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22

바다를 향한 고전적 갈망, 울진 망양휴게소_20220316

7번 국도를 지나면 의례적으로 들러 바다를 정독하게 되는 망양 휴게소는 처음에 망양인지 망향인지 대충 불러도 그 느낌은 허투루 하게 기억되지 않는 정취가 있다. 바다의 파도보다 더 강렬하고, 더 거센 세월의 파도에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처럼 연약하고 가냘픈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이제는 제법 바다와 어울리는 동태적인 변화가 깃들었다. 망양휴게소 www.mangyang.co.kr 휴게소 내 스카이워크와 비슷한 구조물에 오르면 바다 정취는 급격히 증폭되어 가슴으로 파고든다. 또렷한 기억 중 하나가 암초 무리들 위의 강태공들인데 이제는 텅 빈 채 파도만 암초를 누빈다.

짙푸른 수평선을 걷다, 삼사해상산책로_20220316

기억은 망각과 추억의 기로에서 시간의 조언에 따라 그 갈림길을 선택한다. 추억의 길로 접어드는 순간부터 특정 기억의 형상화를 통해 채도를 올리게 되는데 바다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 형체가 없는 바다는 전체를 아울러 그 자리에 섰을 때 감회가 입혀지고 각색과 착색의 담금질과정을 거쳐 온전히 인생의 퇴적물이 된다. 이튿날 7번 국도를 질주하기 시작할 무렵 이정표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길에 이끌려 바다의 작은 음악회를 감상한다. 별 기대 없이 들렀다 심플한 내부와 바다를 향한 통유리창에 꽤 만족했던 콘도미니엄. 떠나는 길에 뒤돌아 만족을 표했다. 영화 '가을로'에 노출된 곳이기도 했다. 요즘 하나둘 생기는 바다 산책로가 여긴 진작에 들어섰는지 최근 작품은 아닌 것 같았다. 지나는 길에 들렀는데 이 바닷길을..

날 것 그대로의 해변을 따라, 축산 해파랑길_20220315

앞서 해파랑길 20코스를 여행했다면 축산에서 해맞이공원까지는 21코스란다. 군사 목적의 잔해가 꽤 많이 보이지만 이제는 철거되어 이내 잊혀지고, 그 철조망에 고립되었던 원시의 해안이 기지개를 켜며 도리어 문명의 피로감을 바다로 날려줬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봄햇살 아래 세상이 잊고 지내던 작은 마을은 부러움조차 잊었는지 무심한 자연의 날갯짓으로 쉴 새 없이 해풍 위 중력의 끈을 엮어나갔다. 작은 음악 소리를 벗 삼아 시작된 막역한 걸음은 해 질 무렵 아름다운 광시곡이 가르쳐준 길 위의 산책이 되어 파도 소리에 맞춰 사뿐한 춤사위가 되었다. 해안을 따라 굴곡진 길과 달리 언덕 언저리에 붙은 길은 함께 평행을 그릴지언정 그 모습과 느낌은 사뭇 달랐다. 이왕 동해 바다를 만날 거라면, 또한 지나치게 가공된 길..

진화하는 섬과 손 내민 육지의 접점에서, 축산 죽도산_20220315

해안 따라 오뚝 솟은 산은 원래 섬이었으나 뭍에 대한 억겁의 갈망을 바다가 성취시켜 줬다. 강강술래 대나무끼리 서로 손을 잡아 작은 언덕을 강인한 해풍으로 부터 지키고, 언덕은 한 뼘 몸을 내어 대나무를 껴안아 고립된 세상으로부터 함께 의지하며 영속의 포부를 공유하는 죽도산은 어느새 속성이 전혀 다른 육지와 바다의 오작교가 되었다. 죽도산 죽도산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육지와 동떨어져 있는 섬이었습니다. 죽도산 인근에는 축산층이 흐르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축산천을 따라 함께 흘러오던 모래가 만든 모래둔덕이 점점 커지면서 원래 섬이었던 죽도산이 육지와 연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원래 섬이었다가 육지가 된 섬은 ‘육계도’라 불립니다. 강 하구의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육계사주는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지형으로..

길과 바다의 멋에 빠지다, 영덕 해파랑길_20220315

예전 기억을 표류하다 보면 동해 바다와 뭍 사이 견고한 철조망이 꽤나 동경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현실이 극복할 수 없는 철옹성 같았건만 언제부턴가 대부분의 군사 시설이 철거되면서 웅크려 머나먼 미래를 꿈꾸던 해안 쪽길은 뒤늦게 세상과 조우하며 품 안에 간직했던 슬픈 사연과 태초의 자연을 거대한 선물 보따리 마냥 풀어놓았다. 사실 ‘영덕’하면 생각나는 건 십중팔구 ‘대게’ 외에 딱히 각인될 만한 명소는 기억에 없었고, 그로 인해 여정에서 영덕은 지나는 길목의 한적한 어촌마을로만 여겨졌다. 2019년 봄 여정에서도 영덕은 한치 주저 없이 다른 동해 바다를 이어주는 마을 외에 고민도 하지 않았었는데 해파랑길 소식을 듣고 먼 길 달려 첫걸음 내디딘 결과, 이제라도 알게 된 걸 다행이라 여겼다. 바다와 가파른 뭍..

시간이 졸고 있는 영덕 해안마을_20220315

동해 해안도로 따라 여정길에 만난 한적한 어촌마을이 한가득 쏟아지는 햇살을 쬐며 갈매기와 함께 했다. 겨울이 떠나고 봄을 맞아 한창 분주한 시간 조각을 끼워 맞추는지 인적의 흔적은 없고, 그 공백을 빼곡히 채운 나른한 아침의 바닷바람만 졸고 있는 고요한 마을을 깨울새라 소리 없이 휘날렸다. 이튿날 나른한 봄빛이 수평선까지 닿고, 그 볕은 꿈틀거리며 바다로 열어젖힌 창을 넘어 개운하게 인사를 건넸다. 숙소와 바다 사이 작은 공간에 소소한 밭을 일구는 손길에서 갤러리에 들러 한 폭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느지막이 숙소를 출발하여 영덕 강구를 기점으로 매끈한 7번 국도를 버리고 구불한 해안도로로 핸들을 돌려 다시 도로 따라 천천히 진행하던 중 강태공들이 분주한 작은 어촌마을 방파제로 걸었다...

첫 영덕 여정에 만난 청량한 밤바다_20220314

망망대해 포부를 품은 시야는 거침없었다. 나른한 봄이 무색하게 싸늘한 꽃샘추위 일갈은 꽤나 섬뜩한 칼날을 휘두르지만 이미 여유 넘친 봄기운을 이길 수 없고, 허공을 낙서로 일갈한 미세 먼지도 봄소식 쫓은 단비에 주눅 들었다. 정갈한 수평선을 따라 수놓은 일상의 물감은 이렇게 저물고, 저렇게 피어났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한쪽이 완전 바다로 트인 창을 열고 바람에 실린 바다 내음의 청량감에 도치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미세먼지가 거의 없는 청명한 밤하늘과 수평선이 미려한 빛을 피웠다. 비교적 오래된 건물과 달리 깔끔한 내부는 바다 조망 뷰를 살리기 위해 온전한 유리로 틔워놓았다. 영덕의 첫 여정에서 첫인상은 꽤 흡족한 밤이었다.

애국가처럼 거룩한 자태, 추암 촛대바위_20210630

해암정 삼척 심씨의 시조 심동로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제자를 가르치며 생활할 때 지은 정자로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처음 짓고, 조선 중종 25년(1530)에 심언광이 다시 지었다. 심동로는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였는데, 고려말의 혼란한 상태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다가 권력을 잡고 있던 간신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하였다. 왕은 그를 말렸으나 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의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내리면서 결국 허락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앞면을 제외한 3면은 모두 4척 정도의 높이까지 벽을 만들고 모두 개방하였다. 이곳에는 송시열이 덕원으로 유배되어 가는 도중 들러 남긴 '초합운심경전사(草合雲深逕轉斜)'라는 글..

강릉 가는 길_20210629

동해, 삼척 가는 길,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굵은 장대비가 내리던 날이었는데 대관령을 지나자 다른 세상인 양 화창하다. 피서를 대신한 이번 여름 마지막 여정은 당초 계획했던 담양/순창을 대신하여 급하게 날조한 계획이지만 대신 처음 가보는 여행지를 끼워 충분히 심적 보상이 되리라. 횡계를 지나 대관령터널에 진입하기 전, 마치 영화 mist를 연상시키는 연무가 자욱했다. 대관령 터널 하나를 지나 동해 바다가 보일 것만 같음에도 두터운 운무로 영동지방 날씨를 예측할 수 없었다. 동해바다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6 터널에 진입하기 전, 7 터널 중 어찌 보면 제대로 된 마지막 터널인 셈이다. 강릉이 가까워지자 한순간 운무는 걷히고 화창한 하늘을 드러냈다. 동해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옥계 방면으로 운행 중인..

겹겹이 춤추는 파도, 옥계휴게소_20200413

태백에서 38번 국도를 이용, 도계를 거쳐 삼척에 도착하여 앞만 보고 달려온 긴장을 풀기 위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담은 뒤 바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던 중 '바다가 보이는 휴게소' 간판에 현혹되어 옥계휴게소에 들렀다. 정말로 세찬 바람에 일렁이는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먹먹하던 가슴이 일시에 트여 잠시 수평선에 심취했다. 동서남해가 각기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이 있겠지만 동해라고 하면 심연의 바다색과 더불어 군더더기 없이 트인 시계라 하겠다. 세찬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가 해변으로 총총히 따라붙는 장관이 펼쳐졌다. 바다와 육지에 기댄 소나무가 단조로울 법한 수평선에 운치를 더했다. 바다에 등대가 빠질 수 없는 벱이지. 진정한 휴게소의 의미를 누린 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다 강릉에 들러 출출한 속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