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498

경쾌한 봄,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울렁다리_20240323

완연한 봄에 찾은 원주 간현에서 만개한 대지의 봄볕 아래 천리안을 빌려 산이 바라보던 세상을 품었다.나무의 꿈이 어느덧 뛰쳐나와 가지의 눈으로 영글어 오색빛 현실이 되고, 차디찬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 켜던 대지는 신록의 푸른 춤에 흥이 실렸다.주말을 맞아 길 따라 흐르는 인파 속에서 희망의 미소가 빛을 굴절시킬 때 봄은 앞서거니 쫓아 산으로, 강으로, 벌판으로, 철길로, 허공으로 등 떠미는 진풍경을 보며 봄을 실감했고, 그 따스한 군집에 스며 동화되어 걸음 또한 분주했다.많은 인파가 올 거란 예상과 달리 고속도로는 줄지어 남쪽으로 향하는 덕에 제법 여유 있는 여정을 곱씹었다.단돈 9천원의 행복, 충분히 즐길 자신 있다면 그 9천 원 아깝지 않았다. 소금산그랜드밸리 시설안내 - 소금산그랜드밸리 - 테마..

오지 협곡에 흐르는 풍류, 낙동강 세평하늘길 1구간_20240309

협곡에 살짝 걸쳐진 길을 걷다 앉으면 길가 벤치가 되고,조밀한 나무 어깨를 지나면 터널이 되고,깊이 들숨을 마시면 향기가 되는 곳.낙동강이 허락해 준 낙동강 세평하늘길(이하 '세평하늘길')은 극도로 한갓진 두려움도, 깊디깊은 적막의 어둠도 없었다.그럼에도 자연의 숨결이 명징하게 피부를 스치며, 새의 지저귀는 노래가 이토록 아름다운지, 구르는 물의 소리가 이토록 흥겨운지, 또한 바람 소리에서 이토록 향그로운 향이 나는지, 문명이 차단된 계곡이 투영한 햇살이 콧잔등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교감했다.길은 강변 수풀을 헤치고, 모래자갈밭을 지나며,바위를 밟고, 철길과 나란히 걷거나 아래를 지나며,데크길로 가파른 비탈길을 날고, 절벽을 스친다.그래서 길은 삶이 지나는 혈관이며, 이야기가 오고 가는 전신주였다.겨..

세 평 협곡 간이역, 봉화 승부역_20240309

문명은 시간도 거칠고 세차게 현혹시켰다.하루가 다르게 변화에 길들여진 세상과 달리 2004년 이후 20년 만에 찾은 승부역은 시간도 더디게 흘렀는지 고순도의 옛 모습을 유지했다.하늘 아래 세 평 간이역, 승부역에서 요동쳐 철길 따라 소소히 구전되다 길의 유래가 되어 버린 협곡 품 아래 작은 간이역에서 작은 도전과 소박한 출발을 고했다.더불어 변하지 않아 반가운 것들, 붉은 벽돌 역사와 나무 한 그루 덩그러니 서있는 플랫폼, 그리고 산중 에이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대기실을 정독했다.승부역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위치한 영동선의 철도역이다.역 인근에 작은 마을이 있을 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역 이용객은 사실상 전무했으나, 1999년 환상선 눈꽃순환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로는 접..

흐르는 강물처럼, 낙동강 세평하늘길 3구간_20240309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유일무이한 길이자 강변과 함께 나란히 늘어선 세평하늘길을 걸으며 그 길이 안내하는 대로 쉼 없이 걸었다.가끔 마주치는 인가와 어쩌다 지나는 차량의 엔진소리가 반가울 만큼 문명의 밀도가 낮은 공간을 파고들어 언제부턴가 소음에 길들여진 어색함을 털기 위해 나지막이 음악을 곁들였다.세평하늘길은 총 3 구간으로 1구간은 승부역~양원역, 2구간은 양원역~비동 임시승강장, 3구간은 나머지 비동~분천역까지로 나뉘는데 분천역에서 출발하여 걷는 구간은 3구간으로 낙동강이 첩첩산중을 비집고 들어가 억겁 동안 트여놓았고, 인간은 거기에 좁은 도로와 철길을 얹어 놓았다.그래서 강에 자생하는 생명들과 자연들이 서로 교합하여 만들어낸 소리가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풀어놓은 실처럼 이정표가 되어준 덕..

외면의 알을 깨고 세상으로, 봉화 분천역 산타마을_20240309

철길이 유일한 이동 통로인 곳, 영화 '기적'의 배경이 되는 양원역 일대 둘레길이 조성되었고, 철길을 중심으로 도보길이 실타래처럼 얽힌 세 평하늘길에 당도했다.지난 대관령 여정에서 함께 둘러볼 심산이었으나, 당시 동해역 부근 허름한 모텔조차 15만원이라 잠시 미뤘고, 일주일 지나 그 땅을 밟았다.세평하늘길은 지자체에서 트레킹 코스로 만들어 둘레길 중 한 곳인 승부역 초대 역무원의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이라는 시에서 착안, 세평하늘길이 되었는데 분천역에서부터 양원역을 거쳐 승부역까지 약 12km 둘레길로 겨울이면 오지의 협곡에 잉태한 눈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이동 수단인 열차를 타고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었다.2004년에 유일한 민자(?) 간이역인 양원역을 어렵게 찾은 적 있었는데 당시 양원역은 서..

봄이 불어오는 끝없는 설경, 대관령 선자령_20240301

대관령 옛길은...대관령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그야말로 파노라마 같다. 발 아래로 급히 낮아지는 지형을 따라 산줄기와 계곡은 넓게 펼쳐지고 저 멀리 자리한 강릉시내와 경포호,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동해의 푸른 물은 청량하기 그지없다.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광활한 풍경이다. 대관령 고개에서 해오름의 방향, 즉 동쪽 산하를 바라보는 모습은 이렇게 아름답다. 아득히 먼 옛날 대관령을 넘던 신사임당은 이 고갯마루에 올라 산 아래로 멀리 펼쳐진 고향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향집의 노모를 떠올리고는 애틋한 마음에 젖는다.대관령은 큰 고개다. 한계령, 미시령, 진부령과 함께 백두대간을 넘는 4대령 중의 하나로 오늘날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 지방을 연결하는 길 중에서 가장 이..

삼국시대의 뜨거웠던 흔적, 화성 당성_20240209

신라와 백제의 함성이 겨울 서릿발처럼 묻혀 깨어나지 못할 깊은 잠에 빠진 당성(당항성)이 같은 고장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북편 멀리 사라진 위대한 한민족 고구려가, 남편 가까운 곳엔 슬기롭던 백제가, 서해 건너 대륙을 호령하던 당이 있었고, 성 일대 맹주는 지혜롭던 신라였다.현재의 필연은 과거의 셀 수 없는 파편들이며, 생존을 위한 핏빛 투쟁은 인류의 본질이다.그 파란만장했던 시대에 뜨겁던 열기는 잠자고 이제는 황량한 겨울이 활보해도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시대의 슬픔과 기쁨도 모두 땅 속에 묻고 서리와 이슬처럼 그저 다가왔다 흩어질 뿐이었다.당성 또는 당항성은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테뫼형(산봉을 중심으로 산정 외곽부를 돌로 쌓은)과 포곡형(봉우리와 계곡 주위를 둘러쌓은)..

미세먼지 바다에 우뚝 솟은 바위신(神), 치악산 비로봉_20240129

도전에 대해 사전적 의미를 넘어 나태함을 합리화한 다른 핑계로 방호했었고, 번지 점프를 하듯 과감히 떨치며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그래서 실행에 앞서 효능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작 전 워밍업 차원에서 치악산으로 향했다.짧은 시간 동안 체력의 임계점에 다다르면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그걸 극복하는 효능감과 더불어 자신감을 지탱시키는 자존감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구룡사를 지나 세렴폭포까지는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도달했고, 여기서부터 치악산 사다리병창길의 악명을 떨치기 위해 잠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뒤 아이젠을 착용하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오르막 급경사길로 한발 한발 내디뎠다. 나는 늘 치악산을 좋아한다.내가 산을 잘 타거나 타인 이상의 체력적 강인함을 가져서가 아닌 단지 강원도..

햇살 가득한 정선 정암사_20240126

정암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다. 함백산은 태백산 북쪽 자락에 위치하여 정선군과 태백시의 경계를 이룬다. 한반도의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가 자리하고 있기도 한다.적멸보궁은 정선군 정암시에 있는 신신사리를 봉안한 사찰 건물이다.이 건물을 지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 영조 47년 1711에 고쳐 지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18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자연석 기단 위에 세워진 앞면 3간, 옆면 2칸 규모의 건물이다. 겹처마를 드리우고 옆면에도 지붕이 뻗어 있는 팔작지붕을 올려 화려하다.일반적으로 적멸보궁은 안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근처에 수마노탑을 지어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한다..

한파도 개의치 않는 태백의 포근한 정취, 철암_20240125

원래 연화산 둘레길을 걷는 계획으로 연화산유원지를 찾았지만 제법 쌓인 눈이 두터워 초입에 주차한 뒤 유원지 내부로 걸었고, 이내 신발이 젖어 계획을 수정했다.때마침 웹으로 회사 전산에 접속해야 될 일이 있어 겸사겸사 도서관을 찾던 중 꽤 많은 도서관 중 철암도서관에 전화 문의를 드리자 외지인도 이용 가능한 데다 심지어 와이파이도 짱짱하다는 말씀에 철암 여정으로 급히 우회했다.도서관으로 가기 전에 햇살이 넘치는 마을 거리를 배회하며 시간의 단맛, 그리고 추억의 주마등을 회상하는 사이 거리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겸허히 받들어 비슷한 듯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하나씩 만났다.햇살 아래 한가로이 일광을 즐기는 냥이들, 산허리 구부정 오르는 길, 그리고 그 아래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