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주왕산은 잊어야 될 주왕산의 또 다른 얼굴, 용연폭포를 지나 고갯마루를 지나는 순간부터 정취는 완연히 바뀌며, 각종 기암 협곡과 마천루는 사라지고, 낯선 생명의 방문을 거부하듯 극도의 적막한 숲 속 진공관과 같은 산길을 지난한 걸음으로 옮겼다.
1.6km의 뿌듯한 오르막길을 걷는 동안, 아니 금은광이를 넘어 첫 번째 인가를 만나기 전 약 4km 산길에서 어떠한 인적도, 심지어 주왕계곡에서 줄곧 따라붙던 요란한 개울 소리조차 사라진 길에서 묘한 산중의 무거운 몰입감에 취한 사이 무심코 내딛는 발자국조차 진중한 울림이 오감으로 전해져 깊은 숲 속에 심취했다.
빈약한 경험상 산에 오를 때는 정상에 대한 갈망이 있거나 산길을 걷는 과정에 갈망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엔 산의 터주인 숲에 스며드는 각별한 경험을 적립했는데 그 속엔 미지에 대한 미세한 흥분과 함께 잔잔한 공포의 이중성에 취한 사이 어느덧 뙤약볕이 폭우처럼 내리는 아스팔트 도로에 닿았고, 산길과는 속성이 다른 지난한 걸음으로 바턴을 이어받아 결국 이번 여정을 마무리했다.
폭염 속에서 총 16.8km를 걷는다는 건 신체와 더불어 정신적 극기 수준이었고, 한계점에 가까워지면 그리 흔하던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이 궁극이 될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고난 뒤 희열은 가늠할 가치가 없었다.
4색 13길이 맞닿아 외씨버선을 닮았다는 외씨버선길은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군이 모여 만든 이 4색길이 합쳐지면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과 같다하여 외씨버선길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외씨버선길을 걷다보면 문득 만나게 되는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느릿느릿 쉬어가는 길에서는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마음속 그리운 이들에게 몇자 적어 내 마음을 실어 보내는 것도 괜찮습니다.
고택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는 그 옛날 우리 부모님을 떠 올리면 그리움을 적어 보는 것 또한 좋습니다.
자연치유의 길을 걷다가 이름모를 들꽃을 만나게 되면 이름을 지어 주며 친구가 되어봅시다.
이렇게 이 길이 끝날 즈음에는 외씨버선길은 여러분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출처] 외씨버선길_경북북부연구원
외씨버선길은 상기와 같이 청송, 영양, 봉화, 영월을 따라 연결되는 도보 여행길로 민간단체인 (사)경북북부연구원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으며, 2010년 광역경제권 연계협력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경상북도 청송군, 영양군,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은 외씨버선길 조성사업을 위하여 BY2C[봉화, 영양, 영월, 청송] 연계협력협의회를 구성하여 MOU를 체결하였다. 1단계 연계협력사업을 추진하여 청송 구간 12㎞, 영양 구간 9㎞, 봉화 구간 17㎞, 영월 구간 11㎞ 등 총 49㎞의 외씨버선길을 완공하였다. 외씨버선길의 조성은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으며, 외씨버선길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하여 2단계 협력사업인 ‘외씨버선길 BY2C 지역공동체 활성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외씨버선길의 전체 길이는 총 200㎞[연결구간 포함 240㎞]로 경상북도 청송군에서부터 강원도 영월군에 달한다. 총 13구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씨버선길 청송객주, 외씨버선길 영양객주, 외씨버선길 봉화객주, 외씨버선길 영월객주에서 지역별로 안내하고 있다. 외씨버선길 코스 가운데 청송군 구간은 총 3구간이다. 청송군 구간에 해당되는 길은 주왕산·달기약수탕길 18.5㎞, 슬로시티길 10.5㎞, 김주영객주길 16.6㎞이다. 안내센터로 외씨버선길 청송객주를 운영하고 있다.
청송군 구간 중에 시작점과 같은 둘째길인 주왕산·달기약수탕길은 편도 18.5㎞ 코스로 소요시간은 6~7시간이다. 주왕산국립공원 탐방안내센터에서 시작하여 주왕계곡 일원, 대전사 및 기암 단애, 용추폭포·선녀탕, 절구폭포, 용연폭포, 금은광이삼거리, 너구마을, 달기폭포, 주왕산국립공원 월외공원지킴터, 달기약수탕, 운봉관을 거쳐 소헌공원[외씨버선길 청송객주]에 도착한다.
[출처] 외씨버선길_한국한중앙연구원/청송군청
용연폭포를 지나 고갯마루를 넘어 절경을 이루던 기암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지 특유의 야생적인 숲과 그 너머 금은광이 능선 방향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저 능선으로 가기 전 망설이던 찰나에 에너지 충만한 여성 트레커 두 분의 모습에서 동기부여를 받아 다시 힘과 의지가 솟구쳤다.
금은광이입구에 산불감시초소와 작은 쉼터 일대는 작은 화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용연폭포 기점에서 금은광이로 향하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완연하게 다른 좁고 거의 다듬어지지 않은 산길이었고, 급하지 않지만 뿌듯한 오르막길로 강력한 폭염으로 인해 이마저도 길에 접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땀과 호흡 범벅이 되었다.
산길 주위에 큰 나무는 없었지만 비교적 우거진 숲이었고, 특히나 소나무엔 큼지막한 흉터들이 많았다.
왠지 의도적으로 상처를 낸 게 아닌가 싶었다.
이따금 길의 흔적이 없는 곳은 데크길이 깔려 그나마 걷기 수월했지만 여울 중심으로 숲이 우거져 물소리가 대부분 울창한 녹음에 묻히기 일쑤였다.
산불초소가 있던 금은광이 초입에서부터 겨우 300m 올라왔을 뿐인데 무척 많이 오른 착각이 들었고, 그도 그럴만한 게 300m 산길을 걸은 그 이상의 체력 소모가 그대로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금은광이삼거리가 고지인데 거기까지 과연 오를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기 시작했다.
인간이 증발한 세상을 걷듯 외씨버선길로 명명된 금은광이로 향하는 길은 어떤 인적도 찾아보거나 만날 수 없었고, 금은광이를 넘어 만나는 첫 마을인 너구마을에 다다를 때까지 어떤 사람도 만날 수 없었는데 산길 초입에서 만난 여성 트레커 두 분의 인기척도 어느새 기억에서 잊혀졌다.
체력 소모가 많아 백팩은 유독 무겁게 여겨졌고, 거기에 카메라는 짐짝이나 마찬가지라 그 무게감은 얼핏 두 배로 체감되었다.
꽤 많이 오른 것 같았는데 금은광이까지 이제 겨우 반, 700m 걸었고, 고도는 500m도 되지 않아 금은광이 고도인 700m 초입이 요원한 숫자로 여겨졌다.
주왕산 상의주차장에서 용연폭포를 지나 금은광이 초입까지 6km가 넘고, 그 초입에서 불과 700m를 걸었는데 체감상으로는 산길 700m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이 구간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는지 길과 그 주변은 설익은 풍경들로 가득했다.
힘들게 길을 걷던 중 나무의 자태에 조금이나마 피로감을 씻었다.
길은 이렇게 대부분 좁고 산허리에 걸쳐져 있어 내딛는 발걸음이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길이 맞고, 가는 방향이 맞나 싶은 의심이 들 때 이런 표식은 천군만마와 같았다.
외씨버선길을 만들기 전에 이 길을 통해 과연 사람들이 다녔을까 의심이 드는 정황들은 많았다.
길의 형체가 그리 선명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외씨버선길을 도입할 때 부랴부랴 조악한 길을 닦은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나조차도 길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다만 지도맵을 이따금 쳐다보며 불확실한 길에 심리적인 안도가 위안 아닌 위안이었다.
산길로 접어든 지 1.3km.
거의 도착했다는 생각과 달리 길을 걷기 힘들 정도로 폭염의 위력과 더불어 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종종 벌목한 나무의 흔적들이 보였다.
마지막 가장 가파르고 걷기 어려운 구간에서 행여 길을 벗어날까 싶어 벌목한 나무로 길 옆을 막아 놓은 게 아닐까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금은광이삼거리에 도착.
대략 700m 초반 정도의 고도였는데 여기서 금은광이산과 두수람으로 이어진 능선은 출입 금지 상태였고, 그리 넓지 않은 삼거리 공간 옆에 통신 기지국에서 2명의 직원이 한창 수리 점검 중이었는데 그 인기척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마땅히 쉴 곳이 여의치 않아 물 한 모금으로 휴식을 대체하고 바로 외씨버선길 따라 비교적 긴 구간의 완만한 산허리 길을 걸었다.
길바닥에 넙쭉 달라붙은 알록제비꽃의 이파리 문양이 특이했다.
금은광이삼거리에서 꽤 긴 구간이 비슷한 고도의 산허리 길이었는데 길 자체로는 위태로웠다.
한 사람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에 그마저 낙엽이 두텁게 쌓여 있는 데다 길 좌측은 경사가 심했다.
길에 안전장치가 없었고, 흙길과 같아 잘못 헛디딜 경우 길바닥의 흙더미가 아래로 흘러내렸고, 게다가 낙엽까지 두터워 길바닥을 가늠하기 쉽지 않아 무척 신중하게 발을 내디뎠다.
금은광이삼거리에서 산허리의 위태로운 길이 무려 700m.
이후부터는 길의 형태가 완전히 달라 길은 급격한 내리막 지형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 계단이 지그재그로 깔려 있어 그나마 발끝에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급한 내리막길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꽤 반가운 길이었다.
심한 곳은 경사도가 40도를 넘어서는 곳도 있었지만 지그재그로 진행되는 나무 계단길로 인해 앞서 산허리의 불완전한 길을 지날 때와 달리 그리 긴장되지는 않았다.
가파른 지형에 안전도 책임졌고 동시에 길의 멋도 챙긴 구간이 바로 이곳으로 여기도 생각보다 구간이 길었다.
이렇게 키 작은 숲을 가르기도 했다.
급한 경사가 완만해지는 지점에서부터 길은 주변과의 이질감을 줄이고 계곡을 따라 서서히 마을로 향했다.
사실 여기서부터 첫 마을인 너구마을까지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시종일관 완만한 숲길이라 걷는 피로감은 없었지만 절정으로 치닫는 폭염으로 인해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은 연신 흘러내렸다.
대부분 이렇게 풀이 무성하고 완만한 길을 걸었는데 아무래도 뱀이 있을 수 있어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금 긴장한 상태로 걸었다.
물론 음악 소리는 잠시 끄고 숲에서 흐르는 소리를 감상한 채로.
잘 익어 탐스런 산딸기가 워찌나 많았던지 갈증해소와 비타민을 충분히 보충했다.
굳이 무리하지 않더라도 길가 산딸기는 널려있다시피 했다.
한참을 걸었던 것 같은데도 금은광이삼거리에서 겨우 2km 진행했고, 월외탐방지원센터까지는 5km, 첫 마을인 너구마을까지도 대략 1.5km 이상을 더 걸어야만 했다.
탐스런 오디가 잔뜩 열렸는데 손 뻗으면 닿는 위치에 있었지만 이건 눈으로 만족하며 군침만 삼켰다.
오디가 주렁주렁 열린 뽕나무를 지나면 길 좌측은 수량이 거의 메말라 버린 여울이, 바로 좌측은 멧돼지 주의 문구가 붙어 있는 전기 철조망이 쳐져 있었는데 그 철조망이 꺾이며 길이 넓어지는 지점에 이르자 무너진 돌담의 흔적이 있었다.
나중에 회귀마을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원래 이곳도 마을이었다고.
길바닥을 주시하며 비교적 집중해서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독사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발을 디뎌 순간 고양이처럼 솟구쳤다.
물론 독사도 놀래서 급히 피하긴 했지만 더욱 주의해서 걸어야 되겠다.
금은광이에서 노루용추골 따라 내려오며 작은 여울이 있긴 했지만 근래 비가 적어 수량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여울 바닥이 너른 바위였다.
수량만 풍부했다면 이 또한 멋진 계곡의 여울이었음을.
금은광이삼거리에서 3km를 내려왔고, 얼핏 마을이 꽤 가까워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산길이 끝나는 지점으로 여기서부터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길을 긴 구간 걸어야 했다.
또한 여긴 여울이 거의 말라 있었다.
너구마을에서부터 유일한 길인 차선이 없는 아스팔트길에 도로 좌측은 맑디맑은 괘천이 흘렀는데 폭염이 더해진 화창한 날이라 더위에 못 이겨 막무가내로 뛰어들고 싶었다.
부러운 눈으로 괘천을 바라보는데 물도 맑지만 물고기도 어찌나 많았던지.
월외폭포 지점에 도착.
금은광이삼거리에서부터 3.6km를 걸었고, 월외매표소까지 2.8km 남은 지점인데 노랗게 익은 야생화가 활짝 폈다.
달기폭포 바로 위에도 이렇게 바위에 흘러내리는 폭포가 있었는데 온통 하나의 거대 바위로 바로 아래 달기폭포까지 이음새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달기폭포는 제대로 조망하기 쉽지 않았고, 세찬 물소리에 지친 마음을 달랬다.
사실 월외지구는 딱히 드라마틱하지 않았는데 여름이 아닌 차라리 겨울에 걷기 좋을 성 싶었다.
개망초 군락지와 너른 경작지가 있는 지점에 도착.
강렬한 땡볕을 피할 만한 곳이 없었던 데다 폭염이 절정이던 시간대라 앞만 보고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힘겹게 나아갔다.
드뎌 매표소인 월외탐방지원센터에 도착.
평일이라 그런지 매표소는 굳게 문이 닫힌 상태였고, 수도꼭지를 틀어도 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가던 길을 재촉했는데 약 400m 진행하자 제법 인가가 모여있는 회귀마을이 있었고, 마침 마을회관 앞 원두막에 어르신 6분이 담소를 나누시길래 식수를 부탁드리자 기꺼이 냉장고의 시원한 생수를 꺼내 주셨다.
그늘에 앉아 그분들과 20 여분 대화를 나누며 주신 고구마와 함께 2리터 생수 하나를 전부 비우고, 거기에 더해 보틀에도 생수를 가득 채워 주셨는데 어찌나 고마웠던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를 떠나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더위와 갈증에 찌들어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들었건만 잠시 앉아 쉬는 사이 어찌나 든든하게 기운을 채웠던지 달기약수까지 땡볕 아래 걷는 내내 크게 힘든 걸 모를 정도였다.
마을을 빠져나와 차선이 그어져 있는 도로와 합류하는 곳에 특이한 장소를 발견, 장난끼공화국이란다.
청사 내부로 통하는 문은 굳게 닫혀 정확한 테마는 알 수 없었지만 장난끼란 타이틀과 함께 마당 여기저기 놓인 소품들을 보면 대략 유추가 가능했다.
뒤편 괘천을 넘어 장난끼공화국에 들어섰는데 문은 굳게 닫혀 있어 앞마당으로 걸었다.
티라노?
쥬라기공원처럼 공룡과 알 모형들이 있는 앞마당에서 여기저기 둘러봤는데 일종의 예술 창작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뽀또 스팟~
장난끼공화국을 빠져나와 땡볕도 피하고, 대중교통도 기다릴 겸해서 버스 정류장에 들어가 앉았는데 그때 뒤이어 들어오신 어른께 여쭙자 시간표와 달리 버스는 이미 끊겼다고 하신다.
택시 어플을 실행시켜 호출을 하자 10분 동안 계속해도 택시도 호출 불가!
하는 수없이 땡볕 아래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 달기약수로 향하던 중 바위손 군락지가 보였다.
역시나 주왕산 일대는 바위손? 부처손? 거대 군락지나 다름없었다.
달기약수탕(達基藥水湯)은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부곡리에 있는 약수터로 달기약수터, 달기약물, 달계약수 등으로도 불린다. 약수탕이 형성된 골짜기를 따라 하탕·신탕·중탕 외 여섯 개의 약수탕이 있으며, 이 중 하탕이 가장 많이 이용되는 약수탕이다. 달기약수탕의 유래는 조선 고종 당시 금부도사를 지냈던 권성하(權成夏)가 달기동[지금의 부곡리]에 낙향하여 마을 사람들을 모아 수리공사를 하던 중 바위틈에서 약물을 우연히 발견하였고, 이후 사람들이 애용하면서 지금의 달기약수탕이 되었다.
명칭의 유래는 청송읍 부곡리를 조선시대 말까지 청송군 부내면 달기동이라 부른데서 유래한다. 또한 약수가 있는 곳은 옛부터 '달이 뜨는 곳'이라 하여 달기골이라고도 불렸다.
달기약수탕의 약수에는 철·규산·염소이온·유리탄산·아연·황산이온 등의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위장병과 심장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달기약수의 수소이온지수(pH)는 5.93~6.38 범위[평균 약 6.2]이고, 지하수의 pH 6.96과 함께 거의 중성의 특성이 있다. 달기약수의 용존산소량은 1.58~5.28㎎/L의 범위로 지표수의 7.5~9.16㎎/L 범위와 지하수의 7.75㎎/L보다 낮은 값을 갖는다. 탄산약수의 수온은 7.0~10.8℃의 온도 범위를 보여 지표수 및 지하수보다 약간 높은 수온을 갖는다. 탄산약수의 수온이 높은 것은 약수가 지표부의 온도보다 높은 지하 대수층에서 지표로 솟아나기 때문으로 보인다. 탄산약수는 일반 지하수와는 다르게 철(Fe) 성분의 함량이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철 함량은 2.46~9.39㎎/L 범위로, 지표수와 지하수의 최고 함량인 0.163㎎/L보다 최고 수십 배 높은 함량을 가진다. 약수가 지표에 노출되어 공기와 접촉하면 용존 철은 산화철로 철 침전물을 형성하여 약수터 주변에 붉은 철산화물로 피복된다. 지하수의 수질을 결정하는 요인은 대개 지하수 유동경로를 따른 물-암석 상호반응에 따른 자연적인 반응에 기인한다. 따라서 탄산약수 내의 이산화탄소(CO²) 공급은 지하 심부기원의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 즉 달기약수가 산출되는 집수구 주변에 백악기 퇴적암층 아래에 놓인 트라이아스기 화강암의 약대를 따라서 지하심부에서 이산화탄소가 상승하여 지하수계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유입된 이산화탄소는 순환하는 지하수와 혼합되어 탄산(H²CO³)을 형성하고, 아울러 이산화탄소는 퇴적암 내 탄산염광물, 알바이트, K¯ 장석과 같은 광물과 반응하여 다량의 HCO³¯ 용존 무기질 성분을 용해시킨 것으로 보인다.
달기약수탕의 유래는 조선 고종 당시 금부도사를 지냈던 권성하가 달기동[지금의 청송군 청송읍 부곡리]에 낙향하여 마을 사람들을 모아 수리공사를 하던 중 바위틈에서 약물을 우연히 발견하였고, 이후 사람들이 애용하면서 현재의 달기약수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약 700m 거리에 하탕·중탕·상탕·신탕을 비롯해 10여 개의 약수터가 개발되어 있다.
달기약수탕관련항목 보기 주변의 지질은 트라이아스기 화강암에 속한다. 이 화강암은 부정합으로 백악기 퇴적암층에 의해 덮여 있다. 흑운모 화강암은 편마암과 각섬암 등과 같은 선캠브리아기 변성암류를 크고 작은 포획체로 함유한다. 흑운모 화강암은 K¯ 장석, 석영, 사장석, 흑운모 등으로 구성된다. 현미경으로는 소량의 백운모, 지르콘(zircon), 녹니석, 방해석 및 불투명 광물이 관찰된다. 석영은 흔히 파동소광(波動消光)을 나타내며, 사장석은 견운모로 심하게 변질되어 있다. 퇴적암층은 주로 담홍색의 사암으로 구성되며 적갈색 사암 및 이암 등이 협재되어 있다. 사암은 탄산염광물과 세립질 백운석을 36.9%로 함유하며, 적갈색 사암은 44.6%의 탄산염광물을 함유한다. 적갈색 이암은 입자 사이를 채우는 적철석과 탄산염광물을 다량 함유한다. 달기약수탕은 청송읍 월외리의 대둔산과 금은광이가 형성한 골짜기 일대에서 발원하여 월막리에서 용전천으로 합류하는 괘천의 하류부에 형성되어 있다. 괘천은 낙동강 수계에 속하여 낙동강의 제3지류에 해당한다. 괘천의 상류 구간에는 달기폭포와 월외폭포가 있다.
[출처] 달기약수탕_디지털청송문화대전
달기약수는 한 지점이 아닌 몇 군데 약수가 솟는 샘으로 다덕, 오전약수처럼 솟구치는 샘이 아닌 삼내, 오색약수처럼 바위틈에서 조금씩 흐르는 샘이라 고인 샘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뚜껑이 달려 있었다.
어차피 욕심 내더라도 탄산이 금방 날아가 버려 보틀 하나만 채운 뒤 여기서 더위도 식혔는데 앞서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신 어른이 내 걱정이 되셨는지 뒤따라 오셨지만, 여전히 생생한 모습을 보시곤 안부와 함께 되돌아가셨다.
[이전 유사 관련글]
중탕에 들러 다시 물 한 모금씩 마셨지만 신탕은 꽤 오래 물을 담으시는 것 같아 그냥 돌아섰다.
여긴 주변에 식당가가 형성되어 먹거리 걱정은 없었지만 지체 없이 바로 걸어 약수교를 지나 너른 주차장에 도착했다.
달기약수터 공공주차장에 도착할 무렵 추억의 방구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잠시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카메라로 나마 방구차의 뒤를 쫓았다.
달기약수터 공공주차장은 꽤 넓었지만 차량 몇 대를 제외하곤 거의 텅 빈 상태였고, 맞은편은 주차장 못지않게 넓고 정갈한 공원이었다.
때마침 택시 호출을 하자 그제서야 응답이 와 잠시 기다린 뒤 택시를 타고 유유히 자리를 빠져나왔고, 청송읍에서 식사를 해결한 뒤 다음 여정을 위해 영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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