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마음속에 담고 싶은 진천 농다리 미르숲_20230325

사려울 2024. 1. 4. 20:09

마음속으로 북마크 했던 진천 농다리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라 북적대는 인파를 무릅쓰고 한달음에 쫓아갔다.
결과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길과 테마가 명백한 곳이라 대만족.
올해는 O다리와 인연을 맺어 볼까?
원주 사다리병창, 진천 농다리, 영월 섶다리, 예천 뿅뿅다리, 냥이랑 외나무다리 ...

화려하고 미려한 채색으로 물들인 것만이 아름다운 건 아니다.
때론 시각적 신호보다 감각적 신호가 아름답다는 스키마를 자극하는 경우도 많은데 내게 있어 미르숲길은 길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쉽게 보여주려 하지 않는 새침한 면도 있었다.
농다리를 건너 크게 꿈틀대는 초평호는 용을 닮았다고 해서 인접한 숲을 미르숲이라 칭했고, 그 숲에 혈관처럼 빼곡히 뻗은 길은 차라리 미르가 아닌 미로에 가깝지만 길이 가진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건조한 감성의 자로 잰듯한 직선은 공존하기 힘들 만큼 수 없이 꺾이고 뒤틀리고 굽이치는 작은 길들이 흩어져 있었다.
흙빛에 그을린 길이라 자칫 첫인상은 무미건조함에도 번뜩이는 그 형체와 작고 좁은 길섶 봄의 잉태를 깨닫는다면 괴산 산막이옛길과 또 다른 이곳만의 매력에 도치되어 역설적으로 걷던 길을 잃어 하염 없이 방황하고 싶어지는 길, 이게 바로 미르숲길만의 작은 매력이었다.

현재까지 진천터미널에서 농다리 초입 중리까지 버스가 운행되고 있단다.

 

진천 농다리는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인 다리로 아름다운 모양의 돌다리다.
상산지(1932)에는 ‘고려초기에 임장군이 축조하였다고 전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래는 28수를 응용하여 28칸으로 만들어졌다. 사력암질의 붉은 색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올려 교각을 만든 후, 상판석을 얹어놓고 있다. 이 다리의 특징은 교각의 모양과 축조 방법에 있는데, 돌의 뿌리가 서로 물려지도록 쌓았으며 속을 채우는 석회물의 보충 없이 돌만으로 건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교각의 폭은 대체로 4m 내지 6m 범위로 일정한 모양을 갖추고 있고, 폭과 두께가 상단으로 올수록 좁아지고 있어 물의 영향을 덜 받게 하기 위한 배려가 살펴진다. 비슷한 예가 없는 특수한 구조물로 장마에도 유실되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상판석의 돌은 특별히 선별하여 아름다운 무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 농다리_진천군청

조금 일찍 왔다고 생각했지만 농다리에 도착하자 초입부터 몰려드는 차량과 공사가 뒤섞여 차량 행렬이 길어 진입이 쉽지 않았다.
중부고속도로 아래를 토끼굴을 지나 안내 요원의 지시로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자 농다리를 지나는 사람들 또한 행렬을 이뤄 줄 서서 건너는 모습이 바로 보였고, 농다리를 건너기 전 미호강변 고수부지의 광장을 걸어 다니며 주변 경관을 살폈다.
몇 차례 정보를 접했지만 드뎌 처음 맞이하는 진천 농다리에서의 하루를 설렌 마음으로 맞이했다.

농다리 건너 작은 산자락에 인공폭포와 농암정이 보란 듯 시선을 유혹했다.
또한 농다리와 별개로 사행을 하듯 돌다리도 있어 종종 거기로 건너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호강 수변공원 농다리 초입 광장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버드나무는 이제 막 신록을 틔우기 시작했고, 길게 늘어트린 머리가 봄바람 따라 살랑이며 흥을 돋웠다.

초봄의 미약한 한기가 있는 시기라 사람들의 옷차림은 거기에 맞춰 조금 두껍긴 하나 조금만 걷다 보면 이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고, 대신 야외 활동에 있어 최적의 날씨답게 화사하게 흐렸다.
개인적으로 일 년 중 활동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바로 요 맘 때로 옷차림도 가벼워지는 시기며, 날벌레도 거의 없는 데다 습도도 낮기 때문이었다.
물론 완벽한 게 없는 것처럼 초봄의 불청객 황사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는데 이날만큼은 미세먼지도, 황사도 미약하던 날이라 경기도 안성(맞춤)이었다.

미르숲(면적 108ha)은 다양한 테마에 따라 식생경관디자인 숲(기원의 숲), 자연상생철학 숲(생각의 숲), 지질역사배움 숲(붉은 바위의 숲), 자연생태동화 숲(요정의 숲), 수변경관투영 숲(거울의 숲), 미래세대문화 숲(약속의 숲). 총 6개의 숲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인공적인 조성을 최대한 지양하고 숲이 고이 간직해 온 소중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살아 있는 숲의 생물다양성 증진과 유전자원 보존을 위해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를 복원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자연과 인간과 생명의 메시지를 담은 미르숲은 건물의 나무 하나, 높낮이마저 자연친화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출처] 미르숲_진천군청
 

함께하는 미르숲

미르숲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 산7-1   미르숲(현대모비스 자연생태교육관) : 043-537-8106     진천군청 미래도시국 산림녹지과 공원녹지팀   충북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433   

www.meerforest.org

농다리를 건너자마자 첫 번째 쉼터 전망대에 농다리 일대 안내도가 있어서 잠시 망설였다.
대부분의 사람들, 100명 중 99명의 사람들은 살고개를 넘어 초평호 둘레길, 일명 초롱길로 향했는데 나 또한 그것만 알고 왔지만 막상 지도를 마주하게 되자 숲으로 혈관처럼 꼬이고 뒤틀린 등산로에 이끌렸다.
잠시 갈등 좀 때리기로 하고.

농다리 건너 길은 크게 두 갈래.
하나는 걷기 편한 너른 산책로의 살고개 방면과 또 다른 하나는 전형적인 오솔길 형태의 미르숲길로 미르숲이 있는 산은 크거나 높지 않은, 동네 흔히 접할 수 있는 정도의 산이라 산행 또한 크게 힘들지 않거니와 그 길도 정상으로 곧장 이어지는 게 아닌 갈 지자 형태라 말 그대로 일반적인 근린공원을 산책하는 정도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 호수와 강 사이 작은 숲이 궁금하여 미르숲으로 방향을 잡고 주변을 아우르며 천천히 걸었다.
이로 인해 농다리에 이끌렸고 미르숲에 빠져 들었다.

걷기 편한 살고개길 대신 꼬불꼬불 좁고 흙먼지 깔린 미르숲길로 접어들어 천천히 걷자 첫 이정표가 전망대를 향했다.
또한 길은 강을 발치에 두고 산언저리로 이어졌는데 이제 숲으로 천천히 오르는 길로 180도 꺾였다.

길가에 핀 봄나물은 여느 아낙을 불러 모아 길섶에 쪼그리게 만들었다.
실제 나물 뜯는 분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는데 나물이 나와서가 아닌 나물 뜯는 풍경이 더욱 봄을 실감케 했다.

길은 막무가내로 밀고 뚫고 밟는 게 아니라 다가서고 비켜섰다.
실제 이렇게 꺾이는 부분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는데 작은 숲에 무척 잘 어울려 미르숲에 충분히 용해되어 있었다.

틈틈이 봄꽃이 고개를 내밀었다.
미르숲으로 오르는 동안 진달래 군락지가 크거나 많은 건 아니었지만 이따금 만나는 진한 핑크빛 진달래가 어찌나 반가운지.

여기도 180도 꺾이는 길로 나무의 밀도가 낮거나 키가 낮은 곳에선 강 너머 시야도 덩달아 틔였다.

옆 동산에 천년정이란 전망대 겸 정자가 있었고, 그 아래 산벚이 드문드문 채색을 시작했다.
천년정과 미르숲 사이 경계는 초평호로 통하는 살고개였다.
천년정 일대 전망도, 거기서 보이는 전망도 예사롭지 않을 듯한데 아쉽게도 출입금지 상태였다.

미르숲길에서 천년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자리는 일반 사유지가 뒤섞여 경작지와 묘지가 있어 시야가 트였었다.

걷기 시작한 지 30여 분 지났는데 꼬이고 엮인 길의 짜임새로 방향 감각을 잃었지만 다분히 의도했던 바.

키 작은 소나무숲에서 길은 더욱 지그재그로 춤췄다.

크게 휘거나 꺾이면서 미비하게나마 산 정상의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길섶엔 여전히 겨울색 짙은 가운데 봄이 튀어나오는 흔적들이 반가운 손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완전히 접히며 꺾이는 길의 작은 틈에 소망의 탑을 세워 놓았는데 두리뭉실 사람 살아가는 흔적이라 표현해도 좋겠다.

서로 다른 길이 잠시 만나는 곳.
경사가 급한 편인데 그마저 힘들까 싶어 길은 정신없이 꺾이거나 봄소식을 보여줬고, 그래서 힘든 걸 잊었다.

거듭 꺾이는 가운데 키 작은 소나무숲에 들어서자 나무 터널 아래 봄향기와 뒤섞인 솔향이 코끝을 적셨다.

소나무숲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거의 비슷한 크기로, 또한 비슷한 밀도로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계속해서 꺾이는 사이 제법 산 중턱의 높은 지점에 도달했다.

복잡한 미르숲길이 이리저리 꼬이다 만나는 지점도 꽤 많았다.

작지만 멋진 소나무터널을 지나며 가까워진 전망대를 직감했고, 걸음걸이를 더욱 늦췄다.
얼마 남지 않은 아쉬움의 방어 기제랄까?

이정표가 있는 지점 바로 위에 미르숲 정상이자 전망대가 보였다.
길은 2갈래, 어느 길로 가든 전망대에 다다르겠지만 좌측으로 살짝 우회하는 길 대신 멀리 돌아서 가는 우측길로 향했다.

길은 유연하게 휘돌아 조금만 걸으면 미르전망대가 나올 터, 상대적으로 멀리 돌아가는 대신 완만한 오르막을 걸으며 이제 곧 맞이할 정상이자 전망대로 접근했다.

전망대에 도착, 정상엔 너른 공터로 미르숲 내 작은 공원이 하나 더 이식되어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었다.

좌측의 완만한 길로 올라 최종적으로 정상에 도착한 전경.

전망대에 서면 낮은 언덕이 무색하게도 많은 걸 보여줬다.

2020년 2월, 코로나 팬데믹 때 찾은 이후 진천은 오랜만인데, 당시 초평호 한반도 전망대를 오른 만큼 미르숲 바로 옆 초평호 너머 한반도전망대도 충분히 조망가능했다.

반갑다, 진천아~

 

떠 있는 한반도를 찾아서, 초평호_20200211

금강과 그 지류를 통틀어 무주와 함께 가장 멋진 절경을 품을 수 있는 곳이 다음 여행지인 진천에 있었다. 아산에서 수월하게 이동하여 이곳 초평호에 도착하자 전형적인 시골마을의 평화로운

meta-roid.tistory.com

전망대에서 앞이 트인 북쪽을 바라봤다.

멀리 진천의 광활한 평야와 좀 더 가까이 두 개의 산 사이를 스치며 지나가는 중부고속도로, 그리고 인척 산능선의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일대 천리안인 농암정이 자리 잡았다.

미세먼지로 대기는 조금 혼탁했지만 여정에 있어 변화무쌍한 자연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라 그 자체로도 즐기면 그만이었다.

아주 가끔 달달한 커피가 땡길 때 찾는 바리스타 룰스는 커피와 초콜릿의 절묘한 궁합이 입안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10년 동안 트레킹 동반자가 되어준 백팩은 요즘 나오는 나일론 직물과 달리 독특한 패턴으로 엮어 매우 질긴 가방인데 이제는 이런 재질의 백팩을 구경할 수 없어 가벼운 트레킹이나 도보 여정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잇템이었다.

이렇게 전망대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며, 그 앞에 펼쳐진 작은 세상은 가슴에 담고, 계절은 코 끝에 담았다.

농다리를 건너 첫 휴식인 만큼 충분히 취한 만큼 어느 정도 기억에 조각한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걷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선택해서 걷기 시작했다.

임도는 초평호로 내려가는 길로 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폭이 좁은 미르숲길과 달리 비교적 폭이 넓고 노면도 상대적으로 매끈했으며, 꺾이거나 굽이굽이 산허리를 사행하지 않고 크게 휘며 질러가는 길이었다.

초평호로 향한 걸음을 내디딘 임도.

임도는 현대모비스 자연생태교육관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임도로 내려오는 길에 일련의 진달래 무리와 잠시 동행했다.

미르숲길보다 더욱 한적한 임도는 내려오는 동안 딱 한쌍의 중년 부부만 마주쳤을 정도로 정말 한산했는데 그분들 또한 진달래 군락지를 배경으로 연신 감탄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 없었다.

현대모비스 자연생태교육관은 반듯한 외형의 건물이었지만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상태였고, 다만 봄꽃과 새로운 싹이 텅 빈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여전히 겨울의 잔해가 짙은 가운데 봄의 흔적들은 미약했음에도 시선은 빼앗길 수밖에 없을 만큼 생동감과 더불어 단조롭던 땅에 경쾌한 자연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봄의 컬러는 항상 어리며, 그래서 순수했다.

미르전망대에서 내려와 현대모비스 자연생태교육관에 다다르자 바로 옆, 넓게 트인 초평호의 위용이 한눈에 드러났다.

여기서부터 초평호반에 너른 길 따라 야외음악당, 살고개, 초롱길로 향하며, 낮게 틀어놓은 음악의 볼륨을 조금 키워 한적한 길을 걷는 자유를 좀 더 확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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