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여주에서 만난 야경_20190523

사려울 2019. 9. 4. 01:00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남한강변으로 차를 몰아 여주 시내가 보이는 한강의 너른 고수 부지에 산책을 하며 야경을 즐겼다.

산책로를 따라 느긋하게 걷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이지만 그 길을 버리고 강 가까이 비포장길을 걸으며 마땅한 데를 찾아 간이 의자를 펼치고 야경을 감상하는데 때가 때인 만큼 날벌레들이 가느다란 빛을 보고 모여 들었다.

장노출할 의도라 비교적 긴 시간 머무르며 셔터를 노출 시켜 둔 채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문명의 빛을 바라보는 내내 평온한 기분이다.

크게 화가 날 일도, 함박 웃음을 터뜨리던 일도 단편적으로 파편화된 기억 마냥 떠오르지만 당시와는 달리 감정의 동요가 일지 않는 걸 보면 순간의 감정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한 게 아닌가 싶다.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닌 일에 본질을 잊고 팔팔 끓어 오르는 냄비처럼 화력 조절에 신경을 쓰지 못했을까?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이 순간의 감정으로 일시에 무너져 물거품이 된 일들이 종종 있었다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될 터, 그럼에도 이성보다 감정에 충실해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적막의 테두리 안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남한강을 바라 보는 동안 거울 삼아 자신을 돌아 볼 계기가 되었다.

여행과 자연은 아무런 말이 없건만 일상을 등지는 몰입감을 통해 늘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렇게 강변을 느리게 산책하거나 앉아 사색하는 사이 시계 바늘은 이미 밤 9시를 훌쩍 넘겨 하나둘 불이 꺼지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곤 마지막으로 22까지 잔뜩 옥죄어 놓고 딴전을 피우는데 불꽃 놀이가 시작, 재촬영에 들어 갔지만 처리 속도는 10분을 넘겨 어느새 불은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굼뜬 모습을 보일 때 바디를 확 바꾸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만 돌아서면 잊어 버린다.

장노출이 아니라면 굼뜬 모습을 보일 때가 거의 없어 그만큼 불편을 느낄 겨를 없었거든.





빠듯한 노상 주차장에 몇 바퀴를 돌아 겨우 주차를 하고 시장에 도착했지만 이미 파장 분위기에 포장 마차 대부분은 자리를 접어 버렸고, 마땅히 식사를 해결할 곳도 없었다.

한국 사람이라 밥이 그리도 땡겼건만 별 수 없이 빵으로 배를 불릴 수 밖에.

돌아 나오는 길에 난전을 접는 포장 마차에서 한글 고구마빵을 넉넉히 구입 했는데 마지막 손님이라며 더 챙겨 주시는 분의 고마움과 달리 턱 밑까지 차오르는 갈증에 금새 물려 버렸다.





미리 예약한 썬밸리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 전망 좋은 방으로 배정해 준다.

베란다에 나와 환하게 켜놓은 가로등과 달리 텅빈 공간의 정적과 남한강까지 아우르는 넓은 전경에 취해 몽환적인 여주의 밤을 맞이했다.

여주가 가까운 건 내게 있어 행복이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여주를 난 왜 그토록 좋아할까?

단순히 성스러운 성자들의 흔적이 있다거나 무뚝뚝한 수도권의 젖줄인 한강이 유유히 흐른다거나 온화한 지역민들의 품성과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3도의 관문이기 때문이다,는 개뿔~

위에 열거한 건 사실이지만 극히 내 주관적인 의미로만 호감에 넘쳐 그런게지.

2004년에 첫 발을 들인 이후부터 차곡히 쌓아온 추억들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끄집어 낼 수 있는 지척에 있고, 그런 곳이 많은 사람들로 부터 아직 크게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한강의 야경은 다른 날보다 참으로 고요하고 우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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