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비로봉 최단 코스, 삼가동 탐방소를 지나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평소라면 잘 포장된 길은 워밍업 구간이겠지만 폭염 아래에선 걸음 뿐만 아니라 양어깨에 둘러 쳐진 백팩조차 천근만근이었고, 사찰 탐방 또한 둔턱이었다.
이왕 발길을 돌리기로 마음먹었다면 미련을 두지 말자.
그래도 무슨 힘이 남았는지, 아님 나무숲에 대한 집착이었는지 가까이 잣나무숲이 있어 소백산 자락길을 걸어 울창한 잣나무숲에 들어섰고, 잣나무숲에서 만날 수 있는 내음과 소리에 흠뻑 취했다.
비로사를 지나 소백산 중턱 잣나무숲을 가기 전에 고도 700m 가까운 곳의 산속 달밭골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예전 여정에서 귀동냥으로 들었던 마을이 바로 여기였다.
전쟁이 일어난 줄 모르고 살았다던 소백산 자락, 구병산 자락, 지리산 자락 마을 중 하나로 비로사에서도 숲에 가려 거의 보이질 않을 정도.
그 마을을 지나 잣나무숲에 들어서자 마치 다른 세상으로 공간 이동을 한 기분이 들었다.
소백산은 충청북도 단양군과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백두대간 상의 산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단양군의 대강면, 가곡면, 영춘면 일대와 영주시 풍기읍, 순흥면, 단산면, 부석면 일대가 국립공원에 포함된다. 높이는 1,439m.
봄이 되면 연화봉 일대에서 소백산 철쭉제가 열리는데 가히 장관이다. 비로봉 쪽은 초지에 주목군락지만 있어서 봄 축제 그런 거 없다.
소백산에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전형적인 고위평탄면이 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정상인 비로봉 일대인데, 목본식물의 밀도가 매우 낮고 그나마 존재하는 목본식물들도 크게 자라지 못하는 반면, 초본식물들은 아주 풍부하게 분포한다. 식생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람이다. 비로봉 일대에는 바람이 연중 강하게 부는데 15m/s 이상을 기록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바람이 심하게 불 때에는 몸을 가누기도 힘들 정도이다. 이 때문에 목본식물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 대신 광대한 풀밭이 형성되었다. 봄, 여름, 가을에 걸쳐 가히 천상의 화원이라고 할 만한 풍경을 이룬다.
겨울에는 거대한 설원이 되는데 이 풍경을 제대로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소백산 바람이 겨울에 제일 심한 데다가 추위도 극심해서, 비로봉 인근 겨울철 평균기온도 영하 20도 정도는 우습게 기록한다. 바람이 정말로 심한 날에는 비로봉 정상석 인근에는 아예 눈도 쌓이지 않는데, 바람이 눈을 다 날려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바람이 적은 날도 있지만 몸도 가누기 힘들도록 바람이 거센 날이 많다. 비로봉 일대 능선의 바람 때문에 매우 고생스러운데도, 소백산은 겨울 산행지로 각광받는다. 일단 적설량이 엄청난 데다가 강한 바람과 큰 일교차 때문에 상고대를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소백산에서 야생붉은여우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2014년 6월 말에는 적응훈련 중이던 여우가 새끼를 낳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야생여우는 현재 멸절이나 다름없는 상태라, 여우들이 잘 적응하여 자란다면 야생동물 복원사업이 좀 더 활발해질 것이다. 소백산에서 복원 중인 붉은여우는 한국에서만 사는 고유종이 아니다. 붉은여우가 서식하는 곳에 한반도도 포함될 뿐, 한반도에서만 사는 종이 아니다. 붉은여우는 전 세계적으로 서식하며 매우 흔한 종인데 국내에서만 절멸되었던 것이다. 외래종인 호주에서는 붉은여우가 아주 골치거리일 정도다.
삼가 탐방소 코스는 풍기에서 오르는 산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 삼가 야영장을 들머리로 삼아 비로봉으로 직행하는 최단 코스로 유명하다. 삼가 야영장을 들머리로 삼을 경우 비로봉까지 편도로 6km 정도이지만 보통은 택시 등을 타고 더 들어가서 달밭골을 들머리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약 3.3km 정도 걸으면 비로봉에 도달한다. 경사는 아주 급하지도 않고 아주 완만하지도 않다. 막판 1km 정도가 경사가 급하지만 계단길로 잘 정비되어 난이도가 높지 않다.
큰 산이지만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당일에 비로봉과 다른 봉우리들을 밟아볼 수 있고, 단양과 영주 양쪽에 오를 만한 코스들이 산재하여 교통사정에 따라 코스를 선택하기 쉬움이 장점이다.
[출처] 소백산_나무위키
소백산자락길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문화생태탐방로’로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고, 2011년 ‘한국관광의 별’로 등극되었다.
영남의 진산이라 불리는 소백산자락을 한 바퀴 감아 도는 은 전체 길이가 143km(360리)에 이른다. 모두 열 두 자락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자락은 평균 거리가 12km(30리) 내외여서 약 3~4시간이 소요되므로 하루에 한 자락씩 쉬엄쉬엄 걸을 수 있어 리듬이 느껴진다.
더구나 열 두 자락 모두 미세한 문화적인 경계로 구분되어 있으므로 자세히 살펴보면 자락마다의 특징이 발견되어 색다름 느낌의 체험장이 될 수 있다.
소백산자락길은 경북 영주시, 봉화군, 충북 단양군, 강원도 영월군의 3도 4개시·군에 걸쳐져 있다. 올망졸망한 마을 앞을 지나기도 하고, 빨갛게 달린 과수원 안길로 안내되는 가하면, 잘 보존된 국립공원 구간을 통과하기도 하여 아기자기하므로 대부분 따가운 햇볕에 노출되는 다른 곳의 걷는 길과는 차별된다. 특히, 국립공원 구역이 많아 원시상태가 잘 보존되어 숲의 터널에서 삶의 허기를 치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돌돌 구르는 시냇물과 동행할 수 있어 신선하다.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 도솔봉 등의 봉우리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소백산자락은 명산에 걸맞게 대찰을 품고 있는 불교문화 유적의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에 속해 있어 부석사를 위시한 성혈사, 초암사, 비로사, 희방사, 구인사 등등의 불교유적지 탐방의 재미도 쏠쏠하다. 3도 접경 행정구역을 달리 한 생활문화의 특징까지 감상할 수 있음은 보너스이다.
[출처] 소백산 자락길_영주문화연구회
삼가탐방소에 도착, 전날 맹위를 떨쳤던 폭염의 기세는 한층 사나워졌다.
고교 동창들과 추억이 깃든 연화봉이 멀리 보였는데 유일하게 남은 기억은 연화봉을 오를 때 무척 힘이 들었다는 것 외엔 그리 선명한 잔재는 없었다.
처음 한 친구와 찾았던 초봄엔 희방사의 건달 같은 땡중의 기억이, 두 번째 찾았던 여름엔 동창 모임들과 결국 연화봉에 오르며 등산이 그렇게 힘든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이후엔 소백산 등산뿐만 아니라 등산이란 것 자체를 기피했었고, 간혹 광교산 정도 올랐지만, 용인 동천동에서 광교산까지 가는 길 또한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내가 결정적으로 트레킹을 넘어 등산의 매력을 느낀 건 근래 치악산으로 거기 오를 정도면 웬만한 산행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힘든 게 격이 달랐다.
그래서 편한 등산을 골라서 즐기다 산행의 희열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고, 휴가 때면 종종 산행을 했다.
그런 만큼 산행을 바라보는 달라진 의미가 행동으로 나와 이번엔 독특한 주상절리길에 매료되어 주왕산과 그 인척의 위치인 백두대간의 중심에서 거대한 장벽처럼 길게 늘어선 소백산을 계획했다.
물론 계획은 거창했으나, 전날 주왕산에서 폭염에 제대로 시달리면서, 그리고 악몽을 털어낼 겨를 없이 곧장 더 강력한 폭염이 찾아오는 바람에 계획했던 산행 대신 맛배기만 음미하기로 하고 삼가탐방소에서부터 비로사와 달밭골을 향해 걸었다.
삼가주차장에서 탐방지원센터까지 불과 1km도 안 되는 거리를 걸어왔는데도 벌써 땀은 비 오듯 몸을 완전 적셔버렸고, 역시나 아스팔트길을 걷는 동안 초강력 뙤약볕 아래를 걸어 정신적으로도 지쳐 있긴 했었다.
탐방지원센터와 같이 있던 야영장엔 제법 캠핑족들이 많았는데 가장 눈길을 끈 건 바로 세족장!
기필코 내려갈 때 내 족발을 저기에 담궈 얼려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삼가동에서 비로사까지는 잘 조성된 도로와 도보길까지 있어 수월했지만 폭염에 여기서부터 백기를 들었다.
눈개승마 한 송이가 고개를 내밀었는데 역시나 이런 야생화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데 도저히 시선을 떼기 힘들고, 또한 쉽게 질리지 않는 그런 매력을 가진 게 바로 야생마였다.
삼가주차장에서 약 2km를 걸어 비로사에 도착.
사정없이 흐르는 땀을 훔치며 물 한 모금 마시자 꿀보다 더욱 달달했고, 세신사보다 더욱 가슴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비교적 가파른 지형에 사찰이 있었는데 그런 지형에도 하나같이 멋진 자태로 당당히 서있는 나무들이 대단해서 힘든 것도 잠시 잊고 감탄했다.
비로사에 올라오자 스님들도 폭염을 피해 휴식 중인지 인적이 전혀 없었다.
이참에 비로사 구경이나 진득하게 해야 되겠다.
근데 절 대부분이 땡볕이라 쉽지 않겠다.
인간들은 어떻게 돌을 다듬어 쌓아 올려 탑을 만들었을까?
염원이 하늘과 연결된 걸 알고 그랬던 건지, 아님 노력과 간절함이 주춧돌처럼 쌓여야만 성취가 된다는 걸 알았던 건지 묘하게도 추상적인 형체를 이렇게 명쾌하게 유형화시켰다.
법당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고, 물이나 한 모금 적선해 줍쇼~
그러나 물이 흐르는 곳도 없었고, 특유의 고무신을 신고 자갈 위를 착착 걷는 스님, 보살 발자국 소리도 없었다.
6월치곤 무쟈게 더운 날은 분명했는데 불볕더위는 햇볕만 피하면 서늘한 편인데 이건 완전 삼복더위나 마찬가지로 양지나 음지나, 산이나 강이나 더운 건 매한가지였다.
비교적 가파른 지형에 얹힌 사찰이라 이렇게 계단식 구조로 땅을 다져 위아래로 오가는 돌계단이 많았다.
보통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산신각이 있어서 그런 줄 알고 올라왔두만 비로사는 그게 아니었다.
얇은 지식으로 일반화했던 내 잘못이었나?
오래 머무를 것 없이 주변을 빠르게 휘리릭 둘러봤다.
소백산 비로봉에서 산줄기 하나 남쪽으로 뻗어 나와 비로사와 달밭골을 은둔시킨 장본인, 바로 원적봉으로 동네 뒷산처럼 나지막한데 1천m 가까웠다.
일대가 높긴 한가 보다.
옹기종기 장독대가 햇살을 굴절시켜 눈이 부셨다.
여기도 산딸기가 널려 있었고 몇 개 줍줍했다.
산에 사는 생명들한테 먼저 허락을 받아야 되는데 어찌나 탐스럽게 보였는지 뇌가 인지하기 전에 손은 이미 길가 산딸기를 만졌고, 입 속엔 침이 잔뜩 고였다.
주왕산 금은광이를 넘어오는 길에 먹었던 산딸기와 그리 다를 바 없었지만 여긴 새콤한 맛이 조금 적은 대신 달달한 향이 강했다.
비로사에서 산중 숲 사이 가로등 하나가 보였는데 거기가 달밭골임을 알 수 있었고, 비로사에서 내려와 곧장 오르막길로 걸어 달밭골 초입에 도착했다.
비로사보다 높은 산중턱에 마을 흔적을 따라가면 작은 산골마을이 있었는데 그 초입에 가장 먼저 맞이하는 대장군, 여장군께 약식으로나마 목례를 드렸다.
소백산 달밭골은 조선 영조27년 이중한(1690~1752)이 저술한 인문지리서 택리지에는 '병란을 피하는 데는 태백산과 소백산이 제일 좋은 지역이다'고 했다. 달밭골은 정감록의 십승지설 중 일승지에 포함된 지역이다. 인근의 모죽지랑가 비석이 있어 이곳이 신라시대 화랑들이 무예를 단련하였던 곳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단양 영춘면 나룻터에 소금을 구하러 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비로봉 방향으로 고려시대 사고지로 추정되는 터가 남아 있다. 우리 조상들은 어두운 밤하늘에 휘영청 떠있는 달을 보며 척박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미래의 희망을 빌었다.
달밭은 배추밭에서 배추를 무우받에서 무우를 뽑듯이 달밭에서는 달을 가꾸어 뽑는 곳이기도 하다. 달의 진정한 의미는 지혜를 말하기도 한다. 달밭골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빛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달빛 상점은 휴업 중이었다.
삼가동에서 오르는 코스는 곧장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한다는데 실제 이런 폭염에서도 드문드문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분들이 계셨다.
때마침 장년의 남성분이 하산하시길래 코스 산행을 여쭤봤더니 등산을 잘하지 못함에도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고.
이번에 못한 만큼 다음 기회를 노려봐야스것다.
달밭골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대신 잣나무숲으로 방향을 잡아 걷던 중 민가에서 라디오소리와 대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높고 깊은 곳에 마을이 있었다니!
잣나무숲 방향으로 걷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자 펜션이 있었다.
물론 마을 자체가 몇 가구 되지 않아 식당 겸 펜션으로 단장한 민가지만, 도심으로 떠나는 인구 이동에 여기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몇 호 되지 않는 마을을 지나면 작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잣나무숲 방향의 외길이 있어 주저 없이 걸었다.
대체적으로 숲이 우거져 있긴 해도 이렇게 햇살이 그대로 내려 꽂히는 자리를 지날 때면 뒷덜미가 뜨거울 지경이었다.
현재는 소백산 자락길로 명명하여 둘레길로 이어져 과거의 잔해는 잊혀지길 기다렸다.
그 흔적이 기울어졌건만 그 모습이 친근했다.
유기견 출몰할 수 있다고, 그건 인간이 만든 만행이며 재앙이었다.
생명을 상품처럼 여기고 재단하는 인간들에게 경종을.
이미 무성한 수풀에 잠식당한 폐가도 보였는데 현재보다 훨씬 컸던 옛 시절 마을을 짐작할 수 있었고, 서글픈 시간의 흔적과도 같았다.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경작지도 있긴 하나 길 잃을 염려는 없이 얼마 남지 않은 잣나무숲까지 외길이자 소백산 자락길이었다.
달밭골에서 얼마 걷지 않아 잣나무숲에 도착했다.
잣나무숲에 들어서는 순간 특유의 향긋한 내음이 진동했다.
숲에는 쉴 수 있는 간단한 시설과 통로가 있었는데 일광이 좋고 접근성이 그리 나쁘지 않아 트레킹을 겸해서 휴식을 만끽하기엔 경기도 안성맞춤이었다.
자욱한 잣나무 낙엽의 폭신한 질감을 느끼기 위해 숲 가운데 데크길과 계단을 향해 걸었다.
잣나무숲 향긋한 내음에 이끌려 데크길로 천천히 걸었는데 숲에서는 미비하게나마 폭염의 위력이 조금 약해졌다.
이참에 자락길 가장 높은 곳으로 걸었는데 지도상엔 인근 밀목재라 되어 있었다.
나무 데크길과 계단을 지나 주변을 둘러보자 비교적 빼곡한 잣나무들이 경쟁적으로 하늘로 곧게 뻗어있었다.
잣나무숲에 열린 작은 하늘을 보면 잣나무가 직진성과 동시에 하늘로 높게 뻗는 특유의 습성을 알 수 있었다.
저 강력한 뙤약볕이 빼곡한 잣나무로 조금 약화되긴 했지만 세상을 태울 듯한 위력은 여전했다.
올봄에 올랐던 천주산 진달래군락지 아래 잣나무숲이 문득 떠올랐는데 규모가 크거나 밀도감은 높지 않았지만 향은 희석되지 않고, 숲의 공기를 가득 이염시켰다.
성재 쉼터, 밀목재 도착.-밀목재와 성재가 같은 지명인지 고견을 주세요-
자락길에서 가던 방향인 좌측으로 내려가면 초암사와 죽계구곡까지 이어졌는데 이번 여정에도 죽계구곡까지 계획했었지만 잠시 후퇴했다.
그래서 이번 소백산 여정의 종착지이자 반환점인 자락길 고개마루에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갔다.
한 여성 분이 이 길로 올라와 잣나무숲의 쉼터에서 음악 감상 삼매경에 빠져 들었는데 그 건강한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청설모와 다람쥐는 많은 양의 열매들을 산 곳곳에 숨겨놓는데 기억하지 못해 방치된 열매들이 나무가 되고, 그로 인해 숲이 울창해진다고.
자연의 이치란 게 참으로 심오하고 오묘했다.
인공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과일 꽃 수정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꿀벌이나 뒤영벌인 것처럼.
고개마루에서 발길 돌려 숲을 바라보자 꽤 밀도감이 높았다.
비록 폭염에 굴복했지만 여전히 감성이 살아있는지 이런 숲의 모습에서 작은 희열이 느껴졌으니까.
잣나무숲에 떨어진 빈 솔방울.
이런 잣것을 봤나!
왔던 길을 돌아 나와 다시 달밭골에 도착했다.
족욕이 가능한 카페는 비교적 현대적인 시설로 꾸몄고, 산 아래를 바라보며 힘차게 오르는 바람길을 열어놓았다.
마을 여기저기 쉼터는 도시와 달리 자연이 가득했다.
큰돈을 들여 인간의 편의대로 자연을 다듬고 훼손한 게 아니라 거기에 비집고 들어가 작은 공간을 만들었고, 그래서 이질감이 전혀 없었으며, 경계 또한 없었다.
그래서 지친 길손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배려와 여유가 놓여 있었다.
이미 멸종된 붉은여우를 소백산에서 복원 중이란다.
물론 전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종이 아니지만 한반도에선 사라져 지리산 반달곰처럼 소백산을 거점으로 이미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여우도 한 귀염한다.
청렴 세족장이라... 이름을 깔맛춤 했다.
내려가는 길에 기필코 세족장에 들러 족발을 담갔는데 얼음장이라 오래 버틸 수 없어 잠시 발을 뺐다 다시 담갔다를 반복했다.
청렴 세족장은 중간 격벽을 기준으로 한쪽은 족발을 담글 수 있는 곳으로 그 물이 자연스럽게 넘쳐 맞은편 벽을 통과하면 거기에서 신발 바닥을 씻을 수 있었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맑은 물에 뭔가 꼬물거려 자세히 관찰하자 물고기 4마리가 나름 이방인을 경계하며 서서히 다가왔다 쏜살같이 도망갔다.
이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구경했다.
원점은 삼가주차장에 도착, 녹색 식물이 건물 외벽이 되어 자연친화적이고 여름이면 냉방에 도움 될 수 있겠다.
물론 외형도 굳이 꾸밀 필요 없이 계절마다 변화해서 친근했다.
삼가주차장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무척 깔끔했지만 공간에 대한 효율은 그리 좋지 못했다.
주차 공간을 조금 리뉴얼하면 좁아지지 않으면서 더 많은 차량의 주차가 가능하지 않을까?
자원봉사센터라고 편의 센터도 갖췄으나 찾았던 날엔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이로써 아쉬운 여운이 지워지지 않을 짧은 소백산 자락 여정을 마무리했다.
꽃이나 허브 못지않게 은은한 향이 진동하는 잣나무숲에서 소백산 자락길을 묻고, 옛사람들의 자취로 메아리 울렸다.
소백산 비로봉을 오르는 대신 과한 욕심을 버리고 잣나무숲 탐방에 만족할 수 있었던 건 산은 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잣나무는 뽕나무, 호두나무와 더불어 신라 때부터 인간이 관심을 가지고 가꾼 수종으로 그만큼 인간이 오랫동안 기대어 왔던 생명이기도 했다.
잣나무숲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모든 인간이 하나의 독창적인 인격체듯 이 숲 또한 인간의 협소한 잣대로 판단될 가치를 뛰어넘어 이 하나만으로도 여행의 봇짐을 든든히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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