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늦여름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 동경의 돛단배를 타고 다시 찾은 종댕이길은 이제 막 젖어들기 시작하는 봄의 문턱을 넘어 여름의 짙은 녹음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손끝에서 비롯된 온기가 종댕이길 일대에 뿌리를 내려 간과될 만한 작은 소품들이 길 위의 모든 존재들과 길가를 겉도는 무형의 흔적들이 유기적으로 어울려 단순히 이동의 발판이 되는 길의 의미를 넘어 혼탁한 현실을 재조명시켜 주는 치유가 되고, 노동의 걸음이 아닌 지혜의 걸음으로 재탄생한다.
내륙 속의 작은 바다에서 말미암은 파동으로 굳어진 사유에 겹겹이 끼인 때는 어느새 바스러지고, 길가 스치듯 가까워졌다 멀어져 간 모든 순간들조차 기억과 추억에 가두고 싶은 곳, 애환을 실어 나르던 종댕이길은 이제 삶의 이완제로 다가온 혈관이 되어 버렸다.
가끔 그런 곳이 있다.
자랑하고 싶은 곳과 나만 소유하고픈 곳.
충주 일대 숨겨진 명소는 사실 후자였다.
홀로 소유하며 지나친 소유를 덜어내고 싶은 곳, 길을 만든 옛부터 쌓인 이야기에서부터 현재 이 길에 삶의 정수를 녹인 사람들까지 각자가 하나의 역할을 위해 길가 꽃 한 송이조차 존재의 필연을 가지고 계절과 함께 얽혀 고운 수의 직물로 포옹했다.
종댕이길은...
정선 정씨의 집성촌이자 시조를 모신 사당이 있는 심항산은 [종당산], [종댕이산]이라 불렸다. 충주댐 건설 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으나 2013년 총 8.5km의 [종댕이길]이라는 탐방로를 개통했다. 마즈막재 주차장에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나오는 생태 연못이 종댕이길의 시작점이다. 길의 오른편에서는 충주호를 바라볼 수 있고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좁은 길이 이어진다. 길을 따라 팔각정, 출렁다리, 육각정과 같은 명소를 만나볼 수 있다.
[출처] 종댕이길_대한민국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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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진천 농다리로 향했으나, 들어가는 초입부터 북새통 저리가라 였다.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과 갓길로 삼삼오오 오가는 사람의 행렬을 보자 농다리는 고사하고 주차장까지 진입하는 것도 한참 걸리겠다 싶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움직임 속에 고민한 뒤 차량을 급히 돌려 충주로 향했다.
물론 빠져나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지만 충주로 오는 길은 수월했고, 녀석들이 산행뿐만 아니라 트레킹도 거의 안 해본 터라 거기에 딱 맞는 곳이 떠올라 바로 향했다.
그 떠오른 곳이 종댕이길로 길목에 해당되는 마즈막재에 도착했다.
북새통이던 진천 농다리에 비해 마즈막재의 한적함은 쾌적함으로 변이 되어 크게 한숨 돌릴만했다.
길이 시작되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마즈막재는 충주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호수라는 도화지 위에 자연과 인간이 함께 써내려간 계절을 보여줬다.
지난해 여름 종댕이길 초입엔 낙엽으로 만든 하트가, 이제는 생활 폐기물을 재활용하여 멋진 풍량계를 만들었다.
이런 작은 구슬땀이 모여 기나긴 이야기가 되고, 작은 것들이 모여 또 하나의 거대한 존재가 된다.
이따금 부는 바람이 수풀을 스치며 찰랑거렸다.
구슬땀을 흘려 곧장 심항산에 올라 빙하기가 덮친 마음속에 추파를 던졌다.
심항산은 비록 해발 고도가 낮지만 계명산 앞 호수를 둔 덕에 어느 높은 산 못지 않게 멋진 절경을 빼놓지 않았다.
마즈막재의 호수 도화지와 사뭇 다른 느낌의 심항산 호수 도화지.
거대한 충주호가 끝 모를 만큼 길게, 수많은 산 틈을 비집고 들어가 월악산으로 향했다.
심항산 정상의 전망대.
하산하는 길에 출렁다리를 지나 종댕이길로 접어들었다.
쉼터 정자에서 따가운 햇살을 잠시 파하는 사이 오전까지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서 어느 순간부터 목화솜 같은 구름이 몰려들었다.
여전히 피부를 태울듯한 따가운 햇살이 부담스러워 정자에 올라 강바람의 다독임에 한숨 돌렸다.
바다 대신 호수와 산의 어우러짐이 좋아 끝끝내 따라붙는 종댕이길의 흥에 덩달아 걷기 시작하여 531도로에 합류했다.
비소식을 의심했었는데 점점 의심이 물러나고 확신이 되어하는 수없이 531도로 따라 출발점으로 돌아 걷기 시작, 가는 길에 계명산 자연휴양림 초입의 이쁜 나무를 감상했다.
꽃이 없어도 아름다울 수 있었다.
생애 첫 휴양림이 계명산이었던 걸 비춰본다면 내게 있어 특별한 곳.
심항산은 호반의 완만하고 낮은 산이었지만 숫자가 무의미하게도 저 위에서 보이는 세상은 거대했다.
도로가를 지나는 종댕이길 위 존재들은 오래되었지만 차라리 그런 오래된 흔적들부터 순차적으로 쌓여 있는 길이 더욱 정감 어렸다.
세모가 겹쳐진 특이한 모양의 산이 문득 보였다.
이름도 특이한 사우앙산.
산 형제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산이 된, 일란성 산자락의 풍년이었다.
이 장면을 마지막으로 종댕이길과 심항산의 짧은 여정을 마무리했고, 서울에서 폭우가 내린다는 소식과 때마침 이른 점심 식사로 인해 벌써부터 허기진 속을 달래기 위해 충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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