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22

한강 야경 너머 워커힐_20211210

선물은 받았으니 한 해가 바뀌기 전에 써먹어야 되겠다 싶어 시험 교과목을 잔뜩 싣고 인덕원에 잠깐 들러 서면 자료만 번개처럼 건네주고 곧장 워커힐로 방향을 잡았다. 초저녁 시간대라 인덕원에서부터 워커힐까지 도로는 거의 주차장 수준이었는데 광장동에 도착할 즈음엔 비교적 시간이 지나 차라리 저녁 식사를 해결하자는 심산에 워커힐에 들르지 않고 곧장 구리로 향했고, 43번 국도는 어느 순간부터 탁 트여 신나게 밟던 차 2016년인가? 지나는 길에 들러 식사했던 기억을 더듬어 찾자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내부에 들어갔을 때는 딱 1 테이블만 손님이 있어 비교적 썰렁했는데 회상하며 왕돈까스를 시켜 급 허기진 속을 채웠다. 90년대에서 밀레니엄으로 넘어오는 시기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돈까~스 클럽. 지나는 길에 ..

애잔한 강물의 흐름처럼, 아우라지_20210303

더 이상 철마는 달리지 않지만 시간이 견고히 다져놓은 철길엔 레일바이크가 지나며 간이역처럼 잠시 머물러 아직도 식지 않은 추억의 향수를 심어 놓았다. 지금은 비록 두터운 눈에 덮여 있지만 이 길이 섞어 문드러지지 않는 한 출렁이는 바퀴는 철로에 의지한다. 설경 위에 서린 평온. 레일보다 더 높이 쌓인 눈을 밟으며 이리저리 오가는데 초소에서 한 사람이 나와 뭐라고 소리친다. 뭐라는 겨?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조만간 열차가 지나가니까 조심하란 게 아닐까? 과거엔 이 철길이 주인공이었지만 지금은 은퇴하고 레일바이크를 위해 가끔 달리는 귀여운 열차로 재탄생했다. 애틋한 심정을 아리랑에 녹여낸 정선아리랑의 고향이자 두 강이 바다를 향한 갈망으로 함께 어우러지는 두물머리가 아우라지란다. 전설과 민담은 괜한 투정이나..

떠나지 않은 겨울의 끝, 검룡소_20210301

이른 오후까지 내리던 비가 어느새 따닥따닥 소리가 나서 허리를 낮추자 동글동글한 얼음 알갱이로 변신했다. 강원도 고지대는 눈이 올 수 있다는 예보를 미리 접하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 싸락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자 발걸음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다. 허나 눈에 보이는 얼음 알갱이가 보석처럼 반짝이며 아름답다. 고생길은 차치하더라도. 검룡소에 오는 날엔 꼭 눈을 만난다. 처음 왔던 가을에 그랬고, 작년 4월 중순 봄(한강의 세상 만나기, 검룡소_20151128, 평온의 눈이 내리는 검룡소_20200412)에 그랬으며, 이번 또한 마찬가지다. 초입에서 맞이하는 세찬 바람 또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변함없고, 검룡소에 도착하여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이중적인 얼굴 또한 마찬가지. 겨울은 떠날 채비를 하지 않았는데 이..

평온의 눈이 내리는 검룡소_20200412

5년이란 시간이 흘러 같은 장소가 어떻게 변했을까? 급작스런 눈발이 복병이 아닌 환대의 징표라 자화자찬 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아닐 만큼 쏟아지는 눈이 연출한 세상은 묘한 추억의 반추를 표류하게끔 포근한 포용을 발휘했다. 함백산에서 내려와 주저 없이 검룡소로 향하는 길은 간헐적 눈발이 날리긴 했지만 쌓일 만한 양도, 기온도 아니라 이동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검룡소 입구에 도착하자 앞서 방문했던 시기와 달리 입구는 꽤 너른 테마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던 반면 세찬 바람이나 텅 빈 입구는 변함없었다. (한강의 세상 만나기, 검룡소_20151128)차에서 내리기 전, 우산을 챙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괜한 갈등을 때리다 행여 함백산처럼 폭설이 내리지 않을까 싶어 우산도 챙겨 천천히 걸어갔다. 검룡소..

정적 짙은 파사산성_20190524

파사산성은 막국수로 유명한 여주 천서리와 순대가 유명한 양평 개군면 경계에 위치한 작은 산성으로 남한강이 지나는 지리적인 이점 덕분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올라도 전망이 굿이다.전국 곳곳을 다녀 보면 의외로 찰진 만족을 주는 숨겨진 여행지가 많고, 알려지지 않은 만큼 고요한 환경에 힘입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파사산성 또한 그런 범주의 여행지인데 세마대 독산성과 비슷해서 같은 고장 사람이라면 식상한 동네의 명승지 정도일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난 여행자고 생애 처음 밟는 땅이라 알려지지 않은 명승지다.천서리를 지나 남한강을 따라 양평 방면으로 조금만 더 진행하면 이포보 부근 대신석재가 있는데 거기 텅빈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비교적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얼마 걷지 않아 쉽게 산성의 성곽이 눈..

너그러운 남한강에 기대어_20190524

이튿날 커튼을 열어 젖힘과 동시에 강렬한 햇살이 사정없이 실내로 넘쳐 들어와 호텔방 안을 가득 채웠다.전날 밤 늦게 도착해서 창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을 때 자욱한 가로등 불빛에 호텔 옆 주차장과 공원만 비추며 활기가 넘쳤는데 낮이 되어 밖을 보자 익숙하던 공원을 비롯하여 밤에는 쉽게 보이지 않던 잔잔한 남한강과 그 건너 신륵사, 그 너머 광활한 여주의 평원까지 여지 없이 보인다. 남한강과 공원이 만나는 지점에 나루터가 있고 연이어 캠핑장이 촘촘히 박힌 너른 유원지가 펼쳐져 있는데 아침부터 워낙 따가운 봄햇살이 내려 쬐여서 그런지 인적이 거의 보이지 않고, 신록만 흥에 겨운 전경이다. 썬밸리 호텔에 자리 잡은 워터파크는 아직 뜨거운 여름 시즌이 오기 전이라 텅비어 있는 그대로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로..

여주에서 만난 야경_20190523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남한강변으로 차를 몰아 여주 시내가 보이는 한강의 너른 고수 부지에 산책을 하며 야경을 즐겼다.산책로를 따라 느긋하게 걷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이지만 그 길을 버리고 강 가까이 비포장길을 걸으며 마땅한 데를 찾아 간이 의자를 펼치고 야경을 감상하는데 때가 때인 만큼 날벌레들이 가느다란 빛을 보고 모여 들었다.장노출할 의도라 비교적 긴 시간 머무르며 셔터를 노출 시켜 둔 채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문명의 빛을 바라보는 내내 평온한 기분이다.크게 화가 날 일도, 함박 웃음을 터뜨리던 일도 단편적으로 파편화된 기억 마냥 떠오르지만 당시와는 달리 감정의 동요가 일지 않는 걸 보면 순간의 감정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한 게 아닌가 싶다.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닌 일에 본질을 잊고 팔팔 끓어 ..

숨겨진 아름다움, 영월 만경사 가는 길_20190422

첫 목적지 망경대산으로 가는 길은 곳곳에 도사리는 봄 물결이 발목을 붙들어 가는 길이 쉽지 않다.분명 몇 년 전에 비한다면 도로는 산을 뚫고, 강을 넘어 쉽사리 첩첩한 산골로 이어져 수월해 졌지만, 시선에 미련의 덫을 놓는 봄 운치로 체증이 심한 도로를 힘겹게 전진하는 품세다.이미 다음 봄을 기약하고 떠난 봄의 전령사들이 북녘으로 넘어 가기 전 이 골짜기에서 긴 여정을 위해 한숨을 고르며 쉬고 있나 보다. 영월 시내를 지나 남한강이 흐르는 협곡에서 양 옆 산세에 널려 있는 봄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어느 정도 달리다 고씨동굴 조금 못 간 지점 베리골 교차로 버스정류장에 잠시 차를 세워 놓고 사진 몇 장을 찍는데 햇살이 워찌나 따가운지 홀라당 익는 줄 알았다.전형적인 봄이라고 하기엔 약한 더위를..

청풍리조트 레이크호텔_20190421

산책로와 야경, 호수 전망이 절묘하게 앙상블을 이룬 호텔이라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이용, 아니 애용해 왔던 레이크 호텔은 낡은 시설에 비해 이 정도면 관리가 잘 되었다.비록 회사 복지프로그램 덕에 부담 없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자리를 별로 가리지 않아 전망 좋고, 조용해서 딱! 내 스타일이다.음악을 동행시켜 잠시 야경을 밟는 느낌이란 씹을 수록 단 맛을 꾸준히 뽑아주는 칡뿌리 같다고나 할까? 숙소에 짐을 풀고 스피커와 카메라만 챙겨서 나와 호텔 뒷편 호숫가 산책로를 찾아 전망 좋은 팔각정에 자리를 잡았다.깜깜한 밤이라 뚜렷한 전망을 기대하기 보단 넓고 잔잔한 거울 같은 호수 주변에 불빛을 뿜어 대는 형형색색 등불이 호수에 잔잔히 반영되는 전망은 가히 일품이다.호숫가 특성상 날벌레들이 벌써 눈에 띄지만 ..

산이 품은 호수를 날다, 청풍 케이블카_20190421

퇴근 후 뒤돌아봄 없이 곧장 고속도로를 경유해 남제천IC를 거쳐 청풍호에 다다랐다.연일 미세 먼지의 습격이란 내용이 빠지지 않는 가운데 신념을 달랠 순 없기에 계획대로 강행을 했고, 칼을 뽑았으면 돼지 감자라도 잘라야 되는 벱이다 싶어 미리 예약한 숙소의 체크인도 잠시 미뤘다.비록 제천에 터전을 잡고 있는 청풍호와 석양이 뿌옇게 바래도 가슴에 새겨진 기억을 뒤덮을 수 없듯 정교하게 새겨진 이 아름다운 기억에 기대어 먼지는 잠시 눈을 무겁게 하는 졸음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모노레일의 마감 시각이 좀 더 빨라 케이블카 운행 시각을 맞추기 위해 부랴부랴 서둘렀고, 다행히 넉넉하지 않지만 케이블카를 이용해 늘 지켜 보기만 했던 비봉산에 오를 수 있었다.크리스탈 버전의 케이블카에 몸을 맡기고 바깥 풍경을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