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516

찰랑이는 은하수 물결, 청송자연휴양림_20201110

얼마 만에 만나는 은하수인가!온통 암흑 천지 속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는 동안 바람도 잦아들어 함께 별을 헤아린다.출렁이는 별빛 파도를 따라 총총히 흐르는 은하수는 어디로 바삐 가는 걸까?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한 움큼 쥐어 보면 향긋한 가을 내음이 손가락 사이로 뻗어 나와 천사처럼 날갯짓을 하며 암흑 속에 잠자고 있던 자연을 흔들어 깨운다.홀로 밤하늘을 즐기는 밤이다. 휴양림 통나무집을 홀로 빠져 나와 작은 능선 따라 밤하늘을 향해 올라 수없이 반짝이는 별빛 하모니에 넋 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미세 먼지 수준이 보통임에도 은하수를 볼 수 있는데 청명한 날엔 얼마나 휘영청 밝을까?은하수를 만나 각별한 순간이었다.능선의 작은 산마루에 인적이 거의 닿지 않는지 무성한 풀숲 헤쳐 덩그러니 놓여있는 ..

갯마을 석양 아래 강구_20201110

동해 바다에 있는 영덕은 바로 앞이 바다가 아닌 내륙 도시와 진배없었다. 후포와 저울질하다 호기심에 찾아간 영덕 강구는 대게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다가온 대게철을 실감할 수 있었지만 제 바닥이라고 해서 저렴한 건 아니었다. 다만 바다를 바라보며 대게를 뜯는 기분은 아무런 양념이 없음에도 풍미를 배가 시켜주는 플라시보 이펙트랄까? 모처럼 대게를 질리도록 먹고 나오자 하늘엔 땅거미가 깔려 이내 하루가 저물 기세라 바로 앞에 있는 광장을 한 번 둘러봤다. 꽤나 너른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자 비로소 딱 트인 동해가 눈에 들어오며 나도 모르게 수평선에 시선을 맞췄다. 공원 한 켠 방파제 언저리엔 건조에 한창인 생선이 있고, 그 아래엔 굶주린 길냥이들이 행여나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촘촘하게 짜여진..

가을 편지 속 책갈피, 불영사_20201110

쓸 수 있다면 가을 색동옷 차려 입은 이파리에 편지 하나 새겨 띄우고 싶다. 숨을 쉬고 있음에 감사하고, 결고운 빛 파도의 출렁이는 눈부심에 행복의 단물에 현혹되는 기분이 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지나친 시간이라도 가을옷을 입은 추억은 더욱 각별해지고, 유희 넘치는 햇살 아래 시선을 시기하는 시간 조차 내겐 너무 특별하다. 이따금 지나는 여울의 조잘거림도 경쾌한 곡조 마냥 어깨가 들썩이고, 삶의 힘든 순간도 이토록 현란한 자연의 춤사위 앞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망각의 어깨 너머로 사라질 때 지금까지의고난도 미쳐 깨닫지 못했던 뼈저린 통찰이었음을, 지금 살아 있고, 이 넘치는 자극에 감탄할 수 있는 것 또한 난 행복하다. 그래서 지나친 가을이라도 투정도, 안타까움도 없는 건 다음 해에 다가올 가을이 있기..

소중한 시간의 창고, 태백을 떠나며_20201110

예기치 못한 경험을 마주하며 기억을 조각하는 게 여행이라면 태백은 창작을 하는 작업실이라면 솔직한 표현일까? 전날 홀로 집을 지키던 냥이가 후다닥 놀다 방에 갇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 꺼내곤 곧장 다시 태백으로 건너와 늦은 시각-태백의 시계는 20시만 넘어도 식사 가능한 곳이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았다-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곳을 찾다 신전 떡볶이 집에서 모처럼 분식으로 배를 불린 경험도 여행에선 꽤나 값진 기억이었다. 밤새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뒹굴다 이튿날 늦게 부시시 일어나 태백을 떠나 다음 여정지로 출발하는데 늘 그렇듯 아쉬움 금할 방법은 딱히 없었다. 숙소를 떠나기 전, 베란다에 나와 정취를 담았는데 여전히 옅은 미세먼지가 대기를 덮은 날이었다. 청명하면 좋겠지만 이 또한 예..

여명이 지고 은하수가 핀다, 태백에서_20201109

겨울 같은 만추, 여명이 나리는가 싶더니 찰나의 인연처럼 해는 순식간에 동녘마루를 박차고 뛰어올라 단숨에 어둠을 깨친다. 가을은 그리 짧은 게 아니지만 떠나려 할 때 뒤늦은 아쉬움처럼 아침의 고요 또한 분주한 세상이 펼쳐지고 나서야 애닮음을 아쉬워한다. 치열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맞이하는 휴식에 비로소 평온에 눈이 트이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가 기지개를 켠다. 눈이 제대로 뜨이지 않는 깊은 졸음을 애써 누르고 베란다로 나와 새벽 여명을 맞이하며, 태백의 평화로운 대기에 추위를 잊는다. 마치 모든 세상이 깊은 잠에 빠져든 것만 같다. 찰나... 잠시 사색에 빠졌을 뿐인데 성급히 동트며 이글거리는 햇살의 촉수를 뻗어 세상을 흔들어 깨운다. 사용하지 않는 구형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집에 설치하여 CCTV로 ..

천년 사찰의 흉터, 원주 법천사지와 거돈사지_20201015

벌판에 덩그러니 움튼 잊혀진 시간들. 전쟁의 상흔과 희생의 파고에 제 한 몸 지킬 수 없었던 치욕은 기나긴 시간의 빗줄기로 아물어 짙은 흉터만 남겼다. 그저 지나치던 흙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건 아닌가 보다. 고결한 바람 속에 규정할 수 없는 내음이 코 끝을 숙연하게 만들듯 무심코 밟는 바위는 집어삼킬 듯 이글거리는 화마의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고, 인고에 뒤틀리고 패인 나무 등짝엔 처절함을 견딘 부적의 휘갈김이 새겨져 있다. 무심코 다니던 마을에 이렇게 너른 절터가 두 군데나 있어 가을 정취 머금은 바람과 함께 잠시 걷기로 했다. 문광저수지에서 부론으로 넘어와 절터에 들러 연신 사진을 담았건만 사진 바구니-메모리카드-는 밑둥지가 뚫렸는지 모조리 날아가 버렸고, 아이폰에 담긴 사진만 겨우 남아 다행이라 해..

어스름 사이 동 트는 문광저수지_20201015

물들어 가는 은행나무의 정취, 동녘마루 너머 하늘을 태우는 해돋이, 밤새 웅크리고 있다 새벽녘 기지개를 피는 물안개.먼 곳의 그리운 소식처럼 가을 정취는 소리 없이 대기를 유영하며 작은 날개짓을 한다.올 때 그랬던 것처럼 갈 때도 발자욱은 없지만 쉬던 자리에 여운의 향기는 짙다.새벽동이 트기 전에 찾아가 예상치도 못한 추위에 바들바들 떨며 기다렸건만 대부분의 사진들이 바이러스에 취한 것처럼 오류가 나며 이미지 파일로 인식하지 못했다.아쉽지만 메모리카드를 주기적으로 포맷해 주는 수밖에.동이 트기 전, 주차장에 도착하자 이미 와서 기다린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차에서 기다렸다.완전히 어두운 밤과 같아 분간하기 어렵지만 은행나무길의 호기심을 풀기 위해 길을 걷노라니 간간히 암흑을 헤치고 길을 걷는 사람들과 마주..

새벽 동 트기 전, 괴산 골목_20201015

이른 시각, 괴산에 도착하자 뱃속에서 천둥소리가 났다. 길 따라 돌고 돌다 유일하게 영업 중인 분식점에 들어가 야단법석인 속을 달랜 뒤 환한 불빛이 쏟아지는 편의점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 곁들이던 중 병아리 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암흑 같은 작은 꼬물이가 울어대며 쓰레기봉투를 뒤진다. 때마침 트렁크에 냥이 밥이 있어 조금 주자 몇 개 먹는가 싶더니 다시 쓰레기봉투 공격! 식사를 하라고 다가가면 금새 풀밭으로 숨어버려 그냥 거리를 두고 지켜봤다. 어미는 주변을 멤돌며 데이트 한창이고 아이는 엄마를 찾았다. 밥 냄새를 맡은 건지 다른 어린 냥이 다가와 군침을 흘렸다. 까만 몸에 발만 하얀 꼬물이, 얼핏 봐도 손바닥 하나 보다 조금 더 큰 녀석인데 다른 어린-그나마 상대적으로 좀 더 큰 녀석이다- 까만..

떠나는 길의 쉼표, 상동과 솔고개_20201007

하늘숲길에서 빠져 나와 만항재를 넘어 숲길을 지나 상동으로 진입하기 전, 첫 인가가 시작되는 시점에 잠시 멈춰 산자락이 복잡하게 엮인 상동을 향해 바라봤다. 조금 뜬금 없는 건 인가와 뚝 떨어진 자리에 쉼터가 있어 각종 운동기구들은 덩그러니 외면 받을만 했다. 하늘숲길 아래 고도가 조금 낮아진 곳이라 가을색이 확연히 옅긴 해도 짙은 녹음은 그 절정의 빛을 잃고 이 땅을 서둘러 떠나기 시작했다. 영월군 상동읍(上東邑)은 태백산맥의 중부 산간에 위치한 영월군의 읍이다. 면적은 139.5 km2이고, 인구는 2017년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1,157 명이다. 광산 취락으로 성장해 한때 인구가 4만 명을 넘었으나, 광산 채굴이 중단되면서 인구가 급속히 감소해 현재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읍이다. [출처..

구름이 무거워진 하늘숲길, 돌아 오는 길_20201007

운탄고도의 또 다른 뜻은 구름 양탄자라.. 마치 머리 바로 위에 구름 양탄자가 가을을 따라 남으로 이동하는 모양새로 화절령 도롱이연못에서 잠시 쉬는 사이 북적대던 사람들마저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서둘러 왔던 길을 되밟으며 시야가 트인 남쪽 방향에 시선을 거의 고정시키다시피 했다. 아마도 화절령으로 연결되는 산길이 아닐까? 선로는 녹슬었지만 그 고단한 세월을 위로하는 꽃 한 다발이 말없이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가던 길에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던 백운산은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은 구름 속으로 그 모습을 감췄다. 지나던 다람쥐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입을 자세히 보면 겨울 준비를 위한 식량이 한가득 들어 풍선처럼 잔뜩 부풀었다. 화절령 방면으로 갈 때와 달리 돌아갈 때엔 걷는 속도를 높여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