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충북이라고 하면 대부분 충주를 찾았다.
소위 장단이 맞는 지인들이 있었고, 유적지나 공원, 자연 경관이 우수했으며, 그와 함께 먹거리와 함께 비교적 교통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진천을 찾은 건 20여 년 전 음성 소재 제약회사에 근무하며 엄청난 궁합을 자랑하던 독수리 오 형제-생산팀 2, 관리팀 1, 연구팀 2명으로 구성된 멤버들로 어느 순간부터 평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퇴근에 맞춰 일대를 훑고 다녔었지-와 함께 진천을 찾았었고,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하던 늦겨울에 코로나19에 감염되었던 사람들의 격리를 위해 아낌없이 받아주었던 아산과 더불어 진천에 대한 막연한 관용-코로나 팬데믹 초기엔 스쳐만 지나도 감염될 거란 공포심이 극대화된 시기라 지자체에선 엄청난 모험이기도 했다-에 아산과 더불어 진천을 찾아 두타산자락 한반도지형 전망대를 밟았으며, 엔데믹 이후 지난해엔 농다리를 비롯한 미르숲을 찾았다.
그렇게 본다면 진천은 전통적인 관광 도시가 아니었고, 그럼에도 농다리와 미르숲, 한반도지형 전망대 일대는 내게 있어 마음만 먹으면 찾을 여행지였지만, 생활 터전으로 전이될 줄 누가 알았겠나.
이제 겨우 한 달 조금 넘은 기간 동안 칼퇴에 맞춰 동네 발발이처럼 싸돌아 다닐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드넓은 평원의 진천과 함께 거기를 가르는 도로망도 한몫했다.
앞서 찾았던 곳은 지역을 넘어서 충분히 찾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면 그 외엔 뭐가 있을까?라는 의문과 호기심을 참지 못해 하나씩 찾기 시작했는데 지역을 초월한 유명 스팟이라기보단 진천에 터전을 두면서 찾을 만한 곳들로 낙점한 생활체육공원 다음으로 진천읍에 인접한 백곡저수지 아래 역사테마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퇴근에 맞춰 광속으로 달려갔는데 광혜원과 진천읍을 연결하는 고속도로급의 17번 국도가 아니었으면 진천읍은 물론이고, 실거리가 더욱 가까운 칠장사나 죽주산성은 꿈도 꾸지 않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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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라 해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17번 국도를 타고 빛의 속도로 도착한 공원의 첫인상은 그리 특별할 건 없었다.
어차피 전국 어디를 가나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원들은 많으니까.
너른 주차장이 무색할 만큼 텅 빈 공간에 차를 주차한 뒤 가장 먼저 찾은 대종각은 어느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종을 칠 수 있었겠지만 고요하면서 적막한 공원의 침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종의 멋진 형상과 양각된 문구만 정독했다.
'장하도다...'라고 시작하는 첫 구에선 올봄에 넘나 재밌게 본 파묘를 살짝 떠올렸다.
종각을 벗어나 백원정으로 방향을 잡았고, 9월 들어 확실히 낮이 짧아져 석양은 벌써 서산으로 자리를 피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백원정 방향으로 길을 따라 걷다 초입을 찾지 못해 길을 헤매는 사이 낮은 꼬리마저 감추고 있었고, 종박물관과 축구장 사이 언덕 오르막길을 찾았지만 무성한 수풀과 더불어 날파리들이 달려 들어 하는 수없이 백원정은 다음을 기약하고 곧장 백곡저수지로 향했다.
종박물관 앞을 지날 무렵 오래된 단풍나무가 눈에 띄었는데 풍파가 휩쓸고 간 흔적이었는지 가지는 시간이 새겨져 도리어 멋진 자태만 남아 눈길을 사로잡았다.
매끈하고 곧게 뻗은 것들보다 이렇게 시간이 기록된 나무들에게서 나무의 멋을 느끼는 취향은 아마도 인간보다 기나긴 시간을 버티는 나무를 통해 위안과 위로, 지평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교적 높은 댐의 뿌듯한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길 양 옆에 키가 낮은 풀들이 무성하여 길폭이 좁았지만 몇 단계 계단이 있어 오르긴 수월했다.
늦더위 폭염이 남아 등짝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등을 간지럽혔다.
댐 위에도 수풀이 우거져 있었는지 간헐적으로 가느다란 풀들이 눈에 띄었고, 몇 그루 키 작은 나무가 저녁 하늘에 비키어 눈에 띄었다.
댐 위에 올라 작은 성취감에 도치되어 하늘을 바라보자 어딘가로 바삐 떠나는 한 무리 새떼가 일련의 배열을 유지한 채 저녁 하늘을 유영했다.
댐 위에서 진천 시내는 작은 언덕과 나무숲에 가려 일부만 보였지만 비교적 규모가 있는 공원 일대와 그 너머 벌판은 훤히 보였다.
백곡지는 작은 바람결에 흥이 겨운지 가벼운 이랑을 만들며 경쾌한 호수의 경관을 연출했고, 저녁 하늘은 석양이 남긴 노을로 뜨거웠다.
댐의 수문이 있는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걸어오는 동안 호수도 노을도 따라왔고, 심약하던 하늘의 등불이 점점 꺼지기 시작했다.
호수 가장자리 부근에 무언가 하나 떠 있는 듯해서 자세히 보자 돌출된 바위 끝부분이 마치 조선시대 갓처럼 보였다.
댐 위에 첫걸음을 디딘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길에 댐 전망대 너머 아직은 뜨거운 노을이 번뜩였다.
전망대는 출입 통제 상태라 초입 철문이 굳게 걸어 잠겨 있어 아쉽지만 보는 걸로 만족했다.
댐 남쪽 끝의 수문을 지나면 이런 출렁다리도 있었는데 조만간 날이 어둑해져 거기까지 가진 않고 발걸음을 돌려 왔던 길을 밟아 공원으로 향했다.
댐 수문으로 백곡천이 지나며 아치형의 장관교와 풍성한 녹음을 만들었다.
강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가 그 아래 얼마나 많은 생명의 젖줄인지 얼핏 상상할 수 있었다.
아치형의 다리 위에 올라 댐을 바라보자 댐과 하늘이 맞닿은 자리에 거대한 반원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출입이 통제되어 갈 수 없었던 전망대의 구조물이었다.
백곡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이 너른 공원이었는데 왔던 길 대신 하천 건너편의 조용한 공원을 걸어 내려가 원점으로 이어주는 길에 작은 출렁다리가 있어 한가운데 서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봤다.
눈에 보이는 건 가을을 무색케한 여름의 폭염이 만든 무성한 잔해였고, 그나마 아직은 낮이 길어 하늘과 그 아래 봉긋한 산과 공원을 이룬 나무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주차한 자리 옆에 종박물관이 있었지만 오후 6시까지 문을 개방하는 곳이라 7시 가까운 당시엔 이미 밤의 숙면에 접어들었고, 정문 앞 종모양의 구조물은 볼 수 있어 가까이 다가갔다.
종 모양의 구조물 아래 바닥엔 녹슨 구릿빛의 종박물관을 특유의 종교적 색채가 짙은 종의 무늬를 형상화시켜 놓았고, 그 위에 투명하고 두꺼운 아크릴인지 유리인지를 덮어 박물관의 느낌을 충실하게 구현해 놓았다.
구조물 위엔 뚫려 있어 자연 그대로의 하늘이 들어올 수 있게 내어놓았다.
박물관 옆의 작은 공터에도 종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대종각 아래 범종보다 작긴 해도 흔히 절에서 보던 규모의 종이라 과연 종박물관엔 얼마나 다양하고 이채로운 종들이 전시되어 있을까 궁금했다.
당목 또한 비교적 크기도 했고, 나무의 특성이 그대로 남아 나이테와 갈라짐이 자연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공원을 떠나기 전, 대종각에 은은히 비치는 불빛이 종소리를 대신하여 울려 퍼졌고, 벌판에 내려앉은 고요는 여전히 무거웠다.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의 도보 여행을 통해 하나둘 친숙해지는 진천에서 그렇게 기억의 한 페이지를 아로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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