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11

도심의 오래된 정취, 낙산공원_20200610

서울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옛 정취를 찾았다. 때마침 초저녁 빗방울이 기습적으로 떨어지던 때가 성곽을 따라 산책로마저 텅 비어 버린 날, 가까이 있을 땐 불편하던 것들이 이제는 그리움과 정겨움으로 재포장되어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낡고 오래된 것들에 새로운 생명이 꿈틀대는 건 현재를 지탱하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원래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면서 주민들이 다시 지웠단다. 이렇게 좁고 가파른 계단길이 어느새 추억을 회상시켜 주는 유물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일상_20200520

하늘을 무겁게 누르는 구름도, 그 구름을 뜨겁게 불태우는 일출의 노을도 장엄하다. 이른 아침, 계절의 역행과도 같은 서늘함은 곧 다가올 여름에 비한다면 이별이 못내 아쉬운 봄의 감정이 무르익은 표현이다. 두터운 구름을 비집고 동녘에 찬란한 하루가 떠오른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구름까지 온통 불타오른다. 창 너머 비치는 세상이 바다를 뒤집은 듯 투명하고 깊다. 자연 또한 사람과 같아 괴롭히면 찡그리고, 가만히 두고 바라보면 이렇게 원래의 민낯을 보여 준다. 하늘에 조각난 구름은 마치 바다를 유영하는 새떼 같다. 어느덧 정겨운 발걸음 중 하나가 길냥이들 만나러 가는 때다. 나도 사람인지라 마냥 극도의 경계와 자리를 회피하게 된다면 어찌 될런지 모르나 몇 번 봤다고 아는 척도 해주고, 점점 거리를 좁혀 오는 데..

우수에 찬 냥이_20200415

회사 앞에서 우연히 만났던 냥이를 다시 마주했다. 경계심이 많지 않아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가는 거리를 허용하긴 하나 정해진 선을 넘을 경우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이날 이후로 이 녀석을 염두에 두고 츄르 하나를 가방에 가지고 다니는데 얼른 만나게 되면 꼭꼭 짤아서 줘야겠다. 여전히 우수에 찬 눈빛이 마음에 앙금처럼 남아 있다. 녀석의 첫인상은 우수에 찬 표정이 특징적이다. 특히나 멍하니 시선을 아래로 떨굴 때 연민과 동정이 급격히 자극된다.

일상_20191230

얼마나 오랜만인가 싶다. 연말이라 자제하리라 다짐했던 술자리 횟수가 많이 줄이긴 했지만 그래도 시기가 시기인지라 평소에 비해 과했다. 허나 이날만큼은 좀 각별했던 게 거의 뵙기 힘든 분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승용형은 아주 가끔 뵙긴 했지만 내가 맨날 편하게 자리를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 병훈형은 회사 퇴사하고 독립 이후 처음이다. 한 때는 뻔질나게 술자리를 갖거나 커피 한 잔 하면서 때론 진중한 대화를, 때론 유쾌한 대화를 했던 분이라 의미는 남달랐다. 내가 물론 두 분을 함께 초대했긴 했지만 세 사람이 한 자리를 같이 했던 건 5년이 넘었고, 원래 두 분은 함께 자주 어울리던 분들이 아니라 성향과 취향이 다를 거라 여겼지만 막상 함께 자리를 즐기기 시작하자 밤새 뭔 그리 많은 대화가 오갔..

에어팟...1은 혁신, 2는 배신_20190901

냉정하게 파워 비츠와 비교하라면 파워 비츠가 낫다.뇌수, 콩나물, 전동 칫솔이라 비아냥 대던 주위 사람들도 에어팟 끼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애플 자체 이어폰이 신통 찮은데다 별로 신경도 쓰지 않던 분야인데 에어팟 하나로 시장에 난립해 있던 전문 음향 브랜드들 아성을 단숨에 무너뜨린 저력과 파급력은 실로 막강 했다. 원래 영화 첫 편이 입소문과 함께 대박치면 차기작은 그만큼 부담을 안고 개봉할 수 밖에 없다.아무리 잘해도 본전, 별 차이 없으면 욕 바가지 얻어 줍줍해야 된다.그런 측면에서 반지의 제왕이나 어벤저스는 정말 대박이고, 쿵푸팬더나 타짜를 보면 형편 없는 수준이 아닌데도 워낙 잘 만든 전작으로 인해 고공행진 중인 기대 심리를 충족해 주지 못해 쌍욕을 들었던 걸 감안, 에어팟도 마찬가지로 첫 작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