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371

쓸쓸한 사림재_20220228

삼강과 회룡포가 인척이면서도 시기와 질투를 견디지 못한 강과 산이 갈라놓는다. 허나 그 심술도 응축된 겨울에 실려 떠나려 하듯 작은 골짜기 이정표 따라 두 개의 둥지를 잇고, 웅크린 봄이 피듯 하나를 바라던 물살도 사뿐한 까치발로 유유히 숨죽인다. 지난 시간에 서린 희망의 찬가처럼 길은 선명한 자태로 산을 향하며 그 길 따라 시선은 이미 고갯길 너머 하늘에 닿는다. 석양에 기댄 강가 너른 들판에 갈 길 바쁜 나그네는 어디론가 사라져 여정을 위로하던 주막도 지는 해처럼 퇴색되고, 이제는 화려한 가면을 쓴 채 갈 길 잃은 사람들을 품어준다. 강문화전시관은 휴관이라 잠시 둘러보는 사이 가뜩이나 짧은 하루 해는 조급하게 서산 너머 내닫는다. 메마른 길 지나 흐르는 낙동강_20220126 이리로 흘러 저리로 간다..

온연한 사랑의 형태, 회룡포_20220228

굽이마다, 계단 걸음마다 사연을 입고 발자국에 흥을 싣는 울림이 능선 따라 메아리친다. 지난번 자욱한 미세 먼지로 찌뿌둥 대기가 아쉬운 곡소리 남발할 때 못내 아쉬운지 다시 찾은 길은 북풍에 설움 고하며 청명한 민낯의 쑥스런 미소가 마냥 방긋거린다. 봄기운 따라 두터운 꽃가루 뒤집어쓰고 알알이 박힌 겨울색 조롱 하던 꿀벌이 무척 귀하신 몸이라 너룻대 힘겨운 움직임을 응원하는 수밖에. 인간은 223 계단 걸음만 옮기면 강이 새겨 놓은 꽃향기를 담을 수 있지만 봄을 쫓는 꿀벌은 무척이나 고단한 길을 걸어야 한다. 고립을 넘어선 회룡포_20210306 조만간 만나야 될 낙동강이 그토록 설레고 그리웠던지 흐르던 강도 잠시 주춤하여 어눌한 듯 발걸음도 굽이치어 오히려 그 자취는 휘몰아치는 붓끝처럼 육지 속에 아름..

달빛 환한 정월대보름_20220215

정월대보름이라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밤하늘 가운데 고개를 내밀었다. 옛 조상들은 정월에 뜬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지? 떠밀려 소원을 빌었다만 그리 나쁠 건 없어 세 번 기도를 올렸다. '우리 가족 올 한 해 꼭 건강하길 바라고, 집안에 스멀스멀 들어 오려는 잡종 같은 액운들 모조리 막아 주세요~' 'One more thing! 회사에서 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여 내 지갑 무거워져 허구한 날 팔 운동 되게 해 주세요~' 큼지막한 보름달은 아니지만 한파로 인하여 맑은 대기에 선명한 보름달은 분명했다.

동탄의 지붕, 무봉산_20220204

동탄 일대에서 꽤 높은(?) 무봉산은 이번이 첫 등정이었다. 만의사를 두 손으로 떠받드는 형세라 몇 번 끌려와 주변을 둘러보면서 살짝 호기심이 발동했었는데 때마침 기습 추위로 대기가 맑아 우유부단한 마음을 깨고, 직접 밟았다. 동탄에서 만날 수 없던 세찬 강풍은 그칠 기미가 없었고, 산 전체를 울타리처럼 둘러 쳐진 빼곡한 나무숲은 도리어 이 산의 매력이라 여긴다면 내가 사는 고장에 보배다. 만의사 옆길로 산에 오르면 뿌듯하게 깔린 데크 계단을 지나 쉼터 부근에서 부터 정상까지는 능선길로 연결되는데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길 특성상 동서로 트인 전망은 꽤 먼 곳까지 시야가 방해를 받지 않았다. 만의사-쉼터-능선길-무봉산 정상에서 99고개를 거쳐 만의사 도로 코스는 약 1시간 정도면 넉넉한데 내 체력에 적당한 ..

냥이_20220201

눈 내리는 날, 신기한 눈빛으로 눈을 감상하던 녀석이 어느새 다리품으로 들어와 티비에 빠져 들었다. 한참 고자세를 유지하는 바람에 다리 쥐가 났는데 얼마나 대담한 녀석이길래 냥이가 버티고 있는 자리 아래 버젓이 다리를 타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다리에 쥐 났으니까 얼른 잡아" 그러자 냥무시하고 제 편한 단잠에 빠졌다. 녀석이 베란다 창에 다가가 내리는 눈을 마냥 신기하게 쳐다봤다. 조금은 추운지 거실로 들어와 내리는 눈을 계속 감상 중이다. 내리는 눈이 마냥 신기한 눈빛으로 녀석은 한참 밖을 바라봤다.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있자니 언제나처럼 허락 없이 자리를 잡고 거만한 포즈를 취했다. 저 족발은 뭐지??? 그러다 잠시 자는가 싶다가도. 이렇게 발라당 일어나 다시 티비 시청을 하는데 이제는 족발을 걸쳤..

눈 내리는 일상_20220201

바람과 함께 흐르는 눈발 따라 겨울 정취가 활짝 피어나 걷는 내내 목덜미 촉감을 간지럽힌다. 하늘 아래 두터운 장막을 친 구름이 심술 겨워 햇살 가득 삼켜도 어디선가 달래는 낮의 등불이 환하게 켜져 겨울 연가의 달디단 리듬 따라 흥얼거리게 된다. 황막한 겨울 들판이 하얗게 팔을 벌리면 추위에 쫓긴 생명도 포근한 계절의 품에 고이 잠든다. 전날 밤부터 내린 눈이 그치고 아침에 다시 퍼붓기 시작한 눈에 머리가 젖는 것도 잊고 길의 정취에 취했다. 밤새 내린 눈을 껴안는 아침 눈이 대기를 품어 풍성한 발색 가득하다. 특히 오런 장면도 꽤 괜춘한데! 아침 눈이 가장 강렬했던 속내는 잊고 대기에 점점이 찍힌 눈송이는 첫사랑의 풋풋한 추억 같았다. 두텁게 구름이 덮였지만 눈이 증폭시키고 반사시키는 빛의 굴절로 세상..

눈 내리는 명동_20220131

서울의 설야...라고 하기엔 길이 미끄러워 댄스를 추는 바람에 회사 주변만 몇 컷. 눈꽃이 가장 이쁠 때가 바로 눈이 내려 쌓이기 시작하는 즈음인데 마치 목화솜이 활짝 핀 마냥 뽀송하고 뽀샤시했다. 하늘 등불이 모두 꺼지고, 가로등만 반짝일 때 수줍음 많은 눈꽃은 미약한 불빛을 먹고, 환한 향기를 발산했다. 기세등등한 눈발이 잠시 쉴 무렵, 풍성한 눈꽃이 피기 시작했다. 하얀 도화지 같은 눈밭을 보니 영화 Let Me In의 클로이 모리츠 화보가 연상되었다. 한 차례 눈 내린 명동거리. 사진으로 보면 명동이 다르게 보인다. 그래도 명동은 명동이었다.

문화의 수풀, 경천대관광지_20220126

우연히 낙동강을 따라가다 들렀던 경천대는 전국 각지의 명승지처럼 선명한 역사가 숨은 곳이었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어 별 기대 없이 주차를 하고 간소한 차림으로 느린 산책을 했는데 지역에선 나름 명소였는지 평일에도 꾸준히 이어지는 인적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전망대를 거쳐 경천대를 거쳐 별 의심 없이 사람들이 발길이 이어지는 곳을 추종했는데 아주 작은 규모의 드라마 촬영장과 출렁다리였고, 비교적 오래 머문 사이 함께 몰려왔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조각공원에 들렀을 무렵엔 텅 빈 공간에 홀로 작품을 마주했다. 문화와 예술에 문외한이긴 하나 인간의 최종 욕구는 자아실현이며, 그 접점은 문화예술이라 나름 이런 독창적이고 독특한 작품 앞에선 꽤 감동을 받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무한한 창의성에 비록 뱁새가 가..

낙동강에 새긴 절개, 경천대_20220126

삼강주막촌에서 출발하여 반듯하게 뻗은 지방도로를 따라 상주 경천대로 향했다. 경천대 상주 시내에서 동쪽 방면에 위치한 사벌국면 삼덕리에 있는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낙동강 제1경으로 손꼽히는 곳이며 자천대 (自天臺)라고도 한다. 후에 채득기가 경천대라는 이름으로 고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불린다. 조선왕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난 후인 1628년 봉림대국(17대 효종)의 주치의로 있던 채득기가 터를 잡아 지었으며 주변에 채득기가 만들었던 정자인 무우정이 있다. 또한 조선 장수였던 정기룡이 천마를 얻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실제로 천마의 구유 유물이 있다. 경천대 입구 인공폭포에 정기룡 장군 동상이 있다. 낙동강과 운치를 이룬 곳이라 무우정과 함께 영남 지방 유림들의 모임터로 쓰였다. 전망대에 올라보면 ..

걷기 좋은 비룡산 봉수대 능선_20220126

회룡대와 연결된 산능선은 걷기 좋은 평탄한 언덕길과 같아서 거리는 짧았지만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비교적 포근한 겨울을 음미했다. 무릇 강이란 바다를 향해 내달리며 그 어떤 장애물도 깎고 다듬어 물길을 내리라 여겼건만 내성천은 나지막한 산을 뛰어넘지 않고 옆길 크게 돌아 지나간 뒤 더 큰 물길인 낙동강과 합류한다. 작은 산이라 업신 여기지 않고, 마치 회룡포를 지킨 크나큰 포용으로 이 또한 지켜주고자 함이었을까? 그렇다면 강이 바위를 뚫고 산을 깎아 길을 낸 게 아니라 산이 물결을 위해 작은 길을 내어준, 오롯이 어울림에 익숙한 자연의 섭리며, 문명의 이기에 대한 일침이 아닐까? 고립을 넘어선 회룡포_20210306 조만간 만나야 될 낙동강이 그토록 설레고 그리웠던지 흐르던 강도 잠시 주춤하여 어눌한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