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516

간다, 가을

봄과 다른 아름다움이 지천을 물들이는 가을은 바라보고 있는 내내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꽃이 핀 봄이 설렘이라면 여름에 마음껏 누린 후 가을엔 되짚어 보는 숙연함이 있다.산은 꽃이 지천에 피어도 여간해서는 웅장할만큼 뒤덮을 수 없지만 가을에 변모하는 나무는 이미 모든 산에 덮여 있는 고로 차라리 봄보다 더 찬란하고 광범위하다.변하는 나무든 변하지 않는 나무든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질 때 산은 아름답고 단아한 것 아닌가! 연무 자욱한 안성의 어느 산언저리에서 조차 형형색색 변하는 숲은 주위에 별로 개의치 않고 아주 천천히 제 갈길을 가듯 변해간다. 그 변화의 과정은 여름을 품은 녹색을 털어 낸 후 그들 각자의 색을 한껏 뽐내곤 부는 바람 따라 낙엽을 떨군다.땅 위에 뒹구는 낙엽조차 그 존재가 하찮을지라도 차라..

가을 금호강 자전거길을 따라

혼자서 훌쩍 떠나는, 아니 떠나버린 여행. 이지만 별 거 있나? 걍 가을 냄새 맡으려고 KTX표를 어렵게 구해서 금호강으로 갔다.자전거 여행이나 해 볼까 했는데 이번엔 40km정도 타곤 육체적인 한계점에 다다라 당초 목표에 2/3 정도만 타고 뻗어 버렸다.학창시절에 궁뎅이가 몽뎅이 찜질 당한 것처럼 무진장 아픈데 처음엔 자전거 빌린 것만도 감지덕지다 했건만 간사함이 여지 없이 드러나 공짜가 다그렇지,뭐. 그랬던 내 자신이 쑥스럽구먼, 시방.말이 길어 지면 안되니 고고씽~ 금호강 가천역 부근 자전거 길에 이런 멋진 코스모스 군락지가 있었다.그 날(10월19일) 바람이 많음에도 싸늘하지 않으면서 흐린, 그러면서도 대기가 맑아 시야가 탁 트인 청량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날이었다.자전거 길의 좌측은 한 눈..

두 번째 만남, 세종

두 번째 방문한 세종. 이른 아침에 잔뜩 대기를 덮었던 안개가 거짓말처럼 사라지자 마치 막이 열린 무대를 서서히 걸어 나오는 곱게 단장한 아이 같은 모습이다.넉넉치 않은 시간이라 오전 이른 시간에 잠시 들러 첫 번째 방문 때 미쳐 생각치도 못했던 호수공원 최북단의 습지섬으로 향했다. 다음보단 네이버 지도에 이렇게 위성사진을 통해 습지섬이 나와 있는 고로. 호수 북단 습지섬 초입에 이렇게 섬이 물에 떠 있다.위성 사진에서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불기둥 같은 그런 유연한 곡선인데 실제 보면 한달음에 훌쩍 뛰어 건널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에 일렬로 늘어선 매끈한 정원같이 보인다. 지도 상의 둥그런 습지섬으로 가는 다리. 이게 바로 습지섬이닷.둥근 섬 안에 작은 원이 두개 있는데 그걸 찍으려다 뭔 생..

갈대와 어울리는 가을

가을하면 떠오르는 풍경들 중 하나가 바로 갈대겠다.근데 동탄 오산천 인근에도 갈대가 예년처럼 한창이라 언젠가부터 벼르고 별렀다는 듯 거의 매주마다 가서 그 녀석들이 잘 크고 무르익어가나 싶어 찾아보곤 하는데 아뿔사! 마음이 넘무 앞선 나머지 나으 엑백스를 놔두고 가버렸지라잉~하는 수 없이 아이뽕5로 찍는 수 밖에 없어, 내 실력 문제였지 도구 문제는 아니었지 않나 싶어 돌리려던 발걸음을 고쳐 잡고 가던 길로 고고씽. 아직은 녹색이 빠지지 않아 갈대밭 특유의 멋이 조금 덜하지만 텅빈 의자가 있어 서로의 공허함을 상충시켜 준다.하나씩 놓고 보면 초라하게 보이는 것들이 모여 초라하기 보단 도리어 화사하고 정겨워져 다시 가서 이곳에 잠시 머무르고 싶은 충동까지 생긴다.바람결에 살랑이는 갈대가 사색의 소재도 제공..

새로운 만남, 세종

가을의 정점에서 만난 세종시의 호수 공원.터진 봉오리 마냥 수줍기만 한 입가의 미소가 도시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충분하진 않았지만 그 설렘을 담아 오기엔 모자람 없는, 가을과 어우러진 세종의 호수엔 거울처럼 유유자적의 낭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거울이 갖지 못하는 심연의 무게감을 호수는 잔잔히 보여 줄 뿐 부연 설명하거나 장황한 법이 없다.어린 묘목 한 그루 조차 호수는 시각적인 느낌보단 그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파동의 스펙트럼을 보여 줄 배려심을 가지고 있다. 지나가던 가느다란 바람 한 줄기가 호수에게 투정을 부리는 거라 착각했지만 기실 담소를 나누곤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무척이나 가까운 벗이었다.호수 너머 비치는 세상 만물은 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호수와 가까워지려 한다.언젠가 그들이 한데 친해..

아침 일출 전, 장관

월 요일 아침, 기상을 해 보니 구름과 지평선 사이 잠시 틈이 생긴 곳으로 일몰의 잔해가 비집고 나온다.행여나 일몰이 보일까 싶어 잠시 기다려 봤더니 부끄러운 햇님은 온데간데 없고 층층이 구름 위를 칠했던 햇살이 구름의 테두리를 붉게 지워 버렸다.미리 찍어 둔 사진이 이뻐-물론 내 생각이지만- 잠이 덜 깬 부시시한 졸음을 떨치고 순간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댄 희열의 징표가 남아 있구나.

노을

어제 초저녁 노을이 내가 기다리던 백미 였었는데 커피 마신다고 노닥거리면서 걍 놓쳐 버렸다.아차 싶어 밖으로 나와 보니 이미 도시 빌딩에 가려져 장대하게 펼쳐진 노을이 산산이 조각나 버린 채...오후 산책하면서 하늘을 보니 노을에 대한 강렬한 삘이 충만했었는데 그 찰나의 장관을 놓쳐 버리다니...아.. 그렇게 기다리던 순간이었는데, 그래서 단단히 벼르고 별렀건만.

근린공원의 새벽

내 귀한 친구 우한이를 오랫만에 만나 사진 하나 찍지 못한 채 잠시 그 친구를 다시 만나기 전 혼자서 덩그러니 앉아 있던 근린공원 새벽 풍경만 쓸쓸히 찍혔다. 술잔을 열심히 기울이느라 반갑고 정겨운 사람을 찍지 못해 혼자서 미안하고 면목이 없는 이유는 그 친구가 내게 있어서 평생 동안 남아 있을 사람이고 끝까지 붙잡아 놓을 사람이기 때문이다.내 주위에서 모습은 변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들 중 하나가 이 친구이자 나도 이 친구에게 편하지 않길 간절한 존재가 되도록 겸손을 잃지 말지어다.

9월24일 미완성한 채 남겨진 글과 사진

초저녁 어스름에서 가을 냄새가 나고 그 냄새의 청량감에 이끌려 땅거미 조차 완전히 대기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을 흔적들을 집요하게 찾아 헤매었다.가을은 색깔에서만 암시를 실어 주는 것이 아닌가 보다. 비 뿌리는 전날 퇴근 길에 요행히 들고 갔던 카메라가 부지불식간에 젖어 드는 가을의 증거물들을 교묘하게 포착해 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내 눈에도 그 기운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신록의 비슷했던 톤, 습했던 냄새와 감촉들에 지루함을 느낄 새라 자연은 서막에 불과할 뿐이라고 조소하듯 여름과는 확연히 다른 냄새, 색깔, 감촉의 짜릿한, 그러나 전혀 갑작스럽지 않게 적절한 기회를 만들어 폐부까지 그 넘치는 에너지를 한껏 웅크리고 있다가 조금씩 입고 있던 옷의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외투처럼 다가 온다. 편식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