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30

일상_20210319

퇴근길에 만난, 우수에 찬 삼색이가 회사 앞 화단에 볼일을 본 건지 열심히 흙을 훑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츄르 하나 주고 싶은데 처음과 달리 무척 예민해져 경계심 장난 아니다. 요 녀석아, 내 가방엔 늘 츄르 하나 챙겨 둔단다. 널 만나게 되면 주려고 그런 건데 그냥 '걸음아, 날 살려라'하면 주전부리의 유희를 모르잖아. 여전히 표정은 우수 가득했다. 화단에 흙으로 무언가 일을 하다 주변을 삼엄하게 경계한다. 가만 쳐다보자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쏜살 같이 도망가다 안전거리 확보되는 지점에서 녀석도 나를 빤히 쳐다봤다. 녀석의 시그니처가 바로 살짝 고개를 숙여 자존감이 저하된 것만 같은 우수에 찬 표정이다. 바로 요런 표정이 내 기억에 각인된 모습이다.

일상_20201005

잊을만하면 회사 인근에서 만나던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진 삼색이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단다. 녀석도 꽤 어려 보이던데 벌써 어미가 되었다는 사실은 궁금하던 차 회사 동료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한동안 보질 못했으니 나도 잊고 지냈다. 허나 위태로운 난관에서 쉬고 있었다니. 방해 안 할 테니 조심하고, 가끔 이쁜 얼굴이나 보여주렴. 가을과 하늘의 석양 협주곡. 어느 하나 어색하거나 도드라진 건 없다.

헬로~ 옛학우들_20200731

1년 7개월 만에 만난, 2018년을 함께 했던 학우들. 당시처럼 막회를 곁들이며, 축제와 같던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했지만 아쉽게 참석이 힘든 학우도 있어 보란 듯이 더 재밌게 보냈다. 근데 막회집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이날 휴가 들어간 날이고, 2차는 그때처럼 같은 치맥집으로 갔지만 야외에서 마시던 중 급작스런 소나기에 후다닥 실내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너무 강렬한 불금이라 이튿날 머리는 지진이 났지만 근래 마시는 자리를 거의 갖지 않아 가끔 한 번 정도는 괜찮다. 중간에 앉은 학우는 예나 지금이나 투철한 봉사 정신으로 특히 아이들이 있으면 막대 풍선으로 아주 특별한 기념품을 즉석에서 뚝딱 만들어 줬다. 다음엔 언제 볼까? 3명이 빠졌지만 이렇게라도 만나지 않으면 서먹함에 익숙해질 것만 같다.

큰 조직에서 독립한 친구의 작은 공간, 인비또_20200628

유명 호텔, 리조트 체인에서 근무한 친구 녀석이 혼자 독립하여 구의동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 식당을 포함, 오프라인 매장은 거의 초토화된 마당에 조금 무모하다 여겼지만 자신의 미래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을 터, 그래도 초를 뿌릴 순 없고 다른 친구들과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내가 넘무넘무 좋아하는 파스타에 버섯이 송골송골 올려져 있는 피자, 이런 자리에 빠질 수 없는 스원해서 골 때리는 맥주까지. 파스타로 배를 불린 게 얼마 만인가 싶을 정도로 코로나19를 피해 식당에서 갓 조리한 요리가 얼마나 맛난 지 전부 억눌러 왔던 식욕을 숨기지 않았고, 그 많던 음식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게다가 친구들 얼굴도 무척 오랜만에 보기도 했다. 밤이 늦으면 대중교통 배차 문제로 불편해 좀 일..

도심의 오래된 정취, 낙산공원_20200610

서울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옛 정취를 찾았다. 때마침 초저녁 빗방울이 기습적으로 떨어지던 때가 성곽을 따라 산책로마저 텅 비어 버린 날, 가까이 있을 땐 불편하던 것들이 이제는 그리움과 정겨움으로 재포장되어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낡고 오래된 것들에 새로운 생명이 꿈틀대는 건 현재를 지탱하는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원래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면서 주민들이 다시 지웠단다. 이렇게 좁고 가파른 계단길이 어느새 추억을 회상시켜 주는 유물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