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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에서 삼척으로, 겨울에서 봄으로_20200413

행복에 대한 감사를 새삼 깨닫게 해 준 태백에 작별을 고할 때, 전날 잔뜩 웅크린 하늘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화사한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 커튼을 열어젖히자 어제 무겁고 표독한 설원과 다르게 포근한 설원이 펼쳐져 있다. 이틀 동안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준 태백과 숙소에 마지막 인사 꾸벅~ 출발하기 전, 매봉산에서 부터 태백산 방면까지 또렷한 선들이 모여 언제나처럼 세상을 노래하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그리 무겁던 하늘은 눈에 띄게 가벼워져 점차 청명한 하늘이 구름을 열어젖히고 투명한 민낯을 내민다. 전날 그토록 짙은 구름을 덮어 꽁꽁 숨어 얼굴을 감췄던 함백산은 하루 만에 완연히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잠깐 사이 구름은 어디론가 총총히 자리를 뜨고 그 뒤를 이어 하늘 본연의 빛깔에 물들기..

잦아든 눈과 포근해진 시간, 태백_20200412

감사합니다. 아름다워서... 추억을 재현시켜 줘서... 무사히 누릴 수 있게 해 줘서... 건강함에 여정을 떠날 수 있어서... 이 모든 걸 느낄 수 있어서... 그래서 감사합니다. 어둠이 찾아올 무렵 숙소로 돌아왔다. 눈은 잦아들었지만 설경의 아름다움은 그칠 줄 몰랐다. 문득 박효신의 '눈의 꽃'을 흥얼거리고 싶어지는 하루였다. 설사 잘 못 부르더라도 흥에 겨우면 그만 아닌가. 그게 바로 이번 여정이자 지금 이 순간이다.

평온의 눈이 내리는 검룡소_20200412

5년이란 시간이 흘러 같은 장소가 어떻게 변했을까? 급작스런 눈발이 복병이 아닌 환대의 징표라 자화자찬 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아닐 만큼 쏟아지는 눈이 연출한 세상은 묘한 추억의 반추를 표류하게끔 포근한 포용을 발휘했다. 함백산에서 내려와 주저 없이 검룡소로 향하는 길은 간헐적 눈발이 날리긴 했지만 쌓일 만한 양도, 기온도 아니라 이동하는 데 있어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검룡소 입구에 도착하자 앞서 방문했던 시기와 달리 입구는 꽤 너른 테마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던 반면 세찬 바람이나 텅 빈 입구는 변함없었다. (한강의 세상 만나기, 검룡소_20151128)차에서 내리기 전, 우산을 챙겨야 되나 말아야 되나 괜한 갈등을 때리다 행여 함백산처럼 폭설이 내리지 않을까 싶어 우산도 챙겨 천천히 걸어갔다. 검룡소..

봄에 환생한 겨울 왕국, 함백산_20200412

엘사의 마법이 발휘된 걸까? 목화솜 같은 함박눈이 내려 순식간에 하얀 세상이 펼쳐져 겨울의 집착적인 미련을 실감케 했다. 서둘러 사람들이 떠나 세상은 텅 빈 듯 눈처럼 쌓인 적막과 두터운 눈구름처럼 정적만 휩싸고 돌며, 그로 인해 바람 소리가 지축을 흔드는 번개 소리 마냥 대기를 가득 채웠다. 당초 함백산에 오를 계획은 없었지만 만항재로 가는 텅 빈 도로에 차를 세워 두고 그칠 줄 모르는 눈발을 향해 걷다 결국 함백산을 올랐다. 2015년 초겨울, 우연찮게 함백산 초입에 방문했다 순식간에 퍼붓는 함박눈이 만든 설원을 행보했던 추억을 더듬어 같은 자리에 방문하자 굵어진 눈발을 등지고 산에서 하산한 한 분께 산길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눈꽃들만의 세상, 함백산_20151128) 아이젠이나 스틱 중 하나는 ..

봄의 정점에서 눈이 내린다, 태백 오투리조트_20200412

이른 아침부터 눈이 내려 창 너머엔 마치 수묵담채화처럼 첩첩으로 설산의 풍경이 연출되었다. 4월은 봄의 정점 이건만 기온은 혈기왕성한 동장군의 위력 못지않게 열린 창을 파고들어 뺨을 스치는 바람은 제법 날카로운 추위의 칼을 휘둘렀다. 눈길의 위험을 피할 요량으로 사람들은 서둘러 태백을 떠났고, 봄눈의 절경을 맞이하려는 나는 아득한 함백산으로 출발했다. 2015년 11월에 텅 빈 함백의 설국을 밟았던 이후 그 당시와 절묘하게 일치되는 정취와 추억을 표류하고자 처음 의도와 다른 함백으로 발길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눈꽃들만의 세상, 함백산_20151128) 2015년에도 오투리조트에 올라 첩첩한 산을 따라 함백을 갔던 만큼 처음엔 기억에서 조차 먼지 자욱하던 추억이 기습적인 눈발로 떠올랐다. 비교적 이른 ..

늦게 도착한 태백_20200411

한 달 전 쯤, 태백 여정을 계획하고 주말에 도착했다. 허나 일기예보에 의하면 강원 남부 산간지역에 많은 눈이 예상 된다고? 4월 중순에, 여행객들이 빠져 나간 텅빈 여행지에서의 기분은 어떨까? 무게감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구름과 잔잔한 바람을 대하고 있노라니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와 비장함이 서려 있다. 골짜기 따라 길게 늘어선 태백 시가지가 봄을 만나러 땅 위로 나와 크게 꿈틀대는 용처럼 보여 이따금씩 번뜩이는 이빨을 반짝인다. 아무리 완연한 봄이라지만 해발 고도 1천미터가 넘는 자리에 서자 기분이 묘할 만큼 겨울 내음이 코 끝에 서리며 한바탕 흥겨운 꿈에 취한 사람처럼 밀려든 기대감에 여전히 꿈은 아닐까 착각이 든다. 폭풍전야란 이런 느낌일까? 요동을 치기 위해 자연이 한껏 움츠리고 있다.

2층 광역버스 첫 승차_20200411

아마도 기억엔 이 날이 처음 아니었나 싶다. 여전히 1층 버스가 주류를 이루어 지나다니는 2층 버스는 간혹 보긴 했어도 동탄 광역버스에 도입 되었단 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드뎌 탈 수 있는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져 룰루랄라 하면서 2층으로 전력 질주를 했고, 다행히 맨 앞자리는 비어 있었다. 기존 버스가 디젤을 연료로 사용해서 승차감이나 진동은 확연히 좋아졌는데 문제는 좌석간 거리가 좀 짧고 가장 치명적인 건 등받이가 거의 젖혀지지 않아 한 자리에 앉아 오래 버텨야 되는 서울 외곽 특성상 불편할 수 있겠다. 그래도 첫 날의 그 기분, 터널이나 톨게이트 천장에 부딪힐 거 같은데 묘하게도 통과되는 걸 보면 버스가 조금 덜컹이거나 통통 튀어 버리면 영락 없이 헤드샷 될 수 있겠다. 또한 한남고가나 동탄나들..

길 위의 고단함_20200410

잠시 나간 산책길에서 길 위 생명의 고단함을 헤아린다. 초보 애묘인이지만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인간과 함께 한 생명이라면 분명 공존공생하는 숙명과 더불어 이로운 부분이 훨씬 많을 터. 그럼에도 길로 내몰린 가련한 생명들에 동정 이상의 박애 정신은 발휘하지 못했다. 산책 삼아 밥 한주먹 담아서 반석산으로 향했고, 냥이 마을에 도착할 즈음 석양이 서편 마루에 걸렸다. 도착 했을 때는 냥이 마을이 텅비어 발걸음을 돌릴까 하다 녀석들을 부르자 몇 번 봤다고 어디선가 몇 녀석이 달려왔다. 위계 질서가 엄격함에도 늘 먼저 먹는 녀석이 배부른 만큼 가장 순둥이한테도 밥을 봉투째 내밀자 눈치를 보다가 어느새 맛나게 먹는다. 너무 약하고 소심하고 경계심이 많은 녀석이라 돌아서는 길에 늘 마음에 걸린다. 냥이들과 헤어진 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