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한적한 남한강변을 거닐다_20191001

사려울 2019. 10. 5. 02:59

여느 마을마다 주변 지형지물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명과 이름을 달아 놓은 걸 보면 옛사람들은 세상 모든 걸 의인화 시키고 동격화 시켜 생명이나 자연을 함부로 경시하거나 차별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들판의 바위에도 닮은 것들을 유추시켜 이름을 달아 놓았고, 부를 때도 마치 사람처럼 친숙한 어법을 사용했는데 그렇게 자연스레 배운 것들을 구전으로 남겨 어쩌면 세상 모든 것들과 어울려 공존공생하는 방법을 말문 터지듯 습성으로 익혔다.

마을을 한 바퀴 크게 돌며 지형과 그런 친숙한 우리말에 재미난 동화를 경청하듯 세세히 들으며 반 나절을 보내고, 혼자 자리를 떠나 부론으로 넘어 갔다.

사실 흥원창으로 갈 계획을 세웠지만 어중간한 여유를 갖다 보니 확고한 목적지를 정한게 아니라 결정 장애를 겪었고, 우선 점심 끼니를 채우고자 여주 한티고개를 넘어 부론 칼국수집에 들러 칼국수가 나오기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며 지도를 훑어 보던 사이 늘 가던 방향과 반대로 가면 어떨까 싶어 둘러보다 인적이 드문 충주 앙성 방면으로 눈길이 멈췄다.

그래!

이른 저녁이면 집으로 출발해야 되니까 가까운 곳에 들러 인물 좋은 한강이나 평온하게 즐기자.




한길을 달리다 강정마을로 꺾어 조금 진행하자 너르고 유유한 남한강이 금새 눈에 들어 왔고, 그 강변길을 따라 한적한 도로를 나아가자 하천관리 사무소를 기점으로 도로와 자전거길이 나눠졌다.

거기에 차를 두고 강변으로 내려가 주위를 둘러보면 평화롭던 강물이 얼마 전 내린 비로 부쩍 불어난 수면 위로 찰랑이는 물결을 만들며 바다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리 깨끗한 수질은 아니지만 이 강을 따라 수많은 생명의 근원을 두고 있는 만큼 얼마나 성스럽고 장엄한가.




새 한 마리가 지나던 길에 잠시 돌 위에 앉아 경쾌한 곡조를 뿜어 대는데 서로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곤 가까이 서 있던 나무가지로 훌쩍 날아가는가 싶더니 다시 마저 남은 후렴구를 퉁기고 날아가 버렸다.



강변은 꽤나 넓은데다 강 한가운데에 이렇게 녹색 가득한 섬이 있었다.

지도로 봤을 때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나 건너갈 수 있는 길은 없지만 도중 나무가지에 무언가 걸려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상류에서 많은 비로 불어난 강물에 실려온 쓰레기가 아닐까 싶다.











강변에는 여러 생명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갈대와 개망초로 빼곡하게 꽃망울을 틔우고 그 꽃에서 꿀을 따느라 가까이 다가가도 제 할 일에 몰입한 꿀벌들이 분주히 오간다.

꽃이 피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눈에 띄는 꿀벌이 꽃 위에 앉아 있는 풍경이 좋아 한참을 앉아 꿀벌처럼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는데 그럼에도 눈길을 거의 주지 않는 벌은 내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약속이나 한 듯 수 많은 꽃들을 분주히 옮겨 다닌다.

눈부신 하얀 꽃에 앉아 꿀을 따는 장면이 내 눈에 아름답다.



강변의 꽃밭에 꿀벌들이 빼곡하다면 지상에는 잠자리가 빼곡했다.

뭐가 그리 바쁜지 허공을 사정 없이 휘젓다가도 가벼운 몸을 잠시 맡기곤 한참을 쉬다 다시 허공을 휘젓는다.



내가 가진 망원렌즈보다 고프로 화각이 넓어 아주 가끔 이렇게 사진도 담는데 결과물은 그리 좋지 않지만 넓은 풍경을 담을 수 있어 없는 것보단 낫다.



하천관리사무소 일대 남한강변을 걷다 강정마을 한강변에 있던 샘개우물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 있던 샘을 복원하여 샘개우물은 맑고 수량이 풍부한 샘과 뜨거운 햇살을 막아줄 거대한 느티나무가 있어 길을 가던 나그네의 갈증과 더위를 삭혀 줄 수 있겠다.

아직은 완연한 가을이라고 하기에 늦더위가 남아 있는 시기라 조금만 걷거나 운전을 하다 보면 이내 등판이 흥건하고 입안이 메마른데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양 반가웠다.

게다가 느티나무가 만든 그늘과 더불어 샘솟는 물소리가 가을 바람처럼 시원했다.



작은 공터에 주차를 하는 사이 지나던 차 한 대가 도로가에 멈추고 사람이 내려 나처럼 급한 갈증을 식히고 그참에 눈도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다.

잠시 머무르며 있는 동안 이곳은 남한강 옆에 샘과 멋진 나무가 있는 숨겨진 휴게소 같다.






용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맑고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자리를 뜰 무렵 시각은 18시가 가까워졌고, 이미 대기는 어둑해질 시기라 남겨 놓은 미련처럼 다시 한 바퀴 둘러 보다 자리를 뜬다.

태백에서 발원하여 수백 Km를 달려온 한강은 거침 없이 서해 바다를 향해 질주를 하며 기름진 토양과 많은 삶의 터전, 그리고 명소를 만들었다.

기나긴 시간 동안 만들어 놓은 장엄한 한강을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그 흔적들을 스치며 위대한 존재의 숙연함에 감탄과 감명을 교차 시키며 이번 짧은 여정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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