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란 시간이 흘러 같은 장소가 어떻게 변했을까?
급작스런 눈발이 복병이 아닌 환대의 징표라 자화자찬 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아닐 만큼 쏟아지는 눈이 연출한 세상은 묘한 추억의 반추를 표류하게끔 포근한 포용을 발휘했다.
함백산에서 내려와 주저 없이 검룡소로 향하는 길은 간헐적 눈발이 날리긴 했지만 쌓일 만한 양도, 기온도 아니라 이동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검룡소 입구에 도착하자 앞서 방문했던 시기와 달리 입구는 꽤 너른 테마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던 반면 세찬 바람이나 텅 빈 입구는 변함없었다. (한강의 세상 만나기, 검룡소_20151128)차에서 내리기 전, 우산을 챙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괜한 갈등을 때리다 행여 함백산처럼 폭설이 내리지 않을까 싶어 우산도 챙겨 천천히 걸어갔다.
검룡소 초입을 변함없이 지키는 돌하루~어르신.
이때만 해도 바람이 세찰지언정 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발을 들여놓기 전, 가슴에 힘 빡! 주고 설레는 기대감을 추스르자.
검룡소까지 함께 하는 한강의 시작과 같은 여울은 항상 물소리와 맑은 빛을 투영시킨다.
덕분에 걷기 편한 길을 따라가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룡소에 도착하여 한 시간 가량 머무르며 분주히 쫓아다니는 한 쌍의 새와 함께 지냈다.
5년 전과 달라진 데크길이 확연히 차이 나는데 그때는 검룡소에서 솟아 나온 물이 층층이 폭포수와 같은 돌개구멍을 넘어 소 바로 위에 데크길이 있었다면 이제는 층층이 돌개구멍을 지나기 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소를 관망할 수 있도록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정말로 소 바로 위에 데크길이 있어 힘차게 꿈틀대는 아지랑이를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소원을 빌겠답시고 동전을 던지는 못된 이기심 때문에 이렇게 변경해 놓았나 보다.
소가 막힐 우려가 있어 동전을 던지지 말라는 주의 문구가 있음에도 여전히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아 그로 인해 데크길을 부득이 변경한 게 아닐까 싶다.
검룡소에 도착하여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도중에 아이폰이 데크 밑으로 떨어져 다시 주워 오는 건 차라리 별 탈 없이 지나간 시간이자 검룡소에서 혼자 감상에 젖은 희열의 퍼즐 중 한 조각이나 마찬가지고, 머무른 내내 분주히 오가던 물까치 한 쌍은 자칫 적막할 수 있는 공간에 말동무 이상의 위안이기도 했다.
검룡소에 도착할 당시 그리 매섭던 바람은 희한하게도 잦아들어 비교적 온순해졌고, 반면 온순하던 눈발은 바람이 약해진 틈에 맞춰 기습적인 폭설로 변하며 두 얼굴을 드러냈다.
어쩌면 이런 폭설로 인해 검룡소에 머무는 내내, 아니 검룡소 여정이 끝날 때까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인 양 인적이 증발해 여유의 참맛이 녹아든 휴식 그 이상의 시간이었고, 검룡소에서 솟구치는 강물처럼 기세 등등히 흐르던 시간이 멈춰버린 환각 상태와 같았다.
꽤 오래 머물렀다는 감각이 마비된 채 물까치와 그칠 줄 모르는 강물, 한꺼번에 쏟아질 듯한 눈발이 협주곡을 듣다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대기에 정신을 차리고 그제야 왔던 길을 밟는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산이 만들어 놓은 깊은 골짜기에 숨겨진 검룡소에서 돌아가는 길에 어느새 모든 길이 하얗게 채색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녹아 길이 질퍽거렸는데 갑자기 굵어진 눈이 그 흙탕길 위에 고스란히 쌓여 여전히 질퍽거리긴 했지만 길에 새겨진 모든 발자국을 지워 오로지 내 발자국만 남겨졌다.
눈이 내리는 대기를 뚫고 어렴풋이 겨우살이가 보인다.
지난번엔 야생화 테마길이었지만 이제는 출입이 제한되어 예전 모습만을 고스란히 남겨 두었다.
역시나 출입이 불가능하지만 야생화 테마길은 멀찍이 보이는 다리와 연결되어 강을 건너 조그맣게 조성된 공원과 이어줬다.
다행히 다리만 남아 예전 기억을 반추하기 수월했다.
봄에 내리는 눈은 품고 있는 수분이 많아 생강꽃 위에 쌓여 빙수처럼 변해 버렸다.
그리 춥지 않아 내리는 눈이 많아도 오전에 내려 이미 녹아버린 눈과 어울려 빙수가 되었다.
오로지 혼자 남겨진 발자국.
검룡소로 향하는 게이트는 탐방길이 생겨 금대봉 일대를 둘러볼 수 있지만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처럼 미리 예약을 해야만 하고, 그마저 운영기간이 종료했단다.
검룡소 초입과 가까워진 게이트에 다다르자 가뜩이나 굵던 눈발이 더욱 굵어져 아이폰 사진에서 조차 그 눈발이 선명하다.
여전히 발자국을 찍으라, 못내 아쉬운 하루 여정의 마무리에 정점을 찍으라 배려해 주는 눈길은 걷는 길의 방해는 커녕 마치 내 가슴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그 아쉬움의 근원이 뭔지 알고 있는 것처럼 길에 온전히 하얀 눈을 뿌려 놓았다.
어디를 둘러봐도 갓 피어난 눈꽃의 화사하고 풍성한 정취는 천천히 걷는 걸음에 맞춰 어느 하나 허투루한 모양새가 없었다.
직원 몇 분이 눈길에 대비한 분주한 움직임과 더불어 길을 말끔히 쓸어 놓았지만 잠시만에 다시 눈은 그런 노력들을 조롱하듯 금세 쌓여 버려 온통 눈꽃이 피어난 정취에 맞춰 다시 길 위에 하얀 카펫을 깔아 놓았다.
세상이 하얀 모노톤의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형형색색의 물감을 풀지 않아도 얼마나 하얀색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 건 검룡소에 머무는 내내 인지하고 있었지만, 출발지에 원점으로 돌아와 쌓아 둔 깨달음에 진정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비록 눈은 차갑지만 극단적으로 따스한 질감과 더불어 작은 빛에도 하얀 대답을 굴절시키는 모습에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엔 추호의 의심도 품을 수 없는 만큼 이 봄에 만나는 겨울의 가면엔 세상 모두를 덮는 하얀 눈처럼 모든 잡념이 순수로 정화되었다.
검룡소에 닿아 수 차례 번개와 하염없이 쏟아지는 함박눈으로 인해 카메라를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사진으로 기록하기 이전에 기억의 청사진은 사진 이상으로 유의미한 값진 경험인 걸, 5년 전 당시 상황과 흡사한 환경으로 인해 재현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차에 내려 걸어가는 시점에선 세찬 바람에 눈발이 약했지만, 검룡소에 닿자 자욱한 안개 마냥 굵은 눈발이 대기에 빼곡히 하얀 커튼을 드리웠다.
레인 코트에 방수 코트까지 걸쳤음에도 물이 흥건히 스며들었지만 추억을 표류함에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억겁 동안 인류를 지킨 한강의 세상 나기, 검룡소에서 마치 세상에 혼자 뿐인 착각에 빠져 느리게 걷는 시간과 같은 보폭을 맞추며 자욱하게 뒤따르는 눈발의 숨겨진 세상 이야기에 어느덧 정점에 달했던 행복한 시간들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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