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자연 그리고 만남 498

창원 도심의 말끔한 고수부지, 창원천_20240410

해가 지고 난 뒤, 땅거미 아래 도심은 어설픈 조명이 켜지고 꺼졌다.그에 맞춰 의식의 불을 끄고 본능이 닿는 대로 걸으며 이 땅에 발을 들이고 움튼 자연의 태동과 그들의 저마다 뿌리내린 자리에서 단잠을 청했다.그 일상이 때때로 체감하기 힘든 평온으로 화답할 때, 자각하지 못한 행복이 아니었을까.간편한 저녁 식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아직 남은 하루의 빛을 찾아 가벼이 도보 여행을 했다.작은 하천변 촘촘히 올라오는 신록의 태동 사이로 걷다 어느새 하늘과 지상의 불빛이 교대하는 틈의 소소한 아름다움이 보였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 사람들과 뒤섞여 지친 가운데 안식의 그림자로 빨려 들었다.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환한 공원을 걷노라면 남녘 이른 봄을 읽으며 다가올 봄의 정점도 예측할 수 있었는데 그로 인해 ..

'고향의 봄' 진달래꽃 피는 산골, 창원 천주산_20240410

고향의 봄에서 등장하는 진달래 배경이 천주산이라고, 그래서 여러 잡념을 배제하고 내 감정에 충실한 진달래를 찾아 창원 천주산에 왔다.창원 분지를 둘러싼 여러 산 중 북녘에 천주산은 진달래 군락지가 있는데 여수 영취산, 대구 비슬산처럼 정상 부근에 군락지가 있어 산행은 필수.사실 여수 영취산만 다녀온 입장이라 이번엔 창원 천주산과 대구 비슬산을 찾기로 했는데 절정의 만개라 주차에서부터 오를 때까지 그리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진달래 군락지에서 잠시나마 봄의 진수가 들려준 이야기에 흠뻑 젖었고, 모처럼 산행의 성취감까지 한 데 아우를 수 있었다.진달래꽃은 산 넘어 어디에선가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을 완연히 느낄 때 즈음에 피기 시작한다. 동네 앞산은 물론 높은 산꼭대기까지 온 산을 물들이는 꽃이다. 진분홍 꽃..

시나브로 흐르는 남강과 시간, 진주 남가람공원_20240409

진주에 다다른 건 바람에 푸른 노래를 떼창 하는 대숲과 그 너머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촉석루를 보기 위함이었다.애석하게도 대숲은 공사중이란 푯말과 함께 출입 금지되어 남녘 이른 봄의 연가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놀라운 건 10년 전 기억이 전혀 변색되거나 오염되지 않았다.언제 개방될 지 몰라도 마냥 기다릴 수 없었고, 명확한 다음 목적지인 창원 천주산이 있어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를 털고 떠났다.진주 촉석루(晋州 矗石樓)는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내에 위치해 있는 누각이다. 남강변 절벽 뒤편에 있는 촉석루는 진주성의 남쪽 장대로서, 군사를 지휘하는 사람이 올라서서 명령하던 대이기도 했다. 일명 장원루라고도 한다.1365년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세운 후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 그 뒤..

벚꽃잎 바람결에 흥겨운 붕어섬, 임실 옥정호에서_20240409

가는 길도, 주변을 아우르는 풍광도, 하다 못해 이름조차 이쁜 옥정호의 평온에 헤엄치는 붕어섬은 어느덧 붕어빵 이상의 명물이 되어 관광지로 다듬어졌다.비록 황사와 미세먼지 연합 방해 작전이 있었음에도 사유를 넘어선 본질을 흐트릴 수 없다.잠깐의 오르막 이상으로 여과 없이 보여주는 심연의 세상에서 봄어항 속 잠자는 붕어 한 마리 낚아 휘날리는 벚꽃잎을 뿌린 뒤 마음의 견고한 벽에 걸어둔다.머나먼 길 달려왔다 다시 머나먼 곳으로 떠나야 되는 게 고행이라면 거치는 경험들은 값진 통찰이다.그리하여 다음 통찰을 위해 진주로 떠난다.옥정호는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과 정읍시에 걸쳐 있는 호수로 섬진강 상류수계에 있는 인공호수.운암호라 불리기도 하며, 총 조수용량은 4억 6600만t이고, 면적은 16㎢이나 만수위 때는 ..

바위 신선, 임실 상사봉_20240409

무심히 들판에 솟은 멋진 바위산과 함께 봄은 그렇게 내륙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려 분출하는 화산의 마그마처럼 몽실몽실 피어올랐다.그래서 벌판에 화색이 돌고, 메마른 바람에 향기와 이야기를 실어 날랐다.가는 길 내내 길가 벚꽃의 앳된 환영으로 시간을 잊은 채 가던 속도를 줄여 시선을 맞춰 교감의 유희를 즐겼다. 전설에 의하면 상사봉에는 불을 뿜는 도깨비가 살았다고 해서 ‘화산火山’이라 불렸다고 한다. 높이 100m가 넘는 암벽을 대패로 밀어 놓은 형세다. 인근 지역 119구조대는 이곳을 암벽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상사봉은 산속의 산이다. 표주박처럼 길쭉하게 도지봉, 제비설날, 지초봉, 배나무골 등을 거느리고 있기도 하고, 호남정맥인 박이뫼산, 갈미봉, 경각산, 국사봉이 상사봉을 반달 모양으로 감싸..

장엄한 석양을 담은 봉화 축서사_20240407

붉은 석양이 질 때면 아쉬움도 붉게 타들어간다.그럼에도 밤이 지나 다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진리로 인해 오래 머무르지 않고 내일을 기다린다.석양 맛집에서 아쉬움을 털고 땅거미 등에 염원을 실어 날린다.더불어 문수산에 둘러 쌓인 사찰에 첫 발을 들이는 순간 장엄해지는 기분에 습관처럼 감탄사를 뱉게 된다.3대 청정탄산약수와 축서사를 품은 문수산(높이 1,205m)은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춘양면 서벽리, 봉성면 우곡리에 걸쳐 있다. 백두대간 옥돌봉에서 남동쪽으로 안동의 학가산까지 뻗어가는 문수지맥의 산으로 봉화의 진산(鎭山: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지켜주는 주산으로 정하여 제사 지내던 산)이다. 신라시대에 강원도 수다사에서 도를 닦던 자장 율사가 태백산을 찾아 헤매던 문수보살이 이산에 화현(化..

태백 철암역에서 협곡열차 타고_20240406

다시 찾은 철암에 변한 것은 단 하나, 바로 겨울이 물러난 자리에 봄이 들어와 한층 온화한 정취로 변모했다.하얀 눈으로 뒤덮인 선로는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았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철암천은 두텁던 얼음 대신 신록의 희망에 잔뜩 부풀었다.어느 하나가 좋다는 느낌보다 산골 마을 계절이 주는 묘한 매력을 함께 체득한다는 게 계절마다 특색 있는 푸짐한 밥상을 거나하게 즐긴 기분 이상이었다.다만 열차 이용과 식솔이 많아 시간대가 애매한 바람에 철암에 1시간 정도 머문 걸로 만족해야지.꾸준하게 몰리는 사람들로 인해 꽈배기를 시켜 포식하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 예약한 열차 출발이 임박했고, 돌아오는 길에 승부역, 양원역에 잠깐씩 들러 감질 맛 나는 간이역 구경에 비해 순도 높은 오지를 편하게 앉아 정독하는 재미는 ..

추억과 오지의 간이역, 봉화 분천역_20240406

불과 한 달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봄은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앙상한 가지에 연둣빛 옷을 입혔고, 황량하던 흙 위에 노란 점을 찍었다.그도 모자라 간이역 플랫폼에 생기를 불어넣어 오가는 걸음 분주하다가도 이내 사라졌고, 그러다 정적이 쌓이면 다시 종종걸음이 싣고 온 웃음소리를 채웠다.어느 누구에겐 덜컹이는 기차가 삶의 동선이라면 어느 누군가에겐 추억의 장난감이 되어 감성에 젖게 했다.그래서 이번엔 종점, 철암으로 간다.분천역은 영동선의 철도역.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길 49(분천리 935-1) 소재.역명은 여우천에서 내려오는 냇물이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 하여 부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제가 '부내'를 한자화 해서 분천(汾川)이 된 것이다. 현재의 역사는 1957년 완공된 것이다. 2..

자연의 즐길거리, 인천 영종도_20240331

늘 그랬다.봄이 가까이 오느라 기다린 사이 어느새 봄은 무르익어 멀어질 약속만 남겼다.그래서 집착적으로 봄을 쫓는 사이 깨닫는 바, 계절을 누리는 본능 실현의 과정이 행복이란 것.완성되고, 소유하는 건 잊혀진 과정의 빈자리에 공허가 쌓이고, 과정을 즐기는 건 여전히 뽐뿌질하는 심장의 역동을 느끼게 했다.돌이켜보면 기대가 용해된 과정에서 긴장과 굴곡이 상대적으로 희열을 증폭시켜, 그게 곧 생생한 행복이라, 봄의 기대에 아직 남은 내 인생, 내 건강을 확인하며 새삼 행복을 느꼈다.앞서 그걸 느끼게 해 준 진천, 그리고 이번엔 영종도에 감사 드릴 차례였다.지인 댁에 방문했던 차에 하늘신도시에서 걸어 도착할 수 있는 바다 전망의 씨사이드파크로 갔다.레일바이크가 운영 중이라 멀리서부터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봄의 갈망, 진천 농다리와 미르숲_20240330

누구나 계절에 대한 다짐, 약속, 추억은 있기 마련.내게 있어 봄의 약속 중 하나가 되어 버린 농다리 계절의 청량감을 즐기는 몰취향은 손꼽아 기다리는 의식이 되어 버렸다.미르숲에서 미로 같은 숲길 갈림길에서 즉흥적으로 발길이 가는 대로 길을 걷고,만약 걷다가 길을 잃어도 전혀 상관없었다.결과를 안다는 건 스릴도 없지만 두려움도 없는, 역치 내에서 지극히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최소한 농다리에서 조금 이른 봄 산책이지만 시신경을 자극하는 스펙트럼이 모든 게 아니며, 청각이나 후각 또한 모든 사유의 동조 안에서 결과는 상이했다.그래서 미르숲을 찾아 괜히 방황하고, 쓸데없이 기웃거리며, 정해진 길에도 공감의 가슴을 열어젖혔다.진천 농다리는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인 다리로 아름다운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