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여명이 지고 은하수가 핀다, 태백에서_20201109

사려울 2022. 12. 30. 22:44

겨울 같은 만추, 여명이 나리는가 싶더니 찰나의 인연처럼 해는 순식간에 동녘마루를 박차고 뛰어올라 단숨에 어둠을 깨친다.
가을은 그리 짧은 게 아니지만 떠나려 할 때 뒤늦은 아쉬움처럼 아침의 고요 또한 분주한 세상이 펼쳐지고 나서야 애닮음을 아쉬워한다.
치열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맞이하는 휴식에 비로소 평온에 눈이 트이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귀가 기지개를 켠다.

눈이 제대로 뜨이지 않는 깊은 졸음을 애써 누르고 베란다로 나와 새벽 여명을 맞이하며, 태백의 평화로운 대기에 추위를 잊는다.

마치 모든 세상이 깊은 잠에 빠져든 것만 같다.

찰나... 잠시 사색에 빠졌을 뿐인데 성급히 동트며 이글거리는 햇살의 촉수를 뻗어 세상을 흔들어 깨운다.

사용하지 않는 구형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집에 설치하여 CCTV로 활용하는데 혼자서 잘 뛰어놀던 냥이가 작은 방에서 놀다 문이 닫혀 버렸고, 가족들이 당황스러워했다.

다른 가족한테 부탁하려 해도 한창 근무 중이라 딱히 방법이 없어 그대로 집을 향해 출발, 정오 조금 지난 무렵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자 녀석이 그리도 반가워 안달이다.

가는 길에도 애타게 울부짖는 녀석의 소리에 휴게소도 거르고 줄곧 달려 도착하자 집안을 파고드는 햇살은 무심히 도 따스했다.

그래도 주저 없이 집으로 내닫길 잘했다 싶은 게 다음에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하고, CCTV조차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이런 기회로 집안에서 일어나는 반대급부를 알게 되었으니 값진 경험을 얻으면서 동시에 안도했다.

햇살 아래 녀석의 나른한 단잠을 보고 다시 태백으로 출발, 저녁을 대충 해결하고 숙소에 들어와 그나마 다행으로 끝난 해프닝에 꽁꽁 얽히고 설킨 긴장을 풀며 서로 웃어넘긴 하루다.

미세 먼지로 뿌연 하루지만 빛이 적게 드는 주차장 한켠에서 삼각대를 세우고 하늘을 찍자 어렴풋 은하수가 찍혔다.

태백에 올 때마다 뿌연 대기의 막이 밤하늘을 가려 늘 허탕을 쳤지만 이번만큼은 대기 너머 모습을 드러내곤 우주가 흐르는 방향을 따라 은하수도 천천히 흘러갔다.

1시간 정도 주차장에 머물며 평소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인색한 습관도 버리고, 서정적인 음악도 들으며 하루의 희극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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