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498

기암 병풍과 길 이야기, 청송 주왕산 주왕계곡_20240611

여정과 함께 사이좋은 동무가 된 무더위의 위력은 실로 엄청나 내륙 깊은 주왕산까지 장악했다.살을 태울 듯한 따가운 햇볕,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막힐 듯 조여 오는 더위, 게다가 여정의 동반자로 손색이 없던 바람은 어디론가 숨어버렸고, 덩달아 따라다니던 구름도 흩어진 상태.그럼에도 삼척동자도 다 안다는 국보급의 주상절리 계곡은 처음이라 정신줄 단단히 부여잡고 국가대표급 무장애길을 걸어 점점 깊이 주왕산의 품으로 걸었다.원래 여정은 주왕산을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애용하는 용추협곡 따라 각종 기암과 폭포를 지나 외씨버선길로 이어지는 금은광이를 넘어 노루용추계곡과 월외매표소를 거쳐 달기약수까지 계획했지만, 무더위로 체력이 개털려 쉬운 용추협곡까지 망설였다.그러던 중 협곡의 폭포 중 가장 끝에 있는 용연폭포에서 ..

반기는 빛내림, 청송_20240610

부산을 떠나 경주를 거쳐 연이어 이어진 계곡을 따라 청송에 들어서자 석양에서 퍼지는 거대한 빛내림이 청명한 하늘을 대신했다.주왕산에 가기 위한 첫걸음, 청송의 작은 기억을 만들 차례였다.[이전 청송 관련글] 찰랑이는 은하수 물결, 청송자연휴양림_20201110얼마 만에 만나는 은하수인가!온통 암흑 천지 속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는 동안 바람도 잦아들어 함께 별을 헤아린다.출렁이는 별빛 파도를 따라 총총히 흐르는 은하수는 어디로 바meta-roid.tistory.com 단아한 주왕산 계곡, 절골_20201111이미 가을은 떠나고 머물다 간 흔적만 공허하게 남아 무심히 불어오는 바람에 희미해져 가는 내음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을 버리고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계곡은 간헐적으로 방문하met..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선 부산 금련산과 황령산_20240610

도심을 가르는 황령산과 금련산은 부산의 터줏대감이자 도심 야경의 진수를 확인시켜 주는 거대 탑이기도 하다.전날 소주 몇 잔으로 아쉽게 야경은 물 건너가 버렸고, 부산을 떠나기 전 들러 나란히 하는 금련산에 이어 황령산에 차로 이동하여 연무 서린 도심을 둘러봤는데 가장 먼저 금련산에서 가던 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해운대에 서린 뿌연 안개가 하나의 그림을 남겼기 때문이었다.금련산은 부산 연제구, 수영구, 남구에 걸쳐 있는 해발 413.6m로 바로 옆 황령산보다는 약간 낮다. 부산시민들이 황령산이라고 말하면 실제 황령산뿐만 아니라 옆의 금련산까지 포함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두 산의 봉우리는 거리도 멀지 않고 도로로 금방 연결된다. 산자락에 금련산청소년수련원과 폐업한 지 오래인 실내 스키장 스노우캐슬이 있..

폭염 첫 날, 익산 중앙로_20240609

익산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그래서 위봉산성 여정을 계획했건만 바로 무너졌다.때마침 더위도 한몫 했기에-그전 주까지만 해도 이상저온에 청명한 날씨였는데 갑자기 폭염 주의보가 염병을 떨었다- 후끈 달아오른 익산 도심을 걸어 맛집 탐방도 곁들였다.왠지 지난날과 같지 않은 익산역 앞은 한 때 붐비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인적이 드문 곳이 되었고, 그나마 맛집은 성황이었다.줄 서서 먹던 고려당은 여전히 대기가 길어 이번엔 패쑤, 칼국수집은 자리가 있어 비집고 들어가 줍줍 했는데 어찌 보면 타지 사람들한테 익숙하지 않은 비쥬얼로 마치 수제비 육수에 칼국수를 조합한 음식이었다.다만 왕만두는 꼭 먹어야한다.동탄역에서 SRT를 이용해서 종종 오던 익산역은 한 때 번화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인적이 드물었다.익산의 향수를 다듬..

구름의 강이 흐르는 충주 수주팔봉_20240515

때마침 수도권은 대낮부터 장대비가 내려 야외 스포츠도 우천으로 중단되었던데 반해 충주는 거짓말처럼 대낮엔 화창하다 16시를 넘겨서부터 구름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17시 전후부터 장대비가 내렸고, 이른 저녁식사 뒤에도 부쩍 길어진 낮이 아직은 건재하여 비교적 가까운 수주팔봉으로 향했다.역시나 장대비로 일찌감치 사람들은 떠나버렸고, 어차피 고속도로 상행선은 정체구간이 길어 천천히 둘러보며 남은 공휴일을 누렸다.바람과 비, 그리고 구름이 함께 머물다 떠나는 자리, 충주에서 큰 골짜기만큼 진폭이 큰 휴일이었다. 강, 산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오작교, 수주팔봉_20210128오죽하면 강산이 고유명사처럼 사용 되었을까? 뗄 수 없는 인연의 골이 깊어 함께 어울린 자리에 또 다른 강이 함께 하자고 한다. 태생이 다른 ..

호반에서의 유유자적, 충주 종댕이길 심항산_20240515

작년 늦여름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 동경의 돛단배를 타고 다시 찾은 종댕이길은 이제 막 젖어들기 시작하는 봄의 문턱을 넘어 여름의 짙은 녹음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사람들의 손끝에서 비롯된 온기가 종댕이길 일대에 뿌리를 내려 간과될 만한 작은 소품들이 길 위의 모든 존재들과 길가를 겉도는 무형의 흔적들이 유기적으로 어울려 단순히 이동의 발판이 되는 길의 의미를 넘어 혼탁한 현실을 재조명시켜 주는 치유가 되고, 노동의 걸음이 아닌 지혜의 걸음으로 재탄생한다.내륙 속의 작은 바다에서 말미암은 파동으로 굳어진 사유에 겹겹이 끼인 때는 어느새 바스러지고, 길가 스치듯 가까워졌다 멀어져 간 모든 순간들조차 기억과 추억에 가두고 싶은 곳, 애환을 실어 나르던 종댕이길은 이제 삶의 이완제로 다가온 혈관이 되어 버렸..

주흘산의 진정한 자태, 문경 봉명산 출렁다리에서_20240503

장례식장 다녀오는 길에 굳이 크게 돌아 문경 봉명산 출렁다리에 올랐고, 소기의 목적인 주흘산의 자태를 관망하는 걸로 충분히 만족했다.백두대간의 산줄기에 한 걸음 뻗어 나와 하늘로 우뚝 솟은 모습이 날서린 공룡 등비늘처럼 독특하며 위풍당당했다.출렁다리를 건너는 동안 한사코 따라다니며 가슴으로 감싼 지역의 매력을 속삭였는데 어느 누구든 팔불출이 되더라도 이유가 있을 법했다.가고 싶은 곳은 넘쳐났고, 한정된 시간이 문제로소.주흘산은 경상북도 문경시에 있는 해발 1,106m의 산으로 최고봉은 영봉이며, 문경새재도립공원에 있어서 등산 전후에 문경새재 관광도 할 수 있다.주요 등산로는 문경새재 방향으로 나있다. 주로 문경새재 1관문에서 시작하여 1,076m인 주봉까지 오른다. 주봉까지 가는 길에 여궁폭포라는 큰 폭..

역사는 잠들고, 봄은 분주한 화산마을. 화산산성, 하늘/풍차전망대_20240412

꽃잎이 떨어지듯 기나긴 봄 여정의 꽃망울도 시들었다.돌아가는 길에 내륙 깊이 은둔한 도로를 경유하여 군위에 들러 포토 스팟으로 종종 고개를 내밀던 풍차 전망대에 들러 이글거리는 햇볕 아래 견고히 살아가는 세상과 더불어 화본역도 덩달아 들렀고, 잔잔한 들판 아지랑이 공백을 유영할 때 어디선가 시선을 유혹하는 도화 물결도 만났다.흥망성쇠를 반복하는 역사의 애잔한 그늘에선 무심히 진달래 하나 슬픈 역사를 기리는데 그 무심한 역치는 얼마나 깊은지 성곽의 돌무더기는 도저히 움직일 기미가 없었지만 자연은 봄이불을 덮어 쓰라린 상흔을 어루만져 흉터도 지우고 있었다.아직 남은 벚꽃 구름의 눈발을 쫓아, 산허리 넘실대는 진달래를 쫓아 떠난 여정은 이렇게 소리소문 없이 흘러가 버리고, 인간이 애써 이룩한 역사의 처절한 무..

짧은 만남, 긴 여운, 대구 비슬산_20240411

주어진 3시간 중 비슬산 정상 천왕봉에서 보낸 1시간을 제외한다면 2시간 정도의 짬이 주어졌고, 그 시간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 잠시 앉아 쉬는 시간은 사치라 여겨질 정도로 발바닥에 불이 났었다.대견사 - 천왕봉 - 진달래 군락지 - 대견봉을 거치는 동안 그 많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떠나버리고, 진달래 사이로 간간이 지나던 연인의 속삭임이 하루가 꺼져가는 석양의 햇살처럼 은은한 여운으로 번졌다.천왕봉 허공을 가르던 한 무리 까마귀 떼의 활보, 진달래 사잇길에 얽힌 다양한 진풍경, 대견봉 아래 펼쳐진 세상의 이면들, 기암괴석에 기댄 사찰, 그리고 커피의 진득한 향처럼 은은히 번지는 땅거미를 끝으로 드라마틱했던 비슬산 여정을 접었다.[이전 관련글] 비슬산의 유가사_20170504이튿날 일찍 꽁지 불 난 사람처럼..

고원의 봄 전령사들, 대구 비슬산_20240411

비슬산의 채 여물지 않은 핑크빛 바다를 뒤로하고 정상으로 향하는 외길 고독한 선을 밟으며 잡념과 사념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사유의 존립을 채찍질했다.계절은 지독한 질서의 인내를 극복하여 신뢰와 감탄을 주건만 조급한 결론과 필론의 가두리 양식장 속에서 스스로를 학대하며, 타인을 핍박하는 게 얼마나 자연스런 정당화에 속고, 속이는 걸까?되물음과 되짚음의 교착에 빠질 즈음 지상에서 그리 거대하고 위대했던 비슬산은 여느 산일 뿐, 한 걸음 떨어져 통찰도 얻지만 두 걸음 떨어져 위장의 장막도 만들어 내던 동굴은 만천하 같았지만, 좁은 아집과도 같았다.그렇게 산 정상에서 세상을 넘어선 자연과 계절에 경탄하며 가슴 저민 감동도 얻는다.진달래를 보기 위해 산에 올라 하나를 초월한 화답을 듣던 날이기도 했다.비슬산은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