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100

늦은 시간, 그리고 다음날 이른 시간_20190607

무주로 내려오는 길은 무척이나 지체 되었지만 기억에 남을 만큼 가족 여행으로 오손도손 따스한 분위기로 인해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무주로 목적지를 선택한 이유는 지방에 사는 한 가족이 대중 교통으로 이동해야 되는 특성상 도중에 픽업을 해야 되는데 각자 적절한 중간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서 관광 도시로써 제격이기도 했고, 앞서 봄에 방문했던 당시 오마니께서 극찬을 하시어 미리 무주 일성 콘도를 예약했다.가족 여행이라는 명분 하에 서운함과 정겨움을 나눠 보자는 취지 였고, 가뜩이나 평소에 비해 퇴근이 조금 지체 되었던 데다 가족 한 명을 태워 대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23시가 가까웠다.대전역에서 바로 또 다른 가족을 태우고 안주거리를 구입한 답시고 가양동을 지날 무렵 치킨에 순대를 투고 하느라 더욱 지체 되..

무주에서 구름처럼_20190430

아침에 무주를 거쳐 끝 없을 것만 같은 오르막길을 따라 적상산으로 향했다.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도 멋진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1천m 이상 고지는 보통 산의 무리들이 뒤섞여 있건만 적상산은 혈혈단신이라 무주 일대와 사방으로 늘어선 첩첩 산능선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한참을 올라 도착한 적상호 옆 적상산휴게소에 다다르자 거대한 물탱크를 살짝 개조한 전망대가 있어 나선형 모양의 계단을 따라 어렵잖게 올라가자 사방으로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늘어선 백두대간이 있다.대호산, 거칠봉 방면으로 보자면 거대한 장벽처럼 시선을 막고 있는 백두대간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다. 구름에 쌓인 덕유산 봉우리는 특히나 우뚝 솟아, 가던 구름조차 걸려 버렸다. 적상산으로 올라온 길이 산 언저리를 타고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구름도 쉬어가는 곳, 무주 향로산_20190430

전날 밤, 사위가 구름에 휩싸인 상태로 원두막 같은 숙소의 창을 열자 마치 공중부양한 상태처럼 떠 있는 착각에 빠졌다.두렵거나 무섭지 않은데 묘한 위태로움이 공존하는 극단의 복선이랄까?물론 기우에 불과했다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고, 근래 찾은 여느 숙소들과 비교했을 때 전혀 뒤쳐짐은 없었다.게다가 주변 환경의 쾌적함이나 새벽 운치, 적당한 거리를 둔 통나무집이라 아무리 떠들어도 엥간하면 방해 되지 않았던 만큼 아늑의 극치 였다.3일 동안 향로산 휴양림 내에서 머무른다고 할지라도 지루함은 찾아 볼 수 없을 테고, 쉼 없이 지저귀는 새소리와 적당히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바람소리는 줄곧 듣더라도 이물감이 없었다.물로 무주에 왔으니까 한 자리에 머물 수 없겠지만 작은 산임에도 가파른 비탈과 주..

밤마저 고요한 무주_20190429

2009년 초봄에 온 이후 언젠가 다시 오리란 다짐만 손에 꼽아 놓고 드뎌 숙원을 푼 무주 행차시다.거쳐간 적은 많지만 무주에 목적을 두고 온 건 10년 만이라 당시를 반추해 보면 감회가 남다르다.성스러운 백두대간이 품은 고장이라면 어느 하나 소홀한 곳 없겠지만 작고 아담 하면서 잘 꾸며진 모습이나 과묵 하면서도 많은 전설과 구전을 간직하고 수줍은 듯 자신을 숨기고 있지만 기실 겸손과 뚝배기 같은 이미지가 연상 되기도 한다.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지역도 첫 인상이란 게 반이라고 하지 않더냐.봄비가 구슬프게 내리던 초저녁에 도착하여 무주를 아우르는 남대천을 거쳐 미리 예약한 숙소에 봇짐을 풀어 헤쳤다. 초저녁에 도착하여 간단한 비상 식량을 마련하는 사이 빗방울이 가늘어지고, 그 가늘어진 보슬비가 피부에 닿자 ..

일상_20190426

봄의 종말을 고하는 비일까?봄비의 소리가 구슬프다.그럼에도 피부에 살포시 내려 앉아 조잘거리는 비가 반갑다. 단풍색이 젖어 걷고 싶어지는 길. 말라버린 무성한 칡 더미에서 새로운 싹이 꿈틀대며 허공을 향해 팔을 뻗기 시작한다. 한껏 망울을 펴고 싱그러운 포옹이 한창인 봄꽃들.봄의 전령사들이 지난 자리에 같은 궤적을 그리며 솟아난다. 비가 그치고, 서산 마루에 걷히던 구름의 틈바구니로 석양과 노을이 하늘을 뜨겁게 태운다.

일상_20190209

사람들이 많이 몰려 혼잡할 명절 연휴를 지나 주말에 오마니 뫼시고 만의사를 간다.오마니께선 종교적인 이유로, 나는 도심 일탈을 목적으로 손 쉽게 찾는 만의사는 도심 가까이 자리를 잡고 있어 문명에 대한 종속의 흔적이 쉽게 눈에 띈다.내가 길들여진 문명을 탓할 수 없어 아쉬움으로만 남겨 놓을 수 밖에...사찰에 오면 가족들과 달리 산책을 하며 곳곳을 둘러 본다. 오랜 대수술을 거쳐 오솔길이 이렇게 변모 되었다.봄이면 장미를 비롯, 각종 야생화도 소복이 피는 길인데 이제는 그 소담스런 길을 볼 수 없게 되었구먼. 그러곤 이런 불상도 들어섰다. 아마도 절에서 키우는 백구 몇 마리 중 하나 같다.한 쪽에 쌓여 있는 벽돌과 기왓장은 전부 돈이다. 무봉산자락에 기댄 만의사. 불상의 후광.아쉽게도 석양은 늘 성급하게..

여주 남한강 하늘_20190201

이른 퇴근 후 집에서 잠시 기다렸다 범군과 함께 여주 남한강으로 곧장 내달렸다.2년 조금 넘는 동안 처음 보는 반가운 얼굴이지만 시간이 넉넉치 않아 감상에 젖을 시간 없이 앞만 보고 달렸으나 막상 강변에 도착하자 세찬 겨울 강바람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다만 잠깐 머무르며 하늘을 보자 거대한 들판에 떠 있던 세상이 장엄하게 보인다. 평소에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겨울의 냉혹한 바람에 더더욱 조용했던 날이기도 했다. 잠깐 동안 추위에 찌들었던지 카페에서 마시는 따스한 커피 한 모금이 무척 감미롭고 포근했다.통 유리 너머 평온해 보이는 세상과 달리 여전히 강바람은 남한강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가만 두질 않았다.하는 수 없이 동탄으로 서둘러 넘어 올 수 밖에.

다시 찾은 통고산의 가을_20181026

이번 여정의 마지막 방문은 통고산 휴양림이다.각별한 추억, 특별한 가을이 있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온 통고산은 일시에 변해 버리는 가을이 아니라 제 각기 다른 시간의 흐름을 타고 계절의 옷을 입는다.통고산에 도착하자 여전히 비는 내리지만 빗방울은 조금 가늘어지고 가볍게 흐린 날이라 어둑하기 보단 화사하게 흐린 날이었다.쨍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표현이 좋고 가느다란 빗방울이라 조금 비를 맞는 감수만 한다면 활동하기 무난하다. 통고산 휴양림 초입 안내소에 잠시 내려 매년 찾아올 때마다 인사를 나눴던 분과 잠깐 대화를 하고 바로 진입 했고, 첫 만남은 여전히 인상 깊은 단풍의 향연이 나를 반겼다.평일이라 통고산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차를 이용해 천천히 앞으로 진행해도 어느 하나 민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시 찾은 영양의 가을, 한티재에서 생태숲 _20181026

앞전과 같은 동선을 따라 이동하다 구부정한 한티재 고갯길을 넘던 중 가파른 언덕에 도배된 들국화 군락지를 발견했다.오지 마을에 이런 광경이 사뭇 신기하다.비교적 굵어진 빗방울을 우산 없이 맞으며 카메라가 젖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진 몇 장을 남길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숨 막힐 듯 매캐한 들국화 향이 대기의 분자 분포도를 뒤틀어 버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고갯길에 먼 곳부터 서서히 다가가며 찍는 동안 내리는 비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한티재 주유소에 들러 굶주린 차에 식사를 든든히 채워 주고.. 다시 갈 길을 재촉하며 수비면을 지나는 길에 학교가 보여 잠시 차를 세우고 차창만 연 채로 한 컷. 희안하지?반딧불이 생태숲에 2번을 왔었는데 한결 같이 굵은 가을비가 카메라를 허락하지 않고 기억의 창고만 ..

다시 찾은 영양의 가을, 흥림산에서 자생화 공원까지_20181026

그 놈의 지독한 아쉬움으로 9일만에 다시 찾은 영양이지만, 아쉬움의 진원지 였던 가을비가 조롱하듯 똑같이 재현 되어 은둔의 방해를 간접적으로 항변하며 완고한 거부처럼 보였다.차라리 현재의 상황을 즐기자는 의미로 욕심을 내려 놓자 비도 가을의 일부로 재해석 되었다.비는 잠자고 있던 사물의 소리를, 가을은 움츠리고 있던 감성을 일깨웠다. 늦은 밤에 도착해서 두터운 여독이 어깨의 백팩처럼 묵직할 거라 우려 했지만 기우에 불과할 뿐, 눈을 뜨자 믿기 힘들 만큼 몸이 가볍고 마음은 홀가분했다.앞으로 가게 될 여정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을에 대한 상상은 거품이 잔뜩 든 기대감이 아니라 담담한 가운데 있는 그래도 받아 들일 심보 였으니까.흥림산 휴양림의 텅빈 휴양관을 나와 곧장 출발하지 않고, 잠시 윗쪽에 자리 잡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