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나케 달려 도착한 소금산 그랜드밸리는 막바지 가을맞이에 나선 사람들로 주차장을 가득 매울 정도였다.
그나마 여주에서 달려온 행님은 워낙 부처 같은 분이라-정말 주변 사람들조차 살아있는 부처가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가는 분이긴 했다- 카페에서 너그러이 기다려주셨고, 부랴부랴 소금산으로 향했다.
작년 12월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밤 부론에서 칼국수를 먹은 게 마지막으로 뵌 기억이라 11개월 정도 지난 만큼 정말 오랜만에 만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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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힘드실까 싶어 천천히 계단길을 올랐는데 생각보다 힘에 부딪기지 않으신 걸 보면 귀농 후 다이어트 효과가 명확했고, 도중에 한 번도 쉬지 않았다.
행님은 10번 이상 소금산 출렁다리에 방문하셨다고.
여기서부터 여정이 끝날 때까지 쉴 새 없이 그간 밀렸던 대화를 나눴고, 그렇게 시간은 금세 흘렀다.
더불어 남은 가을빛 덕분에 확실히 각인된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출렁다리를 건너기 전 절벽 허리를 감싸고 이어진 잔도가 눈에 들어왔다.
저 길에서 보이는 세상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경관이 아니지만 흔하지 않은 저 길이 지나는 세상 또한 흔한 경관이 아니었다.
그랜드 밸리를 관통하는 삼산천에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절벽에 매달린 길이 마치 절벽을 붙어 서서히 미끄러져 가는 뱀허리처럼, 스카이타워는 허공을 향해 머리를 수평으로 세우고 도약하는 뱀머리 같았다.
출렁다리를 건너 뒤돌아 보자 한 무리 인파가 지난 뒤 공백이 드러났다.
떠날 채비가 한창인 가을이 남은 소금산 일대는 미세먼지도 가리지 못한 절경의 민낯은 여전했고, 그 가을이 색칠한 풍광 속에서 허공을 관통하는 걸음은 오르는 수고를 까맣게 지웠다.
절벽이란 여백 사이를 무심히 색칠한 가을빛은 자연이 저마다 만든 고유의 붓으로 담담히 색칠하여 어떤 방법으로도 흉내 낼 수 없었다.
출렁다리를 건너 잔도로 향하는 길에 앞서 공사가 한창이던 자리는 이렇게 산중의 멋진 정원으로 재탄생했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지.
올봄에 여길 보곤 뭘 저리 또 헤집어 놓을까, 이젠 좀 그만 괴롭히지, 그랬었는데 데크가 휘감은 산중 정원은 막연히 걸음을 옮겨 천천히 걷고 싶었다.
그리 작은 규모가 아니었음에도 반듯한 정원에 가을이 활짝 핀 모습,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야생의 가을이 비교적 잘 어울렸다.
물론 힘들어하시는 행님께 이쪽으로 돌아서 걷자는 말씀은 차마 드릴 수 없어 눈으로 찍고 기억에 담아 다음에 실컷 걷기로 하자.
천천히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잔도가 가까워져 길이 기댄 비탈이 점점 가팔라졌고, 산속으로 크게 휘감았던 길은 다시 골짜기를 벗어나 더 멀리, 더 높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이어졌다.
지나왔던 출렁다리는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산에 걸터앉은 동아줄이 되었다.
출렁다리를 건널 때엔 다른 세상을 동경했고, 한참 멀어져 돌아보니 이제는 걸어왔던 출렁다리를 동경했다.
이렇게 한 발짝 멀어졌을 때 숨어있던 아름다움이 드러날 때가 많다.
산은 점점 가팔라지고 거기에 의지한 나무들도 점점 듬성해졌다.
거기에 맞춰 시야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던 나무들도 사라져 지형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잔도에 들어서 절벽에 기댄 길의 모습, 아마도 이 길에서 가장 절정이 아닌가 싶었다.
생각보다 무섭거나 드라마틱하지 않지만 그 길에선 벌판에 울퉁불퉁 올라선 산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저 길을 돌아서면 인간이 만든 거대한 구조물인 스카이타워와 출렁다리보다 더 거대한 규모의 울렁다리가 나왔다.
잔도에서 바라본 세상은 가을 덕분에 볼거리 풍년이었다.
산은 저마다 근육질 몸매를 드러냈고, 그 근육질에 윤기처럼 가을은 더욱 풍광을 빛냈다.
출렁이던 출렁다리는 마치 산의 일부인 양 작은 동아줄처럼 보였고, 산 사이를 굽이치는 강의 형세는 강인한 힘과 유연한 지혜였다.
소금산 그랜드밸리에 오면 기승전결이 뚜렷했다.
출렁다리로 오르는 완만한 계단길을 통해 점점 기대감이 증폭되기 시작하다 출렁다리를 건너며 흥분이 시작되었고, 다시 산길을 걸어 달아오른 흥분은 고이 간직되다 잔도와 이어진 스카이타워, 울렁다리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어느 누구에겐 스릴이, 또 다른 이에겐 공포와 두려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진폭 사이에서 묘한 줄다리기를 하며 보편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까지 아우르는 그랜드 밸리에선 마지막 결론도 천천히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끝으로 절정의 기분을 다스릴 수 있었다.
스카이타워로 가는 길에 잔도를 바라보면 가을보단 차라리 만추였다.
스카이타워에 도착.
산에서 한 면을 배후로 다른 한 면이 절경이었다면 철제 타워에선 막힘이 없어 사면이 절경이라는 이점이 있었다.
절벽을 이룬 바위의 선 하나도 선명했고, 산 사이를 교묘히 우회하는 강은 물속까지 선명했으며, 멀리 벌판과 산이 교차하는 세상에선 그 조화로움이 선명했다.
잔도에서 바라본 절벽 아래보다 차라리 절벽에 의지하여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형세가 더 아찔했다.
그럼에도 가을이 스프레이처럼 뿌려진 절벽은 그야말로 계절의 장터였다.
비교적 기나긴 길을 걸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보니 걸어왔던 잔도를 비롯한 타워조차 까마득하게 보였다.
길을 설계하고 구조물을 세울 때조차 이런 그림을 상상했을까?
평지에 내려왔던 길로 천천히 걸어 출렁다리 아래를 지났다.
산수화에서 보던 전형적인 바위산에서 붓으로 선을 그어 출렁다리를 덧대었다.
과거의 영동선이 이제는 졸고 있는 곳 또한 간현이었고, 일대를 지나며 봤던 각인된 장면들이 아직도 선했다.
큰 형태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걸쳐진 현대화를 직접 경험한 하루, 바로 가을 끝물의 만추에서 모처럼 여정을 소금산 그랜드밸리에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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