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너그러운 남한강에 기대어_20190524

사려울 2019. 9. 4. 23:52

이튿날 커튼을 열어 젖힘과 동시에 강렬한 햇살이 사정없이 실내로 넘쳐 들어와 호텔방 안을 가득 채웠다.

전날 밤 늦게 도착해서 창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을 때 자욱한 가로등 불빛에 호텔 옆 주차장과 공원만 비추며 활기가 넘쳤는데 낮이 되어 밖을 보자 익숙하던 공원을 비롯하여 밤에는 쉽게 보이지 않던 잔잔한 남한강과 그 건너 신륵사, 그 너머 광활한 여주의 평원까지 여지 없이 보인다.



남한강과 공원이 만나는 지점에 나루터가 있고 연이어 캠핑장이 촘촘히 박힌 너른 유원지가 펼쳐져 있는데 아침부터 워낙 따가운 봄햇살이 내려 쬐여서 그런지 인적이 거의 보이지 않고, 신록만 흥에 겨운 전경이다.



썬밸리 호텔에 자리 잡은 워터파크는 아직 뜨거운 여름 시즌이 오기 전이라 텅비어 있는 그대로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로 붐빌 기대만 안고 지금은 기나긴 숙면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대기에 은은히 끼어 있는 미세 먼지는 비단 오늘 뿐만 아니라 년중 내내 골칫거리로 봄철에 국한 되어 한반도를 습격했던 황사에 비하면 더욱 광범위하고 집요한 녀석이다.

그럼에도 신록은 개의치 않고 무성한 가지에 이파리를 채우는데 특히나 햇살이 강한 날이면 따가운 빛을 피해 신록의 그늘 아래는 여전히 바람살이 시원하다.

내 여행 패턴의 특징이 여름이면 깊은 동면에 빠지는 변온 동물처럼 거의 활동하지 않고 일상에 필요한 최소한의 행동만 취하다 시원해지는 가을이면 동면에서 깨어나 굶주린 녀석들처럼 촘촘한 여정을 나선다.

아마도 지금 시점이 여행의 활동이 무뎌지기 시작하며 살아가는 고장으로 행동 반경이 급격히 축소되는데 이런 패턴을 알고 있기에 짧은 여유를 최대한 활용하며 의지를 채워야만 한다.

기상과 동시에 분주해 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썬밸리호텔을 나서면 가까운 거리에 투썸 카페가 있는데 여주를 오게 되면 들리게 되는 정례화된 코스라 남한강이 훤히 보이는 창가에 앉아 감미로운 향에 잠시 넋을 맡긴다.

마음에 짙은 앙금이 있거나 잊고 싶은 기억들이 있을 때 설사 완전히 지울 수 없겠지만 한강에 버리는 상상을 통해 마음이 홀가분해 지는 징크스는 묘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강한 확신이 들어 마치 본능에 이끌리는 발걸음을 따라 어느새 이곳에 와 있게 된다.

그런 한강은 참으로 너그럽다.

유쾌하지도 않은 넋두리나 푸념을 언제나 묵묵히 지켜보고 들어 주니까.

완전히 비울 수 없지만 잠시의 수다가 기분 전환에 도움 되듯 넋두리를 떨고 나면 한층 가벼워지는 마음으로 자리를 나서게 되면 일체 잡념 없이 의도한 동선을 착실하게 더듬게 되고 그런 만큼 여주에서의 짧은 여정일지라도 자신에 대한 알찬 시간으로 꾸며져 늘 만족도가 높다.

그런 기대로 남한강을 따라 펼쳐진 길에 접어 들어 파사산성으로 거침 없이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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