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410

냥이_20200215

컴 앞에 앉아 있으면 여전히 소리소문 없이 다가와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이내 잠든다. 귀여워 스담하는 사이 녀석이 이빨을 들이밀어 굳은 표정을 짓자 녀석이 삐친 모습이 마치 모카 커피 같다. 그러다 방바닥에 살며시 내려 놓고 잠시 용무 보는 사이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는데 옆에 엎드리자 꿈틀꿈틀 다가와 품으로 들어 올려고 한다. 이런! 겨털이 삐져 나왔군.

냥이_20200214

수술이 잘 되어 일 주일하고도 하루만에 칼라를 제거하며 한 고비 넘겼다. 칼라가 채워졌을 때는 측은 했는데 이렇게 원래의 자유를 찾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한테 붙는 껌딱지 본능은 풀지 못하고 자리를 잡고 있으면 어슬렁 걸어와 벌러덩 누워 버린다. 그리곤 심술 궂은 눈빛으로 눈이 맞을 때까지 째려 보고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손을 뻗는다. 아무 생각 없이 뻗은 다리에 넙쭉 달라 붙어 눈치 주는 녀석이라니... 냥이를 키워본 건 어릴 적 쥐잡이로, 나머지 대부분은 댕댕이를 키웠었는데 어쩌면 냥이를 키우는 건 완전 초보라 아는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신기한 건 목욕을 보름 전에 시켰건만 몸에서 악취가 전혀 나질 않는다. 댕댕이는 이 정도면 묵혀둔 오징어 냄새가 나는데 냥..

냥이_20200112

익숙하지 않은 칼라로 하루 종일 자거나 잠시 눈을 뜨고 있을 땐 자리 가리지 않고 뒹군다. 그래도 개냥이 본성을 버리지 않고 잘 참아줘서 다행이다. 미치도록 그루밍 하고 싶은데 몸을 굽혀 혀를 내밀어 봐도 칼라에 막혀 헛그루밍에 공허할 뿐이지만 그럴수록 더욱 사람한테 기댄다. 그래도 보채거나 서럽게 울지 않는데 그게 안쓰럽다. 칼라를 채워 얼굴만 보이니까 헬로키티 같네. 꼭 이렇게 사람한테 기대거나 붙어야 된다. 기생충은 양분을 빨아먹는다면 냥이는 관심과 사랑을 빨아 먹는다. 사람한테 붙는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이런 식으로 붙어서 안하무인, 발 떼기 어렵게 만든다. 얼굴에 털이 잔뜩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핥고 싶을까? 말 못하는 생명이라 그래서 더욱 안쓰러운가 보다.

떠 있는 한반도를 찾아서, 초평호_20200211

금강과 그 지류를 통틀어 무주와 함께 가장 멋진 절경을 품을 수 있는 곳이 다음 여행지인 진천에 있었다. 아산에서 수월하게 이동하여 이곳 초평호에 도착하자 전형적인 시골마을의 평화로운 정취가 물씬 풍겼다. 아산과 함께 한국 교민들을 포용으로 보듬어 안은 곳, 진천은 과거 제약 회사에 근무할 당시 음성 금왕과 인척이라 여기를 떠오르는 순간부터 흥겹던 시절을 회상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고, 더불어 가는 길 내내 강렬하게 사방을 가득 채우던 락음악이 더해져 풍선 마냥 한없이 가슴 벅차기만 했다. 초평호 인근 전망대 초입의 붕어마을에 도착하면 너른 주차장이 있어 거기에 차를 세워 두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주차를 한 뒤 초평호 반대 방향 산등성이를 째려보면 이렇게 아득한 위치에 전망대가 보이긴 하지만 가는 길이..

충무공의 영혼, 현충사_20200211

곡교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 금세 도착한 현충사는 따가운 햇살 충만한 풍경에 마치 활기찬 봄의 축제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 다녀왔던 기억은 이미 퇴색되어 버렸지만 그 위대한 업적은 어찌 잊을까. 무게감보다 진중함에 압도당하는 현충사. 이 자리에 서자 나도 모르게 향에 불을 붙이고 고개를 숙이며 뒷걸음으로 조심스레 자리를 벗어났다. 현충사가 아우르는 곳에 아산이 있고, 아산은 현충사를 품고 있다. 현충사를 수놓는 나무는 감탄사를 늘어 놓아도 모자람 없는, 하나같이 범상한 굴곡이 있다. 현충사를 빠져 나올 무렵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장면이 아름다운 동행의 상형문자 같다. 잊을 수도, 잊혀지지도 않는 역사의 큰 획과 같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자취가 깊게 새겨진 곳, ..

멋진 겨울 작품, 곡교천 은행나무길_20200211

사실 아산은 현충사와 온양온천 외엔 남아 있는 지식이 없었다. 코로나19로 한국 교민들에 대해 관용을 베푼 아산과 진천으로 무작정 떠난 여행이니 만큼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다 불현 듯 스친 영상 하나. 인공으로 조성된 가장 긴 은행나무 가로수길이 아산에 있었다는 사실은 여행 전문 유튜버 킴스트레블님을 통해 알게 되었고, 망설임 없이 아산 도심과 인접한 곡교천으로 향했다.(킴스트레블 - https://youtu.be/h6X4NuenhIY) 다음으로 현충사도 반드시 들러야 했는데 때마침 엎어지면 코? 이마! 닿을만큼 지척이라 이동으로 소소하게 소비되는 시간은 아낄 수 있었고, 겨울이라 어느 정도 접근할 무렵부터 '옮다구나!' 한눈에 띄었다. 왠만한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여기에 명함을 내밀기 ..

아산과 진천으로_20200210

언론의 속성은 진실의 열정만 있는 게 아니라 추악한 관심끌기도 있다. 코로나19의 광풍을 피해 우한에서 우리나라로 온 교민들이 현재 아산과 진천에 격리 조치 중인데 어떤 언론에선 마치 모든 주민들이 들고일어나 반대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실제 보듬어 안아 주는 주민들도 상당히 많고, 이런 오해의 소지는 자칫 분열의 도화선이 될 수 있어 상당히 신중한 표현이 필요하다. 하긴 사명감이란 게 모든 이가 동등하게 가질 수 없는 거라 뭘 바라겠나 마는 대중 앞에서 선동에 대한 책임감 정도는 가져야 되겠다. 자극적인 것만이 단기간에 관심을 끌 수 있고, 선동은 균열의 파도에 실리면 화력이 배가 되니까. 언론에 의한 고아, 공공의 적이 될 뻔했던 한국 교민들을 받아 준 아산과 ..

냥이_20200210

아직은 미칠 듯한 불편을 감수하고 익숙하지 않은 칼라를 착용하고 있어야만 한다. 칼라를 벗겨 내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제 집에 들어가지 못해 바둥거리거나 또는 폭이 좁은 곳으로 들어가다 칼라가 부딪혀 좌절될 때 안스럽지만 상처와 건강을 위해 냥이가 원하는 걸 속시원히 긁어 주지는 못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한 마디. "조금만 더 참자~" 여전히 일상 중 낙은 잠이다. 늘 아이폰으로 찍다 몇 컷 카메라를 들이밀고 매크로 촬영을 해봤다. 동영상을 찍으려니 뭘 아는지 무척 뒤척인다. 가끔 잠꼬대로 송곳니가 살며시 입술을 비집고 세상으로 탈출하려 한다. 대부분 얼마나 잠에 취했길래 흰 양말을 벗지 않고 단잠을 주무실까? 그러다 몸을 뒤척이곤 엎드려 누워 언제나 처럼 얌전히 잔다. 잠에서 깨면 배가 고프다고,..

장례식장 다녀 오던 길_20200210

코로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 사이에 공포는 꽤 컸다. 명동 시내가 언제 이런 날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텅 비어 심지어 이른 아침 시간에 명동을 지날 때면 마치 다른 세상으로 넘어온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서울과 달리 수도권을 조금만 벗어나면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은 거의 없다시피 해서 늘 듣는 말이 "여기는 청정지역이라 코로나가 올 수 없어요.",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곳은 아직 안전해요."라는 무심한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난 사람들이 밀집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을 오가는 입장이라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긴장을 했고, 결혼식을 비롯하여 장례식처럼 사람들이 웃거나 울거나 떠들어야 되는 폐쇄된 공간은 더더욱 피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경종 속에서 엄친의 갑작스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