 찌뿌린 미간은 무릇 거대한 강처럼 선명하고 넘쳤으리라.
용궐산에서 내려와 바닥난 체력을 어느 정도 수습하고 금성산성으로 출발하는데 급작스럽게 다리에서 쥐가 나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금성산성은 그리 힘든 코스도 아니었고, 오른 뒤 대가는 노력 이상의 보상이 주어지며 동시에 작년 여름에 만났던 냥가족이 궁금하기도 해서 벤치에 앉아 다리를 진정시킨 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또한 금성산성으로 향하는 길엔 여러 다양한 전경을 만날 수 있어 살짝 욕심이 동하기도 했는데 첫 관문은 빼곡한 대숲이 있었다.
때마침 대숲 사이로 지나는 바람 소리는 영혼을 치유하는 선율 같았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함께 의지했다.
힘든 세상에 서로에 대한 의지이자 함께 공존하는 희열을 누리고자 함이다.
대체적으로 완만한 오르막길에 살짝 가파른 구간에는 힘든 발걸음에 의지가 되는 친구, 바로 자연이 만든 나무계단이었다.
이 길에 오를 때마다 흐뭇한 건 나무와 바위가 스스로 도움의 손길을 준다는 사실이었다.
외길 따라 오르면 금성산성의 첫 관문까지 어렵지 않게 닿았다.
초반에 괴롭히던 다리 쥐도 어느 순간 사라져 역시 되돌아가지 않고 천천히 오르길 잘했다.
보국문에 들어서 익숙한 듯 왔던 방향대로 진행하여 이내 충용문까지 도착했다.
금성산성을 대표하는 핫스팟을 골라 몇 컷 찍었는데 세 번째, 네 번째 사진은 작년에 몰랐던 위치라 쉴 틈 없이 자리를 잡아 사진을 먼저 담았는데 왜 이 구도를 간과했을까?
막상 이 자리에 서자 미뤄왔던 사색에 잠겼다.
과거에 처절했을지언정 지금은 그 희생의 대가가 이리도 값지다.
작년 여름엔 장마 구름과 비가, 이번엔 미세먼지가 너른 세상을 막아놓았다.
아쉽지만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없어 그 위세가 여전한 금성산성에 충실할 수밖에.
충용문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동자암에 들러 작년 여름에 만났던 냥가족을 찾았다.
동자암은 어느 누구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진공 상태와 마찬가지고 인적을 전혀 느낄 수 없었고, 더욱 아쉬운 건 냥가족이 머물던 자리를 비롯하여 어디에서도 흔적이 없었다.
한 편으론 아쉽고, 또 다른 한 편으로 궁금했다.
크지 않은 공간을 손수 밀도 있게 구성한 동자암은 특유의 익살과 친근함이 느껴졌고, 적막하지만 막연하거나 이질적이진 않았다.
냥가족에 대한 아쉬움을 끝내 떨치지 못하고 돌아서는 걸음 중간중간 뒤돌아봤다.
마치 어디선가 고개를 내밀고 쫓아다닐 것 같았다.
지나는 이에게 쉼터가 되어 피로와 갈증을 해소시켜 줬다.
금성산성으로 출발할 때 거의 비슷한 시기에 올라오시던 분을 여기서 만나 잠시 담소와 지역 유래를 들었다.
원래 동자암 안쪽으로 마을이 있었단다.
오를 때처럼 천천히 산성을 내려와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더 시선을 끄는 대숲은 여전히 바람 소리에 따라 듣기 좋은 울림을 연주했다.
담양온천은 온천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꾸준하게 들리는 곳으로, 특히 추운 겨울엔 따끈한 온천욕만한 게 없어 이날도 조용한 정취와 달리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이른 새벽부터 쉴 새 없는 여정으로 인해 하루 피로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온천을 통해 지친 몸을 달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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