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참 야속하다.
집착의 조바심을 드러내며 붙잡으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물처럼 비웃듯 더 빨리 빠져 나가 버리곤 조소를 띄우는 것만 같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듯이 멍하니 멀어지는 시간을 쳐다 보는 사이 일행도 헤어지고 서서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안타까움은 집이 싫어서 라기 보다는 쉽지 않은 기회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싫음이다.
그 어느 누구도 단잠의 달콤함을 마다 하겠는가?
하늘에선 짠 한 감성을 자극하는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작년 기억을 상기 시켜 보겠노라고 불영계곡의 둘러 가는 방법을 택해 강을 거스러 오르는 힘찬 연어처럼-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제목인디?- 계곡의 깊은 곳으로 나아갔다.
이전에 지나며 들렀던 가을에 비해 확실히 덜 익어 신록이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틀고 앉아 있지만 곳곳에서 비집고 들어 오는 가을 색감을 그 누가 막으리!(불영 가을 습격 사건_20141101, 통고산에서 삼척까지_20151105)
작년에 잊혀지지 않았던 자리를 다시 찾아 왔건만 불과 보름 정도 차이로 딴 세상 같다.
불영 계곡을 지나 길목에 있는 통고산 휴양림에 들러 매년 같은 장소의 단풍나무가 일품인 초입에서 내리는 비에 렌즈가 젖지 않도록 조심조심 셔터를 눌러 댔다.
2년 전에 이 자리에서 잊지 못할 가을을 담았었는데 그 때처럼 보슬한 비가 내리는 건 똑같다.
내리는 비는 피부에 닿아 가을의 속삭임처럼 피부를 간지럽히다 청량한 입맞춤의 여운만 남기고 살포시 사라져 가는데 괜스리 그 비를 맞는 기분은 서울에서 맞는 비와는 필시 다른 파동으로 인해 잠자고 있던 세포의 의식을 깨우는 귀띔이었다.
통고산 휴양림 초입에 관리자 분께 매년 들리게 만드는 매력을 설명 드리자 흔쾌히 사진을 찍다 가시란다.
더 깊이, 더 깊이 차를 몰고 나아가며 손짓하는 가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차에서 내려 몇 컷 씩 찍자니 도저히 전진 속도가 더디다.
그래도 주말에 찾는 휴양림 객들은 대부분 떠나 텅비어 있다시피 한데 여타 다른 휴양림처럼 여기도 주말에 통나무집 예약은 쉽지 않아 이렇게라도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다.
완연히 익은 가을에 왔었어야 하는데!
여전히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주눅 들지 않는 나는 더 깊숙히 차를 몰아 나갔다.
차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이 송알송알 맺히며 재잘거리는 것만 같다.
산으로 깊히 들어간다는 건 고도가 점차 높아진다는 것을 반증하듯 점점 가을 정취가 좀 더 강렬해 진다.
작년 연차를 내고 평일에 묵었던 통나무 집이 길 옆, 개울 너머에 빼곡한 가지들 사이로 어렴풋이 보인다.
보이는 통나무 집 좌측에 작은 가로등 하나가 있는데 그 밑은 텐트를 쳐도 될 만큼 일정한 면적에 평편해서 작년 가을 밤에 거기에 자리를 깔고 일행들과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했었다.
바닥에 자욱히 깔린 나뭇잎들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침대처럼 느꼈었고 이번에도 어김 없이 두터운 낙엽이 자리를 차지했다.
차가 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에서 잠시 멈추고 왔던 길을 돌아 보며 잠시 비를 맞고 서 있다.
넋 놓고 은하수를 바라 보며 무념무상에 잠겼던 곳이기도 한데 암흑 속에서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째려 보는 거시기만 아니었다면 그 닭살을 유발하던 은하수의 물결에 뛰어 들었을 걸~
산 깊은 곳에서 번져 나가는 가을을 상상하며 이제 왔던 길을 돌아가야 겠다.
내려가는 길에 그 통나무 집이 더 잘 관망할 수 있어 다시 찍어 본다.
현관을 나와서 멍하니 취하던 개울 소리를 듣던 게 일 년 전이었다니...
시간 참 허벌나게 흘러 간다.
이 공간을 오로지 지배하고 있는 소리는 바로 이 개울이 진원지인 만큼 그 물소리 또한 힘차면서도 포근함은 여전하다.
이제 통고산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차례구만.
도저히 셀 수도 없는 무수한 가을의 메시지 중에서 하나를 보여주고 깨닫게 해 준 이곳에서의 올 가을 예답을 다시 기억 창고에 접어 넣으며 지치지 않을 앞으로의 계절, 특히 가을에 기다림과 설레임의 편지를 띄우고 떠나자.
불영계곡에서 봉화-영주까지 놓여진 자동차전용도로는 사실 별로 달갑지 않다.
철저히 내 이기심의 발로이기도 하고 문명으로 인해 설 자리를 잃어 가는 자연에 대해 자행되는 파괴는 결국 제대로 누리기 힘들어 가는 부메랑이 종내는 재앙으로 깨닫는 순간 되돌리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현생의 짧은 이 시간 동안 영속적인 자연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 감당할 수 없는 후회의 첫 단추며 소통을 거부하는 문명의 단상이다.
가는 길목에 도사리고 있는 가을은 어느 하나 소홀함이 없을 거란 걸 알기에 이쁜 계절로 남길 바라며 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멋진 산중의 광경을 감상하시라고 관망대가 있는데 비 내리는 일요일이라 허허로울 만큼 텅 비어 있었다.
도로를 쉰나게 달리던 중 멋들어진 유적지가 있어 작은 길로 빠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올랐지만 문은 잠겨 있어 내부는 구경하지 못하고 대신 현동을 한 컷 찍어 봤다.
처음 봉화 현동을 왔던 게 2007년 이었던가?
지나던 길에 갈증을 참지 못하고 하나로마트-당시 연쇄점 간판이었다-에 들러 빵과 음료를 사서 개걸스럽게 쳐묵했었다.
태백과 정선에 목적지를 두었거나 태백, 정선에서 봉화로 가는 길목 정도 였던 현동은 어느새 마을 외곽을 선회하는 매끈한 도로가 들어서 속도에 조금이라도 뒤쳐지는 느림과 오지를 인내하지 못하고 외면하기 시작하는 단상이다.
꽤나 급한 내가 시골의 소박함에 채찍 없이도 느긋해지는 그 낯섬이 포근했건만 언젠가 나조차 이 매끈하고 직선으로 뻗은 도로처럼 여유의 망각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 당시의 기억을 반추하며 동시에 이 사진을 본다면 망각에도 질기게 생존하는 당시의 추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나는 매끈한 도로를 습관처럼 이용하고 있다.
춘양(황혼의 간이역_20141102)과 봉화, 영주로의 갈림길을 망설임 없이 고속으로 직진 중이다.
춘양, 영월로 향한 이정표를 따라 가면 어제 이끼 계곡으로 가던 영월 상동과 모운동을 잇는 도로를 만나겠지?
출발할 때의 그 설렌 감흥은 철저히 변색되어 이제는 아쉬움에 침울하다.
집이 싫어서가 아니라 쉽지 않은 기회에 대한 심취의 행복에 늘 뒤따르는 후유증이라 하겠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이 절묘한 우연의 일치는 매년 만추에 겪어 왔던 통과 의례이자 우연의 일치보단 굴비처럼 엮여 있는 기묘한 시간의 연속성에 말미암은 징크스 같다.
내 몸무게는 거의 일정할진데 떠나는 길과 돌아가는 길에 느껴지는 무게의 차이,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예정에도 없던 다덕약수탕은 아직 충족되지 않은 만족에 무언가를 벼르다 흐느적 거리며 지나가는 이정표에서 마치 만만한 상대를 만난 것처럼 얼른 핸들을 돌려 급작스런 갈증을 참지 못한 조바심에 응당의 보상이 가능하리란 기대가 한껏 응축된 동경이었다.
오래된 유원지 주변의 캐캐묵은 풍경은 약수탕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건만 약수 하나를 둘러싼 지나는 객의 주머니 공략에 대한 상투적인 방법들로 가득했기에 반전에 대한 실망은 제법 감당할 수 없어 약수 한 모금을 마시곤 도망치듯 자리를 떠버렸다.
그칠 줄 모르는 빗속을 헤쳐 당도한 풍기는 때마침 인삼축제로 인해 나들목 일대가 완전 주차장이었다.
커피 한 모금이 절실하던 찰나에 그 주차장 같던 도로의 트래픽에 끼어 당최 헤어날 수 없는 지경으로 30분 꼼짝마 상태라 더더욱 절실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 시야에 들어온 고구맘 카페?!
고구마 빵을 주인공으로 하는 카페란다.
풍기 나들목 진입하기 전 카페라 의심과 고민은 제쳐 두고 냉큼 들어갔는데 시골에 이런 말끔한 카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관리 중인 정갈한 카페 였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를 빵으로 만들어 출중한 맛과 품질을 자랑하는 사진과 제품들이 온통 도배된 판에 충동을 참을 바에 저질러 버리는게 낫겠지.
근데 맛은 둘째 치더라도 시무룩한 첫 인상에 이런 곳이 있구나 치부하기로 했다.
가끔 맛집이라는 곳을 가 보며 느낀 게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먹고 만족에 젖은 고객의 표정에 행복해 하지 않는다면 고객이 아니라 돈으로 보여서 그런 거 아닌가 의심이 들 때가 있는데 돈이란게 기복 없이 꾸준하게 보장 받는다면 자만심에 긴장감이 떨어져 종내엔 귀찮은 본심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아예 욕심이 더 많거나 초심을 잃지 않는 자기 관리가 꾸준한 맛을 구현할 수 있건만 얄팍한 상술은 꾸준한 맛을 보장할 수 없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미소 짓는 초면에 기분이 좋아지면 같은 맛이라도 감성의 양념으로 더 맛난 게 아니겠는가.
게다가 내가 가기 쉽지 않은 여정 중의 불쾌한 기분은 굳이 돈을 들여 가며 체험할 필요는 없으므로 기억에 지워 버린다.
카페를 나와도 여전히 내리는 비가 가을을 재촉했었나 의심이 들게 호박꽃이 만개했고 그 너른 꽃잎 위에 작은 곤충 하나가 겁 없이 비를 맞고 있다.
가야 될 길이 멀건만 그마저 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면 당초 여행의 길에도 오르지 않았을텐데 그 두려움이라면 여행의 끝에 마침표가 아닌 늘 쉼표가 남아 속편을 제작하고 싶음에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조바심을 감당하기 힘들어서가 아닐까?
거리와 비례하는 의지와의 괴리감에 만남과 즐김은 일장춘몽처럼 잡으려 할수록 안타까움을 지펴 놓고 사라져 버리고 잠깐 사이라고 여겼던 시간이 부지불식간에 훌쩍 흘러 어느새 가을처럼 슬며시 왔다 사라지듯 한 해의 끝도 점점 윤곽이 뚜렷해 진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설레임의 힘을 빌어 아쉬움을 깨치고 일상으로 돌아가 칡뿌리를 되씹으며 쓴 맛 끝의 배가 되는 단 맛을 찾듯 빠듯한 일상 속에서 소중한 여유를 되찾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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