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516

가을 열매 설익은 하늘숲길, 화절령 가는 길_20201007

가을이면 달골 마냥 찾는 곳 중 하나가 정선 하늘숲길(사북의 잃어버린 탄광마을_20141129, 하늘숲길에 가을이 찾아 들다_20191023, 하얀 하늘숲길을 거닐다_20200203)로 고산지대에 조급한 가을과 더불어 눈앞에 첩첩이 펼쳐진 산능선의 미려한 행진곡이 멋진, 단순히 연결의 의미로 채워진 길이 아닌 감상의 의미가 가미된 길을 찾았다. 그 길을 나서기 전, 큼지막한 텀블러에 커피 한 잔을 채우기 위해 아침 시간대 고한에서 동네를 둘러둘러 겨우 찾은 카페에서 듬직한 내용물을 담아 차로 총총히 가던 중에 만난 담벼락 아래 나팔꽃 무리들이 살랑이는 바람살에 나풀거렸다. 나팔꽃에 새겨진 별이 북극성처럼 갈 길을 잃지 마라고 토닥여 주는 걸까? 잠시 고개 숙여 환한 응원을 받았다. 6년 전에 밟았던 운탄..

여정의 단골 메뉴, 영월 순대국밥_20201006

정선 사북으로 가던 중 출출한 속을 채우기 위해 영월로 빠져 저녁을 때웠다. 서부시장 순대국밥집에 들어가자 퇴근 후 간단히 한 잔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로 인해 식욕은 배가 되었다. 전체적인 양은 적은데 속고기는 푸짐한 영월 순대국밥집이다. 오후 6시반이라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속은 채워야 스것지?

평온의 결실_20200920

뙤약볕 아래 태연히 갈 길을 가던 냥이를 부르자 냉큼 돌아서서 가까이 다가온다. 커피 한 잔 마시던 차, 츄르 프라푸치노 한 잔 할래? 가을이면 만물이 풍성해진다고 했던가? 다짐과 도약이 풋풋한 봄이라면 고찰과 성숙은 결실과도 같은 가을이렷다. 자연과 어우러진 생명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듯 하나를 위해 일 년을 버틴 결실은 인내가 뿌려져 더욱 아름답다. 강과 길을 따라 들판으로 번진 가을은 수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잠시 걷던 수고로움에 영혼의 물 한 모금을 살포시 건넨다. 내가 유쾌한 건 '말미암아' 불씨를 달래고, 네가 아름다운 건 '믿음'의 도화선이다. 여주 행님 댁에 도착, 머릿속은 온통 평온만 연상된다. 들판에 덩그러니 서 있던 한 쌍이 아쉽게도 제 짝을 잃었다. 한 편의 아름다운 ..

시간도 잠든 밤, 여주 남한강변_20200912

여름과 가을 내음이 공존하는 순간, 여주 신륵사 관광지에 주차한 뒤 산책을 나섰다. 낮에 그리 분주하던 세상은 피곤에 지쳐 잠들고, 오로지 불빛만 요란한데 박물관 맞은편 유원지 주차장엔 밤이 무색하게도 차박이 성행했다. 박물관 앞 잔디밭 벤치에 앉아 잠시 하루의 숨을 고르며, 한강 일대 야경을 감상했다. 제각기 한자리에 서서 요란한 불빛으로 시선을 불렀다. 돛배 선착장 앞에 한적한 공원을 걸으며 적막을 가로질렀다. 낮에 내린 비가 채 떠나기 전, 홀로 작은 공간에 자리를 잡고 심약한 등불을 반사시키며 세상에서의 짧은 순간을 기리는 가을장마의 흔적이다.

거대한 시간 앞에서, 반계리 은행나무_20200912

찾는 이 없는 고요한 시골마을을 지나며, 그 적막한 울림에 잠시 기댄다. 지나는 이도, 마을 인가도 거의 없는 외딴 깊은 산속 마을처럼 수풀이 무성하고, 바위 틈틈 이끼가 자욱하지만, 그렇더라도 넘치는 건 여유와 소박한 정취다. 걷다 아픈 다리를 잠시 쉬게 해 주는 육각정과 따가운 햇살을 막아 주는 건 감히 배려라고 읽어도 되겠다. 가을이 살짝 드리워진 여름 내음은 시원한 코끝에 살짝 덧씌워진 물의 향기처럼 파닥거린다. 그 유혹 참지 못하고 해가 지는 촉박함을 잊은 채 풀숲 너머 연신 졸고 있는 호수가 깰까 사뿐히 그 길을 밟는다. 호수 위 전망대가 비록 무성한 여름에 가려 뻗어나가고자 하는 시선이 좌절되더라도 가지 사이 간간히 풍기는 세상은 하늘처럼 넓고 산자락처럼 포근하다. 천연기념물 원주 반계리 은..

생긴 건 꼬락서니, 맛은 마약_20200905

선유도 석양을 뒤로하고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 따라 고군산군도를 벗어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비응도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자리를 잡자 밀려든 허기에 보이는 건 전부 음식처럼 보일 정도. 게다가 음식 하면 전주, 군산에, 칼국수 하면 바지락 아니것소잉! 군산에 와서 바지락칼국수 하나만 먹기엔 억울할 것만 같아, 눈에 헛것이 보일 정도라 해물전도 같이 시켰더니 비쥬얼이 무성의 그 자체다. 전을 부치다 세상 귀찮아 이리저리 굴리며 학대당한 불쌍한 모습이지만 한 조각 떼서 입에 넣는 순간 동생 녀석과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서로 눈을 맞히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렇게 억울한 상판대기에서 전혀 다른 맛이 나올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먹은 전, 빈대떡 중 최고를 군산에서 만났다. 부안에 명물, 바지..

재즈 선율 같은 석양 자락, 선유도_20200905

평이한 두 개가 모여 각별한 하나로, 단조로운 바다와 흔하디 흔한 바위산이 만나 세상 하나 뿐인 자태, 그 모습이 보는 시점과 지점에 따라 다른 옷으로 단장했다. 만약 두 바위 돌기가 서로 시기했다면 그 모습이 남달랐을까? 고립의 아픔에서 서로 의지하며 고단한 바다 한가운데 생존하는 숙원을 조화롭게 이룬 경관이, 그래서 절경일 수밖에 없다. 대장도를 떠나기 전, 뿌연 대기 사이 다음 목적지인 망주봉 방향을 바라봤다. 때론 옅은 안개도 고마울 때가 있다.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의 차이에 따라 미운 오리 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거듭날 수 있는 전경이었다. 대장도에서 차로 이동하여 선유도에 도착, 주차된 차들이 길 양 편에 늘어서 주차는 물론이거니와 통행조차 쉽지 않았다. 망주봉을 지나 선유도 해변의 끝이 보일..

바다와 섬이 그린 그림, 고군산도/대장도_20200905

섬들이 이토록 사이좋게 나고 자라는 곳을 밟으며 먹먹한 가슴을 밀어내 눈이 포근했던 섬 여행. 사소하게 물결치는 획 하나에도 저미는 가슴을 다독이며 한 발 한 발 걸어 올라가 끝내 다스렸던 기대감을 벗어던지는 쾌감은 그 어디에 비유할 바 없었다. 망망대해에 기댄 섬들은 작은 소품처럼 미약하지만 늘 같은 모습의 바다와 달리 시시각각 소박한 옷을 갈아입는 품새는 꼬깃꼬깃 접었던 종이학이 나래를 펼치며 고이 품었던 스펙트럼을 승천시키는 날갯짓이다. 화려하다고 해서 아름다울 거란 핀잔을 애써 삼키며 섬과 계절이 어우러져 감탄의 파도가 덩실거렸다. 가던 날, 안개가 뿌옇게 끼어 시야가 그리 트이지 않았지만 자연이 나에게 맞출 수 없으니 다음 기회를 설렘에 맡기자. 김제 사는 동생을 만나 군산에서 소주 한 잔 뽀개..

순천 다녀 오는 길_20191108

작년 함께 캠퍼스를 밟았던 학우들 만나러 순천을 갔다 걸판지게 마시고 완전히 새 됐다.워낙 뚝배기 같은 학우가 순천과 곡성-이 형은 10월에 전주에서 만났지만-에 살아 한 달 전부터 약속을 잡았는데 창원에 사는 학우도 꼭 참석하겠다고 해서 서울, 곡성, 순천, 창원에서 가장 모이기 쉬운 장소를 순천으로 결정 했고, 주말에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저녁에 도착하자 마자 들이 마셨다.순천, 창원 학우는 꾸준하게 연락하며 지냈지만 1년 만에 처음 본 거나 마찬가지.일 요일에 순천을 좀 돌아다니며 사진은 전혀 찍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텅빈 순천역 광장에 서서 빠듯하지만 남는 미련을 삭히지 못하고 뒤돌아서 둘러 봤다.얕은 비를 뿌린 전날의 여운이 남아 세찬 바람과 함께 잔뜩 흐리다. 덜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