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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 현실과 전설의 교합, 경주 해파랑길_20240115

봉길해변을 뒤로하고 해파랑길을 따라 걸었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이어 구축한 총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750km의 걷기 여행길입니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이며,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을 뜻합니다 [출처] 해파랑길_두루누비 해파랑길 소개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바다와 함께하는 해파랑길 www.durunubi.kr:443 원래는 나아해변부터 해파랑길 11코스의 시작이었지만 무조건적으로 해파랑길을 추종하는 게 아니어서 언덕길로 이어진다면 그 길을 살짝 벗어나더라도 도리어 해변을..

겨울 갈매기 파도, 봉길대왕암_20240115

그나마 종종 찾던 감포 대왕릉은 그마저도 90년대 후반이었고, 초기엔 행정구역상 감포가 경주란 것도 모른 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당시 뻔질나게 만나던 친구들과 어울리며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다면 누구 하나 반문도 없이 기계처럼 감포 대왕암 해변에 무작정 찾았고, 차를 갖고 있던 녀석 또한 타산적인 감정 없이 스스로도 감포 여정을 즐겼다. 그런 대왕암 해변에 꽤나 빈번한 추억을 심었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나 버렸고, 그 길목에 암초와도 같았던 덕동호반 구부정길을 우회하여 매끈한 945 도로가 새로 들어섰다. 아침에 무중력과도 같은 가슴을 추스르고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타고 봉길해변에 도착하자 주차장엔 의외로 많은 차들이 주차 중이었는데 나처럼 겨울 바다의 뚝배기 같은 매력을 담으려는 사람들..

아쉬운 불발, 영월관광센터와 청령포_20231120

단종의 슬픔으로 점철된 청령포는 무거운 초겨울 공기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육지 속의 섬이 아닌 땅의 기운이 근육처럼 불거진 그 배후의 지세가 특이한 명승지였다.월요일 아침부터 청령포를 오가는 배는 분주하게 강을 횡단하며 뜀박질하는데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이 작은 세상엔 눈을 뗄 수 없는 것들이 곳곳에 은폐 중이다.모노톤의 딱딱한 벽엔 인간에게 친숙한 생명들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크게 굽이치는 서강의 온화한 물결엔 바다로 향한 서슬 퍼런 집념이 웅크리고 있었다.조선 초기엔 한이 서린 유형지로, 현재는 한강이 되기 전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지리적 부표, 청령포에서 작은 울림의 노래를 들으며 다음 만날 곳으로 떠났다.청령포라는 지명은 1763년(영조 39년)에 세워진 단종유지비에 영조가 직..

원시적인 해안길을 찬양하며, 호미반도 해안둘레길2_20230508

길은 오직 하나를 위한 이기적인 상형문자가 아니다. 앞서 바다와 인간 사이 교묘한 교착점이 길의 화두였다면 구룡소 일대 길은 야생의 바다에 인간의 발자취가 잠시 후퇴한 길이면서 회피하지 않고 내륙으로 잠시 숨을 고르며 끊임없이 기회를 포착했다. 그리하여 강인한 바다가 잠시 한숨 쉬는 틈바구니에 어촌 마을을 들여 환경에 동화하고 삶을 일궜다. 기암절벽에 용이 웅크린 채 바다에 화답하듯 포효의 저역이 메아리치며 하얀 물거품이 용솟음쳤다. 그 어느 곳보다 평온한 대동배 마을을 끝으로 해안둘레길 3코스인 구룡소 길은 작별의 약속을 이행함과 동시에 기나긴 해안둘레길도 종지부를 찍기 위해 서둘러 단장했다. 둘레길여행 퐝퐝여행 홈페이지 둘레길여행 바로가기 www.pohang.go.kr 절벽이 만들어준 그늘 아래 한숨..

파도와 동행하는 시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1_20230508

호미반도를 에둘러 인간의 자취는 선명했다. 비바람의 예봉이 꺾인 이튿날에 해안둘레길을 다시 도전, 다행히 자연이 허락을 해주고 길을 내준 날이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도구해수욕장 부근에서 시작하여 1구간은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까지 6.1km, 2구간은 흥환간이해수욕장까지 약 6.5km, 3구간은 대동배까지 6.5km, 마지막 4구간은 호미곶 해맞이광장까지 5.6km로 총 24km가 넘는데 2~4구간까지만 걷기로 했다. 2구간은 선바우길이라 명명하는데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 주차한 뒤 사전 설명과 더불어 틈틈이 나오는 이정표를 따라 다양한 형태의 길을 이용해서 걸었다. 해안둘레길 답게 길은 대부분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아슬하게 넘나들어 때론 파도에 신발이나 바짓가랑이가 젖을 수 있다는 걸 감내해야 했다..

거친 비바람 속 영일대 해변과 전망대_20230507

바다가 거칠다고 하여 주눅 들지 않았다. 바다를 막는 구조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파도가 거칠다고 한들 해변의 모래는 익숙한 고난이자 일상이며, 바람이 표독하다 한들 인간은 극복의 대상이자 삶의 필연이었다. 낯선 도심 산책으로 익숙한 찰나의 시간을 즐겼다. 영일대 해상누각은 1976년 개장하여 포항 시가지에서 접근성이 좋고 해안가에 형성된 식당, 카페 등 상점가가 있어 낮과 밤 모두 즐기기 좋은 포항의 대표 해수욕장 중 한 곳이다. [출처] 영일대 해상누각_오선지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을 다녀온 뒤 숙소에 들어와 바람이 가득한 세상을 창 너머에서 무심히 바라봤다. 세찬 바람에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그래서 용기 내어 외출 준비를 했다. 파도가 부서진다는 게 저런 걸까? 부서..

설화가 잠든 바다 폭풍 언덕, 연오랑세오녀 공원_20230507

멀리 포항까지 찾아온 이유,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걷기 위해서다. 허나 태풍급 바람에 굵은 빗방울은 해안둘레길은 고사하고 외출도 쉽게 허락하지 않아 아쉬운 대로 공원 뒤편 언덕과 테마공원의 사연 정도만 취득하며 바다 정취를 한아름 따다 품에 간직했다. 연오랑세오녀는 신라시대 설화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단다. 동해 바다 바람과 비를 맞으며 잠시 걷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닌 고로 동해의 선물이라 간주하며 다음을 기약하자. 이야기가 가득한 하루를 열기 전, 아점 메뉴를 고민하다 숙소 뒤편에 소위 집에서 말아먹는 국숫집에 들러 김밥을 곁들여 주문을 했는데 운영하시는 분이 장년의 여성분으로 깔끔하고 단아한 식당 내부와 더불어 마치 집에서 먹는 국수 같았다. 그리 강하지 않으..

일상_20230314

하루의 시작, 자글자글 봄의 아지랑이처럼 차가운 새벽 동녘 마루에 피어오르는 노을을 보며 문득 스스로에게 숙연한 위로를 건넨다. 불과 10분도 되지 않는 찰나 같은 자연 경관을 볼 수 있는 건강한 영혼에 대해 효능감을 망각하며, 지금까지 얼마나 엄격하고 인색했던가. 잘게 부서진 노을 따라 눈은 차갑고 가슴은 따스한 어느 봄날 새벽이다. 찰나의 단잠처럼, 순간의 유희처럼 그렇게 검푸른 새벽하늘에 노을이 젖어들어 따스한 하루의 포문을 연다.

태백의 일기, 철암_20221109

그리 긴 세월의 향연도, 그리 머나먼 과거도 아닌데 까마득한 건 망각의 영역에 방치한 기억의 단절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고, 더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허나 옛 정취는 모두 자물쇠가 물려 있었고, 재현된 영광엔 그리 신선할 것도 없었다. 아마도 직접적인 추억이 없어 정취의 발 담그기에 그친 부분도 있겠지만, 옛 정취 재현이 마치 불친절하고 무관심한 것도 미화해서 받아들일 거란 불성실한 부분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꽈배기 한 손에 잡고, 산골 싸늘해진 바람에 의지해 호호 불어 먹는 커피는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흥얼대는 몰입감 이상으로 재밌었는데 산골 낮은 언제나 짧다는 불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철암탄광역사촌은 철암역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2014년에 탄광지역 생활현장 보존·복원사업의 일..

가을 젖는 반계리 은행나무_20221011

시대의 순응과 시간에 대한 평온이 800년을 버티게 한 원동력일 수 있겠다. 나무의 껍질을 빌려 세상을 유유자적하는 신선 같은 존재, 원주 거돈사지 느티나무와 함께 생명의 그늘이라 불러도 그 표현이 모자를 숭고한 존재 앞에서 가을 향연에 물들었다. 거대한 시간 앞에서, 반계리 은행나무_20200912 찾는 이 없는 고요한 시골마을을 지나며, 그 적막한 울림에 잠시 기댄다. 지나는 이도, 마을 인가도 거의 없는 외딴 깊은 산속 마을처럼 수풀이 무성하고, 바위 틈틈 이끼가 자욱하지만, 그렇더 meta-roid.tistory.com 천년 사찰의 흉터, 원주 법천사지와 거돈사지_20201015 벌판에 덩그러니 움튼 잊혀진 시간들. 전쟁의 상흔과 희생의 파고에 제 한 몸 지킬 수 없었던 치욕은 기나긴 시간의 빗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