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복합문화센터 33

일상_20200512

눈 덮인 양 이팝나무가 뽀얗게 물들고, 넘실대는 바람결에 향긋한 아카시향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봄은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야생마 같지만 그 계절의 옷깃에 내비치는 풍경은 향기로 가득하다. 살랑이는 아카시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넋 나간 사람처럼 소담한 길을 따라 피어나는 신록을 만나러 가는 길은 흥겨운 놀이를 쫓는 아이 같다. 산책의 행복을 저미던 시간, 손끝에서 조차 잠자고 있던 유희의 감각이 긴 잠을 깨치고 일어나 어디선가 들리는 아름다운 새의 지저귐도 피부를 간지럽힌다. 노작마을 초입에서 반겨주는 이팝나무의 화사한 인사. 마치 뽀얀 눈이 덮여 눈꽃 만발한 나무 같다. 여기를 지나 곧장 노인공원을 거쳐 냥마을로 향했다. 뽀샤시한 외모와 순둥순둥 성격, 하지만 길냥이 특유의 경계심으로 가..

일상_20200423

여전히 서늘한 봄이지만 그래도 반가운 이유는 맑은 대기로 인해 봄의 매력을 여과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청객과도 같은 황사와 미세먼지가 언제 다시 습격할지 모르지만, 그런 이유로 인행에서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고 정설처럼 흘러 왔는지 모르겠다. 흐르는 시간이 안타깝다고 여기는 것보단 한껏 팔 벌려 누리기로 한 마당에, 그래서 치열한 시간들 사이에 이런 달콤한 용기를 주는 게 아닐까? 냥이 마을도 찾을 겸 온전하게 맑은 봄도 만날 겸해서 집을 나서 우선 가장 멀리, 그리고 가장 소홀한 반석산 북녘을 관찰하기로 했다. 곧장 반석산 정상을 지나 낙엽무늬전망데크에 다다르자 역시나 성석산을 비롯하여 서울 진입 전 장벽처럼 서 있는 청계산 방면까지 또렷하게 보였고, 급하게 올라와 턱밑까지 차오른 숨은 금세 감..

냥이 마을_20200421

얼마 남지 않은 하루 낮시간대에 산책 삼아 집을 나서 곧장 냥이 마을로 향했다. 봄바람이 적당한 청량감을 싣고 코끝을 부딪히는 날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냥이 마을에 도착, 때마침 치즈 뚱이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카오스 가족은 보이지 않고, 아이 둘은 냥이 마을에 있는데 어미가 없어서 인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가장 격한 반가움을 보여주는 치즈 얼룩이가 식사를 끝내고 어딘가를 응시하여 그 방향을 바라보자 지나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렸다. 아이들이 식사를 끝내길 기다렸다 치즈뚱이가 식사를 시작했고, 뒤이어 얼룩 태비가 슬며시 다가와 조심스럽게 식사를 시작했다. 얼룩 태비는 늘 어미는 어디 두고 냥이 마을에 부비적 찾아와 다른 녀석들과 친해지려 했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많던 날, 녀석들의 화목한 모..

일상_20190911

가을 장맛비는 여전하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흔적이 깊게 패여 있다. 급하디 급한 빗방울이 지나가자 이내 가을 흔적이 진하게 내려 앉았다. 파란 여름 위에 애태우는 가을비. 가을이 뿌려 놓은 은빛 가루는 자욱하게 남은 여름을 덮고 대기에 녹아 있던 빛을 응집시킨다.어느 계절마다 사연이야 없겠냐만 그토록 감성의 심장을 두드리던 가을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헤칠까?기다리고 기다려 구름 자욱한 창가에 앉아 가쁜 숨 가라 앉히고, 그저 흘러가는 구름의 향연에 시선을 미끼 마냥 던져도 좋을 법한 시절이다.여전히 미비한 흔적임에도 이미 도치된 설렘을 어루만져 출렁이는 가을에 대한 상상에 착각인 들 한 번 빠져 봐도 좋겠다. 짙은 여름색을 뚫고 뽀얀 속살을 내민 또 다른 생명이 눈부시다. 무성하던 칡넝쿨..

일상_20190509

성탄절과 석탄절은 우리 같은 무신론자들에게 뽀나스 같은 날이다.이번엔 일요일에 걸쳐 있어 멀리 떠나기엔 빠듯하고 집에 붙어 있기엔 황금 같은 봄날이 아까워 사찰에 슬쩍 가봤다.물론 인파를 피하기 위해선 엄청시리 이른 시간대를 이용해야 되겠지만. 동자와 연등이 유별나게 빛나던 날, 특히나 동자의 삿대질도 눈에 띄인다. 범종이라 해야 되나?교회도, 절도 종을 사용하는 거 보면 이 무거운 주철이 내는 청명하고 오묘한 소리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성한 부분이 있나 보다. 사찰 한 쪽에 이렇게 화사하다.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면잊을 수 없는 기억에~왠지 이 노랫말이 이명처럼 들린다. 텅빈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고,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셔터를 눌렀다. 매혹의 양귀비. 만의사에 다녀온 뒤 또 다시 동탄을 배회..

일상_20190404

이틀 전, 만개 초읽기에 들어간 것처럼 곧 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의 목련이 드뎌 만개했다. 반석산 노인공원에 도착 했을 때 가지를 신나게 흔들고 계시는 바람이 사진 찍는데 훼방을 놓아도 기어이 꽃술을 찍었다.이렇게 큼지막한 꽃잎이 보호하는 꽃술은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 무척 궁금 했거든.실제 꽃잎에 비해 꽃술은 수줍음이 많아 자그마하고 애기 피부처럼 보드라운 컬러 였다. 반면 진달래는 목련과 달리 꽃술이 도드라지게 피어오르는 대부분의 봄꽃처럼 강렬했다.꽃잎은 거의 하나의 판상형처럼 최대한 넓게 퍼져 있고, 꽃술은 꽃에서 벗어나픈 강렬한 호기심을 겨우내 품었는지 꽃잎이 터지자 마자 한 눈에 들어올 만큼 꽃술도 길게 기지개를 핀다.

일상_20190402

이른 아침에 여명을 따라 움직이는 그믐달이 외로울새라 샛별 하나 말동무인 양 따라 다니며 외로움을 달래준다.청명한 새벽 하늘 답게 단조로운 듯 하면서도 경계를 알 수 없는 빛의 스펙트럼 속에 아주 차거나 아주 뜨거운 그 사이의 모든 질감을 찰나의 순간 천상에 밝힌다. 오후가 훌쩍 지나 해가 몽환적인 시간이 시작되는 4월 초, 무심코 오른 반석산 둘레길 따라 온화한 봄기운을 찾으러 나섰고, 그리 어렵지 않게 계절의 현장감을 포착할 수 있었다.향그러운 봄 내음에 이끌린 건 나 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봄이 깊어감에 따라 점점 다양해지는 봄 야생화들이 제각기 미모를 뽐내느라 혼란하다.반석산 둘레길에 발을 내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녀석이 산책길에 힘내라는 응원을 해준다. 봄의 전령사, 진달래가 절정인 시기로 ..

일상_20180129

홍천과 김제를 다녀온 후 차에 주인을 원망하듯 뽀얀 먼지가 소복히 쌓여 있다.새차를 한 게 얼마 만인지 기억에 나질 않아 마침 햇살 좋은 오후에 자동 세차 한 판 땡기고 물을 훔치고자 부근을 돌아 다니던 중 고속도로에 치여 존재 조차 모르고 있던 아주 자그마한 유적지 겸 공원에 들렀다.행정 구역상 오산이긴 하지만 동탄 옆이라 걸어서 가더라도 금새 당도할 만한 거리로 아무도 찾지 않는 공원에 휑한 바람 뿐이라 잠시 둘러 보며 시간의 흔적들을 자근히 유추해 본다. 북오산 나들목 옆 토끼굴을 지나면 뜬금 없는 장소에 크지도, 매끈하지도 않은 공원이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때론 적막이 필요할 때 들리면 되겠구먼.오래 머무르지 않았지만 그 사이 가끔 지나치는 차량은 있어도 사람은 전무후무하다. 이 공원의 주인..

일상_20190120

휴일의 일몰은 색이 더 깊다.그래서 평소에 보이지 않던 석양은 휴일이 되면 자극적인 유혹을 던진다.어김 없이 시선을 빼앗겼고, 덩달아 휴일 저녁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유리잔에 담긴 커피와 그 커피에 빠진 중천의 햇님. 휴일에 맞춰 반석산 둘레길을 걷다 성급한 달과 마주쳤다. 일몰 하루 해가 지자 낮 동안 쉬고 있던 등불들이 일제히 잠에서 깨어 난다.그렇게 휴일 시간이 흘러갔다.

일상_20181001

1시간 정도 투자하면 눈 요깃거리도 충족시키고, 역마살도 잠재울 수 있는 동네 산책 중 반석산 둘레길은 늦봄 이후 처음이던가?반석산도 산이라는 건 딱 하나만 보면 알 수 있다.집요하게 따라 붙으며 귀에 앵앵거리는 잡음을 뿜어대는 날파리들은 자기들 영역에 들어 오는게 탐탁치 않나 보다.또한 특공 무술과 독을 품은 필살기 주둥빠리 공격의 줄무늬 산모기 시방새들이 피를 빨아 쳐묵하실려고 잠깐만 한 눈을 팔아도 이내 고운 살따구에 징표를 남긴다.그러다 보니 여름을 피해 반석산을 오르는데 이날은 정신줄 놓고 걷기 안성맞춤.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 복합문화센터로 내려 오면 한 겨울에도 등짝은 땀으로 흥건할 정도에 숨은 제법 턱 밑까지 차오른다. 친숙한 곡선길. 둘레길을 오랜만에 올라 그런가? 열라 힘들다. 골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