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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 겨울 둥지처럼, 승부역_20250308

분천역을 운행하는 3종류 열차는 다른 선로와 기형적으로 빠를수록 가격이 저렴했고, 가장 느린 협곡열차는 상대적으로 가장 비싼 열차였는데 세평하늘길을 걷기 위한 내게 있어 때마침 가장 빨리 닿는 열차가 가장 신속하게 승부역까지 실어줘 타이밍이 절묘한 덕에 첫걸음부터 물 만난 물고기처럼 경쾌했다.초봄에 쌓인 눈과 하늘을 잔뜩 가린 협곡을 탐방하기 위해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승부역에 있었는데 나처럼 열차를 이용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개인 차량이나 단체가 통째 전세를 낸 버스를 이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이전 관련글] 세 평 협곡 간이역, 봉화 승부역_20240309문명은 시간도 거칠고 세차게 현혹시켰다.하루가 다르게 변화에 길들여진 세상과 달리 2004년 이후 20년 만에 찾은 승부역은 시간도 더디게..

그리움을 싣고 달리는 열차의 간이역, 분천역_20250308

문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매끄러운 길이 그리웠는지 간소한 아침 끼니를 때우곤 주저할 겨를 없이 분천역으로 왔다.아직은 봄의 소식이 이 깊은 골짜기엔 소원했지만 떠나는 겨울이 무척 그리워질 거란 예감이 엄습해 왔고, 기어이 협곡을 비집고 꿈틀대는 고독한 외길이 지난번 허리가 끊겼다 다시 연결된 반가움이 더해져 우발적인 선택을 손꼽아 기다렸다.분천역에 도착하자 주차장은 한적했고, 주차장에서 보면 장벽처럼 휘두른 죽미산을 이은 능선들이 마치 만년설의 깊은 잠에 빠진 양 하얀 단잠에 빠져 있었다.[이전 관련글] 황혼의 간이역_20141102흥겨움 뒤엔 항상 아쉬움이란 후유증이 남기 마련. 이제 올해의 저무는 가을을 떠나 보내고 나도 집으로 가야겠다. 영동고속도로는 이미 가을 단풍객들의 귀경길로 강원도 구간..

세평하늘길로 향하던 중, 금성졸음쉼터_20250308

미리 계획을 잡았지만 봄눈이 겨울을 붙잡고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그래도 봄이 오는 걸 막을 수 없듯 내 의지 또한 거둘 수 없었다.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다 첫 쉼터이자 종종 쉬게 되는 간이 쉼터에서 만난 설원과 산의 풍경은 언제 봐도 한 폭 산수화 같았다.이래서 이곳을 단골 쉼터로 정했던 걸까?

삶과 삶 사이로, 오산 오색둘레길_20250303

적당한 맛과 멋, 적절한 땀과 그때그때 주어지는 보상.게다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둥지와 터전 사이로 지나가는 오산의 오색둘레길은 냉정하게 말하면 동탄에서 허벌나게 돌아다닐 때만큼 흥겹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 가까이 자연과 문명을 버무린 길이 있어 다행이었다.2009년 동탄에 이사를 했을 때 회사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동탄이 어딘지 모르는 사람들이 열에 아홉이었고, 그마저 아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편견으로 한 마디 거들었다.그 먼 곳에서 서울까지 어떻게 다니냐, 동탄이 화성?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그 화성?, 반도체 공정에서 불산이 나오면 어쩌나 등등막상 동탄에서 사는 난 그 쾌적함에 처음부터 대만족이었다.사람들이 많지 않음에도 매끈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주변과 하루 종일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법한..

냥이_20250303

다 함께 거실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지내던 중 방바닥에 둔 아이뽕 셀카를 작동시키자 녀석이 급 호기심을 드러내며 다가와 아이뽕 화면에 뜬 녀석의 모습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핥기까지 했다.비교적 오래 핥고 주시했는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돌아서 다른 자리에 궁뎅이를 깔았다.대낮에 세라젬 위에서 창 너머 세상을 바라보는 건 이제 녀석의 생활 일부분이 되어 이렇게 한참 동안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아파트 단지엔 특히나 젊은 부부들과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런 아이들의 뛰어노는 모습이 신기했던 걸까?늦기 전에 밖으로 나가 지난번 둘러봤던 산 능선을 이은 오색둘레길의 가장 정점인 노적봉까지 걸어갔다 돌아왔을 무렵엔 부쩍 낮이 길어져 아직 땅거미가 있던 시간이었는데 방에 앉아 맥북을 두드리던 중 머리 위에서 따가운 ..

냥이_20250302

세상 구경 삼매경에 빠진 녀석은 집사가 포근한 모포를 덮어주면 좋아했다.봄이 왔다고 하지만 겨울에서 순식간에 봄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시나브로 찾아와 아직은 겨울과 별반 차이 없었고, 그래서 모포 안에 맴도는 체온은 더욱 따스할 때였다.같은 자리에서 여러 가지 빵을 굽는 녀석의 털을 보면 참으로 오묘했다.겉은 흑미식빵인데 속털은 영락없는 두유 식빵이나 마찬가지.그런 녀석을 두고 난 맥북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이 녀석은 세상을 여행하느라 노곤했는지 집사한테 다가와 허락은 눈곱만큼도 없이 무릎 위에 올라와 자리를 잡고 이내 잠에 빠져 들었다.이제는 이런 모습이 익숙해서 그런지, 또한 이런 붙임성이 더해져 녀석은 수십 년 전부터 가족의 일원인 양 친근했다.이 상황에서 집사의 몰취미는 바로 잠자는 녀석의 주뎅이..

냥이_20250301

집에 들어와 냥냥거리며 따라다니는 녀석.그런 녀석과 함께 사냥 놀이를 즐기다 어느 정도 즐겼는지 녀석이 바닥에 넙쭉 자리를 잡고 요지부동이었다.녀석도 힘이 들었는지 배를 바닥에 깔고 식빵을 굽고 있었다.입양 전 왼쪽 다리 골절이 주홍글씨처럼 남아 이제는 작은 장애를 갖고 사는 녀석이었지만 그 애잔함과 그에 반한 녀석의 사교성에 한 가족으로써 손색이 없었다.다른 냥이들처럼 식빵 자세를 취하면 그게 도리어 불편해 왼쪽 다리를 옆으로 빼고 그러면 그 자세가 편한지 한참을 이렇게 있었다.그런데 왜캐 항상 거실이나 방 한가운데 퍼질러 자리를 잡는 거냥?집사들이 다닐 때 늘 빙빙 돌아서 가는 게 월매나 불편한지 넌 아냥?잠시 기운을 차린 녀석은 밖을 내다보며 하염없이 삼매경에 빠졌다.녀석은 뭘 그리 골똘히 쳐다볼까..

봄을 찾아 떠나는 소소한 산책, 오산 오색둘레길_20250301

이사를 온 뒤 아파트 단지 바로 앞 숲길은 짧은 거리로 다녀왔었지만 작심하고 집을 나선 건 처음이었다.때마침 설날 연휴에 물향기 수목원 방향으로 걷던 중 오색둘레길이란 이정표가 호기심을 자극했었고, 그 길에 대한 호기심을 자중할 내가 아니지.전날 옅은 비가 내려 트레킹화를 신고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길을 밟고 걸었다.옆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자마자 길은 산으로 접어들었는데 이전에 산길로 향하는 걸 발견하곤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을 뚫고 산능선으로 발을 디뎠다.비가 내린 데다 얼었던 땅과 눈이 녹아 길은 질펀했지만 꾸준히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길은 비교적 단단하게 다져있었고, 가파른 계단길을 오른 뒤부터 얕은 산능선길이라 힘들진 않았다.길을 걷는 동안 대부분 외길이라 헤멜 일도 없었는데 석산 바로 아래 갈..

산책로의 일부, 진천 용화사_20250227

사우들과 함께 퇴근 후 찾은 용화사는 사실 처음 들어보는 사찰이었는데 그렇다고 뻔질나게 돌아다닌 건 아니라 모를 만도 했다.그래도 진천읍내 이렇게 한적하고 잘 다듬어진 산책로와 이어진 사찰이 있었다니!봄이 오는 시기라 확실히 낮이 길어지긴 했다.아직도 땅거미가 남아 산책에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비교적 포근한 겨울 날씨와 맞물려 괜한 설렘을 주체할 수 없었고, 사찰에 들어서 요지부동 풍경을 보며 상상의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절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뒤편 작은 언덕은 걸미산 녹색나눔숲이란 이름을 달고 멋진 산책로가 되어 절과 하나가 되었다.용화사에서 나름 문화유산은 석조여래입상과 석조보살입상.둘 다 같은 건가?석상 머리맡에 나뭇가지들이 만든 불꽃.진천읍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