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410

곧은 기개, 정이품송_20210121

가는 날이 장날이 바로 이런 말이렷다. 때마침 보은장이라 복잡한 도로를 엉금엉금 기어 겨우 차를 세워 놓고 시장통을 방황했다. 분주한 한길과 달리 시장길은 생각보다 썰렁한데 그나마 큰 통로는 행인이 보이지만 살짝 뒷길로 접어들면 장날을 무색케 한다. 그래도 내겐 여전히 신기하고 정감 가득한 곳이다. 재래시장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바로 순대와 먹거리다. 메인 통로인데 진입로가 북적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적하다. 이름 멋지다. 결초보은이라~ 낮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정이품송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서둘러 법주사 방향으로 출발했다. 역시나 빠져나오는 것도 쉽지 않아 짧은 구간에서 한참 가다 서다를 반복하여 겨우 빠져나와 곧장 법주사로 향했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서서히 굵어져 법주사..

겨울을 잊게 하는 산림욕장_20210121

삼년산성 북문에서 바로 산림욕장으로 나아갔다. 너른 공간임에도 시선에 굶주릴 만큼 인적이 드물어 적막과 더불어 내린 눈이 대부분 고스란히 쌓여 있고, 대부분 공간을 채우는 소리는 청명하게 울려대는 새들의 지저귐이다. 가끔 예상 밖의 시설도 있지만 도심 숲과 비교 되지 않는 자연의 녹지와 가공이 적어 친숙한 길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곳곳에 쉼터는 빠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집에서의 접근성이 좋아 등잔 밑이 어둡다고 왜 이제서야 방문했을까 뒤늦게 꽁꽁 숨겨진 숨은 그림을 찾은 성취감도 얻었다. 맨발숲길의 작은 늪과 데크길, 그리고 쉼터가 차분하게 이어져 있다. 뒤돌아 우뚝 솟은 삼년산성의 동북치성을 바라봤다. 꽤나 두텁고 거대해 보였다. 한길 따라 내려오면 극기훈련장과 산림욕대가 있었는데 두터운 낙엽이 쌓..

겨울 바람도 침묵하는 삼년산성_20210121

보은 시가지와 인접한 삼년산성과 삼림욕장은 일전에 방문 했던 충주산성처럼 군민들이 애용하는 녹지며 공원이다. 속리산을 가기 위한 관문인 보은 방문은 처음이지만 어느 제약회사 트레이드 마크인 정이품송과 법주사가 유명하다는 것 외엔 아는 바가 없어 이틀 머무르기로 한다. 미리 여행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는 편이 아니라 대략 유명한 곳만 탐색해 보니 말티재와 삼년산성이 눈에 들어왔고, 때마침 말티재 휴양림을 일찌감치 예약한 뒤 간단히 위치 정도만 파악한 상태로 보은에 도착하여 우선 가장 인접한 삼년산성을 들렀다. 산림욕장 내부는 넓고 잘 다져진 길로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고, 얼마 전 내린 눈과 얼어 붙은 여울이 오로지 한다. 걷기 좋은 탄탄한 길을 버리고 여울 따라 울퉁불퉁한 길로 들어서 걷는데 왠지 매끈한 길..

보은 삼년산성 초입 고분_20210121

밤새 달려 보은에 도착, 급히 허름한 숙소를 잡아 따끈한 바닥에 기절하듯 잠들고 이튿날 일어나 밍기적 기어 나와 삼년산성으로 향했다. 삼년산성 북쪽 숲이 산림욕장의 우거진 숲이 있어 보은군 농경문화관에 주차한 뒤 삼년산성 방면으로 걸어가자 내부에서 뚝딱뚝딱 소리가 들리는 대장간 체험장이 있었다. 대장간 체험장? 바로 앞에도 작은 주차장이 있고, 문간에는 화덕? 아궁이? 같은 게 있는데 저건 그냥 재현해 놓은 거 겠지? 호기심이 울컥 밀려왔지만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기엔 그 호기심이 그리 왕성하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대장간 체험장 주차장을 지나자 공원길이 하나 연결되어 있고 그 초입에 산림욕장 안내도가 있는 걸 보면 지대로 찾아오긴 했나 보다. 길 따라 걷는데 눈에 띄는 무덤 같은 게 있고 가까이 ..

섬진강 따라, 곡성_20210120

섬진강만 그 자리에 있을 뿐 완연히 봄과 다른 겨울 옷을 둘러쓴 함허정은 지난해 여름 폭우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아쉬운 대로 주변을 돌며 강바람 짙은 향연 속에 잠시 몸을 맡긴다. 먼 길 달려온 강물은 함허정을 감싸고 잠시 쉬어 가듯 강폭이 넓어지고 웅크리는데 오랜 시간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많이도 한탄과 삶의 집착을 내려놓았을까? 겸허해지는 순간 억겁 동안 지낸 강은 스승과 다를 바 없다. 세상 모든 적막들이 모여 쉬고 있는 저곳에 서는 순간 진가는 유감없이 드러난다. 여름 장마 폭우 당시 섬진강 수자원을 잘못 관리하는 바람에 강유역에 수많은 피해가 났었던 게 떠올랐다. 서쪽 섬진강에서 반대편인 동녘으로 고개를 돌리면 칼날 같은 동악산 능선에 또 한 번 감탄한다. 동악산 능선을 넘어 석양이 잠시 숨..

벌판에 솟구친 칼바위 능선, 순창 채계산_20210120

칼바위 능선으로 정평난 채계산은 세상이 온통 설원으로 뒤바뀐 평원과 그 사이를 가르는 섬진강의 번뜩이는 줄기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연에 우뚝 솟은 나지막한 산이다.동강 절벽길 이후 칼끝과도 같은 위태한 길을 걷는 건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찔한 관문 뒤엔 늘 그렇듯 베일에 싸인 절경을 보여주는 답례도 잊지 않았다.언젠가부터 순창을 찾으리라 마음먹은 것도 바로 채계산이 꾸며 놓은 세상이야기를 듣고자함 인데 어느 계절에 오더라도 그 계절 아래 버티고 있는 자연은 같은 관용의 미덕으로 지나는 시간들을 쉴 수 있도록 큰 가슴 한 켠을 비워 놓는다.이제는 칼끝과도 같은 바위 능선에 문명의 도구를 덮어 절경 이면의 위험은 사라졌지만 과대한 위선을 배제하고 살짝 그 위에 배려만 덫대어 놓은 덕..

햇살이 넘치는 섬진강 카페_20210120

순창은 섬진강 줄기 따라 하얀 겨울 설경이 함께 하며 거울처럼 평온에 잠겨 있다. 채계산으로 가는 길, 강변의 평화를 마주하며 커피 한모금에 쉼표를 찍고, 봄볕 같은 양지 바른 카페에서 크게 쉼호흡 한다. 멋진 절경에 못지 않게 먼길 달려온 평온 또한 소소한 시간의 유혹이 채색되어 있어 향그로운단잠 같다. 지인 따라 유명한 메기 매운탕 집이 있어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섬진강 잠수교를 건너 절묘한 위치에 카페가 있어 들렀다. 출발할 때와 달리 부산에서 부터 날씨는 화창한데 순창에서 출발할 무렵 화창한 날의 화룡점정 같다. 메기 매운탕집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차량이 줄줄이 들어서는데 막상 먹어보니 무청은 푸짐하다만 탄 내가 살짝 나서 많이 먹지는 않았다. 너른 유원지 같은 자리에 높지 않아도..

부산 돼지국밥_20210119

해 질 녘에 출발하여 밤에 도착한 부산에서 이튿날 아점은 돼지국밥으로 챙겼다. 부산을 그리 자주 간 건 아니지만 희한하게 서울에서 먹는 돼지국밥과 맛이 틀리다. 부산은 국물이 걸쭉하고 수육이 푸짐한데 서울은 걸쭉하지 않고, 수육의 양과 종류가 빈약하다. 그래서 늘 부산에 가면 돼지국밥을 먹는데 주위에선 '부산까지 가서 돼지국밥을 먹는다고!!' 힐난하는 듯한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는데 그건 내 선택이니까 대연동 쌍둥이, 장원과 범일동 밀양은 여전히 사람이 많다. 아!!! 돼지국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초췌한 어린 냥을 만났다. 일행이 냥이를 좋아하시는 분이라 가까이 다가가자 약간 경계를 해도 '걸음아 날 살려라'하지 않는 걸 보면 무척 허기가 진 거 같은데 트렁크에 츄르와 밥을 가져올 테니 좀 기다려하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