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197

충주 수안보에서 만나다_20180807

업무로 발목 잡힌 명수형은 못 뵙고 3명이 수안보에서 걸판지게 마시고 호텔에서 골아 떨어졌다.수안보는 과거 명성에 비해 많이 퇴색 됐지만, 밤이 되자 네온 불빛이 시골 마을 치곤 꽤나 휘황찬란했다.이튿 날, 난 늦잠을 원했는데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스럽게 나누던 대화 소리에 부시시 깨어 버렸다.수안보에 들린 건 지나는 길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신 것 외엔 딱히 기억에 없어 처음으로 하룻밤 숙박을 하게 된 건데 과거에 성행 했던 곳이라 마치 과거 8,90년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었고, 그렇다고 낙후 되었다는 느낌보단 정감이란 표현이 더 맞겠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주차장에 나와서 주위를 둘러 보던 중 철장 안에 갖힌 하얀 고양이를 보게 되었고, 괜한 측은함에 다가가자 이 녀석도 내게 다가와 철장에 ..

일상_20180730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라고 방송이 조용할 날 없다.실제 서울 기온이 38도를 넘어선 날이 많을 정도로, 에어컨을 잘 틀지 않는 울집이 벌써 보름 이상 에어컨을 빠짐 없이 틀어 댔다.덥긴 덥다는 거다.자전거를 타자니 땡볕을 지나다닐 재간이 없어 간단한 차림에 걷기로 한다. 동탄복합문화센터 잔디밭에 더위를 쫓기 위해 스프링쿨러가 쉴새 없이 돌아간다. 텅 비다 시피한 오산천 산책로를 보면 폭염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데 오죽 했으면 나팔꽃 조차 꽃잎이 익어 버린게 아닌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찌는 더위에도 바람을 타고 세상을 활보 중인 잠자리는 오늘 따라 유독 눈에 많이 들어 온다. 온 세상이 여름의 기운에 압도당한 나머지 꽃잎들은 시들었지만, 녹색 방패로 무장한 나무들은 여전히 굳건하다. 하늘에서 뻗은 빛내림..

일상_20180722

누님네 이사 이후 처음 집들이를 한다.한강 조망에 주변 녹지가 많고 도심과 인접해 있는데다 한강 남북으로 접근성이 수월하단다.허나 도로 건너 아파트 하나가 들어 서면서 한강 조망이 되지 않고, 지대가 높아 지도만 보고 찾아갈 경우 한여름엔 땀에 흠뻑 젖을 위치다. 새 아파트라 시설은 아주 깔끔하고 고급진데다 주변 녹지가 서울 도심이 맞나 싶을 정도로 풍부하다.그참에 조카 녀석이 동네 구경을 시켜 주겠단다.내심 자랑하고 싶은 거 겠지만. 아파트 바로 뒷편이 응봉근린공원으로 장충동, 신당동과 금호동, 옥수동 사이에 버티고 있는 작은 뒷동산인데 올라 보면 꽤나 숲이 우거져 있어 큰 힘 들이지 않고 서울 외곽에 온 기분이다.조망은 장충동을 위시해서 4대문 도심을 포함, 경계를 이루는 산들까지 보인다. 여기까지 ..

비 오는 날 영화 마녀를 보다_20180709

비 내리는 월요일, 마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비를 먼저 만났다.조만간 삼복더위가 예견되는 시점이라 차라리 이런 시원한 비가 반갑기도 하고, 괜히 설레기도 한 마음을 갖고 상영관으로 들어간다. 굵은 비가 연못 위에 촘촘한 파랑을 일으키자 시원한 소리가 세상 모든 소음을 흡수시켜 버린다. 딱히 볼 만한 영화도 없었지만 한국 영화 치곤 액숀이 독특하다는 평에 거리낌 없이 예매를 한 건데 그 특별한 액숀을 보여주는 과정이 지나치게 친절한 나머지 이해시키는 과정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래서 지루하다.이것들이 나를 바보로 아나?영화 러닝 타임 중 마지막 일부를 위해 기다리고 설득되는 과정은 짜증, 막판에 전개되는 액숀은 신선.후속작이 나온다면 했던 이야기를 억지로 반복하지 말고 일사천리로 진행하렴.

일상_20180708

일요일 이른 아침, 동녘하늘에 시선이 빼앗겼다.새벽 노을이 모두가 잠든 사이 하늘을 캔버스 삼아 섬세한 붓으로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그걸 보고 지나치기 힘들어 육교에 올라 잠시 멍 때렸다. 거대한 도화지 하늘에 이글대는 태양을 채색시킨 구름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은 마치 익숙한 손놀림으로 휘갈긴 뒤 세상이 잠에 깰새라 황급히 자취를 감추고 서두르느라 그림을 방치해 버렸다.아주 잠시지만 여운이 남는 아침 하늘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가을 같은 초여름 날씨라 마치 너른 대해가 뒤집혀 머리 위에 쏟아진 듯 청명하고 깊다.장마의 빗줄기가 대기 먼지를 씻어낸 뒤 하늘의 청량감이 극에 달한 휴일 낮은 여름 답지 않게 바람의 냉기가 묻어 났고, 더위를 잊은 채 제법 많이 걷고 나서야 등골에 땀이 송골하게 맺혀 덩달아..

이 시절의 마지막 캠퍼스_20180626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마지막 순간은 늘 시작과 다른 두려움과 아쉬움을 남긴다.일상의 타성에 젖어 사진도 남기지 않은 채 그냥 강의가 끝나길 기다리는 습성으로 하루늘 넋 놓고 기다리다 괜한 미련이 자극되어 캠퍼스를 벗어나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렇게 시간은 정신 머리가 느슨해 진 틈을 타고 쏜살같이 줄달음치곤 어느새 장마전선을 끌고 와서 감당할 수 없이 잔혹한 시련의 씨앗을 퍼트리고 달아나 버렸다.한 걸음 더듬고 소화 시키기도 전에 한달음 성큼 멀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까마득한 꼬리의 자취만 아득히 보인다.캠퍼스의 나무들도 앙상한 가지만 위태롭던 초봄에 학업을 시작했는데 어느샌가 짙은 녹색 옷으로 갈아 입고 태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소한 내 기억의 창고 안에 머무르는 비는 화사하게 망울을 터트린 꽃 만..

자귀나무_20180624

치열했던 일상에서 희미하게 찍는 쉼표처럼 일요일은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흘러 갔다.그렇다고 집에 멍하니 있으면서 휴일을 그냥 보낼소냐 잠깐 산책 중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주위의 화사함에 시선이 묶이며 그런 여유를 인지하는 방법도 여러가지.초여름 따갑고 쨍한 햇살의 예봉이 꺾이길 기다렸다 자연으로 나오자 세상이 이렇게도 달라 보인다.어디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는 맑은 하늘을 머리에 올려 놓고 걷는 이 시간들이 활짝 열어젖힌 꽃망울 만큼, 아니 그 이상의 공중부양한 채 떠다니는 기분을 애써 억누르지 않고 구름처럼 흘러 다닌 휴일 시간이 반갑고 아득하기만 하다.근래 알게 된 자귀나무의 부채살 같은 도도함이 겹겹이 모이면 우아하게 바뀐다.

언젠가 끝나는 시간들_20180620

학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대구역 광장 위에 펼쳐진 거대한 규모의 노을이 아름답다. 첫 강의 참석 때 동대구역 하늘의 석양과 비교해 보면 어차피 같은 하늘에 같은 석양으로 구름이 타오르겠지만, 마지막에 대한 아쉬움을 하늘이 알고 더욱 붉게 타들어간다. 겨울색 짙던 캠퍼스의 앙상한 나무들은 어느새 녹색 울창한 신록을 만개시켜 빼곡한 숲을 만들고, 더위에 쉬어 갈 수 있도록 햇살을 완전히 차단시켜 가뜩이나 살인적인 대구 더위를 잊으라며 편안한 휴식을 도와줬다.교육기간 동안 복잡하고 심란한 일들이 참 많았고, 업무와 학업 병행의 어려움을 어찌 다른 사람들한테 실토할 수 없어 이 나무숲 그늘 아래에서 위안 삼곤 했는데 이제는 정든 작별을 준비해야 될 시기가 가까워졌다.모든 선택한 일들이 어찌 나쁜 일..

일상_20180611

초여름에 약속한 듯 찾아온 밤꽃은 장마가 오는 6월 중하순이면 비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장마와 지루한 찜통 더위가 찾아오는 전조이기도 하다. 반석산 일대에 밤나무가 많아 요맘 때면 어김 없이 밤꽃향의 습격이 시작되는데 바람이 불 때면 산 중턱에 하얀 물결이 파도치는 모양새다. 복합문화센터 뒷산 언저리에 거대한 밤나무가 마치 한겨울에 눈이 소복히 쌓인 나무 같다.이제 '여름이구나' 새삼 실감하며 잠시 걷던 사이 등줄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일상_20180609

개망초가 지천에 피기 시작할 시기다.아니나 다를까 들판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이고, 향도 매캐하다. 내가 좋아하는 반석산과 오산천 사이 산책로는 나무 터널이 꽤나 멋지다.신도시 나이 만큼 자란 나무들이 제법 가지를 많이 드리우고 뻗어 대낮에도 햇살이 가려져 유독 시원한데다 공기 또한 솔향이 가미된 은은한 향이 걷는 내내 기분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공간을 가득 매운 개망초에 나비들이 하염 없이 날개짓을 하며, 불어대는 바람에 휩쓸리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는 나비 한 마리와 그 주위를 끊임 없는 날개짓으로 맴도는 또 다른 나비 한 마리. 바람에 풀들이 누웠다가 금새 일어난다.바람이 많던 날이라 풀들이 바람결을 따라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고 있어도 찾아온 여름에 한층 기분을 들뜨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