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숨겨진 아름다움, 영월 만경사 가는 길_20190422

사려울 2019. 8. 27. 03:25


첫 목적지 망경대산으로 가는 길은 곳곳에 도사리는 봄 물결이 발목을 붙들어 가는 길이 쉽지 않다.

분명 몇 년 전에 비한다면 도로는 산을 뚫고, 강을 넘어 쉽사리 첩첩한 산골로 이어져 수월해 졌지만, 시선에 미련의 덫을 놓는 봄 운치로 체증이 심한 도로를 힘겹게 전진하는 품세다.

이미 다음 봄을 기약하고 떠난 봄의 전령사들이 북녘으로 넘어 가기 전 이 골짜기에서 긴 여정을 위해 한숨을 고르며 쉬고 있나 보다.






영월 시내를 지나 남한강이 흐르는 협곡에서 양 옆 산세에 널려 있는 봄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어느 정도 달리다 고씨동굴 조금 못 간 지점 베리골 교차로 버스정류장에 잠시 차를 세워 놓고 사진 몇 장을 찍는데 햇살이 워찌나 따가운지 홀라당 익는 줄 알았다.

전형적인 봄이라고 하기엔 약한 더위를 읊을 수 있을 만큼 차창을 닫으면 덥고, 에어컨을 틀자니 금새 손끝이 시린 날씨다.





주문교를 지날 무렵 한적한 시골의 후한 인심으로 지나는 객을 위한 배려가 봄볕처럼 따사롭다.

이른 더위에 쉬이 땀이 차오를 새라 잠시 의자를 내어 주며 쉬어 가란다.

살랑이는 봄바람에서 만 가지 봄내음이 물씬하다.

또한 그 길의 양 옆에 무수히 서 있는 홍매화도 아름다움을 넘어 이 공간 전체가 봄만 있을 법한 온화하고 평온한 착각이 든다.





만경사 빠지는 도로를 지나쳐 다시 차를 돌려 마을 전체가 잘 꾸며진 에밀리에 접어 들었고, 거기서 부터 하염 없는 오르막길을 타고 높이 올라 드뎌 망경산사에 도착했다.

규모는 상당히 큰 사찰인데 분명 내가 산중에서 만나던 사찰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뭐가 차이일까?

여긴 산사 사찰과 달리 박물관 같은 큰 건물이 있고, 마당에 불상 같은 게 없는데다 전원 주택처럼 모든 게 매끈하고 정갈하다.

종교적인 활동을 안해서 딱 꼬집어 뭐가 다른지 모르지만 그저 내 느낌이 그랬다.

규모에 비해 인적이 거의 없고 무척 조용한 사찰에 비구니스님들이 주변을 서성이며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데 그 마저도 엄청나게 무거운 적막으로 인해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만경사는 여기서 조금만 걸어 올라 가면 산 정상 조금 못 미치는 지점에 있어 걷기로 한다.

미리 준비해 온 빵 몇 개를 순식간에 줍줍하고 음악을 들쳐 업은 채 산길을 오르는데 별로 힘이 들지 않으면서 길가 주위에 볼 거리가 가득하다.







내가 꽃 이름을 모르니까 그냥 야생화라고 명명하지만 보이는 야생화들 종류도 많고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운 종류 조차 다양하다.

완만하고 너른 오르막길을 걷다 어느 순간 산 언저리에 걸쳐서 돌아가는 평탄한 길이 나오고 그 굽이를 따라 가자 초봄에 볼 수 있는 익숙한 꽃들이 보인다.




생강나무와 진달래는 초봄에 피는 꽃인데 적당히 높은 고도가 봄이 오는 시기를 늦춰 여기선 이제야 만개했다.

3월 초중에, 그것도 산에서 피는 생강나무 꽃이 4월 하순에 볼 수 있다니!



망경산사가 내려다 보이는 산언저리 평탄한 길, 일명 산꼬라데이길을 걷다 보면 크게 굽이쳐 만경사가 나온다.




만경사 초입엔 석상이 무수히 많고, 그 앞에 불공을 드릴 수 있는 자리도 있다.





만경사는 해발 900m 정도의 망경대산 정상과 가까이에서 가파른 산비탈에 의지해 이렇게 층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도착했을 당시 사찰은 아무도 없는 듯 눈에 보이는 사람이 전혀 없었고, 이후 사찰을 떠나 망경산사까지 내려 가는 동안에도 이따금 지저귀는 새소리와 산꼬라데이길 옆에 힘차게 흐르는 약수가 바닥에 떨어져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만경사에서 바라본 예밀리마을.



만경사 내 작은 계단을 오르다 보면 이렇게 소소한 진달래가 꽃잎을 활짝 열어 젖힌채 나를 반겼다.

쉴 새 없이 부는 바람에 마치 꽃잎을 한껏 열고 격하게 반기는 모습 같았고, 그 바람에도 꽃잎은 떨어질 기미 없이 견고하게 가지에 매달려 있다.




사찰 내부는 무척이나 조용한데 홀로 뚝 떨어진 작은 암자 같은 곳으로 걸어가 바위 절벽 위에 서자 발치에 망경산사와 예밀리마을이 더욱 또렷하게 보이고, 멀찌감치 바라보는 마을은 첩첩 산중에 숨겨진 낙천적이고 평화로운 마을 같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던가?

같은 산중에 의지한 사찰과 마을은 마치 태생이 같은 형제처럼 사이 좋게 평온과 정갈함을 유지하며 지나는 객들에 대해 그리 신경 쓰지 않지만 도중 쉽게 눈에 띄는 산중 생수를 떨구며 갈증을 해소하라는 배려도 품고 있다.

무뚝뚝하지만 세심하고 자상한 본심에 여기를 찾는 이들은 주변 절경에 눈이 머는 게 아니라 품성에 매료 되겠다.

작은 벼랑에 앉아 뜨거운 햇살에 잠시 지쳤던 기력을 회복하는 사이 산을 타고 세상을 누비는 바람이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동화시켜 주고, 첩첩 산중 머나먼 곳까지 시야를 띄워준 산세에 정감이 다독여준 힘을 얻는다.



사찰을 빠져 나와 아직 남은 여정을 위해 떠나는 길에 오래된 버스 정류장이 덩그러니 놓여 사람과 버스를 함께 기다리고 있다.

연세 드신 벽돌 정류장이지만 산사를 오고가는 버스와 그 버스를 다리 삼아 이용하는 손님들은 여기 이 자리에 앉아 얼마나 설레는 기다림에 길들여 졌을까?



떠나는 길에 뒤돌아 보고 남는 미련처럼 화사한 봄이 마중나왔다.

저 높고 가파른 산을 구불구불 휘감는 길에는 정갈하게 일렬로 서 있던 벚나무가 심심하지 않게 손짓을 해줬다.


알고 있는 이름보다 모르고 지나친 야생화들의 아름다움이 각인 되었던 여정이다.

분명 차로 이동하면서도 한 없는 오르막길로 숨이 차고, 거듭된 봄 풍경으로 벅찬 가슴이 진정될 기미가 없다.

그렇지만 도착하여 걷는 내내 피로를 잊으며 걷던 그 저미는 순간들.

깊은 산중의 유명 사찰임에도 만경사 산꼬라데이길을 걸으며 세상에 혼자 뿐인 기분이 들 만큼 어떤 인적도 느낄 수 없이 마주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또한 산의 가파른 벼랑에 기댄 사찰에서도 아무런 인기척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문명의 소음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그 텅빈 공간은 듣기 좋은 바람, 처마 끝 풍경과 또르르 굴러 다니는 물 소리만이 그득했다.

불편할 것만 같던 곡선의 길이 정겹던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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