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한 넋두리

깊이 숨은 보배, 영월 어라연_20200204

사려울 2021. 7. 17. 19:36

거두절미하고 영월 시내에서의 목적인 끼니를 해결한 뒤 곧장 시내를 빠져나와 마음에만 두고 있던 어라연으로 향했다.
제 집 드나들 듯 영월은 참으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연고도, 지인도 전혀 없던 영월을 찾게 된 건 근래 몇 년 전부터의 인연인데, 물론 문화 컨텐츠의 파괴력을 익히 잘 알고 있어 영화 라디오스타를 통해 내겐 영월이 스타와도 같은 곳으로 실제 환상이 깨지는 사태를 겪고 싶지 않아 정선, 태백 가는 길에 필히 거치는 길목임에도 의도적으로 들리지 않아 환상의 신선도는 꽤나 오래 버텼다.
결국 영월에 목적을 두고 첫 발을 들인 건 2015년 가을부터 곳곳을 누비며 다녔고, 숨겨진 비경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정선으로 가는 길목이자 접근성이 좋아 큰 마음 먹지 않아도 이제는 만만한 싹이 되어 버린 지금, 얼마 전 봉화와 단양을 다녀 오는 길에도 영월을 통해 집으로 향했던 전력도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여행객들을 위해 알토란처럼 꾸민 정선과 달리 영월은 지리적 이점이 있음에도 투박하거나 엉성한 느낌이 든다.
많은 자본을 들인 부분이 아니라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세심한 부분에 대한 고심의 흔적이랄까?
비유하자면 정선은 몇 번 집을 이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가꾸면 가족과 손님의 편의성도 좋고, 시각적 효과와 감성적 공감을 터득했다면 영월은 지금까지 가족만을 위한 공간으로 편하게 지내다 방문객이 늘면서 이제 좀 신경을 써야 되는데 여러 집을 다니며 차용하다 보니 투자한 티는 나는데 공간과 온전한 타협이 조금 부족한 느낌?
어쩌다 비방처럼 표현 되었지만 애정의 쓴소리란 표현이 맞겠다.

영월 시내를 벗어나던 중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을 힐끗 쳐다봤다.
라디오스타에서 라이브콘서트가 열린 곳인데 영월의 랜드마크 격이다.
미세 먼지 없는 청명한 대기와 어울린 하늘과 산의 빛깔이 시선을 잡아 끈다

봉래초등학교 거운분교 부근에 다다르면 공영주차장이 있어 거기에 주차를 한 뒤 짐작한 어라연 방향으로 걷다보면 길 어귀에 짐작을 확신시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부터 도보로 가는 방법은 동강 따라 평탄한 3.5km 길과 잣봉을 넘어 능선 따라 질러 가는 3.2km 길-잣봉까지 2.2km에 잣봉에서 어라연까지 1km란다-이 있다.
처음 어라연에 온 거라 평탄한 길은 왠지 재미 없을 거 같아 갈 때는 잣봉으로 해서 힘 좀 쓰고, 돌아올 땐 기운이 좀 빠진 상태를 감안해서 동강변으로 돌아오자.

잣봉으로 가는 길은 평탄한 마을길을 거쳐 본격적으로 산에 접어드는 구간부터 지속적인 오르막길을 지나 동강이 전망되는 능선길부터 평탄해진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동안 주위를 둘러볼 겨를은 커녕 이 길을 선택한 건방진 내 생각을 원망하다 다시 숨을 고르는 순간 주위 풍광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종종 요따구로 생겨먹은 걸 목격하게 된다.
꽃봉우리려나, 아님 곤충 번데기?

능선길은 지속적으로 동강을 발 아래 둔 전망 좋은 길로 다만 길 양옆이 나무로 우거져 겨울임에도 나무줄기에 탁 트인 전망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간헐적으로 나무 사이로 어라연이 특색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연이라고 써 있지 않지만 충분히 어라연이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첫 눈에 나도 모를 탄성을 쏟아냈다.
잣봉 능선길에 서 있는 이정표에는 잣봉까지 0.5, 어라연까지 1.5란 숫자를 보고 잣봉과 어라연의 거리가 1km라 유추할 수 있다.

종종 모습을 드러내는 요 것!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나무 사이로 선명한 모습을 드러낸 어라연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능선길 아래가 동강이라 이 구간은 낭떠러지에 버금가는 경사 구간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나무가 워낙 우거져 칠족령처럼 걷는 동안 개다리 춤을 춘다거나 심장이 쫄깃해지는 건 아니다.

드뎌 어라연 가는 길 중 가장 힘든 잣봉 정상에 도착, 산 봉우리 치곤 꽤 나무가 우거져 주변 경관을 제대로 전망할 수 없다.
힘들게 올라온 거 같은데 높이는 537m라고?
대략 1천m 정도의 고봉에 오른 기분은 말 그대로 기분일 뿐, 그나마 동강 일대의 미려한 전경을 보는 게 더 큰 수확이다.
검룡소에서 시작한 한강이 서해 바다로 흐르는 동안 아마도 정선~영월 구간이 가장 절경이라 단언해도 좋을 만큼 사행천의 모습을 띄며 태고적부터 동강이 만들어 놓은 지형은 어려운 접근성 만큼 미려한 풍광을 만들어 놓았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접근이 수월했다면 지금과 같은 자연 그대로의 형체에 원래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보존했을까?
잣봉 정상에서 잠시 성취감을 느낀 후 바로 어라연으로 출발했다.
잣봉에서 어라연까지는 오를 때만큼 가파르고 지속적인 내리막길이라 조심해야 되는데 다행인건 산길에 가드가 설치되어 시원하게 구를 일은 없다.

내리막길이 완만해지는 순간 어라연에 거의 도착한 지점으로 꽤 긴 구간이 외길의 내리막이었다면 처음 만나는 산 교차길에 이렇게 친절한 이정표가 사람을 반긴다.
지도상 지형을 보면 돌출된 부분에 전망대가 있어 어라연을 들르기 전 전망대로 향했지만 도중에 길은 막혀 있었고, 끝난 줄 알았던 위태로운 길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그걸 감수하고 막힌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망대로 갈 수는 있겠지만 왠지 하지 말란건 말을 고분하게 들어야 될 거 같아 도중에 어라연을 발치에 둔 지점에서 자리를 깔고 에너지와 수분을 보충했다.
아무리 늦겨울에 평일이라지만 오는 도중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은 게 신기하다.
처음 오는 곳이긴 해도 나름 입소문을 타던 곳이라 간간히 탐방객이 있을 줄 알았지만 차량을 주차한 곳부터 작은 마을을 지나도록, 또한 산길이 대부분 외길이라 최소 몇 명은 마주칠 줄 알았으나 목 놓아 힘차게 짖어대는 개자식들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오지 기분을 지대로 느낄 수 없어 더 좋았지!

어라연을 발치에 두고 앉아 지나치게 평온한 세상을 멍하니 둘러봤다.
평온의 진득한 단물이 혀끝에서 부터 가슴까지 은은하게 파고들어 여행을 출발한 내내 가시지 않던 긴장을 이완시켰고, 떠나는 발걸음에서 수 없이 교차하는 갈등과 용기를 성취감으로 최종 귀결시켜 줬다.
사실 어라연은 최고의 절경이라 부를 수도,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다.
다만 수월하지 않은 과정으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 스스로의 보람을 충분히 찾고, 세세히 힘든 과정을 잊을 수 있는 만큼 자연을 나열해 놓고 순위를 매기는 게 이기적이지 않은가.

 

어라연에 내려오면 도리어 발치에 뒀을 때보다 평이하다.
다만 여기까지 힘들게 걸어온 여행자의 편안한 쉼에 무게를 뒀다고 보면 되겠다.
어라연으로 출발한 후 줄곧 좁거나 가파른 길만 보다 이렇게 평탄한 땅을 밟는 순간 상대성 때문인지 무척 너른 터를 밟고 선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뒷편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어 어라연 여정에 있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마냥 긴장도 풀어졌다.
물가에 다가가서 보면 생각보다 수질은 좋지 않고, 살짝 물 비린 내가 코끝에 닿는다.
오후가 제법 기울어 햇살이 물러날 걸 염려해 얼마 지나지 않아 주차한 거운분교로 출발, 올 때와 달리 동강변을 따라 평탄하게 뻗은 길을 택했고, 예상처럼 돌아가는 길은 크게 힘든 건 없었다.

머지 않아 봄을 알리는 희망 메시지.

강변길은 산에 오르지 않아도 생각보다 만만한 길은 아니었다.
도중 축축하고 습한 길에 돌을 밟고 가는 도중 미끄럼에 주의해야 되겠다.

예전 주막이 있던 자리란다.
마음 같아선 퍼질러 앉아 국밥에 맥주 한 사발 뽀개고 싶은데 성행하던 시절의 터와 역사만 남아 이제는 황망한 흔적 뿐이었다.
부근에 민가가 있어 깊게 패인 타이어 자국이 있긴 한데 그만큼 땅이 질퍽해져 밑을 보고 발을 디디지 않으면 진흙탕에 발이 쑥 빠졌다.
아마도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말란 계시로 받아 들이자.

많은 발걸음의 흔적들, 그와 달리 좀처럼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어라연은 때마침 여행객의 방문이 소강 상태라 동행하는 음악의 볼륨을 살짝 높여 힘겹던 잡념을 달래며 결국 주인공을 만나게 되었다.
연지곤지 찍은 아릿다움이 이내 부끄러워 면사포 깊게 눌러 쓴 제 모습을 첩첩 산중에 숨겨뒀던 어라연은 번뜩이는 물고기 비늘처럼 힘겨운 산행길에 어느 순간 한눈에 들어오는 동강의 절경지다.
낭떠러지 발치에 숨어 있던 절경은 겨울의 매력을 만나 빼곡한 가지 사이로 배시시 모습을 한꺼풀씩 보여 주는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주는 자연의 배려로 주변 절경 또한 뒤쳐지지 않아 어라연에 쏟아부을 감탄사는 어느 정도 절제하며 하나씩 풀어 놓을 수 있었다.
동강이 조각한 협곡을 처음 맞이하는 건 아니지만 매번 새로운 모습에 기대하고 감탄하는 시간도 재미난 놀이가 되어 버렸다.
칠족령의 칼날 같은 길에 서서 크게 굽이치는 동간의 모습과 달리 어라연은 차분한 모습의 동강을 볼 수 있다.
잣봉은 어라연과 찰떡 궁합인데 그 길이 고행이라면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대 비경은 고행의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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