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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기를 반추하다, 거운분교_20200204

어라연을 다녀온 뒤 생각보다 넉넉한 시간을 활용해 잠시 들렀다 옛생각으로 회상에 젖었던 정겨운 교정. 정문에 들어서자 어릴 적엔 그토록 넓던 운동장이 어느샌가 손바닥만하게 느껴졌다. 원래 그 자리를 지키던 학교가 줄어들리 없으니 내가 인식하는 극치가 올랐다고 봐야겠지. 교문을 들어서서 좌측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어릴 적 주머니와 신발을 가득 채우던 모래밭이 나온다. 교문 우측에 넓고 편평한 자연석으로 된 벤치가 있다. 앉아 보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고 몸을 맡긴 해 잠시 사색에 잠겼다. 평균대라고 하나? 올림픽 체조 선수를 따라 한답시고 많이도 깡총거렸던 평균대가 급격히 좁고 위태로워 보였다. 그 평균대의 쇠락처럼 하루도 쇠락하여 해가 잦아들며 뜨거운 석양이 마지막 혼신을 태우고, 이내 찾아올 시골 밤에..

깊이 숨은 보배, 영월 어라연_20200204

거두절미하고 영월 시내에서의 목적인 끼니를 해결한 뒤 곧장 시내를 빠져나와 마음에만 두고 있던 어라연으로 향했다. 제 집 드나들 듯 영월은 참으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연고도, 지인도 전혀 없던 영월을 찾게 된 건 근래 몇 년 전부터의 인연인데, 물론 문화 컨텐츠의 파괴력을 익히 잘 알고 있어 영화 라디오스타를 통해 내겐 영월이 스타와도 같은 곳으로 실제 환상이 깨지는 사태를 겪고 싶지 않아 정선, 태백 가는 길에 필히 거치는 길목임에도 의도적으로 들리지 않아 환상의 신선도는 꽤나 오래 버텼다. 결국 영월에 목적을 두고 첫 발을 들인 건 2015년 가을부터 곳곳을 누비며 다녔고, 숨겨진 비경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정선으로 가는 길목이자 접근성이 좋아 큰 마음 먹지 않아도 이제는 만만한 싹이 되어..

하얀 하늘숲길을 거닐다_20200203

원래 계획되었던 하늘숲길은 기존에 출발점으로 삼았던 화절령과 만항재가 아닌 두 고개 사이, 하이원CC 인근에서 화절령 방면으로 출발했다. 서울 수도권은 코로나19로 인해 심리적으로 잔뜩 위축되어 마스크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고 바깥 외출은 극도로 기피하는 것과 달리 여행 떠나온 3일 동안 강원도 일대는 마스크를 끼지 않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고, 식당 같은 곳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하등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나를 포함하여 지나가는 몇몇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녔다. 코로나 관련 뉘우스가 나오면 강원도는 괜찮다는 주변 이야기도 드문드문 들리는 걸 보면 아직은 경각심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구나 싶은데 평소 서울 수도권에서 정선 사북/고한으로 오는 여행객이 많았던걸 대비해 보면 지금은 여행객..

포근한 둥지로_20200202

이른 시간에 파크로쉬로 돌아와 저녁을 기다리던 중 주변을 둘러 보다 이색적인 것들을 만났다. 산중 추위는 서울의 추위와 비교할 수 없이 매섭지만 공기 내음이 향그롭다. 그래서 잠깐 둘러본다고 옷 매무새를 허접하게 꾸렸던 후회도 들었지만 적막을 뚫고 타오르는 불꽃들이 온기를 대신 채워줬다. 우선 숙소에 들러 편한 옷차림으로 변신하고 창밖을 내다봤다. 실제 가리왕산의 위용은 거대하다. 처음 여길 왔을 때 창 너머 가리왕산자락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을 뱉었더랬지. 우측이 서편 가리왕산 정상 방면이라 그쪽으로 해가 지고 땅거미도 진다. 파크로쉬에서 볼 수 있는 야경들 중 진짜 불도 있다. 장작 대신 석탄인데 첨엔 진짜 불인가 싶어 다가섰다 온기를 느끼고 잠시 눌러 앉았다. 불을 보고 있자니 문득 미스터션샤인의..

추억 속 간이역의 출발이자 종착지, 정선역_20200202

기차역의 낭만을 보고 싶거들랑 정선역으로 가야된다. 막연한 그리움, 기대와 설렘. 기차역은 예나 지금이나 특유의 감성은 변색되지 않는다. 곡선의 철길은 직선화 되면서 의도와 결과만 중시되지만, 기차역은 문명의 혁명에도 결국 건재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처음 정처 없이 기차 여행을 떠나 도착한 곳이 정선역이라 몇 년 동안 기억을 고스란히 숨겨둔 채 애써 외면했던 진실은 봄의 기지개처럼 견고한 땅을 비집고 나오듯 어쩌면 나는 정선역이 변화하지 않길 바랬지만 발아하는 호기심을 막을 순 없었다. 시간의 흔적이 완연하지만 묘하게도 수채화 같은 추억의 담담한 행복은 어떤 상흔도 없다는 걸 확인한 게 뜻 밖의 수확이랄까? 시간의 이야기가 그토록 많던 간이역은 대부분 사라지고, 기차의 정취도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그립고 그리운 망부목, 몰운대_20200202

구름에 빠진 채 풍류를 읊고 싶은 곳. 사실 몰운대는 벼랑 위에 섰을 때보다 벼랑 앞 멀직이 떨어졌을 때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다만 벼랑 위는 섞어 문드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 모습을 지키는 고사목의 자태가 절묘하기에 어쩌면 세상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고,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아찔한 절벽 위 서면 상상이 더해져 신비감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숙소에서 출발할 때 동강 칠족령을 감안했었는데 겨울이면 가뜩이나 위태로운 길이 더욱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 급작스레 운전대를 돌렸고, 그 때 문득 절벽 위에서 지독한 그리움에 얼어 버린 고사목이 떠올랐다. 그와 더불어 몰운대 가는 길목에 지나는 이들의 마음을 훔치는 소금강까지 인접해 있으니 동강 칠족령를 가지 못한 아쉬움에 충분한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세 번째 방문, 여전한 밤_20200201

세 번째 방문하는 파크로쉬는 개인 취향이긴 하지만 편안한 분위기에 몇 가지 특징적인 것들로 인해 이번에도 선택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시설로 따지면 꽤나 고급스럽고 분명한 컨셉을 지니고 있어 주말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사실 단순하게 고급스럽다는 표현보다 차분하고 단아한 고급스러움이랄까? 게다가 정선이란 지역 특색이 버무려져 위치에 대한 아우라도 무시할 수 없다. 허나 방문 횟수에 비례해 청결에 점점 균열이 생긴다. 루프탑에서 내려다 보면 나름 주변이 화려하다. 가리왕산자락 알파인스키 코스가 암흑에 파묻혔지만 낮이 되면 가리왕산의 위세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주말 저녁에 정선을 왔건만 여기라고 미세 먼지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자욱한 먼지층에 밤하늘 별들은 자취를 감추고, 그 휘영청 밝던 달은..

적막 가득한 부론에서_20200117

부론에 도착한건 자정이 가까워진 꽤 늦은 시간이었다. 가뜩이나 일찍 찾아오는 시골 밤에 더해 부론 외곽에 있는 한강변은 말끔한 산책로의 모습과 달리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데 이 늦은 시각이면 사람은 고사하고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도 반가울 지경이다. 흥원창에 자리를 잡고 삼각대를 펼쳐 카메라를 작동 시켰지만 무엇보다 이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오래 전부터 힐링하는 나만의 은밀한 몰취향인데 오랜만에 온 반가움이 배가 되어 겨울 추위조차 느낄 수 없었다. 3개의 강이 이 부근에서 만나는데다 수도권의 젖줄인 한강이란 의미만으로도, 또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한적하면서도 시야가 탁 트인 전망을 생각하면 이 자리를 동경하는 건 이제 습성이 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여주를 찾은 건 ..

평온의 호수_20200111

망해사를 벗어날 무렵 해는 벌써 서쪽으로 제법 기울었다. 그만큼 망해사에서 오래 머물렀다는 건가? 익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망해사로 오면서 큰 호수를 눈여겨 봤고,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리겠노라 점 찍어 놨는데 그러길 잘 했다. 위성지도로 본 호수의 모양도 특이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여길 리조트 단지로 조성하려 했는지 출입이 금지된 유람선형 숙소와 카페가 있다. 호수 위로 뻗어 나온 가지에 까마귀가 빼곡히 쉬고 있는 모습들이 쉽게 포착되는데 언젠가 김제에서 만난 거대 까마귀떼가 이렇게 흩어져 쉬고 있다는 거다. 뜨거운 석양과 어울려 온통 출렁이는 금빛 세상을 연출하고 있는 가운데 그 길목에 나무처럼 멈춰진 장면 또한 장관일 수 밖에 없다. 호수가엔 말끔한 주차장이 많고 특히나 호수 서북편 근린공원에..

바다를 향한 그리움, 망해사_20200111

점심을 해결하고 미리 훑어본 지도의 잔상을 따라 찾아간 곳은 만경강 하구의 정취를 지대로 누릴 수 있는 망해사다. 가는 길은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김제평야의 드넓은 평원을 한참 지나 바다와 맞닿을 무렵, 도로에서 한적한 우회길로 빠지자 작은 언덕을 넘어 한눈에 평원과 그 평원을 가르는 만경강이 들어찼고, 그 길이 끝나는 지점이 바로 망해사였다. 망해사는 여느 사찰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요지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 한적함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적과 문명의 소음이 없었고, 사찰 한 가운데 도드라지게 자리 잡은 나무의 위세는 다른 모든 시선을 잡아 끌기에 충분했다. 사찰에 가면 흔히 접할 수 있는 석탑이나 종은 나무를 위해 존재하는 한시적인 동반자 같았고, 평원을 가르는 만경강은 이 자리에 서 있는 심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